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4화. 동자와 등불 (2)
“네 아들은 천도를 어겨서 죽어 마땅하다. 네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나를 원망하지는 말거라.”
동자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조는 용머리를 치켜들고서 동자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네가 속승 진인이면 또 어쩔 건가! 그토록 왜소한 껍데기로 나와 겨루겠다는 뜻인가? 그럼 오늘 맺힌 원한의 끝을 보지. 나도 궁금하군, 오늘 너와 나 사이에 살아남는 자가 누구일지.”
순간 교룡의 몸이 허공에서 한 바퀴 돌더니 커다란 발로 허공을 짚었다.
허공에서 금빛이 반짝이며 크기가 백 장 정도 되는 금빛 발이 나타나 동자의 머리 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하지만 동자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작은 손으로 푸른 등불을 치켜들었다. 등불에 적힌 부문들에서 희미한 빛이 반짝이더니 굵은 빛기둥이 등불에서 뿜어져 나왔다.
금색 빛기둥이 스친 허공이 찢어지며 균열이 나타났는데 조금 전에 오조가 시전한 공격과 소름이 돋을 정도로 똑같아서 깜짝 놀랐다.
쾅!
굉음이 온 성운에 울리며 금색 빛기둥과 두 발이 강하게 부딪치더니 동시에 터져버렸다.
금빛이 흩어지자 수많은 공간 난류가 그 안에서 터지더니 금빛이 되어 부서지며 전부 사라져버렸다.
공간은 한참 동안 흔들리다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석목은 동자가 품에 든 등불을 바라보았고, 불꽃은 색깔이 다시 푸른색으로 변하였다. ‘윤회’라 불리는 등불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오조가 용머리를 치켜들자 갑자기 기둥 같은 물체가 튀어나왔다.
기둥은 다시 교룡의 몸 앞으로 날아와 빛을 반짝이며 뻗어나가더니 너비가 십 장 정도 되는 커다란 화권(画卷)으로 변하여 하늘에 펼쳐졌다.
화권이 나타나자 성운은 온도가 갑자기 몇 배나 더 올라갔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화권을 바라봤는데 그 위로 살아 숨 쉬는 것만 같은 핏빛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화권에는 핏빛 강물 말곤 아무것도 없었다.
붉은색 강물은 마치 붉은 피가 흐르는 것만 같았으며 불룩하게 올라온 기포들이 가득했는데 마치 실존하듯 생생했다.
“속승, 네 윤회등이 영력을 삼켜서 다시 나를 공격했지만, 이 적염하(赤炎河)는 어떻게 삼킬 건가!”
순간 오조는 입에서 용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는데 그 소리가 다양하게 바뀌었다. 마치 어려운 주문을 외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커다란 화권에서 희미한 금빛이 뿜어져 나와 흐르고 있던 붉은 강물이 미친 듯이 용솟음을 치며 금빛을 향해 덮쳤다.
열 장도 채 되지 않던 붉은색 강이 금빛을 뚫으며 화권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순식간에 열 배나 불어났고, 뜨거운 열기는 더욱 들끓어 백 장이나 되는 강물이 펄펄 끓는 용암으로 변한 것만 같았다.
강에서 붉은 기류가 용솟음을 치며 뜨거운 용암이 형태가 없는 힘에 이끌려 연꽃 동자를 향해 세차게 흘러갔다.
연꽃 동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그러자 푸른 등불이 빙글빙글 돌더니 날아올랐다.
하늘로 날아오른 푸른 등불은 점점 불어나더니 백 장 가까이 불어나서야 도는 것을 멈추었고, 등불에 적힌 부문들이 다시 한번 밝아지며 등불에서 푸른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푸른 화염이 튀어나온 순간 옆으로 뻗어나가 푸른 불바다로 변하여 뜨거운 용암을 막아버렸다.
거침없이 밀려오던 용암의 강이 푸른색 불바다로 흘러들어온 순간, 곧바로 기세가 꺾여버렸다.
푸른 불바다는 평범한 화염처럼 보였지만 전혀 뜨겁지 않았고, 오히려 성운의 온도를 낮춰버렸다.
칙칙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푸른색 불바다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흘러들어오는 용암을 얼려버렸기 때문에 성운에 금, 은색 돌들이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용암의 강은 끊임없이 흘러들어왔지만, 망망한 푸른 불바다를 채울 수는 없었다. 화권에서 흐르던 강은 전부 푸른 불바다 속으로 흘러들어와 메말라 버렸지만 불바다는 끄떡도 하지 않았고, 끝없이 이어진 돌들만 수백 장 남겨 놓았다.
그러자 오조가 다시 울부짖었다. 끊이지 않을 것 같던 용암의 강이 흐르길 멈추더니 다시 뒤로 들어갔다.
들끓던 용암은 푸른색 불빛이 섞인 채 다시 붉은 강으로 변하여 화권에서 멈춰버렸다.
화권을 다시 거두어들이기 전, 붉은 하천에 섞여있던 푸른색 불빛이 응고되지 않은 채 천천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화권에서 햐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렸고, 타오르는 푸른색 화염은 곧바로 화권을 삼켜버렸다.
“오조! 내 윤회등의 무명업화(無名業火)가 그렇게 볼품없는 물건인 줄 알았더냐?”
연꽃 동자가 말했다.
이어서 연꽃 동자는 입으로 난해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푸른색 등불이 빠르게 줄어들더니 다시 동자의 손으로 날아갔다.
석목은 이 틈에 빠르게 용우비차로 날아가 영석을 들고 기운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선은 여전히 푸른 등불에 고정이 되어있었다.
푸르스름한 불빛은 처음보다 어두워졌다.
오조는 얼굴에 분노가 스쳤다. 순간 오조의 미간에 있던 금색 비늘이 뒤집히더니 검극 모양의 검은 자국이 하나 나타났다.
검은 자국에서 빛이 한 줄기 뿜어져 나오자 오조가 두르고 있던 비늘에서 은밀한 부문이 흘러나오더니 머리부터 꼬리까지 빛이 퍼져나갔다.
검은 부문이 빛을 밝히자 오조의 몸에서 터지는 소리가 흘러나오며 순식간에 백 장이나 불어났던 몸이 다시 몇 배나 더 불어났다. 또한 살살 흔들리는 비늘 사이에서 검은빛이 쏟아져 나왔다.
끊임없이 변하는 오조의 몸통을 바라보던 석목은 불안한 느낌이 들어 바짝 경계를 했다.
검은빛은 부문들을 타고서 다시 오조의 커다란 용머리로 모여들었다.
오조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는데 검은빛들이 입안으로 모여들어 점점 뭉쳤다.
석목은 깜짝 놀랐다. 수백 장이나 떨어져 있었는데도 오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놀라운 영압을 그대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연꽃 동자는 미간을 찌푸렸고, 통통한 볼에는 어울리지 않는 심각한 표정이 드리웠다.
채아가 석목에게 날아와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석두, 동자……”
석목은 연꽃 동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묵묵히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동자는 석목 일행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때, 하늘에서 용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오조는 갑자기 입을 벌리더니 커다란 빛덩이를 뿜었다.
빛은 매우 어두웠는데 빛이 스친 자리는 별들조차 까맣게 변하였다. 마치 성운에 있던 모든 먼지를 삼켜 철저히 사라지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빛은 놀라운 속도를 내며 다가오고 있었는데 어떤 규칙을 따라 움직이는 듯이 성운에서 끊임없이 번쩍이며 스치는 모든 물질들을 삼켜버렸다.
순간 성운에 떠있던 돌들이 사라지며 오조의 몸이 순식간에 불어나더니 소름이 돋는 파멸의 기운을 뿜어댔다.
동자가 품에 들고 있던 등불이 하늘로 떠올랐다. 푸른색 불빛이 다시 흔들리며 푸른 광막을 만들어 몰려오는 빛덩이를 막아냈다.
쿵!
푸른 광막이 검은빛에 부딪치는 순간, 곧바로 터져버려 빛의 조각마저 검은빛이 삼켜버렸다.
푸른색 광막이 터져버리자 연꽃 동자가 갑자기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두 손을 몸 앞으로 겹쳤다. 동자는 허공에 잔영을 겹겹이 만들더니 매우 복잡하고 현묘한 법결을 시전하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석목은 속으로 매우 놀랐다.
얼핏 보면 동자의 팔이 백 개나 자라난 것 같았다.
줄줄이 뿜어져 나온 법결은 복잡하며 순서가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떠한 규칙을 숨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석목은 법결을 깨우칠 수 있을 듯했으나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법결이 얽히고설키는 사이, 순식간에 크기가 한 장 정도 되는 푸른 연꽃대로 변하였고, 연꽃대 속엔 금색 구슬이 아홉 알 박혀있었는데 구슬 사이를 복잡한 무늬가 잇고 있어서 모양이 매우 기이했다.
동자는 순식간에 법결을 완성했다.
“성라연반(星羅蓮盤)”
동자가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동자가 말을 마치기 바쁘게 푸른색 연꽃대가 뒤집히더니 몸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구슬들이 다시 늘어서며 검은빛덩이를 맞았다.
동자의 몸에서 금빛이 밝아지자, 눈에 띄는 영력이 손바닥을 타고서 푸른 연꽃대로 흘러 들어갔다.
그러자 구슬이 하나하나 밝아지더니 극도로 방대한 힘이 속에서 뿜어져 나왔다.
연꽃대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와 실존하는 것만 같은 빛기둥으로 변하여 곧바로 검은 빛기둥을 들이받았다.
쾅!
하늘을 뒤흔드는 폭발음이 울려 퍼지며 검은빛에서 금색 무늬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무늬들은 이어지더니 찬란한 연꽃 그림을 그리며 활짝 피어나기 시작했고, 연꽃에는 복잡하고도 현묘한 문양들이 촘촘하게 그어졌다.
석목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활짝 핀 금색 연꽃을 바라보며 손에 쥔 영석을 내려놓았다.
금색 연꽃이 빙빙 돌더니 꽃잎들이 서로 부딪쳤다.
마치 모든 걸 삼켜 버릴 것만 같던 검은빛은 금색 연꽃의 힘 때문에 곧바로 터져버렸다.
금색 무늬는 점점 더 밝아졌다.
드디어 쿵! 하는 굉음이 울려 퍼지며 연꽃이 터졌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폭풍이 사방으로 퍼졌고, 터져나간 가운데가 무너지며 크기가 한 장 정도 되는 검은 구멍이 뚫려버렸다. 희박한 영력이 구멍 속으로 흘러들어갔는데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석목이 몰던 용우비차는 폭풍에 휘말려 마치 파도에 휩쓸린 작은 배처럼 먼 곳까지 밀렸다.
석목은 용우비차에 신경을 쓸 겨를도 없이 먼 곳을 바라보았다. 동자는 언제인지 모르게 다시 일어서서는 작은 발걸음으로 오조에게 걸어갔다.
커다란 연꽃대는 동자의 몸 앞에 떠있었는데 동자와 함께 오조에게로 향했다.
“아냐! 안 돼!”
오조의 눈에 믿기지 않은 기색이 스쳤다.
“오래전부터 나는 이미 천지에서 가장 현묘하고도 깊은 윤회를 깨우치려했다……”
연꽃 동자는 평온한 눈빛을 내비치며 천천히 말했다.
“너…… 너 오지 마!”
오조는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신비스러운 힘에 묶여버렸다.
“진정한 윤회의 힘을 깨우쳤으나 깊게 파고드는 건 참으로 어려웠지.”
연꽃 동자가 여기까지 말을 하더니 갑자기 멈춰 섰다.
연꽃 동자와 오조는 거리가 단 열 장 정도였다.
오조는 안색이 퍼렇게 질려버렸다.
“만 년이 지난 오늘에야 나는 진리를 깨달아 드디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오늘, 내가 평생에 걸쳐 깨우친 윤회의 법칙으로 네가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도록 만들어주마.”
연꽃 동자가 담담하게 말했고, 몸 앞에 있던 푸른색 연꽃대는 금빛이 더욱 밝아졌다.
금빛이 뿜어져 나오자 통통했던 동자의 볼이 갑자기 하얀 종잇장처럼 변했다. 진기를 전부 쓴 것만 같았다.
“아니야…… 안 돼……”
오조가 미쳐버린 듯이 소리를 질렀다.
오조는 비늘이 전부 뒤집힌 채 피범벅이 되더니 굵은 핏빛으로 변하여 금빛을 내리쳤다.
쾅!
하늘을 울리는 굉음과 핏빛이 한참 동안 흔들리더니 이윽고 터져버렸다. 금색 연꽃이 활짝 피어나며 전부 뭉개버린 것이었다.
오조의 몸은 연달은 폭발 속에서 수많은 빛으로 변하여 형태가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모여들더니 푸른색 연꽃대에 삼켜졌다.
이때, 연꽃 동자의 손에서 빛이 날아가더니 흩날리는 빛 속에서 날아다니는 금색 교룡의 허영을 끌어왔다.
이어서 둥그런 광막이 밝아지며 곧바로 금색 교룡의 그림자를 봉인해버렸다.
연꽃 동자가 손을 뻗어 금색 교룡의 머리를 잡았고, 교룡의 미간에 틈이 하나 벌어지더니 붉은 피가 아홉 방울 흘러나와 동자의 손으로 떨어졌다.
연꽃 동자가 허공에 손가락을 세 번 튕기자 피 세 방울이 푸른 등불로 떨어졌다. 이어 동자는 다시 나머지 피 여섯 방울을 하얀 옥병에 넣어두었다.
피가 등불에 떨어지자 붉은 안개가 흩날리더니 등불과 한 몸이 되었다. 그러자 푸른 등불은 빛이 더욱 밝아졌다.
이어 동자는 천천히 돌아서서 석목에게 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석목은 곧바로 용우비차를 타고서 동자에게 다가갔다.
“이건 네가 챙기거라.”
동자가 말했다.
오조의 원신이 묶여있던 빛나는 구체와 오조의 피가 담긴 옥병이 천천히 석목에게로 흘러왔다.
석목은 잠깐 멈칫하더니 두 물건을 건네받고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멍하니 연꽃 동자를 바라보았다.
채아도 입을 크게 벌리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렇게까지 놀랄 필요는 없지 않느냐?”
연꽃 동자는 아이 같은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었지만, 말투는 매우 어른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