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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651화 (651/916)

651화. 분장하여 잠입하다.

한 달 뒤, 부석 성해처럼 운석이 널브러져 있는 성역에 빛 한 갈래가 스쳐 지나갔다.

푸른빛을 뿜고 있는 비차가 운석 사이사이를 비켜지나 이 구역 가운데로 날아갔다.

비차 위에 서 있던 남자는 성해 깊은 곳을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드러냈다.

“석두, 이 거지 같은 곳에 왜 이렇게 많은 운석이 떠다니는 거야?”

푸른 피풍의를 두른 남자의 어깨에 앉아있던 영롱한 앵무새가 머리를 갸우뚱대며 물었다.

비차 위에 선 이들은 석목과 채아였다.

석목은 시선을 거두어들이고는 채아에게 말했다.

“여긴 미양 성역 삼대 성지의 세력이 겹치는 곳이야. 삼대 성지 사이에 충돌이 한참 격해졌을 때, 여기서 아마 규모가 큰 전투가 펼쳐졌을 거야. 이 운석은 전쟁이 남긴 흔적들이지.”

“이곳이 교전을 하던 구역이라고? 그럼 빨리 여길 벗어나자.”

석목이 하는 말을 듣던 채아가 깜짝 놀라 재촉을 했다.

“전쟁은 이미 끝난 지 오래야. 내 예상이 맞는다면 청란성지가 붕괴된 이후로 여긴 아마 이진종이 통제할 거야.”

석목이 말했다.

“그럼 우리가 가려는 백모성도……”

채아가 말했다.

“아마 이진종이 통제하고 있겠지. 또 고생을 좀 해야겠군.”

석목이 침묵을 한 후에 말했다.

운석 파편들 속을 뚫고서 이틀 동안 날자, 가운데에 있던 푸른색 행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석목이 채아를 데리고서 백모성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하지만 의외로 백모성은 영력이 매우 풍부했다. 행성을 두터운 성운이 둘러싸고 있어서 백모성으로 내려올 때 적잖이 저항을 받았다!

석목은 채아를 데리고 백모성에서 며칠이나 떠돌아다니다 드디어 천하 성역으로 가는 공간통로가 있는 곳을 알아냈다.

백모성에는 추운협곡(墜雲峽谷)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공간통로는 바로 그 협곡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추운협곡은 원래 백모성에서 가장 큰 종파인 운묘종(雲墓宗)이 관리하는 장소였다. 관리라고 해봤자 통행료를 받으며 질서를 유지하는 정도였다. 운묘종도 감히 공간통로를 독차지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삼 년 전에 여기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진종이 갑자기 전함 몇 척을 보내서 백모성에 대거 침입했고, 청란성지에서 도망을 친 제자들을 쫓는다는 명목으로 추운협곡을 도맡아 관리했다. 그리고 얼마지 나지 않아서 운묘종은 이진종의 부속 종문이 되었고, 백모성은 이진종의 부속 행성이 되었다.

이 밖에도 석목은 청란성지와 얽힌 최신 정보들을 알아냈다.

청란성지의 사대 부속 행성들 중에 처음부터 배신한 벽파성을 뺀 택양성, 귀진성, 봉화성도 연이어 공격을 당하며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들었다.

청란성지가 다스렸던 행성 대부분을 이진종이 침략해 세력이 막강해져서 축운검파는 더 이상 이진종과 상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종문의 문을 닫은 채 조용히 한 구석에서 자리를 지켰다.

* * *

며칠 뒤에 백모성의 운류산맥 상공에 푸른빛이 스쳐 지나갔다.

푸른색 피풍의를 두른 석목이 용우비차를 몰며 하늘에서 내려와 깊이가 십 리 정도 파인 산골짜기 아래로 내려왔다.

산골짜기 입구에 십 장 정도 크기인 붉은색 문이 있었는데 문 위로 커다란 금색 편액이 걸려있었다.

편액은 구름무늬 바탕에 용, 봉황 그림이 그려졌으며 ‘운묘종’이라는 세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었다.

석목은 채아를 데리고서 골짜기 밖에 놓인 커다란 암석을 돌아 급하게 골짜기로 들어가지 않고는 운묘종의 문 앞에서 두리번거렸다.

골짜기 입구에 놓인 붉은색 문 앞에는 백 명에 가까운 대오가 줄을 서 있었는데 때마침 무기를 들고 있는 문지기들에게 수색을 받고 있었다. 문지기들은 전부 보라색 팔괘 도복을 입고 있었다.

“석두, 정말로 이진종이 통제하고 있었어. 어떡해? 치고 들어가?”

채아가 석목의 어깨에서 엎드리며 말했다.

석목이 한참 침묵을 지키며 고민하더니 웃으면서 채아에게 말했다.

“보아하니 막무가내로 들어가는 건 무리야. 변장을 해야지.”

“어떻게?”

채아가 머리를 꺾으며 물었다.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거야.”

석목은 채아를 바라보더니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 * *

반나절 뒤에 추운협곡의 붉은 문 아래는 여전히 긴 대오가 늘어서 있었다.

이때, 금색 비단 피풍의를 두른 뚱뚱한 남자가 느릿느릿 걸어오더니 가장 끝에 섰다.

한 손에는 붉은 나무로 만든 새장을 들고 있었으며 새장에는 빛깔이 고운 앵무새가 앉아 있었다. 남자는 다른 한쪽 손에 든 하얀 비단을 만지작대며 끊임없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이 사람은 매우 큰 얼굴에 상대적으로 작은 이목구비가 따닥따닥 붙어있었고, 짧은 수염이 두터운 입술 위에 양쪽으로 뻗어서 모습이 조금 익살스러웠다. 하지만 유난히 맑아 보이는 동그란 두 눈으로 끊임없이 붉은 문을 훔쳐보았다.

아마 아무도 석목이 역곡결로 변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터였다.

“석두, 이 어르신을 이 지경으로 만들다니.”

채아가 힘없이 새장에 엎드려 석목을 바라보며 전음으로 말했다.

뚱뚱한 남자가 된 석목은 땀을 닦던 손을 멈추고는 채아를 흘겨보며 전음으로 말했다.

“이 먹보야, 정신 똑바로 차려. 이따가 들키지 말고.”

그 말을 들은 채아는 떨궜던 고개를 번쩍 들고는 재잘거렸다.

“복 받으세요! 복 받으세요!”

석목은 그제야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붉은 문이 있는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입구엔 방금 전까지 없었던 하얀 수염을 드리운 노인이 한 명 더 서 있었다.

노인은 성계 중기 강자였는데 보라색 도포를 입은 채로 서서 한 손은 뒷짐을 쥐고는 다른 한 손에 금령연(*金翎雁:금색 깃털 기러기)을 든 채로 차가운 낯을 내비치며 수색을 받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복 받으세요!”라고만 울어대던 채아가 목을 뻗어 석목의 시선이 향한 곳을 내다보았다.

같은 새라서 그런지 채아가 금령연을 바라보자 금령연도 때마침 채아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하여 노인이 의아한 듯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이미 명수결로 수막을 드리워 모든 기운을 감춰버렸다.

금령연과 하얀 수염을 드리운 노인이 여길 바라봤지만 석목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이 계속해서 이마에 난 땀방울만 찍어댔다. 그리고 새장을 얼굴 앞으로 끌어와 채아와 장난을 쳤다.

하지만 채아는 이런 상황이 못마땅했다. 그리하여 전음을 보내 석목에게 투덜거렸다.

“석두, 나는 네 신분을 숨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새장에 들어온 거야. 나를 말이나 흉내 내는 그런 앵무새로 생각하면 안 돼.”

석목은 표정을 전혀 바꾸지 않은 채 전음으로 말했다.

“고생하는 거 알아. 이따가 맛있는 걸 줄게.”

“고생은 아닌데, 맛있는 건 좋지!”

채아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석목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노인은 대충 석목을 몇 번 바라보더니 아무런 이상한 점도 알아차리지 못하자 다시 시선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눈앞에 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뚱뚱한 배를 흔들거리며 줄을 따라 조금씩 앞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드디어 하얀 수염을 드리운 노인 앞까지 다가왔다.

하얀 수염을 드리운 노인은 석목의 얼굴을 한참 훑어보더니 혐오스러운 표정을 드러냈다.

석목이 채아를 데리고서 노인의 앞을 지나갈 때, 금령연이 두 눈에 금빛을 뿜어내며 석목의 몸을 훑어보았다.

석목은 멈칫했지만 표정을 관리하며 채아를 데리고 앞으로 걸어갔다.

금령연은 금빛 눈으로 석목을 훑어보더니 이내 다시 눈빛이 다시 어두워졌다.

금령연이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자 노인도 대충 손을 흔들며 석목에게 지나가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석목이 기뻐하며 새장을 들고서 붉은 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복 받으세요.”

체아가 석목이 지시한 대로 울어댔다.

하지만 석목의 뚱뚱한 몸집이 아직 문턱을 지나가기도 전에 누군가 뒤에서 소리를 질렀다.

“거기 서.”

석목은 의식을 하며 걸음을 멈추고는 돌아서서 손가락으로 자신의 코를 가리키더니 착한 말투로 물었다.

“어르신, 저를 부르셨나요?”

하얀 수염을 드리운 노인은 석목이 든 새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여기에 갇혀있는 건 뭔가? 어째서 이렇게 강력한 영력 파동을 일으키고 있는 거지?”

석목이 멈칫했다. 금령연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이 채아의 몸에 드리웠다.

채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두 날개를 펼친 채 목을 뻗고는 울어댔다.

“복 받으세요.”

“아주 평범한 앵무새일 뿐입니다. 좀 멍청해서 ‘복 받으세요.’라는 말 밖에 할 줄 모릅니다. 영력이 어디 있겠습니까.”

석목은 넓적한 얼굴에 간신히 웃음을 드러내며 물었다.

그리고는 동그란 두 눈에 미세한 금빛을 반짝이며 금령연의 몸을 바라보았다.

금령연의 몸에서 매우 얇은 영력 맥락 한 줄이 노인과 맞닿아있었다.

“저 금령연과 노인은 영력 맥락으로 맞닿아있어서 지나간 사람들이 내뿜는 영력 파동을 알아낼 수 있어.”

석목이 전음을 보내며 말했다.

“난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찾은 거야?”

채아가 놀라며 물었다.

석목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억지로 치고 가야지.”

“가봐. 단, 그 이상한 새는 남겨둬.”

노인이 탐욕스러운 표정을 내비치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그제야 노인이 말을 꺼낸 뜻을 알아차렸다.

하얀 수염을 드리운 노인은 채아의 비범함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석목을 보물도 볼 줄 모르는 멍청이로 여겨 이 틈에 채아를 빼앗아가려는 것이었다.

이때, 채아가 깜짝 놀라며 말을 했다.

“안 돼.”

채아가 말을 하자 주변이 물을 뿌린 듯 조용해지며 모든 사람들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미양 성역에는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다. 하지만 채아처럼 아무런 요기도 풍기지 않는데 사람이 하는 말을 뱉어내는 기괴한 새는 흔하지 않았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곧바로 말했다.

“이 자식이. 아무리 가르쳐도 못 배우더니 오늘은 말을 잘만 하는군.”

석목이 하는 말을 들은 채아는 곧바로 눈치를 채고는 둥근 몸통으로 새장에서 통통 튀며 말을 이었다.

“안 돼. 안 돼. 안 돼……”

사람들은 그제야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따라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르신, 이 새는 저를 따라 다닌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십 년이나 함께 지냈으니 쉽게 보낼 수 없습니다. 어르신, 제가 데려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하지만 노인이 쉽게 포기를 할 리 없었다. 이미 새가 비범하다는 걸 알아차린 이상 어떻게 쉽게 포기를 하겠는가?

“네 이놈. 좋은 말로 할 때 내놔라. 너를 도망간 청란성지의 제자로 몰아서 죽여 버려야 순순히 가겠느냐?”

하얀 수염을 드리운 노인은 흉악한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화가 치밀어 올라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신분이 노출 될 걱정만 하지 않았어도 노인을 이미 몇 번이나 죽였을 터였다.

어떻게 눈앞에 선 노인을 조용히 죽여 버릴까 고민을 하던 와중에 갑자기 강력한 기운 몇 갈래가 먼 곳에서부터 날아왔다.

그리고 빛이 반짝이더니 네 사람이 석목 앞에 내려왔다.

석목은 동그란 두 눈으로 넷을 훑어보다가 이내 깜짝 놀라 멈춰버렸다.

그 중 한 명은 보라색 도포를 입은 채 어여쁜 미모를 뽐내는 여인이었는데 바로 서문설이었다.

예전에 부석 성해에서 헤어진 후, 서문설을 계속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여기서 예기치 못하게 부딪치게 되었는데 서문설은 경지가 이미 성계 중기에 도달했다.

수련을 하는 속도가 워낙 빨라 석목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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