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9화. 셋째 장로의 질문
이때, 대전 밖에서 두 갈래 빛이 날아왔다.
그중 하나는 금색 거대 원숭이였는데 허리가 굽었으며 얼굴은 온통 주름투성이에 금색 눈썹을 얼굴에 드리웠다. 하지만 두 눈에서 영력이 반짝였는데 대장로보다는 정정해 보였다.
또 다른 하나는 털이 붉은 중년 원숭이었다. 붉은 갑옷을 둘렀으며 온몸에 근육이 울퉁불퉁했는데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석목이 눈을 반짝였다. 이 둘은 신경 강자였으며 아마 신경 초기 정도 되어보였다.
“대장로님, 백공 족장(白公族長)의 후손이 나타났다면서요. 어디에 있습니까?”
늙은 금색 원숭이가 대전으로 걸어와 두리번거리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이어서 금색 원숭이가 석목을 바라보았다.
“이놈이에요? 인족놈?”
금색 원숭이는 희미해지더니 곧바로 놀라운 속도로 석목 앞에 나타났다.
석목이 깜짝 놀라 눈썹을 치켜올렸다.
금색 원숭이가 말하는 백공이 아마 백원왕일 터였다. 백원왕의 본명이 백공이었다니.
붉은 중년 원숭이는 차가운 눈빛으로 석목을 훑어보더니 대전에서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둘째 장로, 급할 건 없으니 우선 앉게.”
대장로가 말했다.
금색 원숭이가 조급히 굴자 대장로는 금색 원숭이에게 눈치를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 이 두 분은 우리 둘째 장로 백장(白藏)과 셋째 장로 백비(白丕)네. 이 자는 석목이라고, 미양 성역에서 왔으며 스스로 백원왕의 후손이라 하네.”
대장로가 간단하게 소개를 했다.
“미양 성역? 좋아! 예전에 족장은 미양 성역에서 구전현공을 배웠지. 이 자식, 어떻게 족장에게 대물림을 받은 거야? 빨리 말해봐!”
금색 원숭이 백장이 멈칫하더니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석목에게 물었다.
이때 붉은 원숭이도 이글거리는 눈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실은……”
석목은 어떻게 백원왕에게 대물림을 받게 되었으며 어쩌다 청란성지로 들어갔는지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물론 사사로운 일들은 빼놓고서 말했다.
이어서 백장과 백비는 백원왕과 관련된 자세한 일들을 캐물었다. 석목은 백원왕이 죽은 일은 잘 몰랐지만, 꿈속에서 본 백원왕이 치른 전투와 죽는 과정을 전부 말해주었다.
그리고 석목이 어떻게 모든 전말을 알게 되었는지는 청란성지의 성주에게 책임을 돌렸다. 청란성지의 성주가 백원왕과 사촌이었기 때문이었다.
석목이 하는 말을 듣던 백장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눈이 끝없는 슬픔으로 잠겼다. 얼굴도 이전보다 많이 초췌해진 것 같았다.
백비와 대장로도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족장이 갖춘 실력은 정말 대단했다. 미양 성역에서 구전현공을 수련하고 돌아왔을 때, 실력이 단번에 신경 중기까지 치솟았지. 그리고 보화 성조가 전장으로 데려가 우리 미천거원 일족을 이끌고서 정상까지 올라갔었지. 황고팔족들 중에 우두머리로.
하지만 천정과 결전을 치를 때 족장은 사라져 버렸지. 우리는 계속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어. 족장이 크게 부상을 당하여 폐관수련을 하는 중일 거라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백장이 한숨을 내뱉고 말하면서 눈에서 눈물이 반짝였다.
“백원왕에게 대물림을 받은 이상, 백원왕이 품은 원한은 꼭 제가 청산하겠습니다. 장로님들 걱정하지 마십시오.”
석목이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청산한다고? 말이 참 가볍소! 고작 성계 초기 경지로는 아마 우리 몇몇 늙은 놈들도 상대하기 힘들 건데 어떻게 천정에 복수를 한단 말이오. 그리고 당신이 족장의 후손이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게 꼭 진실이리란 보장은 없소. 만약 거짓이라면!”
백비가 갑자기 차가운 투로 말했다.
“셋째 장로, 그게 무슨 뜻인가? 석목 도우의 몸에서 족장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는 건 엄연한 진실이네. 분명 당신도 느꼈을 터인데 어째서 이런 말을 하는 건가.”
백장이 눈썹을 치켜뜨며 화가 나서 호통을 쳤다.
“고작 한 줄기 기운으로 무엇을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 자는 고작 인족입니다. 백공 족장은 우리 거원 일족에서도 가장 자랑스러운 분이었는데 예전에 죽었다고 한들 고작 인족에게 대물림을 해줄 리 없지 않겠습니까?”
백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백장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석목은 백비가 하는 말을 들으며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다만 차분한 마음으로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바라본 후에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비록 석목은 오늘 처음 이곳에 왔지만 이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모습을 보니 조금 실망스러웠다.
“백비 장로님은 제가 가짜라고 생각하십니까?”
석목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래! 족장의 후손이라고 떠들어대는데 어떻게 증명할 건가?”
백비는 석목을 바라보며 말했다.
석목이 담담하게 웃더니 금빛을 반짝이며 번천곤을 꺼내들었다. 번천곤에서 끝없는 위력이 풍겨져 나왔다.
동시에 석목의 몸에서도 화려한 빛이 반짝이더니 구룡쇄금갑이 나타났다.
그러자 대전에 있던 세 장로는 전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 두 물건이 그 증표가 될지 모르겠네요?”
석목이 말했다.
“번천곤! 쇄금갑!”
백비는 눈에 열망을 하는 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이건 족장이 쓰던 보곤(寶棍)과 보갑(寶甲)이다! 석 도우가 이 두 보물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히 족장의 후손이네.”
백장이 놀랍고도 기쁜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리고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석목 앞으로 걸어가 인사를 올렸다.
“미천거원 일족의 장로 백장, 족장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그러자 석목이 당황하며 일어서서는 백장을 일으켜 세웠다.
“둘째 장로님 왜 이러십니까. 저는 백원왕의 후손이긴 하나 이렇게 예의를 갖추실 이유는 없습니다.”
“석 도우가 몰라서 그렇습니다. 족장이 실종되기 전에 유훈처럼 남긴 말이 있습니다. 혹시라도 자신에게 불행이 닥치면 나중에 이 신물을 가지고 오는 사람이 있으리라 말했습니다.
그 뒤로 우리 종족을 이끄는 족장의 자리는 계속 비어 있었으며 우리 세 사람은 논의를 하여 평생 동안 족장이 남긴 유훈을 받아들여 족장의 후손에게 족장 자리를 내어주기로 정했습니다. 석 도우가 족장의 법보들을 가지고 왔으니 당연히 우리 미천거원 일족의 족장이십니다.”
백장이 말했다.
“황당하군! 이 자는 족장이 쓰던 번천곤과 쇄금갑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족장이 쓰던 저 두 법보를 저 자가 훔쳐 왔을 수도, 빼앗아 왔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가볍게 받아들이겠다니요? 흥! 이 정도로는 날 속일 수 없네.”
백비가 차갑게 말했다.
“백비! 자네는 지금 억지를 부리고 있네!”
석목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백장이 소리를 질렀다.
“억지? 제가 보기엔 백장 장로께서 억지를 부리는 것 같군요. 족장은 이미 죽었습니다. 저 법보도 당연히 잃어버렸겠지요. 누구든 운이 좋으면 가질 수 있는 물건입니다. 그래서 지금 법보를 주운 사람에게 족장 자리를 내주자는 겁니까?”
백비가 내키지 않은 듯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백장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석목을 바라보았다.
백비가 한 말이 전부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석목은 고작 성계 초기 수준으로 경지가 매우 낮았다.
“아, 백비 장로님은 제게 품은 불만이 꽤 많으신 것 같습니다?”
석목이 실눈을 뜨며 속으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았다. 백비라는 자는 애초에 석목을 믿지 않는 걸 보니 무슨 꿍꿍이를 숨긴 것만 같았다.
“불만? 물론 있지. 어서 족장의 번천곤과 쇄금갑을 두고서 떠나게. 내가 신분을 속인 자네에게 벌을 내리기 전에 가는 편이 좋을 게야.”
백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번천곤을 바라보는 눈에는 탐욕이 가득했다.
“백비, 그게 무슨 소리인가?”
백장이 소리를 질렀다.
“무슨 말이긴요? 저 인족놈에게 족장의 법보를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이 두 법보는 우리 미천거원 일족이 가질 물건인데 어떻게 인족놈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겠습니까?”
백비가 말했다.
“아, 제 두 법보가 탐나셨군요. 그래요, 가지고 싶으면 가져가시죠.”
석목이 비웃으며 번천곤을 꺼내 건넸다.
“네가 가져보라고 먼저 말했겠다.”
백비가 좋아하며 곧바로 석목 앞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손에 붉은빛을 크게 드리우며 붉은 털이 잔뜩 난 손바닥으로 번천곤을 잡으려고 했다.
“백비, 네가 감히!”
백장이 화를 내며 몸에 눈부신 금빛을 뿜어냈다.
“둘째 장로, 잠시만.”
계속 침묵하기만 하던 대장로가 손을 뻗어 둘째 장로를 막았다.
“하지만……”
백장은 다급했다.
“저 자가 만약 백비와도 싸울 수 없다면 어떻게 우리 미천거원 일족을 이끌 겠나? 그렇다면 족장을 위한 복수 또한 이룰 수 없는 노릇이겠지.”
대장로가 담담하게 말했다.
백장이 움직이길 멈추었다.
석목이 차갑게 웃으며 팔을 휘두르자 번천곤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와 강력한 기세가 주변으로 흩어졌다.
석목은 큰 힘을 들이지 않은 채 가볍게 번천곤으로 붉은 원숭이의 손을 찔렀다.
백비는 좋아하며 손으로 법결을 시전하였다. 그러자 붉은 원숭이의 손바닥에서 붉은빛이 반짝이더니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붉은 손 주변은 공기가 일그러지며 소용돌이 주변에서 붉은 안개가 맴돌았다.
이건 백비가 쓰는 비술이었는데 다양한 법보를 끌어들이는 비술이었다.
그 순간 붉은 손이 희미해지더니 빠른 속도로 뻗어나가 단번에 번천곤을 잡았다.
백비가 좋아하며 곧바로 비술을 시전하여 번천곤을 넣으려 할 때, 번천곤에서 놀라운 힘이 밀려나와 화산이 터지듯 붉은 손을 내리쳤다.
펑!
큰소리와 함께 붉은 손은 찢어져 버렸으며 번천곤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서 백비를 내리쳤다.
번천곤이 스친 곳은 허공이 찢어지며 엄청난 힘이 일렁였다.
백비가 깜짝 놀라 손을 들어 올리자, 손바닥에서 붉은빛이 반짝이더니 붉은색 장갑이 하나 나타났다.
퍽!
붉은색 번개가 장갑에 나타나더니 손바닥이 순식간에 몇 배나 커져서는 번천곤과 부딪쳤다.
쾅!
백비는 몸을 크게 흔들며 뒤로 밀려났고, 손바닥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장갑에 균열이 줄줄이 생기더니 순식간에 찢어졌다.
백비가 신음을 냈다. 입가에는 핏줄기가 묻었으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석목도 큰 힘 때문에 뒤로 두 걸음 밀려났지만 곧바로 몸을 곧추세웠고, 가볍게 옅은 웃음을 짓는 표정이었다.
“내키지 않으시면 더 덤벼 보든지.”
석목이 담담하게 말했다.
백비는 눈에 불이 활활 타오르더니 다시 손바닥에 붉은 불을 드리웠다. 그리고 붉은 곤봉을 꺼내들고는 다시 석목을 덮치려고 했다.
“됐다, 그만해라!”
그림자가 반짝이더니 대장로가 두 사람 사이에 나타나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장로님,”
백비가 미간을 찌푸리며 차가운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더니 이내 붉은 곤봉을 거두어들였다.
석목도 다시 번천곤과 구룡쇄금갑을 거두어들였다.
“걱정할 필요 없다. 석목이 족장의 후손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이미 생겼다. 더는 논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
대장로가 천천히 말했다.
그러자 백비와 백장은 멈칫했다.
“어떻게 확인하실 건가요? 무슨 방법입니까?”
백장이 물었다.
대장로는 석목을 바라보며 물었다.
“석목 도우, 조금 전에 보여준 갈색 영패를 다시 보여줄 수 있겠나?”
석목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갈색 영패를 꺼내주었다.
“철원령(鐵猿令)!”
백비와 백장은 갈색 영패를 보더니 놀란 얼굴에 이내 기쁜 기색이 돌았다.
석목은 두 사람의 표정이 달라지는 걸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철원령을 지니고 있다면 이걸로 확인을 할 수 있겠네.”
백장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백비는 얼굴이 여전히 어두운 채로 있었지만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