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643화 (643/916)

643화. 동자와 등불 (1)

석목은 떨어지는 구체 위에 새겨진 현묘한 부문들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다.

“큰일이다!”

석목은 곧바로 한 손을 흔들어 분신을 거두어들였고, 분신이 희미해지더니 검은빛으로 변하여 날아왔다.

이때, 구체에서 찬란한 은빛이 눈부시게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분신을 감싸버렸다.

쩍!

번개 소리와 함께 은색 번갯불이 서로 얽히며 커다랗고 둥그런 번개로 변하더니 석목의 분신을 감아버렸다.

촘촘한 빛이 한참 동안 분신의 몸을 내리쳤다.

분신은 칙칙 소리를 내는 번개에 둘러싸여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분신의 몸에서 검은색 부문이 튀어나와 한 척 정도 되는 공간에 뭉치더니 분신이 손에 든 핏빛 단검을 힘껏 휘둘렀다.

퍽!

은색 번갯불에 휩싸인 구체에 균열이 일더니 분신이 균열 속을 비집고 나와서는 다시 석목 앞에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균열도 다시 붙어버렸다.

분신은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몸에서는 얇은 은색 번개가 여전히 소리를 내며 튀고 있었다. 구체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분신은 이미 의식을 잃어버렸는데, 적잖이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석목은 곧바로 손을 뻗어 분신을 몸속으로 거두어들였다.

“영역의 힘? 네 분신이 이런 힘을 쓸 줄은 꿈에도 몰랐군! 네게 시간을 더 주면 정말로 두 번째 백원왕이 되겠구나. 아쉽게도 네겐 이제 기회가 없다.”

오조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오조의 등 뒤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커다란 금색 교룡의 허영이 나타났고, 머리가 아홉 개나 달리 허영은 오조를 뛰어넘어 곧바로 석목을 향해 덮쳐 들었다.

아홉 머리에서는 금빛이 튀고 있었는데 마치 세상을 불태울 듯이 허공을 뜨겁게 달구었다.

석목에게로 뜨거운 열기가 몰려왔는데 열기가 굉장한 힘을 머금고 있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석목은 이를 악물면서 두 눈을 꼭 감았다.

석목의 영해가 들끓더니 신식과 번천곤이 다시 연결되었다.

번천곤이 석목의 영해에서 금빛이 되어 흐르며 강렬한 영력 파동을 일렁이면서 파도쳤다.

석목의 손에서 여의빈철곤이 사라지더니 금색 곤봉이 나타났다.

석목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훨씬 강력하고도 두려운 힘을 머금고 있는 곤봉을 꽉 쥐고 있었지만, 안색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몸속에 깃든 진기가 끊임없이 곤봉 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진기가 흘러 들어갔을 때, 한 치도 망설여선 안 되었다.

순간, 석목이 눈을 번쩍 뜨고는 큰소리를 지르며 곤봉을 치켜들어 덮쳐오는 교룡의 허영을 강하게 내리쳤다.

번천곤에서도 방대한 흡인력이 들끓으며 진기를 빨아들이는 속도가 몇 배나 더 빨라졌다.

번천곤에서 금빛이 크게 번지더니 수많은 금색 부문들이 튀어나와 곤봉을 맴돌며 끝에 뭉쳤고, 금색 곤봉 그림자가 무서운 기운을 이끌며 빠른 속도로 앞을 향해 날아갔다.

곤봉 그림자가 스친 허공은 무(無)로 변하더니 곧이어 아무것도 없던 하늘이 압축이 된 듯 더욱 순수한 무(無)로 변하였다.

커다란 교룡이 단번에 금색 곤봉 그림자와 부딪치자 소리도 한 번 내지 못하고는 흩어져 버렸다.

“번천곤!”

그 광경을 본 오조는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오조는 손을 들어 맹렬하게 앞을 막았고, 손바닥으로 금빛을 뿜어내자 사람 머리만 한 금색 도장이 손바닥에서 튀어나왔다.

금색 도장은 용 아홉 마리를 감고 있었는데 부문이 가득 새겨진 걸 보아하니 등급이 높은 영보였다.

도장은 튀어나오자마자 허공에서 빠르게 불어나더니 곧바로 높이가 백 장 까지 자라났다. 위에서 맴돌던 용과 부문들에서도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와 기이한 파동을 이루었고, 파동이 성운에 퍼지면서 먼지마저 묶어버렸다. 마치 봉인이 된 것 같았다.

이때, 오조가 소리를 지르며 다시 머리가 아홉 달린 용으로 변하여 도장을 따라 덮쳤다.

석목의 번천곤이 도장이 내뿜는 금빛에 부딪치면서 도장의 거침없던 기세가 한풀 꺾였지만, 강력하게 짓누르는 힘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쿵!

금색 곤봉 그림자가 도장에 부딪쳤다.

높은 벽처럼 불어난 도장 위에 드리운 부문들의 빛이 극도로 밝아지더니 아홉 마리 용 그림자가 서서히 나타났고, 용 그림자에서 용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지만, 여전히 번천곤이 날리는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터지며 허공에서 흩날렸다.

성해에서는 마치 암석이 호수에 떨어진 듯 크고 강렬한 영력 파동이 줄줄이 퍼졌다.

크르릉!

용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금색 도장에서 흘러나온 게 아니라 오조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리였다.

오조의 커다란 몸이 층층이 드리운 영력 파동을 뚫더니 곧바로 번천곤의 그림자와 부딪쳤다.

쾅!

금빛이 줄줄이 부서졌으며 부서진 빛들이 허공에서 깜빡거리더니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금빛은 곧바로 용우비차를 수십 장 멀리까지 날려버렸다.

채아는 용우비차의 모서리를 꽉 잡고 긴장한 모습으로 금빛 가운데를 바라보았고, 석목은 가슴에서 피를 흥건하게 흘리고는 허공에서 곧바로 떨어졌다.

채아가 깜짝 놀라 두 날개를 펼치더니 석목을 향해 날아갔다.

석목 가까이로 날아가자 채아는 몸집이 순식간에 몇 장이나 커져서 등으로 석목을 받아내며 다시 용우비차로 날아왔다.

“석두……”

처참하게 당한 석목을 바라보며 채아가 다급하게 말했다.

석목이 입을 벌리고서 말을 하려고 할 때, 붉은 피가 먼저 터져 나왔다.

“괜찮아, 난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 억지로 번천곤을 시전해서 간과 폐에 입었던 상처가 다시 도졌어. 그래서 피가 흘러나온 거야.”

석목은 몸을 짚고서 자리에 앉더니 나무 속성 선급 영석을 쥐고는 말했다.

“다행이야, 놀랬잖아!”

채아가 울먹이며 말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사이에 허공에서 다시 한번 용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고, 둘은 고개를 돌려 하늘을 봤다. 오조가 다시 용처럼 변했다.

머리 아홉 개 중에 두 개는 이미 터져버렸는지 섬뜩하고 깊은 상처만 두 갈래 그어져 있었고, 또 다른 머리 세 개도 피범벅이 되어버려 보기에 매우 거북하였다.

“네 이놈, 네 몸통을 찢어버릴 테다!”

아직 남아있는 오조의 머리 몇 개가 동시에 말을 했는데 원망이 가득했으며 사나운 말투였다.

오조가 말을 마치기 바쁘게 몸에서 금빛을 뿜어내며 머리 아홉 갈래가 점차 희미해졌다가 다시 가운데에 있는 머리와 하나로 합쳐져 길이가 백 장이 넘는 거대한 금빛 교룡으로 변하였다.

머리가 합쳐지자 오조가 풍기는 기운은 점점 강력해졌으며 영압이 짓눌러 숨까지 턱 막혔다.

“채아, 지금이야, 빨리 가.”

석목이 깜짝 놀라 다급하게 전음을 보내며 말했다.

“아무도 도망칠 생각 마라!”

채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오조가 소리를 질렀다.

오조의 흉악한 입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왔으며 엄청난 힘이 전해졌다.

성운에 흩어진 영력들이 힘에 이끌려 모여들었다.

영력이 점점 쌓이자 금빛이 점점 밝아졌고, 흘러나오는 영력 파동도 훨씬 강해져 석목을 짓눌렀다.

“빨리 가!”

석목이 소리를 치며 등 뒤에 흑백 날개를 펼쳐 용우비차에서 날아 나왔다.

석목의 몸에서 구룡쇄금갑이 번쩍였는데, 가슴과 복부에서 푸른색, 노란색, 금색 빛이 동시에 밝아졌으며 근육엔 나무 무늬가 줄줄이 나타나 몸을 두텁게 감쌌다. 몸에 두른 두꺼운 갑옷에서는 날카로운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채아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돌려 영우비차에 앉아있던 연꽃 동자를 향해 몸을 낮추며 말했다.

“올라와, 가자.”

채아가 하는 말을 들은 동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멍하니 비차에 서서는 석목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이때, 금빛 교룡으로 변신한 오조의 입에서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며 금빛이 터져나와 굵직한 빛기둥이 되어 석목에게 향했다.

금빛이 스친 허공에서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얇은 공간 균열이 벌어졌다. 공간 난류가 균열 속에서 흘러나왔다가 곧바로 금빛에 닿아 부서져 버렸다.

석목의 영해에 다시 파도가 몰아쳤다. 석목은 다시 한번 번천곤을 꺼내고 싶었지만 조금 전에 다급하게 빨아들인 선급 영석으로는 영력이 충분히 모이지 않아서 번천곤을 소환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석목은 다시 빈철곤을 꺼내들었다.

석목이 곤봉을 꽉 잡자, 곤봉에서 빛기둥이 뿜어져 나왔다.

“이앗!”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곤초에서 여의빈철곤을 뽑았다. 곤봉이 눈부신 빛을 뿜어내며 빛기둥을 받아쳤다.

하지만 석목은 바로 금빛에 삼켜졌다.

채아는 정신을 잃은 듯이 처참한 광경을 바라보더니 한참 후에야 정신이 들었는지 다급하게 소리쳤다.

“가자, 빨리 타.”

채아는 소리를 지르며 용우비차로 날아갔지만 놀랍게도 동자는 이미 용우비차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채아가 당황스러워 두 날개를 펄럭이며 용우비차 주변을 둘러봤지만, 동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잠시 후에 채아는 믿기지 않는 듯이 석목을 삼킨 금빛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채아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금빛 속에서 왜소한 한 사람이 작은 등불을 안은 채 석목 앞에 서 있었고, 놀라운 점은 왜소한 몸집에서 강력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흘러나왔다는 점이었다.

왜소한 사람은 늘 멍청해 보이던 연꽃 동자였다!

연꽃 동자가 안고 있는 푸른색 등불에선 콩알만 한 불꽃이 깜빡이고 있었는데 주변으로 드리운 푸른빛이 매우 단단해 보였다. 푸른빛은 마치 하늘을 묶어버린 듯이 금색 빛기둥을 막아냈다.

금색 빛기둥이 맹렬하게 떨어지며 푸른색 광막 주변에서 촘촘한 공간 균열이 일렁였다.

하지만 광막에 조금도 다가가지 못한 채 오히려 광막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빛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금빛이 완전히 사라지자 등불의 불꽃이 훅! 금색으로 바뀌었다.

“윤…… 윤회등(輪廻燈), 너는 누구냐?”

오조가 백 장 정도 떨어진 자리에서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석목은 몸을 살짝 구부린 채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동자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잠깐 침묵이 흐른 뒤, 연꽃 동자가 드디어 첫 마디를 내뱉었다.

“오조, 이 윤회등을 보고도 노부가 누군지 모르겠느냐?”

석목이 멈칫했다. 분명 아기처럼 앳된 동자가 ‘노부’라고 하니 기분이 매우 이상했다.

그 말을 들은 오조가 몸을 부르르 떨며 다급하게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속승은 이미 죽었어, 네가 속승일리 없어!”

“속승?”

오조가 하는 말을 듣자 오히려 석목이 깜짝 놀랐다.

동자가 이상하게 행동하는 게 늘 의문스러워 어떤 사연이 있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속승 진인과 연결지어서 생각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석두, 정말 속승 진인이야? 혹시…… 부활한 거야?”

채아가 전음으로 물었다.

“나도 몰라, 지켜보자고.”

석목이 대답했다.

“흥, 네 자식인 오흠(敖欽)이 참혹한 학살을 벌이며 자기 육신을 키우기 위해 미양 성역에 침입하더니 백여 개가 넘는 성들에서 학살을 벌였지. 피로 지은 죄 때문에 백성들이 공분하여 내 제자인 백원왕이 네 자식을 죽여 버렸다. 헌데 내 제자는 이미 운명한 지 천 년이 넘었거늘 아직도 복수를 멈추지 않고서 후손까지 죽이려 들다니 실로 추악한 모습이로구나.”

동자가 천천히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오조는 고통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며 이를 악물고서 말했다.

“백원 그놈이 내 아들을 죽여 혈맥, 근골, 비늘과 육신을 제련하여 만든 갑옷을 아직 저놈이 입고 있으니 이런 피 맺힌 원한을 어떻게 갚지 않을 수 있겠나? 백원 그놈이 죽어버렸으니 죗값은 후손이 받아 마땅하지. 절대 포기하지 않을 테다!”

그제야 석목은 오조와 백원왕 사이에 맺힌 원한 관계를 들을 수 있었고, 석목은 다시 몸에 두른 갑옷을 바라보자 기분이 조금 찜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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