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647화 (647/916)

647화. 백모성

목천절은 이미 화가 목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목천절은 신도남이 한 말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으나 지시를 내리는 말투였기 때문에 화가 났다. 신도남에게 부하처럼 부려지고 있었다.

그러자 신도남이 갑자기 ‘풋!’ 웃으며 말했다.

“우리 이진종이 목 전주에게 부탁을 받아 청란성지를 공격했소. 그런데 지금 전주가 멈추면 우리 이진종은 세 부속 행성들을 공격할 명분이 없어지는 셈이 아니오? 목 전주, 우리 이진종을 이런 처지로 내몰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요?”

그 말을 들은 목천절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신도남, 분수를 지켜야지. 나는 단지 청란성지에서 조극을 내놓기를 원했을 뿐이오. 그런데 청란성지를 아예 무너뜨리다니, 나는 자네의 무기가 되어버렸소. 아직도 내 손을 빌려 철저하게 청란성지를 무너트릴 셈이오? 부속 행성들을 공격하는 건 당신들 일이지 우리 축운검파는 절대 끼지 않겠소.”

그러자 신도남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관산해를 비롯한 청란성지를 배신한 성계 장로들이 분노하며 말했다.

“축운 성주님,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분명 당신이 창월에서 벌어진 일로 우리 이진종을 협박하여 함께 청란성지를 공격한 게 아닙니까? 그런데 이제 모든 죄를 이진종의 성주님께 전가하시다니 너무 심한 처사가 아닙니까?”

관산해가 호통을 쳤다.

그 뒤로 악 호법을 비롯한 사람들도 전부 입을 모아 목천절이 청란성지를 무너뜨리고는 책임을 벗어나려 한다며 소리를 질렀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던 목천절은 안색이 점점 일그러졌다. 목천절은 갑자기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쥐새끼 같은 놈들, 배신을 때린 간사한 놈들이 어디서 함부로 지껄이느냐?”

말을 마친 목천절은 한 손을 흔들어 손가락 사이를 살짝 벌리고는 앞쪽을 향해 짚었다.

그러자 촘촘한 검날이 손가락 사이에서 날아가 허공에 오색찬란한 검기를 만들었다. 검기가 순식간에 관산해를 비롯한 성계 강자들의 머리를 뚫고서 지나갔다.

쩍!

잘 익은 수박이 갈라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몇몇 사람들은 머리가 순식간에 터져버려 성배 원신도 빠져나오지 못한 채 부서져 버렸다.

신경 강자가 분노하자 원신마저 살아남지 못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대전에 서 있던 사람들은 전부 멍했다.

사람들은 머리 없는 시체 다섯 구가 덩그러니 바닥에 놓인 모습을 보고서야 상황 파악을 하고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목천절을 바라보았다.

나머지 청란성지의 장로들은 얼굴이 퍼렇게 질린 채 부들부들 떨면서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목천절이 아무렇지 않게 손을 흔들어버리면 눈앞에 놓인 시체들처럼 처참하게 죽을 게 뻔했다.

하지만 신도남은 표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신도남은 마치 매우 사소한 일이 일어난 듯이 손을 흔들며 부하들에게 시체를 깨끗이 치워버리라고 명을 내렸다.

“후후, 목 전주는 성격이 여전하군. 이 사람들이 거침없이 말을 하긴 했지만 밖에서 보는 시선과 같소. 목 전주가 세 부속 행성들을 치든 안치든 청란성지를 멸망시킨 장본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소. 차라리 나와 함께 청란성지가 관할하던 구역을 완벽히 접수해, 이 미양 성역을 나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오?”

신도남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도남의 말투는 매우 부드러웠다. 목천절이 성계 강자 몇몇을 죽인 사실은 전혀 캐묻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하지만 신도남은 이미 충분히 뜻을 드러냈다. 그 뜻은 바로 목천절과 축운검파가 계속해서 신도남을 위해 칼받이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밖에서 나를 어떻게 보든 내가 신경이나 쓸 것 같소? 이 일이 이렇게까지 번졌으니 나는 여기서 그만두겠소.”

말을 끝낸 목천절은 대전에 있던 나머지 축운검파의 성계 장로들을 데리고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전 밖으로 나가버렸다.

목천절이 떠나자 신도남은 손에든 깃털 부채를 천천히 흔들며 비웃는 눈빛으로 대전의 문을 바라보았다.

대전 안에서 팔괘 도복을 입은 채 하얀 수염을 드리운 삐쩍 마른 노인 한 명이 무리에서 걸어 나오더니 신도남에게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성주님, 목천절이 이렇게 무례하게 나오는데 왜 그냥 두셨습니까?”

“아직 청란성지를 완전히 해결한 게 아니니 축운검파와 문제가 생기면 일이 번거로워질 수도 있다. 목천절처럼 검도에나 취해있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해서 청란성지라는 큰 고깃덩어리를 전부 우리에게 내준 셈이나 다름없지. 모든 일이 정리되면 저 자를 정리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일 게다.”

신도남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노인은 탄복하며 말했다.

“성주님, 현명하십니다.”

“아, 은 장로. 나머지 청란성지 놈들을 쫓는 일은 어떻게 진행이 되었나?”

신도남이 물었다.

“청란성지 안쪽 구역마다 이미 물샐틈없이 수색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역 곳곳에 있던 전함 순찰단도 이미 출발했습니다. 동시에 수배령도 이미 내렸으니 나머지 청란성지 놈들도 도망칠 길이 없을 겁니다.”

노인이 말했다.

“그래! 여기가 안정되면 대군을 거닐고서 나머지 세 부속 행성들을 정리하자.”

신도남이 말했다.

이때, 주전 밖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은 신도남이 미간을 찌푸렸다가 다시 펼쳤다.

화려한 빛이 반짝이며 대전 밖에 누군가 나타났다.

그 사람은 곧바로 대전 안으로 빠르게 걸어 들어왔다.

대전에 있던 성계 장로들은 그 사람을 보자 곧바로 양쪽으로 흩어지며 넓은 길을 내주었다.

하얀 피풍의를 입고서 문아한 표정을 지으며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이 사람은 바로 조극이었다!

조극은 옆에 있는 무리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서 신도남만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성주님, 어째서 막지 않으셨습니까. 청란성지의 요족들이 수도 없이 죽었습니다.”

조극이 하는 말을 듣던 사람들은 전부 놀란 기색을 드러내며 입을 벌린 채 조극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단 한 사람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후후, 사질이 오셨군. 사질이 말한 요족 제자들은 전부 천수 혈맥이 흐렸던 제자들이네. 화낼 필요까지는 없네.”

신도남이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예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천수 혈맥을 지닌 제자들은 그 혈맥이 순수하든 각성이 되지 않았든 전부 죽이지 말고 남겨두라 하셨잖습니까? 신도 성주님, 기억이 나지 않으십니까?”

조극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말투에는 분명 질책을 하는 뜻이 담겨있었다.

조극이 불편한 말투를 내비쳐도 신도남은 화를 내지 않았다. 수련 경지가 신경에 오른 신도남이 오히려 조극 앞에서 아첨을 했다. 대전에 있던 성계 장로들은 전부 의아한 기색을 내비쳤다.

“조금 옳지는 않았으나 주변이 혼잡하여 거기까진 생각지 못했네. 모든 이들은 들어라. 지금부터 모든 요족은 죽이지 말라, 죄에 따라 벌을 내리겠다!”

신도남이 명을 내렸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대전에 있던 모든 성계 강자들이 대답을 했다.

“그럼 다들 물러나거라.”

신도남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사람들이 전부 물러나자 조극이 다시 신도남에게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그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두 준비되었네.”

신도남이 대답했다.

“얼마나 되었습니까?”

조극이 물었다.

“적어도 이만여 명일세.”

신도남이 잠깐 침묵을 한 후에 대답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지요?”

조극이 또 물었다.

“걱정 말게나.”

신도남이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됐습니다.”

신도남이 하는 말을 듣던 조극은 표정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미양 성역에서도 이름이 없는 행성의 숲속, 그림자 한 갈래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 자는 푸른 피풍의를 두른 석목이었다.

연꽃 동자와 헤어진 후 사흘이 지났다. 석목은 상처를 거의 회복하여 기운이 넘쳐보였다.

이때, 하늘에서 새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영롱한 빛을 내뿜는 새가 날아와서 석목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채아였다.

“석두, 거의 다 나았네.”

채아가 석목을 한 번 쳐다보며 말했다.

“응, 주변에 이상한 건 없지?”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전현공 나무의 힘은 상처를 회복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 큰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흘 만에 거의 다 나았다.

“아주 안전해!”

채아가 말했다.

“그래, 가자.”

석목이 말을 하며 용우비차에 올라탔다.

“석두, 우리는 천하성역으로 가는 거야?”

채아가 날개를 몇 번 펄럭이며 물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자 용우비차에서 빛이 크게 번지더니 한 줄기 빛이 되어 먼 하늘로 날아갔다.

“근데 너는 백모성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채아가 물었다.

“예전에 청란성지의 성전각에 있는 전집에서 본 적이 있어. 백모성은 미양 성역에서도 아주 특별한 위치에 있다고 적혀있었지. 삼대 성지가 모두 마주한 경계 구역에 있어서 삼대 성지 모두 거길 자기 소속으로 두려 했지만 서로 견제를 한 끝에 결국엔 아무도 백모성을 얻지 못했다 하더라고. 그래서 그 구역만 삼대 성지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혼란한 곳으로 남았지.”

석목이 말했다.

“미양 성역에 그런 곳이 있었다니. 재밌겠군.”

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밟고 있는 행성은 매우 작아서 용우비차는 빠르게 이 이름 없는 행성을 빠져나갔다.

* * *

칠흑같이 검은 별바다에 놓인 석목은 눈에 금빛을 반짝이며 주변을 바라보더니 법결을 시전하였다. 그러자 용우비차에 빛이 크게 번지며 전속력으로 한 곳을 향해 날아갔다.

보름 뒤에 석목과 채아는 큰 행성에 도착했다.

석목이 용우비차를 멈춰 세웠다.

“석두, 왜 멈췄어?”

채아가 의문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석목은 채아가 하는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푸른색 피풍의를 벗더니 검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석목의 몸에서 ‘뚝, 뚝’ 소리가 두어 번 울리더니 몸통이 천천히 변하여 눈썹이 검 모양인 마른 남자로 변했다.

“이진종은 지금 청란성지에서 도망을 친 제자들을 뒤쫓고 있어. 조극 녀석에게 나는 아마 큰 목표물이겠지. 최대한 조심히 다니는 편이 좋아.”

석목은 그리 말을 하며 몸에서 풍기는 기운을 감춰버렸다. 그리고 천위 경지에 오른 무인으로 변장하였다.

“그래. 석두, 그럼 나도 조금 변화를 줘야겠어. 음, 이제 됐다!”

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채아가 석목의 어깨에서 하늘로 날아올라 두 날개를 활짝 펼쳤다. 오색 깃털이 반짝이더니 전부 까만색으로 변하였다.

채아가 변신한 모습을 보며 석목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채아는 반짝이는 두 눈 말곤 온 몸이 까만색으로 변하여 조금 익살스러웠다.

“석두, 봐봐, 어때?”

채아가 석목의 어깨로 다시 날아오더니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모양이 좀 까마귀 같다는 것 빼곤 괜찮아.”

석목이 한 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까마귀 아니야. 나는 건앵 일족이야!”

채아가 소리를 질러댔다.

석목은 허리를 쭉 펴며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채아를 신경 쓰지 않는 듯 손을 흔들어 용우비차를 타고서 앞쪽 행성으로 날아갔다. 잠깐 사이에 둘은 드넓은 땅 위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 꼭대기로 내려앉았다.

이 행성은 영기가 짙어서 적잖은 생명들이 여기서 번식을 했다. 석목이 신식으로 행성을 쭉 훑어보니, 이곳에는 인족이 단 한 명도 없었으며 대부분은 이족과 요족이었다.

석목은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보며 자신의 외모를 다시 조금 바꾸었다. 이제 석목은 요족 남자로 변했다.

행인에게 물어보니 이 행성은 이름이 요담성(妖潭星)이라고 들었다.

석목은 옥간을 하나 꺼내서 빠르게 요담성의 위치를 확인하였다. 이 행성은 동성성과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위치했다.

정확한 위치를 확인했으니 이제 이 행성의 전송진법을 찾아서 단번에 백모성으로 넘어가기만 하면 된다.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요담성이 자리한 대륙의 북쪽 끝에 성계 전송진법이 하나 있었다.

“가자.”

석목은 용우비차를 꺼내지 않고는 대충 주워온 커다란 이파리 모양 비차를 몰며 앞으로 향했다.

용우비차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만 했다.

하지만 날아가는 속도는 오히려 느려져 반나절이나 날아도 여전히 목적지까지 가려면 한참 동안 날아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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