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3화. 무릎을 맞대고 앉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잠깐 고민에 잠겼다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그렇다면 응파와 합파 중에 어느 쪽 세력이 더 강한가요?”
석목이 물었다.
그러자 백장이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두 계파는 힘이 비슷하네. ‘팔동(八洞: 여덟 동주)’ 중에 세 동주가 내는 의견이 나와 일치하고, 다른 세 분은 백비와 의견이 같지.”
“팔동이요? 팔동은 무엇인가요?”
석목이 물었다.
“석 도우, 여기 온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네. 우리 미천거원 일족은 장로 밑으로 동주 여덟 명이 팔부원족을 통솔하고 있네.”
백장이 간단하게 설명했다.
“아, 그럼 나머지 두 동주님들은 어느 계파에 속하나요?”
석목이 물었다.
“둘은 대 장로와 의견이 같네. 바로 반격을 하는 것도 계속 은거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닌 중립이지. 하지만 이 두 동은 오히려 머릿수가 많아서 우세하네.”
백장이 대답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어째서 오늘 같은 결과를 빚어냈나요?”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후, 입장이 다른 거지. 예전에 백공 족장을 따르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었네. 그들은 전부 응파였지. 그러니 우리 계파는 세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셈일세. 백비 그 자식을 따르는 녀석들은 전부 전쟁을 치른 후에 자라난 후배들이네.
종족이 예전에 겪었던 큰일을 두고도 감회가 없는 셈이지. 너무 어렸을 때 일어난 일이라 지금처럼 안일하게 사는 게 적성에 더 맞을 게야. 한 마디로 천정이 우리 종족에게 준 치욕과 원한을 잊어버린 셈일세. 하지만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배신을 하는 셈이나 다름이 없지.”
백장이 막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백원 선조께 대물림을 받아서 그런지 저는 백원 선조가 종족 사람들을 이끌고서 전쟁을 하는 꿈을 직접 보았습니다. 여러 선배들이 용맹하게 전투를 치르더군요. 네 장군들이 용맹하게 싸우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석목은 꿈속에서 본 광경이 떠올라 조금 슬펐다.
“그래, 또 무엇을 보았는지 얘기해보게.”
백장이 그 말을 듣더니 놀란 표정을 지으며 다급하게 물었다.
“그때……”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리고 반각 동안 석목은 꿈속 별바다에서 보았던 광경을 백장에게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석목이 하는 말을 듣고 있던 백장은 흥분된 기색을 드러내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석목이 말을 끝내자 백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백비 그 자식은 그래도 독한 면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사라져 버린 듯싶군.”
“백장 장로님, 그게 무슨 말인지요?”
석목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예전에 백공 족장 밑에 신경 대장이 다섯 명 있었지. 자네가 꿈에서 만난 선배들 네 명도 전부 그 신경 대장일세. 가장 앞에 있던 푸른 원숭이는 대장로 백박(白樸)이고, 검은 원숭이는 백려(白闾), 하얀 원숭이는 백탁(白铎)인데 각각 그 당시에 둘째 장로와 셋째 장로였네. 그리고 붉은 원숭이가 백비였지.”
백장이 석목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렇군요.”
그 말을 들은 석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나는 넷째 장로로써 백공 족장에게 명을 받아 우리 종족이 지닌 진귀한 보물들과 후배들을 데리고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네. 그리하여 마지막 결전에는 참전하지 않았지. 나중에 족장과 백려가 전쟁에서 운명했다는 말만 들었을 뿐, 자세한 상황을 물어봐도 백박과 백비는 자세히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네. 그러다보니 나도 캐묻지는 못했지.”
백장은 얼굴에 슬픔이 가득했다.
그 말을 듣던 석목은 마음이 침울해지며 한참 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었다.
“다행히 하늘이 끝까지 무심하지는 않아 백공의 영혼이 자네를 우리 미천거원 일족으로 보낸 게 아니겠나. 백공의 후손인 자네가 있으면 점점 더 많은 종족 사람들이 응파로 들어오려 할 걸세. 그러면 천정에 복수를 하는 것도 추진력이 붙으며 희망이 깃들겠지.”
백장이 눈에 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천정이 하는 짓들은 모두에게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천정을 쳐서 신선들을 죽이는 건 이미 제가 평생토록 원하는 염원이 되었습니다.”
석목이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좋아, 천정을 쳐서 신선들을 멸하는 거야.”
얼굴에 기쁨이 가득 피어오른 백장이 벅찬 목소리로 호응을 했다.
“백장 장로님, 궁금한 점이 있는데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석목이 말했다.
“그래.”
백장이 말했다.
“우리 종족 사람들은 지금 숫자가 얼마나 됩니까?”
석목이 물었다.
백장이 잠깐 침묵을 한 후에 말했다.
“천수 혈맥은 대단한 힘을 지닌 채 태어나 평범한 혈맥을 타고난 이들 보다 강한 건 맞지만 불리한 점도 있네. 바로 번식을 쉬이 못한다는 점이지. 예전에 전쟁을 치르며 우리 종족은 처참한 손실을 보았네. 도망을 쳐서 살아남은 자들은 고작 만여 명 밖에 되지 않았네. 천 년 동안 은거 생활을 하면서도 세력은 고작 두 배 정도만 불어나 지금이라도 채 삼만 명이 되지 않네.”
“그 중에 응파는 얼마나 됩니까? 합파는 또 얼마나 되고요?”
석목이 계속해서 물었다.
“응파와 합파는 숫자가 비슷하네. 각각 만 명 정도이며 나머지는 중립이지.”
백장이 말했다.
그러자 석목이 또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물었다.
“백장 장로님, 제가 예전에 만났던 백석은 계파가 어느 쪽에 속합니까?”
“그 자식은 조금 유별난 자식이었네. 성격이 괴팍하여 만나는 사람도 없었지. 단 한 번도 스스로 입장을 밝힌 적이 없었으니 어느 계파에도 속하지 않는 녀석이었네. 그런데 천정의 앞잡이로 움직이고 있었다니.”
석목이 침묵을 한 후에 물었다.
“그럼 백홍은 어느 계파에 속하나요?”
백홍을 입에 올리자 백장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백홍은 후배들 중에서도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천재지. 타고난 힘이 막강해 이미 백비를 뛰어넘었네. 우리 종족의 후배들 중에서도 최고인 녀석이지. 그리고 그 녀석도 구전현공을 여섯 번째 단계 대성까지 수련했네. 자네가 오기 전까지 우리는 몰래 그놈이 백공의 후손일 수도 있겠다는 짐작을 했었네. 다행히 그 녀석도 우리 응파지.”
석목은 그 말을 듣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석두, 그러니까 그 녀석이 다짜고짜 너한테 무례하게 굴었구나. 난 또 왜 그러나 했잖아?”
채아가 무엇인가 눈치챈 듯 말했다.
“하하하, 백홍 그 녀석은 부드러운 성격은 아니지만 자네가 백공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진심으로 자네를 좋아할 걸세.”
백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 뒤로 석목은 또 백장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백장은 석목이 백원왕의 후손이라는 걸 마음속으로부터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리하여 석목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백장은 초저녁이 되어서야 석실에서 나왔으며 떠나기 전에 석목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말했다.
* * *
백장을 보낸 후, 석목은 비밀 석실이 아닌 안방으로 들어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채아가 석목을 몇 번이나 부르고 나서야 석목이 하던 생각을 멈추었다.
“석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내가 몇 번이나 불렀는데!”
채아가 투덜거렸다.
“종수가 정말 천봉족에 있을까?”
석목이 깊은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어이구, 석두, 각시가 그리운 거야?”
채아가 날개를 펄럭이며 석목의 어깨에서 날더니 웃으며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들어 채아를 한번 흘겨보고는 말했다.
“종수의 자취를 전혀 몰랐을 땐 괜찮았는데, 이제 일말의 희망이라도 생겨서 바로 찾아가고 싶어.”
“그럼 우리가 천봉 일족으로 가서 알아보면 되잖아. 나는 이 거지 같은 곳이 불편하다고.”
그 말을 들은 채아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조극은 나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어. 미천거원 일족은 안팎으로 위험한 상황인데 내가 어떻게 떠날 수가 있겠어. 그리고 천봉족이 머무는 곳은 여기와 너무 멀어서 떠나려면 적당한 이유가 필요해.”
석목이 말했다.
“음, 일리가 있네. 그런데 나는 종수 누나가 천봉족에 있을 것 같아. 네가 모든 일을 마친 후에 내가 같이 가줄게.”
채아가 위로하듯이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 *
며칠 뒤, 동부에 있는 비밀 석실.
“뭐? 석두, 또 폐관수련을 한다고?”
채아가 내키지 않은 듯이 말했다.
“그래, 꽤 오랫동안 성계 초기에 머물렀어. 이제 백원 선조가 준 공법도 생겼으니 잘 깨우쳐야지. 왜?”
석목이 비밀 석실에 놓인 돌침상 가운데에서 가부좌를 틀며 말했다.
“아니, 그냥 여긴 남의 공간이잖아. 우리 여기에 사는 원숭이들과 잘 아는 사이도 아니잖아. 폐관수련하기엔 너무 위험한 곳이 아닌지 걱정이 돼서.”
채아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넷째 장로라는 직함을 걸고 있잖아. 셋째 장로가 날 탐탁치 않아하지만 그렇다고 막대하지는 못할 거야. 만약 몰래…… 그렇다면 죽지 못해 안달난 셈이니 언제든지 오라고 하지.”
채아가 하는 말을 들은 석목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석두, 네가 폐관수련을 하면…… 나는 어떡해? 나는 답답해서 죽을 수도 있어.”
채아가 얼굴이 뾰로통해져서 말했다.
“후후, 여기에 있으라고 하지 않았잖아. 너에게 중요한 일을 맡길 거야.”
석목이 말했다.
“그래? 무슨 일?”
채아가 물었다.
“내가 수련을 하고 있을 때 불속성과 물속성을 지닌 본원의 물건을 찾아봐 줘.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석목이 고민을 한 후에 진지하게 말했다.
“아, 그런 것들이 없으면 너는 수련을 할 수 없지!”
채아가 그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구전현공의 일곱 번째 단계에 들어서면 곧바로 아홉 번째 단계를 위한 준비를 해야만 해. 본원의 물건과 적합한 환경이 주어진다고 해도 수련을 하는 건 점점 어려워질 거야.”
석목이 말했다.
“석두, 또 무엇인가를 깨달은 거구나?”
채아가 물었다.
“얼마 전에 비경 속에서 백원왕의 잔혼이 특별히 그 점을 짚어주셨어. 그때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깊은 뜻을 알겠더라고.”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무엇인지 말해줘.”
채아가 궁금한 듯이 물었다.
“구전현공은 층층이 수련을 해서 강해져야 하는 공법이야. 몸속에 있는 속성들을 뭉쳐서 모든 속성들이 평형 상태를 이뤄야만 다음 단계를 수련할 수 있어. 그리고 몸속에 깃든 속성들이 많아질수록 이런 평형 상태를 이루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지.”
석목이 말했다.
사실상 석목은 세 번째 단계를 수련하며 음양의 평형을 이뤄본 적이 있었다. 세 번째 단계 자체가 음과 양의 힘이 평형을 이루는 걸 깨우치는 단계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수련을 하며 석목은 빠르게 경지를 끌어올리느라 단계마다 기존에 얻은 속성들을 강제로 뭉쳤을 뿐, 진정한 평형 상태를 이루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지금 몸속에 깃든 금, 나무, 흙 세 가지 속성을 통제하는 게 점점 버거워졌다.
만약 비경 속에서 백원왕의 잔혼이 이 점을 짚어 주지 않았더라면 석목은 아마 생각지도 못했을 터였다.
“예전에 속승 진인도 말했다시피 구전현공이 대성에 도달하면 모든 성역에서 구전현공을 수련한 사람들이 수련을 한 경지가 전부 대성을 이룬 사람의 몸으로 흘러들어간다고 했잖아. 그건 마치 모든 바닷물이 한 곳으로 흘러들어가는 느낌이나 마찬가지일 거야.
그러니 대성을 이룬 사람은 극에 달할 정도로 강력한 혈맥과 육체, 신혼을 갖춰야만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 그리고 내가 구전현공을 수련하면서 느낀 바로는 앞서 말한 두 가지 말고도 매우 중요한 점이 한 가지 더 있어. 그게 바로 몸속에 흐르는 음양오행의 속성이 평형을 이루는 일이지.”
석목이 계속해서 말했다.
평형은 곧 안정되고도 단단한 상태를 일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