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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671화 (671/916)

671화. 극연(極衍)금제

한참 뒤에 정신을 차린 눈썹이 붉은 사나이는 몸에 하얀 화염을 둘러싼 채로 계속 멀리 도망갔다.

하지만 사나이가 잠깐 지체하는 사이, 커다란 곤봉은 이미 가까이까지 다가왔다.

사나이는 눈에 두려운 기색이 스쳤지만 신경 강자였기에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다. 사나이는 입을 벌려 금색 자갈을 뿜어내며 머리 꼭대기에 크기가 족히 백 장이나 되는 옅은 금빛 반투명 부문들을 뭉쳤다.

‘펑!’

번천곤이 커다란 부문 위로 떨어지며 굉음이 울려 퍼졌고, 커다란 부문들은 겉에 옅은 금빛을 흘리며 간신히 번천곤을 막아냈다.

그리고 눈썹이 붉은 사나이가 숨을 돌리기도 전에 다시 ‘윙윙’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많은 금빛이 커다란 번천곤에서 튀어나왔는데 금빛 속에 수많은 부문들이 섞여있어 거대한 금빛 홍수를 이루었고, 금빛 홍수가 스친 자리의 공간이 번쩍이더니 모든 것이 허무로 돌아갔다.

거대한 부문은 금빛 홍수가 가한 충격으로 격하게 흔들리더니 겉에 드리웠던 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파(破)!”

석목이 두 손으로 법결을 시전하며 입으로 큰소리를 질렀다!

쿵!

거대한 부문은 번천곤을 막아내려 했지만, 마치 돌을 막아내려는 계란처럼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아니! 아니야!”

눈썹이 붉은 사나이가 두르고 있던 갑옷도 번천곤이 내뿜는 금빛에 짓눌려 부서져 버렸다.

사나이는 손에 든 낫 법보를 허공에 던져버렸다. 낫은 겉에 화염이 크게 번지더니 촘촘한 낫 그림자가 얽히고설켜 흩날리는 금빛을 맞이했다.

동시에 둥그런 은색 바리때가 입에서 튀어나와 빛을 번쩍이며 은색 보호막으로 변하여 눈썹이 붉은 사나이를 안으로 감싸버렸다.

이때, 금빛 홍수가 소나기처럼 쏟아지자 촘촘한 낫 그림자가 뿔뿔이 터져버렸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은색 보호막도 순식간에 부서져 버렸다.

처참한 소리 끝에 금빛 홍수를 뒤집어 쓴 사나이의 몸통이 나타났다.

모든 건 단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순간, 주변 백 리 안에 있던 천지 영기가 들끓었으며 구름과 바람이 달라졌는데 온 세상이 들끓는 것 같았다.

한참 뒤에야 모든 것들이 천천히 돌아왔는데 눈썹이 붉은 사나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심지어 아무런 흔적조차 남겨놓지 못했다. 화염 낫 법보와 둥그런 은색 바리때는 번천곤의 위력 아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석목은 몸에 하얀빛을 반짝이며 원래 크기로 돌아왔고, 그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 붉은 피를 뿜었는데 다섯 손가락이 힘없이 풀려버렸다. 이어 어두운 돌덩이가 석목의 손에서 떨어져 나왔다.

석목은 깊은숨을 들이마시고는 단약을 몇 알 꺼내서 삼켰다. 약이 녹아내리자 석목의 안색이 다시 좋아졌다.

짧은 교전이었지만 매우 아슬아슬한 싸움이었다.

번천곤으로 공격을 하며 몸속에 깃든 모든 진기를 불어넣었다. 선급 영석이 없었더라면 석목은 아마 이미 말라 비틀어져 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 한 방으로 석목은 목숨을 건 셈이나 다름이 없었고, 만약 이 한 방으로 죽일 수 없었다면 아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터였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모습을 드러내도 괜찮습니다.”

석목이 잠깐 회복을 하더니 이내 시선을 돌려 땅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석목이 말을 떨어뜨리기 바쁘게 빛이 반짝이며 회색 그림자가 하나 땅에서 튀어나왔는데 바로 서유금이었다.

“히히, 석 형 실력이 대단하군요. 천정의 신장마저 격살하다니. 대단합니다!”

서유금이 감탄스러운 듯이 말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아, 그리고 서 형께서 도와준 덕이었지요.”

석목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닙니다. 제게 어찌 그럴 능력이 있겠습니까? 작은 도움을 드렸을 뿐입니다. 제가 아니었더라도 놈은 석 형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서유금이 후후 웃으며 말했다.

석목이 서유금을 훑어보며 눈에 빛을 반짝였다.

이 사람이 쓰는 은닉 신통은 매우 대단했다. 석목뿐만 아니라 신경 강자인 눈썹이 붉은 사나이마저 서유금이 다가온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쥐의 허영을 불러낸 신통은 실로 대단했다.

몇 년 동안 석목은 미천거원 일족에 내려오는 각종 전집을 읽어보았는데 쥐의 허영이라면 혹시……

“눈썹이 붉은 놈이 죽었으니 천정 사람들은 곧바로 여길 알아낼 겁니다. 오래 머물 곳이 아니니 우선 이 행성부터 벗어나고 봅시다.”

석목이 말을 하며 용우비차를 불러냈다.

“석 형 말씀이 맞습니다.”

서유금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타는 비주를 불러냈다.

둘은 동시에 하늘로 날아올라 허공에서 사라져버렸다.

* * *

망망한 별바다 속을 푸른빛과 붉은빛이 나란히 날아갔다.

그 중 한 비차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훤칠한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어깨에 영롱한 앵무새가 앉아있었는데 앵무새는 날개로 머리를 반이나 가린 채 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뒤를 따라가는 비차 위에는 키가 그리 크지 않은 회색 옷을 입은 청년이 서 있었다.

둘은 석목과 서유금이었다.

둘은 이미 고림성을 벗어난 지 반나절이나 흘렀다.

석목이 앞으로 날아가고 있는데 뒤에서 날아오던 서유금이 소리를 질렀다.

“석 형, 잠시만, 잠시만 기다리시죠.”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용우비차를 멈춰 세웠다.

“무슨 일이십니까? 서 형?”

석목이 물었다.

“석 형께선 계획이 어떻게 되십니까?”

서유금은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살펴보니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마 위험한 구역은 벗어난 것 같네요. 저는 중요한 일이 있어 아마 서 형과 함께 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석목이 물었다.

“부탁할 일이 있는데 혹시……”

서유금은 석목이 하는 말을 듣더니 잠깐 망설이다가 물었다.

“말씀하세요. 하지만 저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석 형, 혹시 주작성으로 가서 천봉 일족의 성녀 수임 축전에 참여하려는 겁니까?”

서유금이 물었다.

석목이 전혀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말을 하려고 할 때, 서유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석 형, 다급하게 부정하지 마시죠. 저는 악의를 품지 않았습니다. 실은 저도 석 형처럼 천봉 일족의 축전을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천봉 일족의 축전? 서 형은 무엇 때문에 제가 천봉 일족이 벌일 축전에 가기위해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말을 들은 석목은 가슴이 덜컹했지만 차분한 표정 유지했다.

“후후, 석 형이 고림성에서 고른 노선과 지금 가고 계신 노선이 같은 곳으로 향하고 있어서요. 목적지는 전부 주작성이겠지요. 그리고 석 형은 이미 사라진지 천 년 가까이 되는 미천거원 일족과 관련이 있는 것도 같고…… 그렇다면 석 형이 어떤 목적으로 움직이시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지요. 걱정 마세요. 저는 전혀 악의를 품지 않았습니다.”

서유금은 자신 있는 얼굴로 말했다.

“맞습니다. 저는 미천거원 일족을 대표해 천봉 일족에게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석목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럼 천봉 일족의 성녀 수임 축전이 열리기 전까지 아직 시간이 넉넉하니 도움을 하나 청하고 싶습니다.”

서유금이 갑자기 몸을 굽혀 석목에게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석목이 눈썹을 치켜떴다. 서유금이 보여주는 행동이 오히려 경계심을 일으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 형도 이미 제가 비천서 일족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겁니다.”

석목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서유금이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석목은 길게 말을 하지 않고는 평온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후후, 실은 석 형,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성역은 예전에 우리 비천서 일족이 장악하고 있던 자리입니다. 여기와 삼백 리 정도 떨어진 곳에 부촉성(負蜀星)이라는 별이 있는데, 예전에 우리 일족이 관할을 하던 주요 행성입니다.”

서유금이 추억을 떠올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런데요?”

석목이 눈썹을 치켜뜨며 물었다.

“부촉성에 우리 가족이 머물던 지하 궁전이 하나 있는데 그 비경에 수천 년 전부터 저장해두었던 보물이 있습니다. 그때도 이미 천 년 가까이 봉쇄를 했었지요.”

서유금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석목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 말씀은 보물을 꺼내러 같이 가자는 말씀입니까?”

석목이 물었다.

“네. 석 형이 저와 함께 가서 지하 궁전을 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제가 원하는 열해천령(熱海泉靈)을 제외하고는 석 형께서 자유롭게 보물을 다섯 개 정도 가져가셔도 됩니다.”

서유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다. 의문이 한 층 더해졌기 때문이었다.

“서 형, 가족이 지키던 보물을 꺼내는 건데 왜 남에게 도움을 청하시는 겁니까?”

석목이 침묵을 한 후에 물었다.

“석 형이 몰라서 그러시는데 우리 가족의 지하 궁전 보물 창고에는 ‘극연금제(極衍禁制)’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천 년이나 지나 종족에서 금제를 설치할 때 가지고 있던 도감을 잃어버렸죠. 그리고 저는 실력이 부족하여 금제가 어찌 달라지는지 꿰뚫어 볼 수도 없습니다. 이미 백 번도 넘게 시도를 해봤지만 아무런 수확을 얻지 못한 채 돌아왔습니다.”

서유금이 가볍게 숨을 내뱉으며 답답한 듯이 말했다.

극연금제는 상고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매우 현묘한 금제 진법이었다. 하지만 이 진법은 살아있는 생명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끊임없이 변했다. 그리하여 진법을 여는 방법도 계속 달라져 처음에 설치할 때 적어놓은 도감이 없이는 아무도 금제를 풀 수 없었다.

“그렇다면 서 형, 실망스럽겠지만 저도 금제는 잘 모릅니다.”

석목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서유금은 석목이 하는 말을 듣더니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석목의 어깨에서 쿨쿨 자고 있는 채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석 형, 별 말씀을요. 석 형에게 그 금제를 풀어 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건앵에게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건앵이 타고난 영력신통으로 금제를 이루는 주요한 축들을 찾아내면 금제를 풀 수 있습니다.”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채아가 자신의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에 곧바로 흥미를 가졌다.

“맞아. 이 일은 꼭 너만 할 수 있어.”

서유금이 진심을 다해 말했다.

“석두, 봤지. 이 채아 어르신이 아니면 안 된다잖아. 내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 알겠지.”

채아가 날개를 펄럭이면서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그건 당연하지. 채아 어르신께서 내 보물 창고에 걸린 금제를 풀어줄 수만 있다면 당연히 그 보상도 해드려야지. 뭐가 필요한지 말해봐.”

서유금이 눈을 반짝이며 다급하게 물었다.

“당연히 영석이지. 등급이 높을수록 좋고, 숫자가 많을수록 좋아!”

채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선급 영석은 어때?”

서유금이 손을 비비며 눈치를 살폈다.

“정말이야?”

그 말을 들은 채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다급하게 물었다.

“비천서족은 신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종족이야. 내뱉은 말은 꼭 지킨다고.”

서유금이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럼 얼마나 줄 수 있어?”

채아가 또 물었다.

“다섯 개.”

서유금이 말했다.

“너무 적어. 오십 개면 몰라도.”

채아가 말했다.

“채아 어르신. 이건 선급 영석이야. 평범한 종문 세력이라면 단 한 개도 찾기 어려운 영석이라고…… 그럼 열 개 어때?”

서유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스무 개. 그 아래론 안 돼!”

채아가 말했다.

“그래! 스무 개, 그럼 스무 개. 거래 성사!”

서유금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석목은 채아가 이렇게 수락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한참 동안 어이가 없었다.

“잠깐만! 난 된다고 한 적 없어.”

석목이 말했다.

“아이고, 석 형. 이건…… 이……”

서유금은 그제야 이마를 치며 난감한 듯이 말했다.

채아는 무안한 얼굴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허나 눈에는 온통 원하는 대로 해달라는 모습만 보였다.

“저도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같이 가주겠습니다. 다만 지하 궁전에 있는 보물을 열 개 주시죠.”

석목이 침묵을 한 후에 말했다.

“그건……”

서유금이 망설였다.

“좋아요, 그럼 석 형, 부탁드립니다.”

서유금이 드디어 결심을 내렸다.

거래가 성사되자 둘은 곧바로 비차를 타고서 계속해서 별바다를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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