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0화. 성해에서 도망치다.
석목은 광장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살피며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마지막으로 충고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앞으로 육도현공은 수련하지 마십시오. 이미 수련한 자는 빨리 공력을 흩어버리는 편이 좋을 겁니다. 평생 공을 들였는데 아무도 죽느니만 못하는 삶을 살길 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석목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더는 광장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으며 파란빛으로 변하여 멀리 날아갔다.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으니 판단을 내리는 건 스스로 정할 문제였다.
석목은 광장에 오래 머물지 않고서 용우비차를 불러 먼 곳으로 날아갔다.
반나절 뒤에 석목은 요담성에서 가장 큰 성인 칠성성(七星城)에 도착했다.
석목은 다시 한 번 외모를 바꾸었다. 그리고는 성계 전송진법을 찾아 빠르게 이 행성에서 벗어났다.
* * *
시간이 빠르게 흘러 청란성지가 무너진 지도 벌써 삼 년이 지났다.
육통성(陸通星) 북부에는 산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그 중 눈에 띄지 않는 갈색 산봉우리 위에 크기가 다른 동굴이 수백 개나 뚫려있었다. 가장 높은 곳에 뚫려있는 동굴 앞을 커다란 갈색 암석이 막고 있었는데 암석 사이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지금 동굴 안에는 푸른색 피풍의를 두른 남자 한 명이 두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서 앉아있었다.
허리를 꼿꼿이 편 채로 두 손을 몸 앞으로 겹쳐 복잡한 법결을 시전하였다. 반듯한 이목구비에 윤곽이 선명한 얼굴에선 단단한 기운이 풍겼다.
석목이었다.
삼 년 동안 석목은 여러 행성을 오가며 시간을 대부분 길에서 써버렸다.
이진종과 이진종에 속한 세력들은 도망을 친 청란성지의 제자들을 끈질기게 쫓아다녔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모든 대형 행성의 성계 전송진법을 이진종 사람들이 치밀하게 지켰다.
석목은 쫓아오는 자들을 피하기 위해서 돌고 돌아야만 했다. 심지어 여러 번 용우비차를 직접 몰며 성해를 뚫고서 날아다녀야만 했다.
석목이 예상한 대로 적잖은 행성에서 육도종 같은 요족 종문들과 세력들이 제자들을 유혹하여 구전현공의 잔편을 수련했다.
이런 종문들은 전부 최근 백 년 사이에 갑자기 빠른 속도로 적대 세력들을 물리치고서 세력을 키워 행성에서 가장 큰 종문으로 자리 잡았다는 특징이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종문의 대표 공법이라는 것들은 이름이 다양했다. 음양취정공(陰陽聚頂功), 팔황륜전공(八荒輪轉功), 오행결(五行決)……. 하지만 본질은 전부 구전현공을 분리시켜서 천수 혈맥을 옅게나마 지닌 사람들을 수련시키기 위한 술책이었다.
제자들은 마치 울타리에서 키우는 가축들처럼 시기가 되면 언제든지 도살장으로 끌려갈 위험에 처해있었다.
석목은 여러 번이나 참지 못하고서 제자들을 말리려 시도했으나 요담성에서 본 육도종과 마찬가지로 석목이 하는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석목은 제자들이 안쓰럽기도 했으며 또 고집을 부리는 모습을 보니 화가 나기도 했다.
그리고 한 번은 성계 전송진법을 사용하려 할 때, 진법을 지키는 성계 장로에게 신분이 노출되어 수많은 추격자들에게 쫓기기도 했다.
그렇게 일 년 동안 도망을 다니던 석목은 결국 상대에게 붙잡혀 여러 번 격전을 치렀다.
그러다 마지막 격전에서 석목은 공격을 날리던 은월전함 몇 척과 성계 장로 수십 명을 대부분 물리치긴 했지만 큰 부상을 당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는 수 없이 이 육통성으로 도망을 쳐 기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나마 여러 번 격전을 치르며 많은 것을 깨들은 석목은 부상을 회복한 후에 쫓아오는 놈들도 피할 겸 폐관수련을 시작했다.
지금 석목의 몸에서 옅은 금빛이 뿜어져 나왔고, 어둡던 동굴이 눈부시게 밝아졌다.
금빛을 뚫고 동굴안쪽 벽을 바라보니 위에 깊이가 전부 다른 균열들이 줄줄이 그어져 있었다.
얽히고설킨 균열 중엔 새로 생긴 것도 있었으며 오래된 것도 있었다. 촘촘하게 난 균열들을 보니 오랜 세월동안 도끼로 찍은 것만 같았다.
이때, 석목이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떴다. 금색 동공이 반짝이더니 시전하던 법결이 바뀌었으며 석목은 두 손을 양옆으로 펼쳤다.
석목이 두르고 있던 금빛이 주변으로 흩어지자 동굴에 칼날 수십 갈래가 사방팔방으로 휘날렸다.
탱! 탱! 탱!
동굴 안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미 긁힌 자국이 수두룩한 동굴 안쪽 벽에 새로운 상처들이 뒤덮였다.
석목은 흡족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선 후에 동굴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석목이 한 손을 휘두르자 날카로운 금빛이 손바닥에서 튀어나와 암석을 두 덩어리로 갈라버렸고, 갈라진 단면이 거울처럼 매끈했다.
석목은 동굴에서 걸어 나오더니 소매를 털어 몸에 묻은 먼지를 날려버렸다. 이어 먼 곳을 바라보자 영롱한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이곳으로 날아왔다.
“석두!”
채아는 도착하기도 전부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석목의 어깨에 내려앉으며 재잘댔다.
“석두, 드디어 나왔구나. 진짜 심심해서 죽는 줄 알았어! 더 기다리다가는 미쳐버린다고.”
석목이 후후 웃으며 말했다.
“고작 일 년간 폐관수련을 했는데?”
“고작 일 년 지났다고? 왜 이렇게 오래 지난 것 같지? 예전에 청란성지에 있을 때는 제 뚱보도 있어서 많이 심심하지는 않았어. 이런 외진 곳엔 놀 것도 없단 말이야.”
채아가 푸념했다.
채아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석두, 혹시 영석 없어? 나 배고파.”
채아가 중얼거렸다.
“내가 폐관하기 전에 영석을 많이 줬잖아. 고작 일 년 지났는데 전부 먹었어?”
석목이 놀라며 물었다.
“날 너무 얕잡아 보는 게 아니야? 세 달 전에 다 먹어버렸어.”
채아가 날개를 펄럭이며 말했다.
석목이 이마를 짚더니 곧바로 최상급 영석 몇 개를 꺼내서 채아에게 주며 말했다.
“이 먹보야, 좀 아껴서 먹어. 세 달 동안 어떻게 버틴 거야?”
채아가 신난 표정으로 영석을 씹으며 웅얼거렸다.
“그러니까…… 이미 많이 아껴먹은 거야……”
석목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채아가 도움을 줘서 많은 위기상황들을 모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연나는 여전히 신혼이 연결되어 있었지만 무엇 때문인지 연결 자체가 불안정해졌다. 그리고 연나는 여전히 석목이 불러도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석목은 격전을 치를 때마다 연나라는 패를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워낙 오랫동안 연결이 되지 않은 것 같아 석목은 이 여자가 사령계면에서 무슨 일을 겪은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겨운 상황이라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영석을 씹던 채아는 영석을 꿀꺽 삼키고는 흡족해하며 배를 두드렸다.
“석두, 나 세 달 동안 진짜 고생했어. 이 거지같은 행성에는 영력이 너무 희박해. 영물도 없는데 하급 영석조차 귀할 정도로 적었다고.”
채아가 하는 말을 듣던 석목은 황량하게 구멍이 잔뜩 뚫려버린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늘의 뜻이 아니라 사람의 욕심이 빚어낸 것이지. 이런 악행은 아마 이진종과 연관이 있을 거야.”
“흥! 정말 나쁜 녀석들이야!”
채아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아, 청란성지와 관련된 소식이 있어?”
석목이 물었다.
“석두, 이 거지같은 행성에는 제대로 된 큰 성도 하나 없다고. 무슨 소식을 듣겠어. 삼 년 전에 내려온 수배령 말곤 아무 소식도 없었어.”
채아가 답답한 듯이 말했다.
“주변에 무슨 기이한 움직임은 없었어?”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상한 점이라면…… 일 년 전이야. 그때는 이진종의 은월 전함들이 한두 척씩 간간이 이 행성에 왔었는데 최근 일 년 동안은 한 척도 오지 않았어.”
채아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벌어진지도 오래되었으니 이진종 놈들도 어느 정도 긴장을 풀었을 거야.”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람과 새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뒤편에서 갑자기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조금 전에 석목이 수련을 한 동굴이 금빛을 감당하지 못하고서 무너졌다.
“석두, 너…… 구전현공 여섯 번째 단계 대성에 이르렀어?”
채아가 좋아하며 물었다.
“음, 오늘에야 완전히 대원만에 이르렀어. 청란성지가 무너지면서 내 수련 계획이 전부 뒤엉켜버렸잖아. 그렇지 않았더라면 오늘에서야 대성에 이르지는 않았을 거야.”
석목이 말했다.
“석두, 그래도 엄청 빠른 편이지. 너무 조급히 생각하진 마.”
채아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부족해. 삼 년 전에 조극은 이미 구전현공의 일곱 번째 단계를 대성까지 수련했어. 지금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조극이 먼저 아홉 번째 단계를 대성까지 수련한다면 내 수련 경지는 전부 날아가 버릴 뿐만 아니라 내 경지를 전부 조극이 흡수해 버릴 거야. 그 뿐만 아니라 천정이 꾸민 음모로 우리가 지나왔던 행성에서 구전현공의 잔편을 수련하던 사람들도 전부 조극에게 먹잇감이 되어버리겠지.”
석목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럼 빨리 조극을 찾아서 죽여 버려야 하는 거 아니야?”
채아가 물었다.
“죽인다고? 조극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찾았다고 해도 조극을 죽일 수 있을까?”
석목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맞아, 저 자식은 음흉하고 교활한데다가 천정의 지지를 하고 있으니 절대 쉬운 상대는 아니겠지.”
채아가 힘이 풀리는 듯이 말했다.
“그렇게 비관하지 마. 속승 진인이 그랬잖아. 적을 억누르기 보다는 스스로 실력을 끌어올리는 쪽이 우선이야. 내가 먼저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를 수련할 수 있다면 조극이 수련을 한 경지는 전부 내가 흡수하게 되겠지?”
석목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채아는 석목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런데 석두, 네가 일 년 동안 폐관수련을 하면서 구전현공의 여섯 번째 단계를 대성까지 끌어올린 걸 빼면 경지는 전혀 발전하지 않았잖아?”
“내 명수결은 이미 대성까지 수련했어. 적당한 수련 공법이 없어서 수련 경지는 여전히 성계 초기지. 그리고 지금 구전현공의 아홉 번째 단계까지 구결은 전부 가지고 있지만 일곱 번째 단계를 수련하며 필요한 본원의 재료들을 아직 찾지 못했으니 수련을 할 수가 없어.”
석목이 말했다.
“그럼 이제 어떡해?”
채아가 물었다.
“빨리 천하 성역으로 가서 미천거원 일족을 찾아 백원왕의 유산을 전수받아야해. 그리고 가능하다면 나머지 본원의 재료 두 개도 빨리 찾아야지.”
석목이 말했다.
“그럼 우리 빨리 출발하자.”
체아는 빨리 이 육통성을 벗어나고 싶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용우비차를 소환해 채아를 데리고서 육통성 밖으로 날아갔다.
육통성은 청란성지가 통제하던 성역 변두리에 있었으며 청란성지의 부속 행성 중에 하나가 총괄하던 아주 외지고 작은 행성이었다.
주변에 있던 다른 행성 수십 곳도 육통성과 같이 자원이 부족하여 삼대 성지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리하여 전송진법도 없었으니 여길 드나드는 유일한 방법은 영석을 채굴하는 대형 선박이나 전함을 이용하는 것뿐이었다.
육통성에서 벗어난 석목은 연꽃 동자가 알려준 방향으로 용우비차를 타고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