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668화 (668/916)

668화. 추방하다.

이튿날 아침, 석목과 채아는 미천거원 일족에서 떠났다.

석목은 기운을 숨겨 지계로 경지를 낮추고는 영남성에 자리한 성역 전송진으로 날아갔다.

석목은 벅차오르는 기분을 억누르며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이렇게 천봉 일족에게로 향하는 날이 오다니. 종수가 정말 천봉 일족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드디어 그녀를 만날 수 있는 작은 희망이라도 생겼다.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든 종수가 천봉 일족에 있는지 알아봐야만 했다.

석목은 전송진법이 있는 궁전에 도착했다. 지난 번처럼 갈색 옷을 입은 노인이 진법을 지키고 있었다.

비용을 지불한 석목은 전송진법에 올라섰고, 눈앞이 희미해지더니 오조성에 자리한 천호성에 도착했다.

* * *

석목은 옷가지를 반듯하게 매만지고는 전송대전 밖으로 걸어갔다.

“석두, 전송진법을 안 탈 거야?”

채아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석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흔들며 길을 따라 성 밖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본 채아는 조용히 석목의 어깨에 엎드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천호성에서는 비행을 금지했다.

석목은 천봉 일족으로 가는 노선을 이미 계획해 놓았다. 다음 목적지는 백화(白禾)라는 이름이 붙은 행성이었다.

오조성에서 바로 가는 성계 전송진이 없었기 때문에 석목은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음!”

석목이 의아한 표정을 드러내며 앞을 바라보았다.

“왜?”

채아가 물었다.

“앞에서 가는 하얀 옷을 입은 사람 말이야. 토템의 기운이 흐르고 있어. 고만족 같아.”

석목이 턱으로 앞에 있는 하얀 피풍의를 두른 청년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얀 피풍의를 두른 청년은 잰걸음으로 앞서갔다.

“고만족!”

채아가 놀라며 말했다.

“철수한줄 알았는데 아직 여기 있다니. 석두. 이제 어떻게 해?”

“우선 따라가 보자.”

석목은 눈에 차가운 빛을 드러내며 숨을 죽이고는 하얀 피풍의를 두른 청년의 뒤를 밟았다.

하얀 피풍의를 입은 청년은 성 밖으로 나가자마자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희미한 그림자로 변하여 앞으로 날아갔다.

청년 뒤로 유유한 그림자 하나가 몰래 따라가고 있었다.

한참을 날아가던 하얀 피풍의를 두른 청년은 아래에 있는 산골짜기로 날아갔고, 골짜기 주변에는 하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얀 피풍의를 두른 청년이 안개 속으로 찔러 들어갔다.

산골짜기에서 희미한 빛이 반짝이더니 석목이 변신한 그림자가 나타나 하얀 안개를 바라보았다.

안개에서 빛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니 진법 금제가 뭉쳐있는 것만 같았다.

“석두, 들어갈까?”

채아가 물었다.

석목은 눈에 금빛을 반짝이며 하얀 금제를 내려다보았다.

영목신통으로 바라보니 하얀 안개에 빛줄기가 줄줄이 엉켜있는 모습이 마치 거미줄 같았다. 고급 진법이라 조용히 몰래 들어가는 건 그리 쉽지 않을 듯했다.

“채아, 안에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는지 봐줘.”

석목이 침묵을 하더니 말했다.

“그래.”

채아의 눈에서 뿜어져 나온 기이한 빛 두 갈래가 산골짜기로 떨어졌다.

석목은 채아와 시선을 연결하여 안쪽 상황을 들여다보았다.

* * *

산골짜기에는 건물이 한 채가 있었는데 건물 안에 고만족이 일고여덟 명 있었다. 그 중 두 명은 성계 강자였으며 나머지는 전부 천위 경지였다.

“여긴 천정이 머무는 비밀 거점인 것 같아.”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천정놈들이 여기 숨어있는걸 보니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해.”

채아가 말했다.

“흥, 죽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은데 죽여 버리지 뭐.”

석목이 콧방귀를 뀌더니 번개처럼 날아가 산골짜기 하늘에 멈춰 섰다.

석목의 분신이 옆에서 검은빛을 반짝이며 붉은 단검을 들고서 나타났다.

분신은 눈에서 차가운 빛이 스쳤으며 손에 든 단검에서는 핏빛이 뿜어져 나왔다. 분신이 손을 흔들자 커다란 검날이 하얀 안개 진법을 잘랐다.

찌직!

하얀 안개 금제가 찢어지는 순간, 안개가 소용돌이치면서 다시 붙으려고 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기엔 진법이 너무 많이 파손되어 안개는 결국 흩어지고 말았다.

“누구냐!”

그러자 몇 갈래 그림자가 아래에서 날아왔다. 가장 앞에서 날아온 두 사람 중에 한 명은 키가 훤칠하며 몸이 마른 고만족이었는데 얼굴은 파랬으며 눈은 뱀과 같았다. 얼굴이 파란 고만족은 커다란 도끼를 들고 있었다. 또 다른 한 명은 피부가 대추색에 호랑이 머리가 달렸으며 짧은 곤봉 법보를 두 개 들고 있었는데 매우 위엄이 있어 보였다.

둘은 성계 강자였는데 거점을 다스리는 우두머리들 같았다. 얼굴이 파란 고만족은 성계 중기 또 다른 한 명은 성계 후기였다.

몇몇 천위 강자들도 두 고만족을 뒤따라 날아왔다. 하얀 피풍의를 두른 청년도 무리 속에 있었다.

“뭐하는 놈이냐?”

위엄이 있어 보이는 사나이가 석목을 훑어보더니 소리를 질렀다.

“널 죽이려는 사람!”

석목은 긴 말하지 않고서 곧바로 고만족들 앞으로 다가가 손을 휘둘렀다. 석목의 손에서 하얀빛이 반짝였다.

훅!

순식간에 석목은 손이 수십 배나 불어났다. 하늘을 가릴 것만 같은 거대한 손이 아래에 있는 산골짜기 위로 어둡게 드리웠다.

두려운 기운이 석목의 손에서 흘러나왔고, 손바닥이 스친 허공은 다양한 형태로 찌그러졌으며 땅이 심하게 흔들려 마치 물결처럼 출렁였다.

고만족들은 얼굴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마치 무섭게 휘몰아치는 파도 위에 놓인 작은 배처럼 언제든지 파도 속으로 삼켜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때, 위엄이 있어 보이는 사나이는 더 이상 가만히 죽기만을 기다릴 수 없었는지 큰소리를 지르며 몸에 붉은빛을 드리워 등 뒤로 붉은색 사자 허영을 번쩍였다. 그리고 사자 허영은 다시 몸으로 스며들었다.

이어서 사나이는 몸에 붉은 털이 자라나더니 기운이 한 층 더 강력해졌다. 그리고 손에 든 두 곤봉에서 빛이 크게 번지더니 두 갈래 붉은 용으로 변하여 포효하며 머리 위로 몰려오는 커다란 손바닥을 막아내려고 했다.

얼굴이 파란 고만족도 큰소리를 지르며 등 뒤로 파란 뱀의 허영을 뭉쳤다가 다시 몸속으로 불어넣었다. 그리고 절반은 사람에 절반은 뱀인 모습으로 변신하더니 손에 든 도끼로 날카로운 빛을 뿜으면서 커다란 도끼 그림자로 허공에 드리운 커다란 손바닥을 베었다.

다른 천위 강자들도 소리를 지르며 각자 익힌 수법으로 손바닥을 공격했다.

“흥!”

석목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커다란 손바닥에서 하얀빛이 한 층 나타나더니 뿜어내는 기운이 훨씬 더 강력해졌다.

그리고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커다란 손바닥이 하늘을 가리며 고만족들을 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격렬한 진동과 함께 땅에 커다란 손바닥 자국이 하나 생겼다!

천위 고만족들은 단번에 터져버렸으며 두 성계 강자는 바닥에 납작하게 눌렸고, 입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숨이 곧 멈춰버리기 직전이었다.

석목은 오른손에서 하얀빛을 반짝이더니 다시 손을 원래 크기로 되돌렸다.

석목은 아래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

《대범반무진경》이 몸을 강화시켜주는 힘엔 생각보다 훨씬 큰 위력이 있었다. 구전현공이 돕는 가운데 몸을 일부만 크게 만들었을 뿐인데 이렇게 엄청난 위력을 뿜어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석두, 너무 멋있어!”

채아가 날개를 펄럭이며 흥분이 되어 소리를 질렀다.

석목이 가볍게 웃더니 몸을 날려 두 성계 고만족 옆으로 다가갔다.

둘은 곧 꺼져버릴 것만 같은 촛불처럼 간신히 숨을 이어갔다.

석목은 위엄 있게 생긴 사나이의 머리를 쥐어 잡고는 손가락으로 검은빛을 뿜어내어 사나이의 머릿속으로 밀어 넣었다.

수혼!

석목은 손에 빛을 드리우며 머리를 더욱 꽉 옭아매었다.

퍽!

고만족 사나이는 머리통이 터져버렸다.

이어서 석목은 얼굴이 파란 고만족의 머리를 잡고는 다시 한번 수혼술을 시전하였다.

퍽!

얼굴이 파란 고만족도 머리가 터져버렸다.

잠시 후에 석목은 멍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두, 고만족 놈들은 무슨 꿍꿍이야?”

채아가 궁금한지 석목을 재촉했다.

석목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천정이 내린 지시 때문에 여기에 몰래 잠복만 했을 뿐이지 왜 여기로 와야 했는지 고만족 놈들도 잘 모르고 있어.”

“그래? 그럼 괜히 쫓아왔잖아.”

채아가 실망스러운 듯이 말했다.

“하지만 아무런 수확을 얻지 못한 것도 아니야. 이 녀석들이 기억하는 바에 따르면 근처에 있는 몇몇 행성에도 여기와 비슷한 거점들이 있어.”

석목은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쳤다.

“석두, 그럼……”

채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흥! 이 고만족 놈들이 무슨 꿍꿍이를 숨겼는지 모르겠지만 빨리 해치우는 편이 좋을 거야.”

석목이 말했다.

채아가 공감하듯 작은 머리를 연신 끄덕였다.

석목은 이 거점을 한참 동안 뒤져보다가 용우비차를 타고서 먼 곳으로 날아갔다.

* * *

삼일 뒤, 유람성(琉藍星)의 바다에 뜬 작은 섬.

섬에는 나무만 무성할 뿐, 사람이 머문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빛 한 줄기가 먼 곳에서 날아와 반짝이더니 석목이 나타났다.

석목은 아래에 있는 섬을 내려다보며 얼굴에 차가운 기색을 내비쳤다. 여기도 천정이 숨은 은밀한 거점이었다.

석목은 대범반무진경을 시전하여 몸에 하얀빛을 반짝이더니 순식간에 키가 수백 장 거인으로 변하였다.

우르르!

강력한 기운이 석목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주변 수십 리에서 먹구름이 몰려오며 바다에 커다란 파도가 일었다.

여긴 망망대해라 석목은 누가 볼까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섬의 허공에서 파동이 일더니 그림자가 수십 개 안쪽에서 튀어나왔고, 석목이 변신한 거인을 본 고만족들은 얼굴이 얼어붙었다.

“누구냐!”

석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는 주먹을 휘둘렀다.

쾅!

사나운 주먹의 힘이 순식간에 수십 명을 삼켜버려 산산조각이 났다.

굉음이 울려 퍼지며 섬이 부서져 버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섬은 바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석목이 하얀빛을 반짝이며 원래 크기로 돌아와서는 먼 곳으로 날아갔다.

* * *

보름 뒤, 영남성(靈藍星) 근처에 자리한 한 행성에서 커다란 산이 부서져 먼지가 자욱하게 주변으로 퍼졌다.

먼지가 흩어지자 부서진 돌이 가득한 폐허 속에 시체 몇 구가 널려있었다.

석목은 폐허의 상공에 서 있었다.

이 거점은 천정이 영남성 근처에 설치한 마지막 거점이었다.

“됐다. 이제 모든 거점을 다 제거했어. 그런데 천정놈들이 거점에 심어둔 사람들이 전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면 화가 나서 미천거원 일족을 죽이려들지 않을까 걱정이야.”

채아가 말했다.

미천거원 일족이 은거하고 있는 곳도 이미 노출이 되었으니 천정은 가장 먼저 미천거원 일족이 죽였다고 생각할 터였다. 게다가 석목은 대놓고 대범반무진경을 시전했다.

“괜찮아, 천하 성역에서 천정에 맞서는 가장 큰 적은 천봉, 지룡, 반귀 일족이야. 천정의 눈에 보잘 것 없는 놈들이 죽었다고 쉽게 미천거원 일족을 공격하지는 않겠지. 그리고 정말 천정이 움직인다면 오히려 더 잘 된 일이야!”

석목이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아, 무슨 말인지 알 것같아.”

채아가 눈알을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이 가볍게 웃었다.

미천거원 일족은 지금 처한 상황에 안주하고 있어서 정말 천정이 공격을 한다면 그때는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가자. 많은 시간을 허비했으니 서둘러서 길을 떠나야지.”

석목이 용우비차를 불러서 하늘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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