소설리스트

현계지문-642화 (642/916)

642화. 본체가 나타나다.

석목은 금빛을 번쩍이며 다시 몸을 멈췄다. 하지만 얼굴에는 핏기가 조금도 남지 않았고, 몸도 부들부들 떨면서 비틀거렸다.

“석두!”

채아가 날아와 영롱한 빛을 드리우며 석목을 받쳐 들었다,

조금 전에 격전을 치르며 채아는 석목을 도와줄 수 없었지만, 곧바로 연꽃 동자를 데리고서 한쪽으로 피했다.

팽산은 쇠약해진 석목을 보며 오히려 좋아했다. 그리고 눈에 사나운 빛을 스치더니 몸에 보라색 빛을 크게 드리우며 석목을 향해 덮쳐 들었다.

팽산은 손에 빛을 반짝이며 소박한 깃털 부채를 불러냈고, 부채에서 보랏빛과 푸른빛이 번쩍였다.

“죽어!”

팽산이 소리를 지르며 한 손으로 법결을 시전하여 깃털 부채를 힘껏 흔들었다.

후루룩!

보랏빛과 푸른빛 화염 두 갈래가 부채에서 터져 나와 허공에서 큰 봉황으로 변하였다. 봉황은 몸통이 족히 이삼십 장이나 되었는데 머리에는 화염 봉관을 쓰고 있었으며 두 발에서도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온몸에서 보라색과 푸른색 화염이 맴돌며 강력한 영압을 풍겼는데 그 힘이 성계 후기에 비길 정도였다.

그 광경을 본 채아가 깜짝 놀라며 돌아서서 도망을 치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하지만 석목은 안색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석목이 손을 흔들자 검은빛이 반짝이며 분신이 나타났다.

분신은 몸에서 검은빛을 크게 뿜더니 몸속 마기가 순식간에 핏빛 단검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러자 핏빛 단검에서 빛이 크게 번지며 열 장이 넘는 커다란 핏빛 검날이 나타나 봉황을 갈랐다.

쾅!

봉황은 매우 기세등등했지만 결코 핏빛 단검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핏빛이 반짝이는 사이에 봉황은 두 덩어리로 갈라졌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팽산에게 향했다.

팽산은 믿기지 않은 눈빛을 내비치며 깃털 부채만 흔들었다.

팽산이 시전한 봉황비술은 성계 후기와도 겨눠볼 만한 비술이었는데 고작 성계 중기 경지인 분신에게 가볍게 베였다.

하지만 석목은 팽산에게 많은 생각을 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핏빛 단검이 순식간에 팽산을 삼켜버렸으며 묵직하게 터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팽산은 몸이 찢어져 버리며 성배 신혼마저 도망을 치지 못한 채 완전히 사라졌다.

검의 빛이 천천히 흩어지며 핏빛 단검의 본체가 드러났다. 단검에선 붉은빛이 맴돌았는데 처음보다 훨씬 더 붉어진 것만 같았다.

분신은 단검을 거두어들이고는 다시 석목의 몸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주변에서 흩날리던 다양한 빛들이 천천히 사라졌으며 성운에 있던 모든 게 평온을 되찾았다.

석목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흑백 날개를 펼쳐 다시 용우비차로 날아갔다. 그리고 용우비차에서 가부좌를 틀고는 주황색 단약 두 알을 삼켰다.

석목이 구전현공을 천천히 시전하자 오른쪽 복부에 푸른색 가마가 나타났으며 복부와 가슴에 푸른색 나무 무늬가 생겼다.

푸른빛이 흐르자, 가슴께에 난 상처가 눈에 띄는 속도로 빠르게 아물었다.

피부에 난 상처는 쉽게 치유되었지만 전함에게 받은 공격 때문에 격하게 흔들렸던 폐부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잠시 후에 석목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두 눈을 떴다. 채아가 긴장을 한 표정을 지으며 석목의 어깨로 날아왔다.

“석두, 안색이 안 좋아, 괜찮아?”

석목이 천천히 고개를 흔들며 연꽃 동자를 바라보았다.

청란성지에서 나온 후부터 동자는 두 눈이 점점 희미해지며 혼을 잃어버린 듯 멍하니 있었다.

하지만 동자는 몸에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아서 석목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동자는 나타났을 때부터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은 위험한 상황과 마주했으니 동자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석목은 푸른색 선급 영석을 꺼내서 손에 쥐었다.

영석에 깃든 영력들이 곧바로 석목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갔고, 잠시 후에 석목은 이미 평범한 돌로 변해 버린 영석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말했다.

“어기서 오래 머물 수 없어. 빨리 떠나야 해.”

석목이 하는 말을 들은 채아가 빠르게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석목은 일어서서 용우비차를 몰며 채아와 연꽃 동자를 데리고 성운에서도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 * *

떠나는 동안, 채아는 평소와 달리 조용하니 말이 없었다.

석목은 용우비차를 몰며 천천히 몸을 회복했고, 혈색도 점점 돌아오고 있었다.

“석두, 우리 어디가?”

채아가 망망한 성해를 바라보며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

“방향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어. 운에 맡겨보자. 우선 내려서 머물 곳을 찾아야 해.”

석목이 시선을 거두며 대답했다.

다급하게 도망을 오느라 지금 어디에 있는지 석목은 알 수 없었다. 그저 최대한 동성성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순간,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빠르게 법결을 시전하여 용우비차를 멈춰 세웠다.

연꽃 동자가 흐려진 안색으로 비틀거리며 석목의 다리 옆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왜…… 왜 그래? 석두, 또 무슨 일이야?”

채아는 잔뜩 겁에 질려 말을 더듬거렸다.

“앞에 매우 강력한 기운이 느껴져……”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영목신통으로 성해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수십 리 밖, 금빛이 찬란하게 번졌는데 몸통이 백 장이나 되는 방대한 무엇인가가 빠르게 석목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본체다!”

석목이 소리를 지르면서 곧바로 용우비차의 방향을 틀며 빠르게 도망갔다.

“왜, 석두? 누구야?”

채아가 다급하게 물었다.

“구수금교 오조. 남해성에서 그 자의 분신이 우리를 쫓아왔어. 내 예상이 맞았다면 이번에는 아마 본체가 나타난 걸 거야.”

석목이 어두워진 얼굴을 내비치며 말했다.

석목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구수금교를 바라보았다. 이때, 금빛이 번개 같은 속도로 석목을 쫓아왔다.

영석을 아낄 때가 아니었다. 석목은 곧바로 선급 영석 몇 개를 용우비차에 끼워 넣었다.

용우비차에서 빛이 크게 번지더니 순식간에 속도가 크게 올라 앞으로 뽑히듯이 날아갔다.

그리고 석목과 수십 리 밖에 있던 구수금교는 몸에 금빛을 크게 드리우더니 몸집이 수십 배나 줄어들어 크기가 열 장 정도로 변해버렸다.

몸집은 줄어들었지만 속도는 몇 배나 더 빨라졌다.

구수금교는 몸이 갑자기 흐릿해지더니 성운에 툭툭 끊긴 잔영들을 만들어내며 석목을 쫓아갔다. 그 모습은 마치 허공을 가로지르는 것만 같았는데 잠깐 사이에 석목과의 거리가 수십 리로 줄어들었다.

석목은 상처에 신경을 쓸 겨를도 없이 영력을 끝까지 끌어올렸지만, 여전히 상대를 뿌리치지 못하자 답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때 앞에 놓인 성운에선 별빛만 반짝일 뿐 아무것도 없었다.

석목은 일이 잘못된 것을 알아차리고는 곧바로 용우비차를 멈춰 세웠다.

석목이 멈춰 서자, 몇 장 밖에서 금빛이 밝아지더니 튼튼하게 생긴 금색 교룡 한 마리가 나타났다.

교룡은 거대한 구렁이 같은 몸통에 차가운 빛을 뿜어내는 금색 비늘을 두르고 있었다. 또한 커다란 머리 아홉 개를 높이 치켜들고 있었는데 눈들이 전부 차갑게 석목을 주시하고 있었다.

“네 이놈, 곤륜성허에서 본체가 올 거라고 했지. 다음번에 만나는 날이 네 제삿날이라고 했잖나. 이제 너는 아무데도 도망치지 못한다!”

오조의 입 아홉 개가 동시에 말을 했다. 아홉 갈래 목소리가 석목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도망을 간다고? 내가 왜? 네 분신은 내 토템 비술에 아주 영양이 풍부한 먹잇감이었지. 그러니 본체는 더 맛있을 거야.”

석목은 냉정을 되찾고는 웃으며 말했다.

“곧 죽게 생겼는데 아직도 잘난 척을 하는군!”

오조는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빛을 번쩍이더니 몸집이 순식간에 줄어들어 금색 용포를 둘렀으며 금색 수염을 드리운 중년 남자로 변하였다.

석목의 눈이 반짝였다. 이 모습은 남해성에서 자신을 쫓아오던 분신과 다를 바가 없었다.

“네 오지랖 때문에 나는 많은 해를 입었다. 그리고 나의 분신 세 구를 죽여 버렸으니 오늘 제대로 갚아줘야겠다. 더는 청란성지에 숨을 수도 없게 되었는데 이제 어찌할 건가!”

오조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너는 청란성지의 성주를 무서워하는구나.”

석목이 말했다.

석목이 시간을 끌면서 신식으로 계속 연나와 연결되길 시도하였으나 무엇 때문인지 연나는 일관되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속승, 유명하지. 그런데 이 와중에 속승이라는 이름으로 날 놀라게 만들려고?”

오조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채아는 석목의 어깨에 앉아 겁에 질린 눈빛으로 오조를 바라보았다. 이때, 석목의 목소리가 채아의 머리속에 울려 퍼졌다.

“채아, 오조의 본체는 실력이 너무 막강해, 신경 초기, 아니 중기도 뛰어넘을 거야. 내가 전성기일 때도 상대가 되지 못했어. 하지만 지금은 상처까지 입었지. 이따가 상황을 봐서 움직여, 상황이 좋지 않으면 곧바로 동자를 데리고서 빨리 도망가,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줄게.”

“석두, 너…… 나……”

석목이 하는 말을 듣던 채아는 더욱 초조해져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때, 오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많은 시간을 줬는데 영총을 못 불렀나? 한 번에 죽이려 했더니.”

석목이 쓴웃음을 지었다. 오조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이렇게 시간을 준 것도 연나를 부르도록 만들어 한 번에 죽이려는 작정이었다.

“됐다, 우선 너부터 해치우고서 다시 생각하지 뭐.”

오조의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쳤다.

그리고 손바닥을 앞으로 밀자, 허공에 크기가 수십 장에 달하는 금빛 용발이 나타나 용우비차를 잡으려고 했다.

강력한 영압이 밀려왔다!

석목은 이미 준비를 했기 때문에 손바닥을 드는 순간부터 금빛을 반짝이며 금색 비늘로 몸을 감은 채 발끝을 짚으며 흑백 날개를 펼쳐 날아갔다.

그리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어 허공을 붙잡았다. 그러자 금빛이 밝아지며 여의빈철곤이 곤초에서 뽑혀 나와 손으로 꽉 쥐었다.

“태산압정!”

석목이 소리를 지르자, 빈철곤 끝에서 금빛이 밝아졌고, 산처럼 큰 그림자와 함께 곤봉이 금빛 용발을 강하게 내리쳤다.

쾅!

용발이 단번에 곤봉 그림자를 부숴버렸다. 그리고 금빛이 번지는 사이에 튀어나와 미처 피하지 못한 여의곤에 스쳤다.

석목은 엄청남 힘이 몰려오는 걸 느꼈고, 금색 비늘이 산산이 부서지더니 몸도 뒤로 날아가 버렸다.

백 장이나 날아가서야 석목은 간신히 몸을 멈춰 세우고는 묵직한 신음소리를 내며 피를 뱉어냈다.

“석두……”

채아가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반응은 빠르군. 괜찮아, 나도 널 너무 빨리 죽이고 싶지는 않아. 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을 느끼게 해주겠다.”

오조가 소리를 질렀다.

오조가 말을 마치기 바쁘게 흩어진 금빛에서 붉은 핏빛이 나타났다. 순간, 넓적한 핏빛 단검이 빛 사이를 가로지르며 오조의 얼굴을 겨누었다.

오조는 멈칫하더니 손을 휙! 흔들었다. 그러자 금빛이 흩날리며 긴 창이 나타나 핏빛 단검과 격하게 부딪쳤다.

“탱!”

쇠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핏빛 단검에 드리운 붉은빛이 크게 번지더니 창끝에 얇은 틈이 한 줄 생겼다.

그 모습을 본 오조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는 손바닥에 금빛을 반짝이며 긴 창을 마구 흔들자 빛이 더욱더 짙어져 맹렬하게 핏빛 단검과 부딪쳤다.

“탱!”

핏빛 단검이 커다란 힘 때문에 밀려 바람 소리를 내며 튕겨져 날아갔다.

석목의 분신이 튀어나와 손을 뻗어 단검을 받았는데 분신도 힘 때문에 밀려 뒤로 수십 장이나 밀려났다.

분신이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전에 금빛이 반짝이더니 긴 창이 다시 한번 분신의 머리를 내리쳤다.

분신은 뒤로 한발 물러서서는 두 손으로 핏빛 단검을 치켜들고서 긴 창을 막아냈다.

탱!

금빛과 함께 긴 창이 부러져버렸다.

긴 창이 부러졌지만 오조는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음흉한 미소도 지었다.

이때, 이변이 일어났다.

긴 창이 부러진 자리에서 은빛이 반짝이더니 용의 눈알만 한 구체가 툭! 떨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