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8화. 육도(六道) 현공
앞으로 날아가던 석목이 갑자기 표정을 바꾸며 고개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더니 얼굴에 놀란 기색을 드려냈다.
앞쪽 백 리 밖에서 영력 파동이 소용돌이치며 빛이 몇 갈래 엉켜있었고, 수련 경지가 높은 몇몇 사람들이 격하게 싸우고 있었다.
평범한 싸움이었더라면 석목도 신경을 쓰지 않았겠지만 그 중 빛 하나는 하얀 화염을 뿜어내며 익숙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구전현공 양의 힘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 청란성지의 제자인가?”
석목은 기운을 숨기고는 소리 없이 싸움이 펼쳐진 곳으로 다가갔다.
석목은 지금 백 리가 넘는 거리를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었다.
석목은 곧바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서 산봉우리 근처에 숨은 채 자세히 훑어보았다.
앞쪽 산봉우리 아래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화려한 빛들이 하늘로 치솟자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젔다. 아주 치열한 전투였다.
한쪽은 머리가 희었으며 눈은 금색인 이족 세 명이었고, 다른 한쪽은 머리에 뿔이 한 쌍 자라났으며 파란 피부에 수염이 자란 요족 네 명이었다.
다투는 이들은 전부 수련 경지가 천위 수준이었으며 이족은 사람이 한 명 적었지만 몸집이 튼실한 남자가 순수한 하얀색 화염을 내뿜고 있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하얀 화염이 들끓어서 요족 네 명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뒤로 물러났다.
“음, 석두, 저 사람이 지금 구전현공을 시전하는 중이지?”
채아가 물었다.
“비슷해, 하지만 순수한 구전현공 양의 화염은 아니야. 다른 공법일 수도 있어.”
석목은 몇 번 더 바라보더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저 사람이 시전하는 공법은 구전현공이 아니니 석목도 계속 싸움 구경을 할 이유가 없었고, 그리하여 곧바로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이때, 밀려나던 요족 네 명이 서로 눈치를 한 번씩 살피더니 함께 소리를 지르며 온 몸에 파란빛을 크게 드리웠다. 요족들 주변에 파란색 파도가 수도 없이 나타나 세 이족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네 사람은 동시에 주문을 외우며 팔을 흔들었다. 그러자 파도가 더욱 강력해져 한 겹, 한 겹 주변으로 밀려갔는데 그중에는 산봉우리만큼 치솟은 파도도 있었다. 기세등등한 파도 때문에 세 이족은 단번에 휩쓸려 버렸다.
키가 훤칠한 남자의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거침없이 몰려오는 파도를 보아도 그는 전혀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고, 그는 몸에서 번지던 하얀 화염을 전부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입으로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눈을 번쩍 뜨자, 몸에서 순수한 검은빛이 들끓으며 아주 차가운 기운이 퍼졌다.
이때, 석목은 안색을 찌푸렸다. 차가운 기운은 석목에게 매우 익숙한 기운이었는데 바로 구전현공 음의 힘이었다.
하지만 양의 힘과는 달리 그리 순수하지는 않았다.
동시에 구전현공 양의 힘과 음의 힘을 지녔으니 석목이 더 이상 추측을 할 이유도 없었다. 저 이족 남자는 구전현공을 일부 익힌 것이었다.
남자는 낮게 소리를 지르더니 두 손을 힘껏 휘둘렀다. 검은빛기둥 두 갈래가 손에서 뿜어져나가 밀려오는 파도와 부딪쳤다.
‘휙!’ 소리와 함께 뼈를 에는 차가운 기운이 주변으로 뿜어져 나갔다.
쩍, 쩍!
잠깐 사이, 밀려오던 파도가 순식간에 하얀 얼음으로 변하였고, 네 요족은 순식간에 얼음에 묶여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몸집이 튼실한 남자는 두 손을 휘둘러 다시 검은빛을 뿜어냈다. 이어 검은빛은 곧바로 네 갈래로 갈라지며 피부가 파란 요족의 머리를 뚫어버렸다.
요족 남자 넷은 머리가 동시에 터져서 기운이 사라져 버렸다.
“명람(明岚) 형, 대단해요!”
“그러니까요, 이 남린족(藍鱗族)들은 절대 실력이 평범한 놈들이 아닌데 단번에 죽여 버리다니.”
“자기들이 죽지 못해 안달이 난 거지!”
눈이 금빛인 이족 두 명은 남자가 날리는 공격을 지켜보며 깜짝 놀라더니 이내 알랑거리기 시작했다.
하얗게 질린 남자의 얼굴에 득의양양한 기색이 어렸다. 동족 남자 둘이서 한 칭찬이 먹힌 것이었다.
“수련 경지로만 봤을 때, 이 네 놈들과 난 실력이 비슷하지. 다만 남린족의 수원벽파공(水元碧波功)을 어떻게 육도종(六道宗)의 육도현공과 비교할 수 있겠어.”
몸집이 튼튼한 이족 남자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럼요!”
나머지 두 사람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이 시체들을 가지고 종문으로 돌아가자. 종주께서 직접 저놈들의 머리를 들고 오라 지시를 내리셨으니 어르신께서 많이 좋아하실 거야. 기분이 좋으셔서 너희도 종파로 들어오도록 허락을 하시면 나중에 육도현공을 수련할 수 있을지도 몰라.”
이족 남자는 검은빛을 날려 얼음을 부셔버렸다.
“명람 형, 감사합니다!”
두 이족 남자는 명람이 하는 말을 듣더니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하며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하다가 널브러져 있는 시체를 챙겼다.
잠시 후에 세 사람은 세 갈래 빛으로 변하여 먼 곳으로 날아갔다.
“육도현공…… 보아하니 이 공법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은데.”
이족 일행이 떠나자 석목이 희미한 그림자로 변하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좀 이상한데?”
석목의 어께에 앉아있던 채아가 자세를 바꾸며 말했다.
석목은 멀어져가는 세 사람을 보며 말을 아꼈다가 곧바로 이족들을 쫓아갔다.
* * *
세 이족 남자는 앞으로 수천 리 정도 날아가더니 커다란 산봉우리 앞에 멈춰 섰다.
몸집이 거대한 남자가 앞으로 몇 걸음 걸어가더니 금색 영패를 꺼내서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영패에서 금빛이 한 갈래 날아가 앞쪽 허공에 스며들었다.
푸칙!
허공에 틈이 하나 벌어지며 풍경이 펼쳐졌다. 끊임없이 이어진 건물들이었다.
세 사람은 곧바로 틈 사이로 들어가 버렸으며 벌어졌던 틈도 다시 아물었다.
하지만 석목은 이미 희미한 그림자로 변하여 이족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허공 뒤편엔 높은 산이 있었으며 산 위로 수많은 건물이 지어져 있었고, 또한 빛들이 여기저기서 날아다녔다.
어떤 종파의 입구인 듯했는데 보아하니 규모가 작지 않은 것 같았다.
세 사람은 높은 건물을 향해 날아갔고, 석목도 주변을 한번 훑어보더니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이족 일행을 쫓아갔다.
세 이족은 요족 시체 네 구를 들고서 빠르게 산꼭대기에 자리한 커다란 건물 앞에 다가가 통보를 한 후에 대전으로 걸어 들어갔다.
대전 안엔 표정이 엄숙한 금발 중년 남자가 주좌에 앉아있었다.
중년 남자가 풍기는 기운은 강력했는데 이미 천위 대원만에 도달한 무인이었고, 성배를 뭉치기까지 단 한 걸음을 남겨 놓았다.
그 밑으로 키가 훤칠한 사람들이 몇 명 서 있었는데 이족도 있었으며 요족도 있었다. 이들은 전부 천위 경지에 도달했다.
“종주님, 인사드립니다! 명람,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종주님께서 내리신 명령대로 남린족 네 명을 데려왔습니다.”
남자가 앞으로 다가가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잘했다!”
금발 중년은 남린족의 시체 네 구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명람아, 큰 공을 세웠구나. 그래, 네가 빙염동(冰炎洞)에 들어가서 한 달간 수련하도록 허락을 해주마. 이 기회에 육도현공을 세 번째 단계까지 수련해야 한다.”
금발 중년이 말했다.
“종주님, 감사합니다!”
남자가 좋아하며 이마를 바닥에 대고는 절을 올렸다.
대전에 서 있던 사람들은 전부 부러운 눈빛과 질투하는 기색을 내비치며 몸집이 거대한 이족 남자에게 시선을 던졌다.
“왜, 더 할 말이 있는 게냐?”
이족 남자가 물러나지 않는 모습을 본 금발 중년은 다시 물었다.
“종주님, 이번에 네 요족을 죽일 수 있었던 건 제 동족 두 명이 힘을 보탰기 때문입니다. 동료들도 육도종에 간절히 입문코자 합니다.”
남자가 대답했다.
남자의 뒤에 서 있던 두 명은 곧바로 무릎을 꿇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저희는 진심으로 육도종에 입문하길 원합니다. 종주 어르신께서 입문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신다면, 저희는 필히 최선을 다하여 종문에 보답을 하겠습니다.”
“그래, 우리 육도종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들어오고 싶은 자가 자질을 갖추었고 마음만 순수하다면 육도종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단다.”
금발 중년이 웃으며 말했다.
“종주님, 감사합니다.”
두 이족은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며 큰 절을 올렸다.
“명람, 이 둘은 너와 동족이니 혈맥에는 문제가 없을 게다. 입문을 한 후에 혈맥 검사와 같은 과정은 네가 알아서 진행하거라.”
금발 중년이 말했다.
“네!”
몸집이 거대한 남자는 곧바로 두 사람을 데리고서 대전 밖으로 나갔다.
대전의 천장 한쪽 구석에 희미한 그림자 하나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붙어서는 아래에 있던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석목은 안색이 살짝 변하였다. 종주를 포함한 대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전부 구전현공의 기운을 풍겼다.
“됐다, 다들 내려가 보거라.”
금발 중년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대전에 있던 사람들이 대답을 하고는 순서대로 걸어 나갔다.
석목은 눈을 반짝이는 채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주좌로 돌아가 앉은 금발 중년은 잠깐 침묵에 잠기더니 곧바로 일어서서는 밖으로 걸어 나갔고, 석목은 금발 중년을 따라갔다.
* * *
금발 중년은 긴 복도를 지나 벽까지 다가가서는 손바닥으로 벽을 몇 번 내리 쳤다.
벽이 ‘쩍!’소리를 내며 문을 하나 만들어냈다.
문이 열리자 금발 중년은 안으로 들어갔고, 안쪽은 비밀 석실이었는데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노인이 한 명 앉아있었다.
벽에 나타났던 문이 다시 닫혀버렸다.
허공에서 빛이 반짝이자 석목이 모습을 드러냈다.
“채아, 안쪽 상황을 좀 봐줘.”
석목이 전음을 보내며 말했다.
채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에 빛을 반짝였다. 그러자 두 갈래 기이한 빛이 나타나더니 안쪽 상황이 채아의 시야에 들어왔다. 석목은 채아와 시각을 연결하여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명허존자(明虛尊者)!”
금발 중년이 절을 하며 매우 공손한 표정을 지었다.
“일어나거라.”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노인은 눈을 뜨더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금발 중년은 일어서서 황공한 표정을 지으며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노인 옆으로 다가갔다. 조금 전에 보이던 위엄은 찾아볼 수 없고, 확연히 달라진 표정을 지었다.
“육도종에서 육도현공을 수련하는 자가 얼마나 있느냐?”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노인이 물었다.
“존자, 혈맥과 자질을 검사해보니 세 번째 단계까지 수련을 할 수 있는 자들은 총 삼백이십 명입니다.”
금발 중년이 다급하게 대답했다.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노인은 그 말을 듣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직 너무 적구나. 계속 힘을 써라. 최대한 더 많은 사람들이 수련을 해야만 한다.”
“네, 이미 근처에서 열 개가 넘는 종족들과 종파들에 요청했습니다. 대회를 통해서 우리 육도대법을 널리 알려 더 많은 사람들이 종문에 들어올 수 있도록 제자들을 소집하여 육도현공을 수련하게 만들겠습니다.”
금발 중년이 말했다.
“그래, 이 일만 제대로 마무리하면 네게도 적잖은 몫이 주어질 게다.”
“존자, 감사합니다!”
그 말을 들은 금발 중년은 매우 좋아하며 계속해서 감사 인사를 올렸다.
비밀스런 방 밖에 있던 석목은 그 말을 듣고는 놀랐다.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노인은 이진종처럼 옷을 차려입었다. 역시나 이진종 사람이었다.
요담성은 예전에 청란성지의 세력이었지만 언제 부터인지 모르게 이진종이 장악을 했다.
비록 정보를 조금 밖에 캐내지 못했지만 예전에 들었던 소문과 합쳐보니 이진종이 큰 음모를 벌이고 있는 걸 알 수 있었고, 이에 석목은 소름이 끼쳤다.
이진종은 천정에 속한 종파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육도현공을 수련하라고 하는 것도 아마 천정이 내린 지시일 터였다.
연꽃 동자가 한 말에 의하면 조극은 천정의 명을 받아 청란성지로 들어와서 구전현공을 수련했다.
구전현공은 연꽃 동자가 윤회 천도를 깨달으며 만든 조화법문이었는데 누군가 구전현공을 대성까지 수련하면 인과천기를 써서 구전현공을 수련한 다른 이의 공력을 전부 삼켜 자신의 힘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석목이 추측한 바가 맞는다면 이 사람들이 수련하는 육도현공은 구전현공을 개조하여 만든 공법일 것이었고, 이는 조극을 위한 제물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었을 터였다.
이렇게 되면 청란성지가 무너진 일과 구전현공을 수련한 요족 제자들이 죽은 것도 조극이 수련을 할 때 영향을 미치지 못할 터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석목은 등골이 다 오싹해졌고, 동시에 분노도 치밀어 올랐다.
놀라운 점은 천정이 이 지경까지 준비를 했다는 점이었다.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꾀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 자들이 평생을 걸쳐 힘겹게 수련한 현공은 결국 조극이 삼켜버릴 수 있도록 준비한 맛있는 음식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