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6화. 감시
대략 반 시진 후에 검은 피풍의를 두른 갈색 원숭이가 상점에서 걸어 나왔다. 눈빛은 가벼워 보였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다급하게 천호성 가운데로 걸어갔다.
“가자, 따라가자.”
석목이 채아를 부르며 조심히 따라갔다.
그런데 두어 걸음 쫓아가던 석목이 갑자기 멈춰버렸다.
“왜? 석두.”
채아가 석목의 어깨에서 엎드리며 물었다.
“잠시만 기다려보자.”
석목은 사람들을 뚫으며 멀어져가는 갈색 원숭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채아가 목을 꼿꼿이 세우고서 먼 곳을 바라보더니 물었다.
“뭘 기다린다는 거야? 석두……”
채아가 말을 떨어뜨리기 바쁘게 상점 양쪽에서 동시에 보라색 피풍의를 입은 중년 남자가 앞뒤로 나란히 서서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로 갈색 원숭이의 뒤를 밟았다.
“저건 또 누구야?”
채아가 놀라며 물었다.
“몰라, 따라가자.”
석목이 말했다.
잠깐 기다리며 거리를 둔 석목은 기운을 감추고는 채아와 함께 보라색 옷을 입은 두 사람을 뒤따랐다.
갈색 원숭이는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유유자적하게 앞으로 걸어갔다.
* * *
일다경 후 원숭이는 천호성 가운데에 있는 전송대전으로 향했다.
대전의 문 앞에 다가서자 갈색 원숭이가 다시 발걸음을 멈추며 조심스럽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매우 신중한 모습이었다.
이때 원숭이를 따라가던 두 중년 남자는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이 곧바로 한쪽으로 보이지 않게 숨었다.
갈색 원숭이는 한참을 둘러보더니 아무 일도 없는 걸 확인한 후에 가볍게 숨을 내쉬며 대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잠시 후에 두 중년도 빠르게 대전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석목도 잰걸음으로 쫓아갔다.
대전 안쪽으로 들어가니 가장 구석에서 작은 전송진법이 빛을 반짝였고,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중년들은 사라져 버렸다.
석목이 눈에 빛을 반짝이며 빠르게 걸어가 비용을 지불하고는 그 전송진법으로 들어갔다.
진법 주변에 선 기둥들이 연이어 번쩍이더니 화려한 빛이 석목의 몸을 감싸버렸다.
* * *
하늘이 한참 동안 돌더니 석목이 작은 궁전 속에 나타났다.
궁전에는 전송진법이 있었는데 옆에는 갈색 옷을 입은 노인이 진법을 시전하고 있었고, 진법 밖에는 보라색 옷을 입은 중년 남자들이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이야, 이렇게 빨리 도망을 간다고!”
채아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석목이 멈칫하며 빠르게 궁전에서 나가더니 두 눈을 살짝 감고는 빛을 번쩍이며 신식을 보내서 사방팔방을 훑었다.
잠시 후에 석목이 눈을 번쩍 뜨더니 얼굴에 의아한 기색을 드러냈다.
“어떻게 된 거야. 석두. 놓쳤어?”
채아가 물었다.
“그 둘은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아. 신식으로 봐도 희미한 흔적들뿐이야. 위치만 대충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아.”
석목이 멈칫하며 말했다.
“아니 그런데 갈색 원숭이는 왜 저렇게 멍청이 같아. 누가 미행을 해도 모르고.”
채아가 혀를 차며 말했다.
“가자. 더 멀어지면 아무것도 찾지 못할 거야.”
석목이 손을 흔들어 용우비차를 소환하여 채아를 데리고서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비차를 최대한 빠르게 몰아 북쪽으로 날아갔다.
* * *
조금 전 전송대전이 자리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성에서 북쪽으로 백 리 정도 날아가니 무성한 숲이 펼쳐졌다.
석목이 숲에서 하늘로 날아올라 주변을 몇 번 둘러보았다. 행성에 깃든 영력은 매우 희박했는데 남해성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숲속에는 지계 정도 영수들이 나타났다.
석목은 의문스러운 듯이 말했다. 팔황고족의 우두머리인 미천거원 일족이 왜 이런 행성에서 머무는지 알 수 없었다.
대략 일각 정도 지나자 석목은 저 멀리 하늘에 뜬 보라색 그림자 두 갈래를 보았다. 얼마 전에 본 두 사람이었다.
석목의 두 눈에서 금빛이 반짝였다. 영목신통으로 바라보니 두 사람 앞으로 수십 리 떨어진 곳에 검은 피풍의를 두른 갈색 원숭이가 네모난 비주를 타고서 빠르게 날아갔다.
북쪽으로 약 세 시진 정도 날아가면서 살펴보니 숲은 점점 사라졌으며 땅에는 갈색 암석들이 드러나 풍경이 황량해 보였다.
눈앞이 넓어지자 석목은 어쩔 수 없이 속도를 줄여야만 했다. 거리를 조금 더 벌린 채로 영목신통을 써서 갈색 원숭이와 두 남자의 행적을 쫓아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석목은 보라색 피풍의를 입은 두 중년이 확연히 속도를 줄이는 걸 느꼈다. 더 멀리 있던 갈색 원숭이는 갈색 산골짜기 위로 내려갔다.
석목은 산골짜기가 어떤 상황인지 볼 수 없었다. 그리하여 살짝 고개를 들어 어깨에 앉은 채아에게 말했다.
“채아, 이제 네게 맡길게.”
“히히, 나에게 맡겨.”
졸고 있던 채아는 석목이 하는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정신을 번쩍 차리고 히히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두 발로 석목의 어깨를 힘껏 짚고는 두 날개를 펼쳐 하늘로 솟아올라 산골짜기로 날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석목의 눈에 드리운 금빛이 점점 커지더니 또 다른 광경들이 머릿속에 뚜렷이 펼쳐졌다.
채아와 시선을 공유하니 다급하게 쫓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하여 석목은 멈춰 서서는 눈을 감은 채 채아가 두 눈으로 보내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갈색 원숭이는 아래로 내려간 후에 다급히 골짜기로 들어가지 않고서 입구에 선 채로 잠깐 기다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렸는데 온통 경계를 하는 기색이었다.
잠시 후에 산골짜기에서 똑같이 색이 짙은 피풍의를 두른 미천거원 일족 여섯 명이 나왔다. 갈색 원숭이들은 몇 마디 말을 나누더니 검은 피풍의를 두른 원숭이를 데리고 산골짜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깊은 골짜기엔 거울처럼 매끈한 석벽이 있었고, 미천거원 일족 일곱 명은 석벽 앞 까지 걸어가더니 멈춰 섰다.
갈색 원숭이가 석벽 앞으로 걸어가 팔을 번쩍 들자 두꺼운 손바닥이 피풍의 아래에서 뻗어 나왔고, 손바닥에서 빛이 흐르며 붉은 피 한 방울이 솟아나왔다.
갈색 원숭이는 피가 묻은 손바닥으로 석벽을 짚었다.
윙!
가벼운 소리와 함께 강렬한 영력 파동이 골짜기에서 흘러나왔다.
반듯하던 석벽이 갑자기 묵직하게 가라앉으며 움푹 파인 곳에서 복잡한 무늬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그리고 기괴한 그림들이 얽히고설키며 그 사이에서 눈부신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붉은빛이 밝아질수록 석벽에 그려진 붉은 그림이 희미해지며 빛을 크게 드리우다가 이내 사라졌다.
매끈하던 석벽에 은밀한 통로가 하나 생겼다.
통로가 나타나자 갈색 원숭이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고, 잠시 후에 붉은빛이 점점 희미해지며 통로가 사라지더니 석벽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갈색 원숭이가 떠난 후에 또 다른 미천거원 일족 여섯 명은 서로를 한 번씩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산골짜기에서 흩어져 다시 숨어버렸다.
갈색 원숭이를 쫓아가던 두 중년은 어둠속에서 한참 동안 숨어 있다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자 방향을 틀어 동쪽으로 날아갔다.
채아는 골짜기 허공에서 두어 번 돌더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다시 석목의 어깨로 날아갔다.
“석두, 갈색 원숭이는 들어갔고 쫓아가던 사람들도 사라졌어. 우리는 이제 어떡해?”
채아가 물었다.
석목이 잠깐 침묵을 한 후에 말했다.
“아까 본 두 중년은 미천거원 일족 여섯 명이 나오는 모습을 보았어. 또 비밀 통로까지 발견했는데도 눈에 아무런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지. 아마 여기 상황을 훤히 알고 있는 것 같아. 처음으로 미천거원 일족을 미행한 게 아닐 거야. 가자. 우리도 따라가 보자.”
석목은 손을 흔들어 용우비차의 방향을 틀더니 골짜기 동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 * *
동쪽으로 대략 백 리 정도 날아간 후에 석목은 채아를 데리고 나무가 무성한 원시림으로 들어갔다.
조금 전에 본 두 사람이 내려간 숲속이었다.
석목은 명수결로 기운을 감추고는 채아를 데리고서 두 사람이 지나간 종적을 밟으며 깊은 곳까지 은밀하게 쫓아갔다.
대략 반시진 정도 지나자 석목이 숲에서 몸을 비집으며 나왔다. 앞쪽에 드넓은 빈 땅이 펼쳐졌다.
빈 땅에는 나무로 지은 집이 하나 있었는데 족히 높이가 수십 장은 되는 것이 매우 거대했다.
집 주변에는 기운을 봉쇄하는 은닉 진법들이 줄줄이 새겨져있어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면 절대 발견할 수 없는 집이었다.
석목이 이제 조금 더 가까이다가가 집 안의 상황을 알아보려고 할 때, 안에서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예전처럼 평범한 영재과 제료를 구매했다고?”
이어서 피부가 고동색에 키가 열 장 정도 되는 고만족 사나이가 집에서 걸어 나왔다.
쿵!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석목의 귓가에서 ‘윙’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땅 깊은 곳에서 격렬한 파동이 일어나 지진이라도 난 듯이 대지가 흔들렸다.
바닥은 마치 거미줄처럼 쩍쩍 갈라졌으며 땅속에 묻혀있던 커다란 암석이 뽑혀 석목을 향해 돌진했다.
석목은 표정을 짓지 않은 채 발끝으로 땅을 가볍게 짚고는 등 뒤에 달린 흑백 날개를 펼쳐 힘껏 흔들더니 하늘로 솟아올랐다.
이때, 숲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조금 전에 거점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따라 나와 석목을 올려다봤다.
고만족 사나이가 단 번에 옆에 있던 나무를 부러뜨리며 화가 난 눈으로 거대한 원숭이를 바라보았다.
“백석(白石),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냐고? 만도, 내가 여기까지 숨어서 따라오지 않았더라면 너희는 감시를 당하고 있었던 사실도 몰랐을 거야.”
거대한 원숭이는 후후 웃으며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
“저놈부터 해치우지. 너희 두 놈은 이따가 보자.”
거대한 원숭이가 하는 말을 들은 만도는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중년 두 명을 향해 호통을 쳤다.
그러자 두 중년은 겁에 질린 듯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흥, 한통속이었군.”
석목이 허공에 서서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대체 누구냐?”
만도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너희 명줄을 끊으러 온 사람.”
석목이 말을 하며 여의빈철곤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흑백 날개를 펼쳐 몸을 낮춰 아래로 날아가며 곤봉을 치켜들고는 만도의 머리를 내리쳤다.
여기서는 만도가 갖춘 실력이 가장 월등했는데, 성계 중기 강자였다. 그리고 백석이라 불리는 미천거원족은 성계 초기 수련 경지였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천위 무인이었다.
“분수를 모르는군.”
만도가 소리를 지르며 기이한 부문을 줄줄이 밝혔다. 그러자 만도의 몸통이 순식간에 두 배로 커졌다.
굵고 튼실한 두 팔뚝에 각질이 층층이 쌓이더니 피부가 딱딱하게 변하였다. 원래 고동색이던 피부도 푸른색으로 변하면서 코뿔소처럼 단단해졌다.
펑!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만도가 두 팔을 들어 올려 맨팔로 석목이 날린 빈철곤을 막았다.
하지만 만도는 석목의 곤봉을 너무 얕잡아봤다. 만도는 곤봉의 힘에 짓눌려 두 발이 땅속으로 푹푹 빠져버렸고, 눈에는 놀란 기색이 어렸다.
석목은 만도의 힘과 방어력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한 방을 날린 후에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 손바닥으로 잔잔한 통증이 전해졌다.
보라색 옷을 입은 두 중년은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빠르게 알아차리고는 석목이 물러나자 다급하게 만회를 하려고 뒤쪽으로 가서 포위를 했다.
두 중년은 손에 든 무기를 휘두르며 석목의 뒤쪽에서 교차하며 공격을 했다.
“흥!”
석목이 콧방귀를 뀌면서 여의빈철곤을 앞으로 흔들며 몸을 아래로 날려 두 중년이 날린 공격을 피했다.
여의빈철곤은 마치 둥지를 떠난 새처럼 빛을 반짝이며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더니 다시 돌아와 두 중년을 향해 날아갔다.
이 “권조지반”이라는 곤법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두 중년은 다급하게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결국 곤봉을 피하지 못했다.
지금 석목이 갖춘 실력은 곤초를 사용하지 않아도 천위 무인이 절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펑, 펑!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정확히 두 번 울려 퍼졌다. 그러자 허공에 구덩이가 생기며 피꽃이 활짝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