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660화 (660/916)

660화. 또 다른 자아?

석목이 대장로를 바라보며 궁금한 눈빛을 보냈다.

“석목 도우는 아마 모를 텐데 이 영패는 철원령이라고 하네. 우리 가족이 항상 지니고 다니던 물건이었지. 그리고 이건 족장이 남긴 보장을 여는 열쇠 역할도 하지.”

대장로가 말했다.

순간 석목은 머릿속으로 백원왕이 남긴 세 번째 보장이 생각났다. 세 번째 보장은 백원왕의 고향에 있었다. 바로 대장로가 말하는 보장인 걸까?

“그렇다고 한들 제가 백원왕의 후손이라는 걸 어떻게 증명한다는 겁니까? 보장이 열려도 백비 장로는 또 다른 이의를 제기하겠지요. 이 영패를 주어왔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석목이 말했다.

“아니지. 철원령은 족장이 직접 제련한 물건이네. 영패 위에 족장이 친히 설치한 금제가 걸려있지. 족장이 쓰던 물건이나 족장이 인정한 사람만이 금제를 풀 수 있네.”

대장로가 말했다.

그러자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조금 긴장은 되었다.

철원령은 백원왕이 준 게 아니라 연꽃 동자가 준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정말 철원령으로 보장을 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바로 가보지.”

대장로가 가장 먼저 대전 밖으로 걸어 나가 비경에서도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백비와 백장, 그리고 석목도 뒤를 따랐다.

* * *

잠시 후에 넷은 검은 산봉우리 근처로 내려왔다.

대장로는 암벽 근처로 날아가더니 법결을 하나 시전하여 그 속으로 스며들었다.

암벽에서 검은빛이 층층이 나타났는데 위에는 수많은 부문이 새겨져 봉인 진법을 이루었다.

대장로가 두 손을 흔들자 법결이 줄줄이 튀어나와 검은빛 속에 스며들었다.

검은빛이 순식간에 번쩍였다가 곧바로 사라졌다.

쩍, 쩍!

암벽에서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커다란 입구가 하나 벌어졌다.

“가자.”

대장로가 말을 하며 앞에서 걸어 들어갔다.

백장이 석목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함께 들어갔다.

석목이 이제 막 들어가려고 할 때, 가장 뒤에서 걸어오던 백비가 석목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석목, 여긴 우리 미천거원 일족에겐 신성한 구역이다. 네가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영총은 안 된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렸다. 채아가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려고 할 때, 석목이 말렸다.

“채아, 밖에서 기다려.”

석목이 말을 하며 심신으로 전음을 보내 몇 가지 말을 더 전했다.

“흥! 이 채아 어르신한테 들어가 달라고 애원을 해도 싫다고 했을 거라고!”

채아가 눈을 희번덕이며 날개를 펄럭이더니 근처 숲속으로 날아갔다.

채아가 날아가는 모습을 확인한 석목은 돌아서서 백비에게 물었다.

“셋째 장로님, 이러면 되겠습니까?”

“가자,”

백비는 담담하게 한 마디를 하고는 곧바로 암벽 속으로 들어갔다.

석목은 장로들을 따라 입구로 들어갔다. 안쪽에 통로가 하나 있었는데 그리 길지 않아서 곧바로 지하 공간에 도착했다.

지하 공간은 이삼십 장 정도에 가운데 땅과 떨어진 자리에 제단이 하나 있었다. 제단 위에는 검은 비석이 하나 솟아 있었으며 비석 위로 검은빛이 반짝이면서 검은 소용돌이가 천천히 돌아갔다. 소용돌이에서 강력하기 그지없는 파동이 흘러나왔다.

“이 비석이 보장의 입구인가요?”

네 사람이 제단 위로 다가갔으며 석목이 검은색 비석을 보며 물었다.

“그러네 석목 도우. 들어가게나.”

대장로가 손으로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석목이 갈색 영패를 꺼내 들고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천천히 앞으로 다가갔다. 동시에 철원령 속으로 진기를 불어넣었다.

쓱!

영패 겉에서 옅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석목의 손에서 허공으로 떠올랐다.

석목은 허공으로 떠오르는 영패를 바라보며 긴장을 풀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장로들은 다양한 표정을 드러냈다.

대장로와 백장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지만, 백비는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

석목은 영패를 다스리며 천천히 비석으로 다가갔다.

영패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비석은 검은빛을 더욱 강렬하게 번쩍였다.

석목이 비석과 한 장 정도 거리까지 다가갔을 때 검은빛이 소용돌이 속에서 흘러나와 영패에 ‘툭!’ 떨어졌다.

휙!

갈색 영패에서 빛이 크게 번지더니 곧바로 석목에게 드리웠고, 빛을 반짝이며 검은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석목이 사라지고 나서야 장로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렸다.

“제기랄! 왜 저 자식만 들어간 거야! 지난번에 족장이 열 때와는 다르잖아!”

백비가 큰소리를 지르며 두 손으로 법결을 시전하여 붉은빛으로 변하더니 검은 소용돌이로 날아갔다.

그러자 소용돌이에서 검은빛이 반짝이며 ‘펑!’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붉은빛이 흩어지며 백비는 몸통이 튕겨져 날아가 몇 장 정도 밖으로 떨어졌고, 입에서 붉은 피를 뿜었다.

“소용이 없을 게다. 철원령이 없이는 우리들 중에 아무도 들어갈 수 없지.”

대장로는 백비를 쳐다보지도 않고서 말했다.

“그럼 석목 저 자가 제멋대로 들어가게 두겠다는 겁니까? 안에 있는 보물들을 전부 가져가기라도 하면 어쩔 건가요?”

백비가 일어서서는 대장로에게 예의도 차리지 않은 채 소리를 질렀다.

“이 보장들은 족장이 후손을 위해 남긴 것들이네. 석목이 철원령으로 인정을 받았으니 백공 족장이 선택한 사람인 게 틀림없겠지. 그러니 안에 있는 물건도 당연히 저 자가 가져야 하네.”

대장로가 제자리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천천히 눈을 감으면서 말했다.

백비는 그 말을 듣더니 얼굴이 일그러진 채 팔짱을 끼고서 한쪽에 서 있었다.

백장은 백비의 안색을 살피더니 미소를 드러냈다. 그리고 기분이 좋은 표정을 지으며 비석을 바라보면서 기대하는 눈빛을 드러냈다.

* * *

한편, 석목은 몸통이 커다란 힘에 싸여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하늘이 빙빙 도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다가 주변 광경이 희미해지더니 순식간에 몸을 맘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석목이 조급해지려 할 때, 몸이 가벼워지더니 눈앞이 환해지면서 커다란 공간이 나타났다.

석목은 다시 몸을 맘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석목은 깊은 숨을 내뱉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전은 매우 드넓었는데 주변에 금색 기둥들이 솟아있었고, 앞쪽으로는 밖과 맞닿은 문이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웅장한 궁전 속은 황량한 느낌으로 가득 찼다. 벽과 바닥에도 황폐한 흔적이 가득했다.

석목은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왜냐하면 이곳은 곤륜성허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곤륜만큼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며 낡아버린 기운이 흘러나왔다.

석목은 한참 침묵을 하더니 신식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대전 안을 향해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석목이 예상했던 바와 같이 여긴 신식을 크게 제한하여 주변을 십 장 정도밖에 볼 수 없었다.

석목은 대전을 한 바퀴 돌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여 제자리에서 서성거리다가 다시 대전에서 걸어 나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대전 밖으로는 집들이 이어져 있었으며 강물이 흐르는 걸 보니 누군가가 머무는 거처 같았다.

석목은 눈빛을 반짝이며 입구에서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여긴 백원왕이 보장을 숨긴 곳이었고, 보기에는 고요해 보여도 절대 평범한 장소가 아닐 터였다.

주변을 한참 두리번거린 후에 석목은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한참 동안 보물을 찾았지만 아무런 수확을 얻지 못했다.

여긴 텅텅 비어있는 궁전뿐이었는데 꽃들과 풀들만 자라나 있을 뿐 아무런 생명이 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 순간 석목이 멈칫하며 멈춰 섰다.

쏴, 쏴!

물이 흘러 부딪치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은은하게 들렸다.

석목이 허공으로 날아올라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궁전과 가까이에 자리한 산봉우리 위에 커다란 은색 폭포가 하늘에서부터 쏟아지며 소리를 냈다.

궁전 근처는 끝없이 펼쳐진 산맥이라 폭포가 있는 게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석목이 실망한 기색을 드러내며 다시 내려가려다가 다른 곳도 찾아봐야겠다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순간 머릿속에 무엇인가 스치는 생각에 고개를 번쩍 들어 폭포를 다시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폭포에서 미약한 금빛이 작게 반짝였다. 석목의 시력이 유난히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한 빛이었다.

“저곳인가?”

석목이 기쁜 마음에 빠르게 폭포로 향했다.

다급하게 쏟아지는 폭포 뒤편에서 동굴 하나가 어렴풋이 보였는데 속에서 금빛이 반짝였다.

석목은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폭포 속을 뚫고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폭포에 닿는 순각 ‘측!’ 소리와 함께 폭포가 말리더니 커다란 손으로 변하여 석목을 내리쳤다.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와 석목은 숨이 턱 막혔고, 심장도 쿵 내려앉았다.

하지만 석목은 담이 크고 신중한 성향이라 계속 정신을 놓지 않았다.

그는 파란빛을 반짝이며 멈춰 서서는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고서 휘둘렀다.

쾅!

회색빛이 석목의 몸에서 튀어나와 커다란 주먹 그림자를 이루며 폭포로 이루어진 손과 부딪쳤다.

우르릉!

폭포가 변한 손이 터져버리며 석목은 몸이 뒤로 몇 걸음 튕겨져 날아갔다.

폭포에서 물빛이 반짝였다.

촥!

가벼운 소리와 함께 쏟아지던 폭포가 멈추면서 사람 그림자 하나가 폭포 속에서 걸어 나왔다.

석목은 안색이 굳어버렸다. 파란색 피풍의를 둘렀으며 키가 훤칠한데다가 결연한 기색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 나온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석목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역시 보장이 있는 곳이라 그런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곳이군.”

석목이 깜짝 놀라더니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백원왕의 보장이 폭포 뒤의 동굴에 있는 게 확실해졌기 때문이었다.

석목은 낮게 소리를 질렀다. 석목의 손에서 검은빛이 반짝이더니 여의빈철곤이 나타나 파란 피풍의를 두른 석목을 향해 날아갔다.

여의빈철곤이 희미해지더니 촘촘한 곤봉 그림자를 만들어내 다양한 방향에서 파란 피풍의를 두른 석목을 공격했다.

“벽교번강!”

파란 피풍의를 두른 석목이 손을 들어올리자, 손에서 검은색 곤봉이 나타났는데 똑같은 여의빈철곤이었다.

파란 피풍의를 두른 석목이 손을 흔들자 촘촘한 곤봉 그림자가 나타났는데 석목이 시전한 ‘벽교번강’을 똑같이 시전하였다.

펑, 펑, 펑!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곤봉 그림자가 부딪쳐 허공에서 연달아 터지는 소리와 찢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기가 끊임없이 흔들리며 곤봉 그림자도 뿔뿔이 흩어졌다.

석목이 뒤로 튕겨져 날아가며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둘이 똑같이 시전한 곤법은 속도나 공격 방식이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파란 피풍의를 두른 석목도 뒤로 몇 걸음 물러나더니 곧바로 몸을 멈춰 세우고는 곤봉으로 앞을 막았다.

“하하하, 재밌네. 자신을 이겨야 하는 건가?”

석목이 하하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소리를 질러 금빛을 크게 뿜어내며 수많은 금색 비늘을 두르더니 순식간에 토템 변신을 했다. 여의빈철곤에서 금빛이 줄줄이 나타나 위아래로 몰렸다.

“창응개정!”

파란 피풍의를 두른 석목도 몸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순식간에 금색 비늘로 몸을 감쌌다. 지금 앞에 선 석목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파란 피풍의룰 두른 석목이 들고 있는 여의곤에서도 금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위아래로 마구 빛이 났다.

“펑!”

두 곤봉이 부딪치자 굉음이 울려 퍼졌다.

석목의 몸이 다시 한번 뒤로 튕겨져 날아갔고, 금빛 밀물이 주변으로 흩어지면서 폭포에 닿자 폭포에서도 옅은 물빛이 뿜어져 나와 금빛을 밀어냈다.

“토템 변신도 베끼다니!”

석목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등 뒤에 흑백 빛으로 날개를 뭉친 후에 날개를 천천히 펄럭이며 희미한 그림자로 변하여 앞을 덮쳤다.

파란 피풍의를 두른 석목도 등 뒤가 반짝이더니 똑같이 생긴 흑백 날개가 나타났으며 곧바로 희미해졌다.

두 희미한 그림자가 허공에서 끊임없이 부딪치며 연이어 터지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산산조각이 난 금색 곤봉 그림자와 빛들이 주변으로 튀며 주변 산들에 닿자 균열이 생기더니 터져버렸다. 또한 땅도 갈라지면서 커다란 웅덩이가 수도 없이 만들어졌다.

한순간에 천지 영기가 격렬하게 파동을 일으키며 시선이 닿는 모든 것들을 막아버렸다.

석목은 싸울수록 놀라웠다.

자신이 시전한 모든 술법을 상대는 똑같이 따라할 수 있었으며 위력 또한 똑같이 강력했다.

격렬하게 부딪치자 석목은 뒤로 날아가 간신히 몸을 멈춰 세웠다.

파란 피풍의를 입은 석목도 멀지 않은 허공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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