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670화 (670/916)

670화. 도망치는 척 적을 유인하다.

“어디를 도망쳐!”

눈썹이 붉은 사나이가 소리를 질렀다. 사나이가 든 법보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똑같이 생긴 낫 법보의 허영이 아홉 갈래나 나타났다. 그리고 순식간에 석목의 앞을 막아서며 하늘을 찌를 기세로 베었다.

깜짝 놀란 석목은 몸속에 깃든 음양의 힘을 끝까지 끌어올렸다. 그러자 등 뒤에 펼친 흑백 날개가 순식간에 몇 배나 더 커졌으며 날아가는 속도도 몇 배나 더 빨라졌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낫 허영을 빗겨나 희미해졌다가 순식간에 수십 장 밖으로 날아갔다. 빛이 반짝이는 사이에 석목은 시선 끝까지 도망을 쳐 곧 사라지기 직전이었다.

“따라가!”

하얀 그림자는 하얀 피풍의를 두른 여인이었는데 멀리 도망간 석목을 바라보며 사납게 소리를 질렀다.

“너는 여기 있어. 고작 성계 경지인 놈이니 나 혼자서도 충분해. 여기는 너에게 맡길게! 위에서 빨리 여길 파멸시키라고 했으니 임무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 돼!”

눈썹이 붉은 사나이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하얀 피풍의를 두른 여인이 대답하기도 전에 불꽃 날개 한 쌍을 펼치더니 하늘에 빛을 그리며 도망가는 석목을 쫓아갔다.

하얀 피풍의를 두른 여인은 눈썹이 붉은 사나이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눈썹이 붉은 사나이는 실력이 이미 신계 초기 정상에 도달했다. 고작 성계 중기인 미천거원 일족을 죽이는 건 문제가 아니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얀 피풍의를 두른 여인은 자양성을 내려다보며 차가운 웃음을 짓더니 몸을 날려 아래로 날아갔다.

* * *

석목은 흑백 빛을 크게 드리웠다. 등 뒤에 달린 흑백 날개는 크기가 수 십 장까지 불어났으며 희미한 그림자로 변하여 빠르게 앞으로 날아갔다.

석목이 흑백 날개를 한 번 펄럭일 때마다 십 리 정도는 날아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눈썹이 붉은 사나이가 빠르게 쫓아와서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멀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점점 좁혀졌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십 리까지 줄어들었다.

눈썹이 붉은 사나이가 큰소리를 지르면서 손에 든 붉은 낫 법보에 화염을 크게 드리우자 법보는 커다란 화염 낫으로 변하여 석목을 향해 내리쳤다.

석목은 눈에 빛을 반짝이며 피하지 않고는 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석목의 몸에서 검은색 그림자가 반짝이며 분신이 나타났다. 분신이 손에 쥔 붉은 단검에서 빛이 크게 번지더니 순식간에 거대한 검으로 변하여 화염 낫을 맞이했다.

탱!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화염 낫이 다시 튕겨져 날아갔고, 눈썹이 붉은 사나이는 몸이 파르르 떨렸다.

분신은 튕겨져 날아갔으며 거대한 붉은 검도 격하게 흔들리더니 이내 터져버렸다. 분신의 기운이 한참 동안 들끓는 모습을 보니 내상을 입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리 심각하지는 않았다.

석목은 손을 흔들어 분신을 소환하여 이 틈에 다시 한 번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벌려 멀리 날아가 버렸다.

“마화(魔化) 분신? 이 자식 비밀이 많군, 어딜 도망가!”

눈썹이 붉은 사나이가 깜짝 놀라 차갑게 소리를 지르더니 날개에 빛을 크게 드리우며 다급하게 뒤를 쫓았다.

* * *

두 사람은 쫓고 쫓기며 잠깐 사이에 만 리 가까이 날아갔다.

눈썹이 붉은 사나이는 얼굴에 분노가 치밀어 올라 낯빛이 보라색으로 변해버렸다.

속도만 두고서 봤을 때, 눈썹이 붉은 사나이가 훨씬 빨랐지만 매번 가까워질 때마다 석목의 분신이 사나이를 가로 막았다.

분신이 들고 있는 붉은 단검에서 놀라운 살기가 퍼져 나와서 신경 강자라고 해도 가볍게 볼 수는 없었다. 잡힐듯 말듯 석목은 이리저리 잽싸게 도망을 다녔다.

“더는 도망가지 못할 거야!”

눈썹이 붉은 사나이는 한편으로 도망가는 석목을 쫓아가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입을 벌려 화염 낫에 순수한 화염을 불어넣었다.

낫 법보에서 순식간에 하얀빛이 뿜어져 나와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며 칼날에서 하얀 불빛이 줄줄이 뿜어져 나왔다.

눈썹이 붉은 사나이가 손을 흔들자 낫 법보가 순식간에 자라나 ‘퍽!’ 소리와 함께 앞쪽 허공을 갈라놓았다.

그러자 석목 앞쪽 허공이 한참 동안 일그러지며 부서지더니 하얀색 불빛이 나타나 석목의 얼굴을 갈라놓으려 했다.

이때 석목이 눈에 빛을 반짝이며 한 손으로 법결을 시전하였고, 날아가던 석목은 멈춰 서서는 여의빈철곤에 빛을 크게 드리워 백 장 가까이 되는 곤봉 그림자를 만들어 하얀 화염 낫을 맞았다.

이 광경을 보던 사나이는 비아냥거리는 웃음을 드러냈다.

사나이의 하얀 화염은 꽤 오랫동안 시전하지 않은 신통이었는데 여기에 본명 법보까지 더해져 상대가 신경 초기라 할지라도 쉽게 피하지 못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작 성계 밖에 되지 않는 석목은 피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받아치려 들어 정말이지 죽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이라 생각했고, 사나이도 임무를 수행하러 여기에 왔기 때문에 빨리 전투를 끝내는 편이 좋았다.

눈썹이 붉은 사나이가 들고 있는 낫 법보에서 화염이 더욱 활활 타올랐다.

탱!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 낫에서 번지던 화염이 뿜어져 나와 석목의 몸을 감싸버렸다.

눈썹이 붉은 사나이가 좋아하며 웃기 시작했다.

적멸(寂滅) 화염에 명중되면 죽지않는다 하더라도 중상을 입는 것은 피하지 못할 터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순간 사나이는 웃음을 멈추었고, 순식간에 금색 그림자가 하얀 화염에서 튀어나와 십 장 밖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차분한 석목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석목은 구룡쇄금갑을 두르고 있어서 몸에 단 한곳도 상처가 생기지 않았다. 눈썹이 붉은 사나이는 안색이 굳어 믿기지 않는다는 기색을 드러냈다.

저 금색 갑옷은 어느 정도 등급일까? 무려 적멸 화염을 모두 막아내었다.

사나이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석목의 앞을 가로막았다.

“걱정 마. 이제 안 도망갈 테니.”

석목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도망가지 않는다고? 죽을 준비가 다 되었나 보군?”

눈썹이 붉은 사나이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조금 전에 도망을 간 이유는 자양성과 거리가 가까워서 그랬지. 네가 도와달라고 난리법석을 부리면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와서 널 도와줄 게 아니야. 그럼 나는 혼자서 둘과 싸워야 했지. 그런데 지금은 거리가 멀어졌잖아. 그러니 도망칠 이유가 없어졌어.”

석목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내가 도움을 청한다? 하하, 이놈 봐라. 죽기 직전이라 미쳐서 하는 소린가? 이런 말을 지껄이는 꼴을 보니 백 번 죽어도 마땅하겠군!”

눈썹이 붉은 사나이는 석목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이어 사나이의 몸에서 하얀색 화염이 활활 타올랐고, 화염 낫 법보의 빛이 더욱 강렬해지며 석목을 강하게 내리쳤다.

화염 낫이 스친 곳은 허공이 타버린 듯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석목은 시선이 굳어버렸고, 그는 금빛을 크게 드리우며 순식간에 토템 변신을 완성하였다. 여의빈철곤에서도 금빛이 크게 번졌다.

“벽교번강!”

곤봉 그림자가 다양한 변화를 거치며 금룡으로 변해 날아올랐다.

지난번에 백원왕의 시험을 통과하면서 석목은 통천십팔곤을 한 층 더 깊이 깨우쳤다. 때문에 벽교번강은 신통에 가까워졌다.

우르릉!

곤봉 그림자가 부딪치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부딪치는 자리의 허공이 마치 거울처럼 부서져 버렸고, 틈이 껌뻑였다.

금룡이 순식간에 부서져 석목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가 간신히 멈춰 섰다. 석목은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별다른 상처를 입진 않았다.

눈썹이 붉은 사나이도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낯빛은 온통 시커멓게 타버린 듯 어두웠으며 이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석목의 실력이 신경인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후후, 이게 네가 말하는 신통인가? 별 거 없는데?”

석목이 통쾌하게 웃어댔다.

대범반무진경을 수련한 후에 석목은 육신이 한 층 더 강력해졌다. 석목은 거인 변신을 하지 않고도 토템의 힘과 구룡쇄금갑의 힘으로 신경 초기 강자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어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죽어!”

눈썹이 붉은 사나이는 화가 치밀어 올랐으며 하얀 화염이 더욱 강하게 타올랐다. 사나이가 소리를 지르며 하얀 잔영으로 변하더니 석목을 감싸고돌았다. 사나이의 손에 들린 화염 낫 법보가 잔영을 줄줄이 만들어내며 석목을 베었다.

석목은 안색이 굳어선 소리를 지르더니 여의빈철곤이 다양하게 변해 통천십팔곤을 일일이 시전하였다.

결코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눈썹이 붉은 눈썹 사나이가 날리는 폭풍 같은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싸움이 길어질수록 점점 손에 익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야!”

석목은 안색이 변했다.

눈썹이 붉은 사나이가 들고 있던 낫은 화염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지만 사나이의 몸에서 번지던 하얀 화염은 거의 사라지기 직전이었다.

“하, 이제 알아차린 것 같은데, 이미 늦었어!”

눈썹이 붉은 사나이가 큰소리로 웃으며 지껄였다.

이때, 석목 주변의 허공이 격하게 흔들리다가 이내 녹아버렸고, 하얀 화염 사슬이 허공에서 튕겨져 나와 빠른 속도로 석목의 몸을 꽁꽁 감싸버렸다.

석목이 깜짝 놀라 몸에 금빛을 크게 드리우며 온힘을 다해 허우적댔다.

하지만 하얀 화염 사슬은 매우 견고하여 조금도 벗어날 수 없었다.

눈썹이 붉은 사나이가 주문을 외우며 두 손을 흔들자 주변 허공이 다시 한번 녹아내렸다. 그리고 더욱 강렬해진 화염이 석목을 감싸고 있는 화염과 합쳐지며 석목을 완전히 묻어버렸다.

구룡쇄금갑도 화염 구체 속에서 용솟음치는 뜨거운 공기를 막아내지 못했다.

석목은 피부가 불꽃색으로 변했으며 입에서는 붉은 피를 뿜어내었다. 그는 마음이 다급해졌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화염 구체 밖에 선 사나이는 두 손을 흔들며 법결을 쓰는 걸 멈추지 않았다.

하얀 화염 구체가 천천히 번지며 불길이 활활 타올랐는데 그 광경은 마치 파도가 휘몰아치는 것만 같았다.

눈썹이 붉은 사나이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 비술은 시전하는 사람에게도 적잖은 내상을 입히기 때문이었다.

이때, 이변이 일어났다!

돌아가던 화염 구체가 무엇 때문인지 갑자기 멈춰버렸다. 그리고 화염 구체는 격하게 흔들리더니 눈부신 금빛을 줄줄이 튕겨냈다.

눈썹이 붉은 사나이는 안색이 굳어버렸고,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사나이가 다른 반응을 취하기도 전에 화염 구체가 터지며 커다란 그림자가 나타나 구체를 찢어버렸다.

커다란 그림자는 키가 족히 수백 장은 되는 거인이었는데 갑옷을 두르고 있었으며 눈부신 금빛을 뿜어내는 모습을 보니 마치 금색 갑옷을 두른 거대한 신 같았다.

석목이 들고 있는 금색 곤봉이 풍기는 기운은 무려 구룡쇄금갑이 내뿜는 위압보다도 강력했다. 금빛 파동이 커다란 곤봉에서 줄줄이 흘러나왔고, 단지 법보가 지닌 위압만으로도 허공이 격하게 흔들렸는데, 그 법보는 번천곤이었다.

석목이 거인으로 변신한 것이었다!

“영보!”

눈썹이 붉은 사나이는 석목이 손에 든 금색 곤봉으로 시선을 떨어뜨리더니 안색이 얼어붙었다.

석목의 입에서 큰소리가 울려 퍼지자 번천곤은 빛이 크게 번져 가늠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큰 위압감이 터져 나왔다.

석목이 번천곤을 흔들어 맹렬하게 날아와서는 족히 수백 장이나 되는 금빛 찬란한 곤봉 그림자를 만들어 태산압정의 기세로 눈썹이 붉은 사나이를 짓눌렀다.

눈썹이 붉은 사나이는 다급하게 법결을 시전하였고, 몸에 두르고 있던 하얀 화염으로 불꽃 날개를 만들더니 멀리 도망갔다.

사나이는 석목이 든 번천곤을 봤을 때부터 뒤로 물러서야겠다고 생각했다. 번천곤은 속도가 매우 빨랐지만 이미 준비를 하고 있던 신경 강자의 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이때, 이변이 일어났다.

아무런 징조도 없이 큰소리가 울려 퍼지며 붉은 눈썹 사나이와 수 십 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커다란 회색 쥐의 허영이 나타났다.

쥐는 크기가 족히 칠팔십 장은 되어 보였으며 몸에서 투명한 회색빛을 뿜어냈다. 특히 쥐의 눈이 매우 맑고 영롱했다.

커다란 쥐의 눈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검은색 그림자 두 갈래 튀어나와 빠른 속도로 눈썹이 붉은 사나이의 몸속으로 스며들었고, 눈썹이 붉은 사나이는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