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672화 (672/916)

672화. 금색 쥐 한 마리

반나절 뒤에 석목 일행은 부촉성에 자리한 천리까지 이어진 성곽의 유적지에 나타났다.

석목의 발밑으로 파편들이 널브러졌으며 눈에 들어온 광경은 성벽과 성 안에 놓인 무너진 집들이었다.

“여기가 정말로 부촉성입니까?”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석 형, 여긴 부촉성이 맞습니다. 여긴 우리 비천서 일족이 머물던 가장 번화한 행성 중에 하나였습니다. 우리가 밟고 있는 이 취류성(聚流城)도 인구가 천 만이나 되던 거대한 성시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미련한 고만족 놈들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죠.”

서유금은 눈에 원한 맺힌 빛이 스쳐 지났다.

“팔황고족 중에 하나인 비천서 일족은 재물을 모으는데 뛰어나다고 들었습니다. 비천서 일족은 장사하는 머리가 뛰어나 팔황고족은 물론이고 심지어 천하 성역에서도 가장 부유한 종족이라 들었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후후, 석 형, 우리 종족의 휘황찬란한 과거에 대해 들으셨군요. 맞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 때문에 천정이 미천거원 일족을 몰락시킨 이후, 곧바로 우리 비천서 일족을 향해 칼을 겨누었지요. 천 년 전에 벌어진 약탈에서 가장 큰 손해를 본 종족이 우리 비천서 일족입니다.”

서유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석목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않았다.

“여긴 이미 껍질마저 벗겨진 것 같은데 정말 보물이 있다는 거야? 쥐야, 우릴 속이는 건 아니지?”

채아가 두리번거리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하하, 채아 어르신. 우리 종족에서 남긴 극연금제가 있다는 건 금제 속에 숨겨놓은 보물도 있다는 뜻입니다.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바로 갑시다.”

서유금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럼 길을 안내해봐.”

채아가 그 말을 듣더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서유금을 바라보며 말했다.

“두 분, 이쪽으로 오세요.”

서유금은 공손한 자세로 돌아서서 길을 안내했다.

석목은 서유금을 따라 성시 안으로 들어갔다.

서유금은 여기가 매우 익숙한 것 같았다. 앞장서 걸어가는 발걸음은 한 치도 망설이지 않았으며 마치 자기 집 정원을 거니는 것만 같았다.

이미 상처 투성이가 된 폐허 속에서도 예전에 번성했던 시기를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처량한 기분이 더해져 서유금은 걸어가는 내내 한숨만 쉬었다.

석목은 서유금의 느린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 * *

둘은 잡초가 잔뜩 깔린 청석길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서는 성시에 자리한 커다란 건물의 폐허 앞에 도착했다.

건물은 완전히 무너졌으며 동북쪽 구석에 높이가 한 장 정도 되는 벽만 간당간당하게 서 있었다. 벽에는 푸른색 이끼와 검은색 곰팡이가 가득 자라 있었다.

서유금은 주변을 몇 번 돌아보며 여기저기 만져 보더니 이상한 점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 석목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너지기 직전인 벽 앞으로 다가가 손에 금빛을 뿜어내며 벽 위 한 곳을 내리찍었다.

벽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미세한 영력 파동이 벽 속에서 흘러나왔다.

석목은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순식간에 부서진 벽에서 물결 같은 파동이 일렁였다.

서유금은 손을 들어 파동을 가로질러 뚫어버렸다. 이어 그는 벽으로 들어가더니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광경을 본 채아는 날개를 펄럭이며 벽으로 파고 들어가려 했다. 그러자 석목이 단번에 채아를 잡아 어깨에 올려놓았다.

석목의 몸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구룡쇄금갑이 나타났고, 그는 몸을 꽁꽁 싸매고 나서야 성큼성큼 벽 속으로 들어갔다.

* * *

벽에 들어서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며 어두운 지하 궁전에 도착했다.

석목이 두르고 있는 금색 갑옷을 본 서유금은 안색이 바뀌었다가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지하 궁전을 둘러보니 여긴 면적이 고작 몇 장 정도로 그리 크지 않았다. 벽에는 하얀 구슬이 걸린 채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두 사람이 마주하고 있는 석벽에는 매우 복잡한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부적이 끊임없이 돌고 있었으며 부적은 끝단이 가로세로로 뒤엉켜있었다. 부적을 한참 바라보자 정신이 흐릿해지며 불안감이 몰려왔다.

“혹시 이게 전에 말씀하신 극연금제인가요? 역시 기이합니다.”

석목이 잠깐 훑어보더니 말했다.

“맞습니다. 석 형은 역시 대단합니다. 아쉽게도 이 금제는 너무 복잡하죠. 종족에 갑자기 변고가 생겨 아직 물려줄 준비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 마저도 금제를 풀 방법을 모르고요. 그러니 채아 어르신, 부탁드립니다.”

서유금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럼 내가 도와줄게.”

채아가 큰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날개를 펄럭이며 석벽 앞으로 날아가서는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자세히 관찰했다.

채아의 모습을 본 석목은 바닥에 털썩 앉더니 눈을 감은 채 휴식을 취했다.

서유금은 채아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시간이 한참 흘렀지만 채아는 여전히 여기저기 날아다녔다.

서유금은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매우 초조해 보였다. 채아가 이 금제를 정말 제대로 볼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석목은 채아의 시력이 신비스러울 정도로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 일은 부문과 관련된 지식도 있어야 하니, 석목도 채아가 잘 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았다.

“채아, 금제를 어떻게 풀어야할지 알아냈어?”

잠시 후에 석목은 드디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채아는 다시 석목의 어깨로 날아와서는 그럴듯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니.”

채아가 하는 말을 들은 서유금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석목이 순간 울적해하며 채아에게 욕설을 퍼부으려할 때, 채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 진법에서 음…… 금색 쥐 한 마리를 봤어.”

“쥐? 어디?”

서유금이 그 말을 듣더니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석목도 의문스러운 눈길로 다시 석벽을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음…… 이 쥐는 움직이고 있어. 조금 전에는 위에 있었는데 지금은 또 가장 아래로 내려왔어.”

채아가 석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화상충(离火相冲), 감수향동(坎水向东), 건곤불정(乾坤不定), 급위재중(极位在中)……”

서유금이 입으로 무엇인가를 외우더니 다시 말했다.

“채아 어르신, 금쥐가 진법 가운데로 오면 바로 알려줘.”

말을 마친 서유금은 곧바로 앞으로 다가가서는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바닥에서 빛을 반짝이더니 금제부진을 빠르게 눌렀다.

서유금이 금제부진을 누를 때 마다 빛이 몇 갈래 번쩍였는데 어떤 규칙이 있는 것 같았다.

이때, 채아가 갑자기 입을 열며 말했다.

“왔어!”

“좋아!”

서유금은 눈에 빛을 반짝이며 손바닥으로 부진 가운데를 눌렀다.

‘윙’ 소리와 함께 금제부진에서 찬란한 빛이 밝아졌다.

비밀 석실에서는 ‘우르릉’ 소리가 울려 퍼졌으며 석벽이 천천히 주저앉아 바닥으로 스며들어갔다. 그리고 석벽 뒤로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갑시다!”

서유금은 밝은 얼굴로 한 마디를 던지고는 몸을 날려 벽 뒤로 향했다.

“따라가.”

석목은 망설이지 않고서 곧바로 채아를 데리고 들어갔다.

드넓은 공간으로 다가가자 앞으로 깊은 통로가 나타났는데 안쪽으로 길게 뻗어있어 끝이 보이지 않았다. 차갑고 음침한 바람이 통로에서 불어왔다.

* * *

이때, 서유금이 깊은 통로로 다가갔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서유금을 바라보았다. 서유금이 의아한 기색을 드러내는 것을 보니 이 금제를 풀고 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황을 모르는 것 같았다.

석목은 답답하여 고개를 흔들더니 눈에 금빛을 뿜어내며 안쪽 통로를 바라보았다.

석목을 본 서유금은 눈썹을 치켜떴는데 눈에 엄숙한 기운이 더해졌다.

잠시 후에 석목은 금빛을 거두어들이고는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말했다.

“영목신통을 하나 배워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통로 안쪽 벽이 전부 부적으로 도배가 되어서 기이한 힘이 신통을 막고 있군요.”

“그럼 채아 어르신, 보이는 게 있어?”

서유금은 기대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채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통로 끝에 광막이 한 층 있어. 광막 뒤에는 넓은 석실인 것 같아. 그 뒤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채아가 목을 빼서는 통로 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하 궁전 보물 창고는 그 석실에 있을 겁니다.”

서유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지체하지 말고 들어갑시다.”

석목이 말을 하고는 곧바로 통로 속으로 들어갔다.

서유금은 눈에 빛을 반짝이며 석목의 뒤에서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갔다.

통로 속은 공간이 그리 크지 않았으며 내벽을 커다란 장방형 돌들로 빚어놓았다. 발밑으로는 네모반듯한 커다란 청석들이 깔려있었는데 매끈한 촉감이 들었다.

내벽 위쪽에는 다양한 회선들과 도안들이 새겨져 있었으며 그 속에는 다양한 부문들이 섞여있었는데 석목이 아는 것도 있었고, 처음보는 것들도 있었다.

바닥에 놓인 청석에는 살아 숨 쉬는 것만 같은 동물과 꽃, 새의 그림이 가득 그려져 있었는데 매우 정교했다.

하지만 석목 일행은 지금 이런 것들을 구경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일행의 시선이 통로 앞쪽으로 향했다. 잠깐 한 눈을 파는 사이에 인형이나 또 다른 금제 함정들이 나타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 * *

대략 한 시진 정도 걸었지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 통로는 기이할 정도로 조용했다.

“석두, 뭔가 잘못된 것 같아.”

채아가 갑자기 말했다.

“뭔가 봤어?”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요? 뭘 봤습니까?”

서유금이 의문스러운 듯 물었다.

“눈대중으로 봤을 때 이 통로는 백 장을 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쯤 이미 광막을 지나서 석실에 도착했어야 맞을 텐데, 지금…… 뒤를 보세요.”

석목이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뭐야? 왜 이러는 거지……”

서유금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일행들이 조금 전에 있었던 곳과 고작 십여 장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한 시진이나 걸었는데 고작 십 장만 걸은 셈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서유금이 다급하게 물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떤 진법 속에 빠진 것 같습니다.”

석목이 주변에 적힌 부문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어이, 여기가 너희 가족이 머물던 지하 궁전이라며? 왜 아무것도 모르는 거지?”

채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지하 궁전은 이미 천 년 가까이 봉쇄되어 있었습니다. 관련된 기록들은 전부 사라지고 없지요. 종족의 어르신들마저 제가 여기로 오는 걸 반대했습니다.”

서유금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석두?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돌아가?”

채아가 물었다.

“돌아가기에도 쉽지는 않을 거야.”

석목이 벽을 훑어보며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왜? 왜 못 돌아가?”

채아가 소리를 질렀다.

“이 통로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미 진법에 빠져버렸어. 어디를 향하든 결과는 똑같을 거야. 이 통로에서 나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여기 묻혀서 죽게 되겠지.”

석목이 침묵을 한 후에 말했다.

“아…… 그럼 어떡하지? 나는 영석도 충분히 먹지 못했단 말이야.”

채아가 그 말을 듣더니 얼굴을 찡그리며 언성을 높였다.

“너무 조급히 굴지 마. 힘으로 진법을 뚫어버려서 통로를 무너트려 버리면 들어갈 수도 있어.”

석목이 말했다.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서유금은 석목이 힘으로 통로를 벗어나려고 하자 다급하게 말했다.

“왜죠?”

석목이 물었다.

“이 통로가 뚫려 버리면 여기 있는 보물들은 전부 이 자리에 묻힐 겁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될 겁니다.”

서유금이 가슴 아픈 얼굴로 말했다.

“지금 죽을지도 모르는데 보물은 무슨 보물이야?”

채아가 말했다.

“그럼 채아 어르신께 주기로 한 선급 영석도 줄 수 없어.”

서유금이 말했다.

“석두,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자.”

채아가 정색하며 말했다.

채아가 재빨리 말을 바꾸자 서유금은 생각지도 못한 듯이 멍하니 서 있었다.

석목은 채아의 이런 모습을 많이 봐왔던 터라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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