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7화. 백석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두 중년이 석목이 날린 일격에 죽어버리자 만도는 분노가 치밀어올라 두 주먹을 꽉 쥐고는 석목에게 향했다.
“다들 집중해. 저 인족은 내력이 확실치 않고 매우 막강한 실력을 갖췄다. 함께 둘러싸서 공격을 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파란색 옷을 입고서 어두운 얼굴을 내비치는 한 청년이 말했다.
그 말을 듣던 사람들은 곧바로 석목을 둘러싸고는 몸에 다양한 빛을 드리우며 각자 법보를 꺼내 석목을 향해 공격했다.
동시에 백석이라 불리는 미천거원족은 포효를 하더니 두 팔을 흔들며 석목을 덮쳤다.
갑자기 허공에서 빛이 미친 듯이 번쩍이더니 공기가 격하게 흔들렸다.
석목이 만도 앞에서 물러나자마자 푸른색 원숭이가 또 석목을 덮쳤다.
석목은 조금 전에 이 원숭이가 보여준 엄청난 힘을 맛보았기 때문에 주먹이 다가오자 흑백 날개를 펄럭이며 잠시 희미하게 변했다가 주먹 아래로 몸을 피했다.
그 모습을 본 백석이 돌아서서 다시 석목을 쫓아가려 할 때 무언가 팔을 찌르는 고통이 들며 순식간에 힘이 풀려버렸다.
원숭이가 다급하게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붉은색 단검이 팔을 찢어놓았다.
석목이 원숭이가 날린 공격을 피하는 순간 분신을 소환한 것이었다.
온몸에 마기를 감고 있는 분신은 수련 경지가 이미 성계 중기였다. 분신은 두 손으로 단검을 휘두르며 단번에 백석의 팔뚝을 잘라버렸다.
“으아아…… 죽여 버릴 거야!”
백석은 처참하게 포효했고, 백석의 몸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눈에 띄는 하얀색 기류가 몸에서 줄줄이 뿜어져 나와 석목이 한 장 정도 밀려났다.
이어서 백석의 몸에 자라난 푸른색 털이 갑자기 철침처럼 꼿꼿이 서더니 근육도 빠르게 불어났고, 보라색 힘줄이 근육 위로 튀어나오며 몸집이 백 장 가까이 커졌다.
쾅!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며 온 숲이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센 바람 때문에 돌들이 부서져 날아다녔다.
한편 석목이 백석 주변에서 밀려나자 만도가 곧바로 쫓아와 두 주먹에 눈부신 푸른빛을 내뿜으며 촘촘한 주먹 그림자를 만들더니 석목을 향해 내리쳤다.
하지만 이번에 석목은 피하지 않고서 눈에 빛을 번쩍이며 정면으로 막아섰다.
석목의 몸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구룡쇄금갑이 나타났고, 피부가 누런색으로 변하더니 두꺼운 돌갑옷도 나타나 석목의 몸을 감쌌다. 석목은 그 상태로 만도와 강하게 부딪쳤다.
우르릉!
귀가 찢어질 것만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며 허공에서 커다란 소용돌이가 생겨 사방으로 퍼졌다.
석목이 허공에서 뒤로 밀려나며 바닥에 떨어졌다.
석목이 몸을 멈춰 세우기도 전에 공기를 찢는 다급한 소리와 함께 붉은 비단이 오른쪽에서, 비검 한 자루가 왼쪽에서 날아왔다.
석목이 눈썹을 치켜뜨며 손에든 곤봉을 왼쪽으로 휘둘러 비검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다시 곤봉을 거두어들이기도 전에 붉은 비단이 석목의 허리를 꽁꽁 감싸버렸다.
붉은 비단의 한쪽 끝을 잡고 있던 부인은 가느다란 소리를 질렀고, 다른 한 손으로 붉은 비단을 짚었다. 그러자 비단에 붉은 부문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석목은 허리가 뜨겁게 타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어 ‘화르륵’ 소리와 함께 붉은 비단에서 불이 활활 타올랐다.
불이 뻗어나가자 석목은 곧바로 불길에 휩싸였다.
“하, 꽤나 대단한 줄 알았더니, 고작……”
요염한 부인이 말이 끝내기도 전에 비단을 잡은 손에서 갑자기 뼈까지 시린 한기가 몰려왔다.
이어서 하얀 얼음층이 갑자기 석목에게서 뻗어 나오더니 단번에 붉은 비단을 두른 화염과 부인을 동시에 얼음 조각상으로 얼려버렸다.
석목이 앞으로 다가가 손에든 여의빈철곤으로 가볍게 내리치자 얼음 조각상으로 변해버린 부인이 와르르 부서지며 신혼마저 보내지 못한 채 죽어버렸다.
그 광경을 보던 사람들은 전부 놀란 기색을 드러내며 석목과 거리를 두고는 멀리서 공격을 할 뿐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한편 석목의 화신과 백석이 벌이는 전투는 거의 막바지에 들어섰다.
백석은 몸집이 거대했으며 육신은 강력했지만, 성계 초기인지라 석목의 분신이 집중하여 날리는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고, 단검으로 끊임없이 공격을 하니 백석은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됐다. 이제 끝장을 보자.”
석목이 가볍게 웃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날개를 펼쳐 곧 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만도를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만도는 겁을 내는 대신 화색을 드러냈다.
석목이 계속 피해 다녔기 때문에 만도는 주먹을 날릴 때마다 말랑한 솜을 내리치듯 느낌이 좋지 않았던 터였다.
이제 석목이 몸을 던지니 만도도 원하던 바였다.
만도는 몸에 푸른빛을 드리우며 강렬한 영력 파동을 끊임없이 주변으로 뿜어냈다. 그리고 뒤로 강하게 한 걸음 물러나며 오른쪽 주먹을 허리춤에 가져다 댔다.
오른쪽 주먹 외부에 푸른빛이 맴돌더니 원반 같은 푸른색 방패가 튀어나와 주먹을 촘촘하게 감쌌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석목은 한 손에 곤봉을 꽉 쥐고는 다른 한 손에는 천기곤초를 든 채로 맹렬하게 상대를 덮쳤다.
“하!”
만도가 흉악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허리춤으로 끌어당겼던 주먹을 강하게 휘둘렀다.
위잉!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푸른빛이 곧바로 만도의 주먹에서 튀어나와 방패를 뚫고서 지나더니 크기가 백 장 정도 되는 푸른 코뿔소로 변하여 석목을 향해 날아갔다.
석목이 실눈을 뜨며 ‘탱!’ 소리와 함께 곤초에서 여의곤을 뽑아들곤 푸른 뿔을 향해 터지듯 날아갔다.
빈철곤에서 폭발하여 나온 찬란한 금빛은 순식간에 푸른 코뿔소를 삼켜버렸다.
우르릉!
하늘을 찢는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석목이 든 여의빈철곤에서 금빛이 터지듯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이미 산산조각이 나버린 푸른빛을 휘감고서 사방팔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숲속에서 거센 바람보다 강력한 위력이 주변 열 장 안에 있던 나무를 전부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이때 숲에서 또 한 번의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만도는 몸에 푸른빛을 반짝이며 부문을 한 층 더 밝혔다. 그리고 몸통이 다시 일그러지더니 푸른 갑옷을 두른 커다란 코뿔소로 변했고, 코뿔소가 두 눈에 핏빛을 띠며 석목을 향해 돌진했다.
코뿔소로 변신한 만도를 바라보던 석목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석목은 큰 보폭으로 한 걸음 다가가더니 여의곤을 창처럼 세워 들었다가 앞을 향해 찔렀다.
석목의 몸에 흑백 빛이 크게 번졌고, 두 팔에선 금빛이 눈부시게 밀물처럼 빈철곤 끝으로 밀려가 빈철곤을 꽁꽁 감싸버렸다.
윙!
빈철곤에서 찬란한 금빛이 뿜어져 나오며 숲을 하얗게 비추었다.
극도로 밝아진 금빛은 마치 타오르듯 눈이 부셔서 바라볼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거의 타오르다시피 번지는 금빛에선 아무런 온도를 느낄 수 없었다. 다만 천지 원기를 잘라버릴 듯 날카로운 힘만 느낄 수 있었다.
파란색 옷을 입은 청년은 손으로 두 눈을 가리며 소리를 질렀다.
“만도 어르신, 조심……”
하지만 이미 늦었다. 푸른 갑옷을 두른 거대한 코뿔소는 강력하기 그지없는 기세로 이마에 자라난 단단한 외뿔을 맹렬하게 여의빈철곤이 뿜어내는 금빛과 부딪쳤다.
생각과는 달리 충격 때문에 생긴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천지 원기도 용솟음치지 않았다. 심지어 부딪치며 깨진 흔적마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석목과 만도는 마치 스쳐 지나듯 각자 다른 방향으로 내달렸다.
주위 사람들이 놀라서 어안이 벙벙할 때, 숲속에서 갑자기 ‘퍽!’하며 가벼운 소리가 울려퍼졌다.
거대한 코뿔소로 변신한 만도는 몸에 얇은 실 같은 금색 균열들이 생겼다.
이어서 균열들에서 피가 줄줄이 뿜어져 나왔고, 거대한 몸통이 수많은 조각으로 부서져 버리며 마치 커다란 벽이 무너지듯 무너져 내렸다. 신혼마저 도망을 치지 못한 채 철저하게 부서졌다.
구전현공의 여섯 번째 단계를 대성한 후로 석목은 날카로운 금빛을 한 점으로 모아 이 공법을 만들어냈다. 처음으로 실전에서 사용했는데 꽤나 성공적이었다.
석목은 한 손을 흔들어 여의곤을 거두어들이고는 다시 천기곤초에 끼워 넣었다.
이어서 석목이 고개를 돌려 나머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얼굴이 굳어버리다 못해 새까맣게 타버린 것 같았다.
“으아!”
이때 뒤편에서 처참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붉은색 검 그림자 수백 갈래가 촘촘하게 뿜어져 나와 거대한 백석의 몸을 갈겨 산산조각을 냈다.
잠시 후에 줄줄이 흩어졌던 검영이 한 곳으로 모이며 다시 단검으로 변하더니 분신의 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백석도 만도처럼 시체마저 온전히 남기지 못한 채 죽어 버렸다.
거점에 남아있던 몇몇 천위 무인들은 이미 겁에 질려 벌벌 떨며 도망을 치려고 했지만, 석목이 번개처럼 무인들을 쫓아가 전부 죽여 버렸다.
여기저기 찢긴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보며 석목은 얼굴에 혐오스런 기색을 드러냈다.
석목이 손을 흔들자 분신이 곧바로 날아와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 * *
잠시 후에 채아가 날개를 펄럭이며 석목의 어깨로 내려왔다.
“석두, 내가 네 곁에 온 뒤로 너는 점점 세지고 있어.”
체아는 알랑거리는 와중에도 스스로 칭찬하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채아의 이마에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아까는 먼저 알려달라며? 빨리 도망가야 한다고.”
“아파, 아파, 아파! 석두, 살살하라고!”
채아가 소리를 질렀다.
“빨리 산골짜기로 돌아가서 백원왕의 종족사람들을 찾아보자.”
석목이 주변을 훑어보며 침묵을 한 후에 말했다.
“맞아. 여기엔 오래 머물면 안 될 것 같아. 저놈들에게 지원군이 오기라도 하면 큰일이야.”
채아가 말했다.
석목이 이제 막 몸을 날리려 할 때, 숲에서 환호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땅이 진동했다.
숲속을 비집고 쏟아지던 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이어 커다란 몸집 일곱 개가 저 멀리 허공에서 달려왔다. 그 모습은 마치 커다란 암석 덩어리가 튕겨져 석목 주변으로 날아오는 것만 같았는데 귀가 찢어질 것만 같은 소리와 함께 먼지가 주변에서 흩날렸다.
석목이 자세히 바라보니 일곱 명 중에 여섯 명은 조금 전에 산골짜기를 지키던 미천거원족이었다. 그리고 가장 앞에서 다가오는 원숭이는 털이 하얗게 빛나는 하얀 원숭이였다.
하얀 원숭이는 키가 석 장 정도 되었는데 주변에 있던 거대한 원숭이들보단 조금 작았지만 풍기는 기운은 다른 원숭이들보다 훨씬 강력했다. 기세는 성계 중기에 도달했다. 하얀 원숭이가 은색 갑옷에 붉은색 피풍의를 두르고 있는 모습은 실로 위엄이 있어 보였다.
“캬……”
하얀 원숭이는 사납게 소리를 질렀는데 어두운 금빛 눈에 악랄한 빛이 어렸다. 그리고 차가운 눈으로 석목을 노려보며 한 글자, 한 글자를 내뱉었다.
“네가 백석을 죽였느냐?”
채아는 하얀 원숭이의 왼쪽 볼에서 부터 오른쪽 입가까지 그어진 긴 흉터를 바라보았고, 원숭이가 풍기는 기세를 느끼고는 두려워했다. 그리고는 석목의 귀에다가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석두, 저 원숭이는 엄청 흉악해 보이는데!”
“그래, 내가 죽였다. 허나……”
석목은 눈에서 빛을 반짝이며 정색을 한 후에 말했다.
하지만 석목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뜨거운 기운이 몰려오는 걸 느꼈다. 커다란 화염 주먹 그림자가 이미 얼굴 앞까지 다가왔다.
석목이 깜짝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오른쪽 주먹을 휘둘러 앞을 내리쳤다.
하얀빛을 감싼 주먹 그림자가 나타나 차가운 기운을 감고서 화염 주먹과 강하게 부딪쳤다.
쾅!
붉은 주먹 그림자와 하얀 주먹 그림자가 동시에 터져버리며 허공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