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3화. 금절족의 도발
몸집이 웅장한 남자가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왼쪽 어깨에 뼈가 드러날 정도의 깊은 상처가 생겨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금발 소녀는 입가에 핏자국이 묻었고, 그녀도 뒤로 두 걸음 밀려났다.
“머리에 온통 추악한 것들만 박혀있는 놈. 칼 맛이 어떠냐?”
금발 소녀는 얼굴에 더 이상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소녀는 입가에 비웃음이 어렸다.
“저년을 죽여 버려!”
남자는 화가 치밀어 올라 눈에 포악한 빛을 내뿜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옆에서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뿔이 난 이족 네 명은 우두머리가 명을 내리자 다급하게 소녀에게 주먹을 날렸다.
금발 소녀는 손에 검광을 여러 번 번쩍이며 온힘을 다해 막았지만 동시에 네 명이 날리는 공격을 막아내는 게 무리라서 뒤로 밀려났다.
거대한 남자는 어깨에 빛을 몇 번 번쩍이더니 근육들이 꿈틀거리며 커다란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그리고 남자가 소리를 지르자 두 팔이 순식간에 두 갈래 잔영으로 변하여 이미 위험에 처한 금발 소녀를 향해 강하게 휘둘렀다.
윽!
금발 소녀는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몸이 튕겨져 날아가 버렸다. 오른쪽 다리는 부러져 버렸으며 몸통이 무겁게 땅으로 던져져 입에서 피를 뿜었다.
“이제 죽어라!”
남자의 눈에서 사나운 빛이 강력하게 스치며 단번에 목화(穆華)의 머리를 향해 엄청난 기운을 휘둘렀다.
이때, 갑자기 허공에서 손이 하나 나타나더니 거대한 남자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남자의 주먹이 멈췄고 안색이 변하였다.
회색 피풍의를 두른 석목이 나타났다.
퍽!
석목이 손을 휘두르자 얇지만 날카로운 금빛이 번쩍이며 스쳤다.
하늘로 치솟은 남자는 아직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빛이 반짝이는 사이 뿔이 달린 이족 네 명의 목덜미에도 전부 금빛이 스쳐져 지나갔다.
척, 척, 척!
머리 네 개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은 채 하늘로 치솟았다.
금발 소녀는 멍한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거대한 남자의 머리통을 손에 들고는 어두운 검은빛을 남자의 머리로 날려 보냈다.
수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금발 소녀는 곧바로 상황을 알아차리고는 간신히 일어서며 석목에게 인사를 했다.
“아, 별일 아닙니다. 인사는 괜찮습니다. 혹시 복룡성에 사는 어느 부족이신가요?”
석목이 남자의 머리통을 대충 바닥에 던져버리고는 가볍게 물었다.
거대한 남자는 천위 경지라 석목의 실력으로 수혼을 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고, 수혼을 통해 이 행성에 관한 정보를 적잖게 알아냈다.
하지만 남자의 기억 속에는 석목이 원하는 미천거원 일족에 관한 정보가 없었다.
“저는 금절 일족 사람입니다.”
금발 소녀가 공손하게 말했다.
“금절 일족이요? 저는 복룡성이 처음이라서 주변을 좀 알아보려하는데 혹시 부족으로 갈 방법이 있을까요?”
석목이 물었다.
거대한 남자의 기억에 따르면 금절 일족은 이 행성에서 손에 꼽히는 큰 종족이었고, 그곳에 가면 꽤 편할 터였다.
“물론입니다. 우리 금절족은 복룡성에서도 큰 종족으로 근처에 있는 몇몇 행성과도 거래를 하고있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선배님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금발 소녀는 흔쾌히 대답했다.
“네, 그럼 우선 상처부터 치료하세요.”
석목이 말했다.
금발 소녀는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앉아서 눈을 감고는 몸에 금빛을 뿜어냈다.
석목은 다시 웅장한 남자의 기억을 훑어보았다.
“석두, 네가 영웅인 척 미인을 구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저 소저가 맘에 드는구나? 그런데 저 소저는 정말 예쁘장하게 생겼네. 하녀로 부려먹으면 되겠어.”
채아의 목소리가 석목의 가슴에서 울려 퍼졌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튕기자 거센 바람이 채아의 날개에 몰아쳤다.
채아가 소리를 한번 지르더니 다시 입을 다물었다.
석목이 조용히 회복을 하고 있던 소녀를 바라보자 눈에 이채가 스쳤다.
소녀의 생김새가 종수와 닮았기 때문이었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흔들리는 가슴을 억누르고는 눈을 감았다.
* * *
반시진 뒤에 금발 소녀가 눈을 떴다. 상처가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많이 좋아졌다.
“선배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거의 다 나았습니다.”
소녀가 말했다.
“그럼 갑시다.”
석목이 옷자락을 휘두르자 파란빛이 나타나 두 사람을 받쳐 올리며 먼 곳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금발 소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선배님은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저는 목화라고 합니다.”
금발 소녀가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묵석.”
석목은 가짜 이름을 말했다. 이곳은 천하 성역이었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편이 옳았다.
“묵 선배시군요.”
목화가 말을 하며 속으로 석목의 실력을 가늠해보았다.
손을 한번 휘둘러 거대한 남자와 몇몇 만룡족 사람들을 단번에 죽여 버리는 건 천위 강자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눈앞에 있는 이 선배가 성계 강자일까?
여기까지 생각을 한 목화는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목화는 석목을 몰래 흘겨보았다. 자신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데다가 종족에 속한 젊은이들 중에서도 가장 실력이 강한 이를 뽑아도 이 사람에겐 적수가 되지 못할 터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인족이었다.
“무슨 허튼 생각을 하는 거야?”
목화는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채 곧바로 고개를 흔들며 상상하던 생각을 물리쳤다.
“석두, 이 여자는 네가 맘에 드는 것 같은데?”
채아의 목소리가 석목의 가슴에서 울려 퍼졌다. 비웃음이 담긴 투로 말했다.
“조용히 해.”
석목은 채아를 노려보며 손을 흔들더니 더욱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 * *
한참 후에 두 사람 앞에 큰 성이 하나 나타났다.
성의 규모는 꽤 컸으며 매우 번화했고, 성에 머무는 사람들은 대부분 금절족이었으며 인족과 요족은 매우 드물었다.
“이곳은 금무성(金武城)입니다. 우리 금절족이 장악하고 있는 가장 큰 성이지요.”
목화가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성으로 날아 커다란 동부 밖에 내려섰다.
“선배님, 여긴 우리 금절족의 총본부입니다.”
목화가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성문으로 날아서 들어갔다. 성을 지키는 문지기들은 석목을 알지 못했지만 목화에게는 매우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물론 함께 들어가는 석목도 막지 않았다.
얼마 후에 시끌벅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배님, 여기가 우리 금절족의 본부입니다. 들어가시지요.”
목화가 입구에 서서 석목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석목이 안으로 들어갔다.
동부에 들어가 보니 정면에 커다란 연무대가 있었고, 지금 사람들 열 몇 명이 서로 대결을 펼치고 있었는데 조금 전부터 들리던 시끌시끌한 소리가 바로 여기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석목은 눈빛을 반짝였다. 금절족 사람들은 육탄전에 능하여 무기를 잘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니 영기나 법보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연무대 위에선 사람들 열 몇 명이 주먹을 휘두르며 날카로운 바람소리를 만들어냈다. 전부 무술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목화와 석목이 걸어 들어오자 사람들은 전부 동작을 멈추었다.
“목화, 목금과 나갔는데 왜 이렇게 빨리 돌아왔어? 왜 혼자야? 목금은?”
삐쩍 마른 청년이 물었다.
“사고가 벌어졌어. 금만 산맥에 만룡족 사람들이 몇 명 잠복하고 있었어. 목금은 이미 죽었어.”
목화가 말했다.
“뭐! 만룡족 사람들이 금만 산맥에 침입했다고! 이건 우리 금절족에게 선전포고를 한 거야!”
금절족들은 전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만룡족은 복룡성에 사는 또 다른 큰 종족이었는데 금절족과 사이가 상당히 나빠 양측은 몇 년간 전투를 벌이며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리하여 더 이상 손해를 볼 수 없었기에 휴전 협의를 하고 경계선을 그었다.
“이 일은 내가 장로회에 설명할거야. 위에서 정확한 판단을 내리겠지. 그러니까 너희는 복수를 하겠다고 함부로 움직이지 마.”
목화가 말했다.
“알았어.”
사람들은 목화가 하는 말을 잘 듣는 것 같았다. 비록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만룡족 놈들이 간이 부었군. 목화, 걱정하지 마. 내가 대신 갚아줄게!”
이때 몇몇 사람들이 다가왔는데 그 중 키가 가장 훤칠한 청년이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청년의 금발 머리는 금침처럼 꼿꼿이 서 있었으며 잘생긴 편이었지만 미간 사이에 어두운 표정이 어렸고, 수련 경지도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가장 높았는데 이미 천위 후기에 도달했다.
청년이 입을 벌리자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
“목암(穆岩), 내 일은 신경쓰지 마. 이 일은 내가 알아서 만룡족에게 갚아줄 거야!”
목화는 청년을 보자 곧바로 얼굴이 굳어서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금발 청년은 얼굴에 난감한 표정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곧바로 시선을 돌려 옆에 있는 석목을 바라보더니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며 앞을 가로막았다.
“인족? 흥! 너 누군데 이곳에 함부로 들어온 거야!”
목암이 석목을 바라보며 차갑게 소리를 질렀다.
“묵석 선배님이셔. 만룡 일족이 공격을 할 때, 묵석 선배님이 날 구해주셨어. 그래서 우리 종족에 초대를 한 거야. 목암, 빨리 비켜.”
목화가 소리를 질렀다.
“아, 그렇군. 당신이 목화를 구해줬지만 여긴 우리 금절 일족의 총부요. 총부는 우리 종족사람들만 드나들 수 있는데다가 인족은 특히 사양하니 당신이 알아서 잘 생각 하시오.”
금발 청년이 말했다.
“목암! 묵석 선배는 내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야! 여기서 방해하지 말고 빨리 꺼져!”
목화가 화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목암의 눈에는 화를 내는 기색이 스쳤다. 그리고 목화를 한 번 바라보더니 깊은숨을 내뱉으며 머리끝까지 치솟은 화를 간신히 짓눌렀다.
“목화, 나는 우리 종족의 순찰 대장이야. 여길 드나드는 모든 외부인들의 신분을 알 필요가 있다고. 그런데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외부인을 우리 금절족의 총부로 드나들게 하라는 거야.”
목암이 말했다.
“목암, 그런 보잘것없는 이유로 트집 잡지 마. 이 일은 내가 알아서 아버지께 말씀드릴 테니. 신경 쓰지 마!”
목화는 화가 난 투로 말했다.
목암은 눈에 다시 분노가 스쳤지만 곧바로 사라졌다.
“당신 우리 금절 일족은 쉽게 외부인을 들이지 않으니 들어오고 싶다면 나와 결투를 하지. 날 이기면 얼마든지 이곳에 머물게. 어떤가?”
목암이 석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석목은 목암이 하는 말을 신경 쓰지 않고는 살짝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연무대를 한번 쳐다봤다.
“목암, 묵 선배는 내가 초대한 손님이야. 네가 꼭 싸워야겠다면 나와 싸워!”
목화는 더 이상 화를 억누를 수 없어 터뜨리듯 말했다.
목화가 이 정도로 석목을 감싸고도니 목암은 안색이 퍼렇게 질려버렸다.
“인족이 이렇게 담이 작고 겁이 많아서야. 싸움도 한번 하지 못하고서 여자 뒤에 숨겠다는 건가. 인족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 오늘 제대로 본 것 같군.”
목암이 고개를 돌리며 큰소리로 말하더니 하하 웃기 시작했다.
목암 옆에 서있던 두 사람도 목암을 따라 큰소리로 웃었다.
목화는 화가 치밀어 올라 무엇인가를 더 말하려고 했으나 석목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서 앞을 가로막았다.
“이렇게 흥이 차올랐으니 그럼 가시죠.”
석목이 가볍게 웃었다. 웃음에 차가운 기운이 섞여있었다.
목암은 석목이 웃는 걸 보자 가슴이 쿵 내려 앉았지만 곧바로 평온을 되찾으며 똑같이 차갑게 웃었다.
목암은 눈앞에 선 이 젊은 인족의 경지를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기껏해야 자신보다 조금 더 강한 천위 정상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족은 몸이 약하게 타고난 종족이라 몸이 강력하기로 유명한 금절 일족과 겨룰 수 있겠는가?
석목이 수련을 한 경지가 목암보다 높다고 해도 목암은 석목을 이길 자신이 있었다. 목암은 스스로 빠르다 자부했으며 싸움이 펼쳐졌을 때 빠르게 공격을 날리면 아마 석목이 이길 수 없으리라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