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9화. 천정의 습격
천하 성역의 고림성.
천 년 전 고림성은 팔황고족 중에 하나인 비천서족이 머물던 주요 행성이었으며 영기가 매우 짙었다.
비천서족이 몰락하자 고림성 곳곳에서 중소 세력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면서 실력을 전성기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칠에서 팔 할 정도는 되찾았다.
자양성은 고림성에서도 가장 큰 성시였다. 부지가 족히 수천 리는 되었으며 성 안에선 화려한 건물들이 숲을 이뤘으며 다양한 상점들도 가득했다. 그리고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붐비는 매우 번화한 성이었다.
성시 안에 자리한 한 주루, 검은 옷을 입은 청년 한 명이 창가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밥상에는 술과 안주가 풍성히 올라왔다.
검은 옷을 입은 청년은 천천히 술만 마실 뿐, 음식은 거의 먹지 않았다. 그리고 앵무새 한 마리가 밥상 위에서 여기저기 걸어 다니며 음식을 빨아들이듯 먹어버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검은 옷을 입은 청년은 석목이었다.
석목은 열흘이나 넘게 날아서야 드디어 고림성에 도착했다.
미천거원 일족이 머무는 거처 주변의 행성에 주둔하고 있던 천정의 세력들을 깨끗이 청소한 후에 석목은 다시 실체와 기운을 숨기며 별 탈 없이 여기까지 왔다.
이제 두 갈래 길중 선택을 할 때가 되었다. 대장로가 석목에게 조금 에돌아가는 안전한 길을 추천했지만 석목은 빨리 종수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가까운 노선을 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지금 빠른 노선은 성역 전송진에 문제가 생겨서 고림성에 자리한 성계 전송진은 며칠 전부터 폐쇄되어 가동되기까지 아직 이틀은 더 기다려야 했다.
석목과 채아는 이미 이틀 전부터 자양성에 도착했지만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후…… 배불러, 여기 음식 잘하네.”
채아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먹보.”
석목이 채아를 한번 흘겨보고는 일어서서 밥상 위에 영석을 몇 개 올려놓았다.
“배부르면 가자.”
“벌써 간다고? 시내에서 좀 돌아다니자.”
채아가 석목의 어깨로 날아가며 말했다.
석목은 지금 구경이나 하며 돌아다닐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리하여 곧바로 임시 거처인 근처 객잔으로 갔다.
* * *
석목은 고급스런 객잔 뒤편에 있는 단독 객실로 들어갔다. 그는 영석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너무 씀씀이를 아끼지 않아도 되었다.
“음, 건앵!”
석목이 거처로 돌아와 이제 막 문을 열고서 들어가려고 할 때, 옆에서 소리가 들렸다.
석목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옆집 마당에 회색 옷을 입은 청년이 나타났다. 청년은 키가 평범했는데 눈을 반짝이며 채아를 바라보았다.
“하하, 실례했습니다. 도우님, 건앵은 매우 희귀한 영수라 저도 모르게 계속 보게 되네요. 죄송합니다.”
회색 옷을 입은 청년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계속 채아를 훑어보았다.
석목은 눈이 반짝였다. 이 청년은 매우 평범해 보였지만 실력은 이미 성계 후기라 석목보다도 경지가 한 단계 더 높았다.
채아는 회색 청년이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했는지 청년을 한 번 째려보고는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회색 옷을 입은 청년은 눈에서 초조한 기색이 스쳤다가 다시 사라졌다.
매우 짧은 순간이었지만 석목은 청년이 내비친 초조함을 읽어냈다.
“괜찮습니다.”
석목이 손을 흔들며 청년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선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저기, 죄송합니다만.”
회색 옷을 입은 청년이 다급하게 석목을 불러 세우더니 가까이 다가와 웃으며 석목에게 말했다.
“후후, 저는 서유금(舒有金)이라 합니다. 바로 옆에 묵고 있죠. 귀하께선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석목입니다.”
석목이 담담하게 말했다.
“석 형이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회색 옷을 입은 청년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닙니다. 석 형이 눈에 익어서요. 혹시 석 형도 전송진이 폐쇄되어 이 자양성에 머물고 계신건가요?”
서유금이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바로 하세요.”
석목이 낮은 목소리로 귀찮은 듯이 말했다.
“후후, 석 형은 직설적인 걸 좋아하시니 저도 머뭇거리지 않겠습니다. 석 형, 혹시 건앵을 파실 생각은 없습니까? 사례금은 톡톡히 쳐서 드리겠습니다!”
서유금이 두 손을 가볍게 비비더니 기대에 찬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이 눈썹을 치켜뜨더니 곧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이 앵무새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키우던 영총입니다. 안 팔아요.”
“석 형, 급하게 거절만 하지 마시죠. 제가 최상급 영석 십만 개를 드리겠습니다!”
서유금이 다급하게 말했다.
석목은 눈에 놀라운 기색이 스쳤다. 최상급 영석 십만 개라면 절대 만만한 금액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흔쾌히 팔아버릴 생각은 없었기에 석목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십오만 개는요? 이십만…… 삼십만도 가능합니다!”
서유금은 망설이지 않고서 가격을 올리더니 단번에 영석을 삼십만 개까지 불렀다. 마치 영석 삼십만 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했다.
“서 형, 그럴 필요 없습니다. 아무리 영석을 많이 준대도 절대로 팔지 않을 테니 돌아가세요.”
석목이 고개를 흔들며 서유금을 거들떠보지도 않고는 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곧바로 문을 닫아버렸다.
회색 옷을 입은 청년은 닫힌 문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청년은 막무가내로 쳐들어가지는 않았다. 서유금은 깊은 한숨을 내뱉더니 자리를 떠났다.
“정말 귀찮은 자식이네. 나를 사겠다고? 석두, 저 자식 그래도 영석이 꽤 많이 있는 것 같던데, 우리가 기회를 봐서 해치우면 꽤 많은 영석을 얻을지도 몰라.”
석목이 들어오자 채아가 곧바로 날아와서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두 사람이 밖에서 나누는 대화를 전부 들었다.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이틀 뒤면 여길 떠날 테니 저런 놈은 신경 쓰지 마.”
채아가 툴툴댔다.
석목은 방으로 들어가서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 * *
눈 깜박할 사이에 이틀이 지났다.
이틀 동안 옆방에서 묵고 있던 서유금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석목에게 채아를 팔라고 귀찮게 굴었다. 그리고 호가는 점점 높아져 영석을 백만 개나 불러 석목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서유금이 영석을 천만 개 준다고 해도 석목은 채아를 팔지 않을 터였다.
영석이 먹히지 않자, 서유금은 어디에서 구했는지 모를 다양한 천재지보들과 법보, 단약들을 가져와서는 석목을 설득했다.
석목은 일관되게 거절을 했지만 서유금이라는 자가 어떤 신분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렇지 않게 이런 보물들을 꺼내는 모습을 보니 이름이 괜히 ‘유금’이 아닌 것 같았다.
석목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자 서유금은 점점 조급해졌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렇게 오가며 오히려 사이가 가까워졌다.
서유금은 성향이 활발하고 소탈했으며 무엇보다 예의를 지키면서 다가왔기 때문에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 * *
이틀 뒤에 전송진법이 드디어 고쳐져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전송진이 열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전송대전에 긴 줄이 이어졌다.
석목과 채아도 지체하지 않고서 전송진으로 향했으며 서유금도 전송진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채아는 서유금과 마주치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석목에게 영수 주머니로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니.”
석목은 길게 늘어진 대오를 바라보며 놀라서 중얼거렸다.
“이 고림성은 천하 성역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라 원래 유동인구가 많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상황이 특별해졌으니 사람들도 훨씬 많아졌지요.”
서유금이 석목의 옆에 서서는 말했다.
“상황이 특별하다고요?”
석목이 멈칫한 후에 물었다.
“천봉 일족이 벌이는 성녀 수임 축전 말입니다. 지금 천하 성역은 거의 모두 축전을 위주로 돌아가고 있지요. 여기에 줄을 선 사람들만 해도 열에 일곱은 천봉 일족에게 가는 사람들입니다.”
서유금이 말했다.
석목은 눈에서 빛을 반짝였다.
천봉 일족이 여는 축전이 미치는 영향력이 석목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하늘에서 ‘윙윙’ 소리가 전해졌다.
석목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검은 점 몇 개가 빠르게 여기로 가까워졌다.
“저건!”
석목은 깜짝 놀랐다.
가까워지고 있는 검은 점들은 전부 전함들이었다. 전함의 생김새와 그려진 그림은 매우 눈에 익었는데 바로 천정의 전함이었다!
“천정 놈들이다!”
“큰일이다. 빨리 도망가!”
석목이 말을 떨어뜨리기 바쁘게 큰소리가 울려 퍼지며 하얗고도 굵은 빛이 허공에서 떨어져 앞에 있는 전송대전을 내리쳤다.
우르릉!
크기가 작지 않은 전송진법이 우르르 무너지며 하얀빛으로 공격을 받아 마치 종잇장처럼 찢어져 버렸다. 땅이 흔들리며 사나운 기류가 일어 수많은 파편이 뒤섞인 채 주변으로 튕겨져 날아가 근처에 있던 사람들을 감쌌다.
석목은 뒤로 십 장 정도 물러나서야 기류가 만들어낸 파편들을 피할 수 있었다. 석목은 얼굴이 일그러지다 못해 굳어버렸다. 전송대전이 가볍게 무너졌으며 안에 있던 전송진법도 붕괴되었기 때문이었다.
“천정 놈들! 왜 여기에 나타난 거야!”
서유금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우르릉!
허공에서 전함이 빛을 반짝이며 빛기둥이 줄줄이 떨어져 성시가 순식간에 파멸의 심연으로 빠져버렸다.
건물들이 우르르 무너졌으며 도처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허공은 회색 먼지로 자욱했으며 처참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회색 먼지 속에서 허우적댔는데 마치 들끓는 물에 던져진 개미들 같았다.
석목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눈에서 분노가 이글거리며 이마에서는 핏줄이 툭툭 튀어나왔다. 예전에 동성성에서 겪은 비극이 다시 한 번 재연되는 것 같았다.
“천정, 흥!”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하늘로 솟아올라 순식간에 전함 근처까지 날아갔다.
석목은 몸에 하얀빛을 크게 드리우며 순식간에 크기가 수 백 장에 이르는 거인으로 변했고, 석목의 손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여의빈철곤이 나타났다. 빈철곤이 순식간에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커다란 곤봉으로 변하였다.
이어서 여의빈철곤에서 하얀빛이 크게 번지더니 전함 한 척을 향해 내리쳤다.
대범반무진경을 시전하며 여의빈철곤에서 엄청난 위력이 터지자 전함은 순식간에 납작하게 눌려버렸다. 그리고 ‘쩍!’ 소리와 함께 단번에 두 덩어리로 갈라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쾅!
전함이 터져버리자 불이 활활 타올랐다.
석목은 곧바로 돌아서서 또 다른 전함으로 향했다. 여의빈철곤에서 하얀빛이 더욱 크게 번졌으며 곤봉 그림자가 줄줄이 뿜어져 나와 마치 커다란 하얀 용처럼 꿈틀거리더니 다시 한 번 전함을 강하게 내리쳤다.
“누구야! 멈춰!”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붉은 그림자가 전함에서 튀어나와 번개 같은 속도로 석목을 향해 날아갔다.
방대한 위압감이 붉은 그림자에서 흘러나왔는데 엄연한 신경 강자였다.
붉고 찬란한 빛이 여의빈철곤을 막아내며 커다란 굉음을 울렸다.
붉은빛은 커다란 낫 법보였다. 낫은 찬란한 빛을 뿜어내며 붉은 번개를 감고 있었는데 극도로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는 법보였다.
빛이 반짝이며 붉은 그림자가 석목 앞에 나타났고, 그는 눈썹이 짙은 사나이였다. 사나이는 몸에 붉은 전투 갑옷을 둘러싸고 있었으며 붉은빛의 파동이 주변으로 흘러갔다.
“미천거원 일족!”
눈썹이 붉은 사나이는 석목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이때, 빛이 반짝이며 또 다른 전함에서 하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위압감을 풍기는 모습을 보니 엄연히 또 다른 신경 강자였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석목은 동공이 빠르게 축소되었다.
순식간에 원래 몸으로 돌아온 석목이 흑백 날개를 펼쳐 흑백 환영 한 줄기로 변신하더니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서 멀리 날아갔다.
신경 강자가 한 명이라면 죽을힘을 다해 싸워볼 수도 있었지만, 두 명이라서 절대 상대할 수 없었다. 그러니 도망가는 쪽이 상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