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646화 (646/916)

646화. 나는 먼저 간다.

채아가 연꽃 동자에게 물었다.

“그럼 이 어르신을 데리고 은련성으로 간 묘공 스님도 네 분신이야?”

“그건, 다른 일이 엮여서 당분간은 말해줄 수 없구나.”

연꽃 동자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이렇게 많은 것들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백원왕의 혈맥을 물려받았습니다. 물론 당신이 백원왕의 사부이시지만 저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다만 제준이라는 같은 적을 두었을 뿐입니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침묵을 한 후에 말했다.

“그야 물론이지.”

연꽃 동자가 웃으며 말했다.

“지혜과 계략이 이토록 뛰어나시니 실력이 전부 회복되지 않았다고 해도 천정을 상대할 많은 방법들을 알고 계시겠지요? 앞으로 어떻게 천정을 칠 계획입니까?”

석목이 침묵을 한 후에 물었다.

석목이 하는 말을 들은 연꽃 동자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천정이 그동안 곳곳에서 영석을 약탈하는 이유는 제준이 찾는 더욱 높은 계면과 관련이 있을 테지. 이렇게 많은 자원들을 끌어 모으는 걸 보면 천정의 실력은 우리가 예상하는 바를 훨씬 뛰어넘었을 테고. 너 혼자선 경지가 통천에 이른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거야. 꼭 세력들과 힘을 합쳐 함께 공격을 해야만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단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화 선자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이미 흑마 성역을 되찾아 천정의 세력을 쫓아냈어요. 저는 백원왕의 후예라는 신분으로 몇몇 요족들을 소집할 거예요. 아쉽게도 어렵게 기른 청란성지는 천정의 첩자들이 끼어드는 바람에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죠. 아니었더라면 우린 더욱 강해졌을 텐데요.”

석목이 깊은 숨을 내뱉었다.

“청란성지의 진정한 힘은 이미 몇 차례에 걸쳐 안전한 곳으로 보냈단다. 천 년 동안 나도 손만 놓고 있었던 건 아니지.”

연꽃 동자가 자신 있게 웃었다.

“네?”

석목이 깜짝 놀라며 속으로 연꽃 동자를 ‘노련한 여우’라고 생각했다.

“청란성지에 천정의 첩자가 있다는 사실은 진즉에 알아차렸단다. 조극을 청란성지로 들어오게 만들어서 일부러 직전제자로 맞은 후에 오랫동안 만나주지 않았지. 그건 줄을 길게 들여놓고서 큰 물고기를 낚기 위한 일이었다. 청란성지에 첩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후에 나는 충심을 보인 제자들을 내보냈단다. 지금 청란성지에 있던 뛰어난 제자들은 전부 따로 빼돌려 놓았지. 이 힘을 뭉치면 절대 약하지 않아서 나중에 큰 쓸모가 있을 게다.”

연꽃 동자가 말했다.

석목은 연꽃 동자를 바라보며 깊은 숨을 내뱉었다.

“그러니까 전부 당신이 계획한 내용 안에 있었다는 거네요. 그럼 창월 유적도 혹시……”

“창월 유적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되었어. 그 유적은 이진종이 일부러 만들어내서 청란성지와 축운검파의 사이를 벌리려 만든 것일 뿐이야.”

연꽃 동자가 말했다.

“그러니까 창월 유적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겁니까?”

석목이 이해가 되지 않은 듯이 물었다.

“그래, 창월은 내 비술로 봉인되어있단다. 이진종이 절대로 찾을 수 없지. 이진종이 한 제안이 거짓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상황이 돌아가는 꼴을 살펴보니 나중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오히려 계략을 반대로 이용했단다.”

연꽃 동자가 말했다.

석목은 쓴웃음만 지었다. 눈앞에 선 이 사람이 어이가 없을 정도로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네가 백원왕에게 대물림을 받았으니 다른 사람들보다 구전현공을 수련하는 건 훨씬 순조로웠을 게다. 하지만 네 경지도 뒤처져서는 아니 되니 빨리 경지를 신경으로 끌어올려야 천정과 싸울 수 있을 게다.”

연꽃 동자가 말했다.

“그 일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고작 성계 초기라 신경까지 수련하려면 아주 멀어 보입니다.”

석목이 답답한 듯이 말했다.

“그렇긴 하다만 제준이 실력을 되찾은 이상 너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단다. 속도를 내야해.”

연꽃 동자가 말했다.

“제준은 대체 어느 정도 경지입니까?”

석목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

“그해 제준, 나 그리고 보화 셋은 전부 신경 후기였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제준은 경지가 갑자기 강해져 마지막 단계까지 단 한 걸음만 남겨두었었단다.”

연꽃 동자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마지막 한 걸음? 신경보다 더 높은 경지가 있다고요?”

석목이 물었다.

“소문에 의하면 더 높은 계면으로 올라가면 경지를 더 높일 수 있다고 하더군.”

연꽃 동자가 말했다.

“신경은 성계 이전과 다르게 단계마다 상황을 구분하는지요?”

석목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래. 신경을 이루는 작은 경지들은 하늘과 땅 차이란다. 신경 초기는 삼천 천도 중에 하나를 깨우쳐 신경에 진입하여 천지를 장악할 힘을 얻지. 신경 중기는 몸에 깃든 혼을 단련하여 본명 원신을 키우는 과정이란다. 그리고 신경 후기는 인신합일에 이르러 오행 만물을 녹이는 과정이지.

신경 정상은 진정한 자아를 초월하여 진공을 깨뜨려 대승원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이란다. 이 매 단계 사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서 성계 수준에서 구분하는 차이처럼 단순하지 않단다. 구전현공이 왜 조화신통으로 불리냐하면 진정으로 현묘한 점들을 전부 신경일 때 익힐 수 있기 때문이란다. 다양하고도 오묘한 이치를 네가 직접 깨달아야해.”

연꽃 동자가 말했다.

겉모습은 동자였지만 눈앞에 선 그는 대단한 존재 그 이상이었다. 가슴에서 전율이 흘렀다. 석목은 동자가 하는 모든 말을 가슴속에 새겼다.

“명…… 명주께서 가르쳐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청란성지는 이미 파괴되었는데 저는 지금 공법 구결을 여덟 번째 단계까지만 갖고 있습니다.”

석목은 갑자기 무엇인가 떠오른 듯이 쓴웃음을 지었다.

“후후, 그건 이미 준비해두었단다.”

연꽃 동자가 미소를 지으며 두 눈에 금빛을 반짝이더니 한 손을 흔들었다. 현묘한 문양이 반짝이며 석목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석목은 멈칫하더니 이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네가 이런 고난과 역경을 겪는 것도 내가 정한 운명이란다. 비록 내가 실력으로 크게 성장하진 못했으나 은연중에 윤회 천도의 미묘한 변화를 깨우쳤단다. 아마 제준을 공격하는 중요한 일은 네가 책임을 져야할 게야.”

연꽃 동자가 말했다.

석목은 멍했다. 그 말을 듣자 조금 겁을 먹었다.

“나중에 있을 일이다. 너는 우선 수련에 집중을 해야한다.”

연꽃 동자는 갈색 영패와 옥간을 하나 꺼내서는 석목에게 건네주었다.

갈색 영패는 어떤 신물인 것 같았는데 위에 원숭이 그림이 매우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이 갈색 영패는 백원왕이 속해있던 황고 여덟 종족 중에 하나인 미천거원 일족에서 내려오는 신물이란다. 이것은 백원왕이 쓰던 물건이니 대물림을 받은 네가 가지는 게 마땅하다. 그해 미천거원 일족도 큰 재난에 봉착하였지만, 다행히 몇몇 사람들이 살아남았지. 이 물건을 가지고 미천거원 일족을 찾아가면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에 답을 얻을 게다.”

연꽃 동자가 말했다.

“미천거원 일족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세요.”

석목이 포권을 쥐며 물었다.

“아마 천하 성역에 있을 게다. 나도 자세한 위치는 모르겠구나. 어떻게 천하 성역으로 갈지는 미양 성역의 백모성(百慕星)으로 가서 방법을 찾아보거라.”

연꽃 동자가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석목이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

“잊지 말거라! 구전현공을 마지막까지 대성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지금 구전현공을 수련하는 자들은 수없이 많단다. 천정의 조극 또한 네게 큰 적수가 될 게야. 천정은 조극을 대성까지 끌어주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으니 항상 조심하거라.”

연꽃 동자가 말했다.

“어떤 준비……”

석목은 말에 담긴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없어 다급하게 물었다.

“됐다! 네가 알아야 할 건 이 정도인 것 같구나. 나는 먼저 간다. 나중에 또 보자! 하하!”

연꽃 동자가 석목이 하는 말을 끊어버리고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손을 흔들자 푸른빛이 크게 번지며 푸른 진법이 나타났다. 석목은 몸이 희미해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석목과 채아는 동자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서 있었다.

석목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오늘 갑자기 너무 많은 일을 알게 되어 머리가 복잡했다.

채아는 조용히 석목의 어깨에 앉았고, 그를 방해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석목은 자리에 한참동안 서 있더니 깊은 숨을 내뱉었다.

“이렇게 많은 일들이 있었다니. 석두, 우리는 이제 어떡해?”

채아가 물었다.

“여긴 안전한 것 같으니 우선 상처부터 치료하고서 천하 성역으로 가자.”

석목이 말했다.

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 시각, 청란성지.

대전 밖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신도남의 이름을 부르며 대전으로 걸어 들어갔다.

신도남은 대전 밖으로 나가 고개를 들어 높이 걸려있는 금색 편액을 바라보며 아첨을 하는 말을 듣고는 기분이 좋아졌다.

천 년이란 시간을 벼르고 있었는데 오늘 드디어 청란성지를 손아귀에 넣었다.

이때 관산해가 입을 열었다.

“성주님이 주좌에 오르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관산해가 말을 마치자 성계 장로들 백여 명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성주님이 주좌에 오르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그래! 그래! 그래!”

신도남이 큰소리로 웃더니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앞으로 걸어 나가 속승 진인이 앉던 자리였던 용이 새겨져있는 의자에 앉았다.

신도남은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매만지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대전을 훑어보는 신도남은 얼굴에 천하를 가진 것만 같은 기세가 어렸다.

근처에 서 있던 목천절은 마치 미양 성역의 주인이된 양 행세하는 신도남을 바라보며 차가운 기색을 드러냈다.

속승 진인이 죽은 후, 목천절은 말수가 많이 적어졌다. 지금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대전에 서 있었다.

대전 밖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청란성지가 곧 완전히 무너질 터였다.

잠시 후에 목천절이 갑자기 돌아서서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등 뒤에 있던 성계 장로에게 말했다.

“지금 빨리 출발해서 흩어진 청란성지의 모든 제자들을 소집해라. 엄령이다. 아무도 남은 청란성지의 제자들을 죽여서는 안 된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장로들은 대답을 하고는 전부 대전에서 날아나가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이때, 신도남이 대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명을 내렸다.

“여러분, 비록 청란성지를 공격하여 동성성을 손에 넣었지만 아직 완벽하게 안정이 된 건 아닙니다. 벽파성을 뺀 다른 부속 행성 셋은 아직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동성성을 시작으로 빠른 시일 안에 부속 행성들을 수복해야하며 청란성지가 다스리던 성역을 전부 이어받아야 합니다.”

“성주께서 내리신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대전에 있던 성계 장로들이 대답을 했다.

그 말을 들은 목천절은 미간을 치켜뜨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도남은 목천절의 표정을 살폈지만 조금도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물었다.

“청란성지는 미양 성역에서 종파를 세운 기간이 가장 오래되어 뿌리가 단단하고 업적도 풍부하오. 청란성지가 이끌던 행성들은 대부분 자원이 풍성한 행성들이지. 목 전주, 축운검파는 계속해서 이진종을 도와 세 부속 행성들을 공격해주시오. 청란성지가 다스리던 구역을 나눌 때 절대 섭섭하게 나눠주지 않겠소.”

“조극과 관련된 일은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오. 다만 속승이 조극을 싸고돌았기 때문에 이런 전쟁이 벌어졌지. 속승이 죽었으니 청란성지도 치러야할 대가를 다 치렀소. 축운검파는 세 부속 행성들을 계속 공격할 맘이 없소.”

목천절이 차갑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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