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673화 (673/916)

673화. 신경 인형

석목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바닥에 놓인 네모반듯한 청석을 바라보았다.

“이건……”

밟고 있던 정방형 청석 왼쪽에 타원형 무늬가 나타났는데 세 뼘 정도 뻗어져 나갔다. 무늬 뒤로 커다란 쥐 한 마리가 입을 벌리고는 뾰족한 이를 드러낸 채 타원형 무늬를 삼키는 것 같았다.

서유금도 석목의 시선을 따라서 내려다보았다.

“큰 쥐가 쌀을 먹는 그림입니다.”

서유금이 말했다.

“큰 쥐? 그 뚱뚱한 쥐?”

채아가 물었다.

“음, 큰 쥐는 가록(家鹿)이라고도 불리는데 사군 어르신께서 쓰시던 탈것이었어.”

서유금이 말했다.

“사군?”

석목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디선가 들어본 말인 것 같았다.

“사군 어르신은 우리 비천서 일족의 시조십니다. 신령으로 모시고 있지요.”

서유금이 계속해서 말했다.

석목이 눈빛을 반짝이더니 앞쪽 청석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가요?”

일행 앞에 놓인 청석에는 긴 비단옷을 입은 허리가 구부러진 괴인이 하나 새겨져 있었는데 괴인은 손에 긴 채찍 같은 물건을 들고 있었다.

“맞아요. 이겁니다.”

서유금은 말을 하며 그림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그럼 어떻게 나갈지 알 것 같습니다.”

석목이 미소를 지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

“정말입니까? 어떻게 나갑니까?”

서유금이 물었다.

“미천거원 일족에서 고전을 하나 읽은 적이 있는데 사군의 이야기가 기록되어있더군요. 사군은 자신산(子神山)에서 태어나 신수인 가록을 거두고 비천서 일족을 이루었다가 운명을 할 때까지 그 과정을 다 볼 수 있었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석 형, 그 말씀은 혹시……”

서유금은 갑자기 안색이 변하더니 다급하게 그림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에 서유금은 눈에 화색이 점점 짙어졌다. 그리고 감탄을 했다.

“석 형께선 역시 견식이 넓으신 분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세밀하게 관찰을 하셨다니. 통로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셨네요.”

“둘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왜 하나도 모르겠지.”

채아가 초조해하며 물었다.

“우리는 사군 어르신께서 걸어오신 길이 새겨진 청석을 따라서 걸어가기만 하면 이 통로를 벗어날 수 있어.”

서유금이 말했다.

“그럼 갑시다.”

석목이 사군의 그림이 새겨진 청석을 밟았다.

서유금은 큰 쥐를 향해 깊게 인사를 한 번 올리더니 입으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석목을 뒤쫓았다.

몇 걸음을 걸은 후에 석목은 다시 고개를 돌려서 바라보았다. 조금 전보다 입구와 꽤 멀리 떨어졌다.

시간이 일다경 흐른 뒤에야 그들은 광막 앞까지 다가갔다.

서유금과 석목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곧바로 광막 속으로 들어갔다.

* * *

안으로 들어가자 광막이 사라져버렸으며 빛이 반짝이더니 두꺼운 돌문이 하나 나타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일행들은 완벽하게 봉쇄된 팔각형 석실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구석마다 돌문이 한 개 씩 서 있을 뿐 다른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너희 종족 사람들은 정말 답답하네. 보물 하나 숨기는데 뭘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어? 드디어 통로를 지났는데 또 문이 여덟 개나 나타나다니, 이제 어떡할 거야?”

채아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서유금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채아, 네가 다시 봐봐. 어느 문 뒤에 보장이 있는지?”

석목이 말하자 채아가 두 눈에 빛을 뿜어내며 여덟 문을 훑어보았다.

돌문을 하나씩 살피던 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돌문에 숨겨진 그림만 보일뿐 돌문 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어떤 그림이 보여?”

서유금이 눈에 빛을 반짝이며 다급하게 물었다.

“특별한 건 없고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채아가 귀찮은 듯이 서유금을 한 번 흘겨보며 말했다.

“혹시 사군 어르신이 그려진 그림이 보여?”

서유금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계속해서 물었다.

“그럼, 여기.”

채아가 날개를 들어 돌문 하나를 가리켰다.

그 말을 들은 서유금은 잰걸음으로 다가가 돌문에 손바닥을 붙였다.

서유금의 손에서 찬란한 빛이 반짝이더니 붉은 피 한 방울이 손바닥에서 흘러나와 돌문에 떨어졌다.

붉은 피가 천천히 돌문에 스며들더니 돌문 겉에 요상한 붉은빛이 밝아지자 갑자기 긴 비단을 두르고 허리가 구부러진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이때, ‘윙윙’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일행들이 통과했던 돌문만 닫힌 채로 있으며 나머지 일곱 돌문이 동시에 열렸다. 돌문들 속에서는 병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떻게 된 겁니까? 뭘 잘못 누른 건가요?”

석목이 놀라서 큰소리로 물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다만……”

서유금은 말을 마치더니 시선을 돌려 조금 전에 자신이 열었던 돌문을 바라보았다.

“큰일이네. 이건 사군 어르신이 아니라 야마자 어르신이야.”

서유금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리고 앞쪽에서 열린 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돌문 위에 새겨진 허리 굽은 그림자는 사군의 모습과 매우 흡사했다. 다른 점이라면 손에 들고 있는 무기가 긴 채찍이 아닌 톱니가 세 개 붙어 있는 살벌한 작살이었다.

“야마자는 또 뭐야?”

채아가 물었다.

“야마자 어르신은 우리 종족이 신봉하는 신이야. 살육을 장악하고 계시지.”

서유금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펑, 펑!’ 소리와 함께 일곱 돌문이 동시에 덜컥 열렸다.

열린 돌문에서 금색 갑옷을 두른 무인들이 나타나 석목과 서유금을 포위해왔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무인들을 훑어보았고, 금색 갑옷을 두른 무인들은 붉은 눈만 밖으로 내놓은 채로 있었다. 무인의 강철 같은 차가운 손에는 손가락이 아닌 날카로운 칼날이 열 개 뻗어 싸늘한 빛을 뿜어냈다.

갑옷 무인들이 풍기는 기운을 느껴보니 전부 성계 후기였으며 숫자도 족히 서른 명이나 되었다. 때문에 원래도 넓지 않던 석실 속이 더 비좁아졌다.

탱!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무사 서른 명이 거의 동시에 손을 들어 강철 같은 손을 앞으로 뻗으며 석목 일행을 공격했다.

공간이 너무 비좁았기에 석목은 빈철곤을 길게 빼지 않았으며 팔뚝만 한 짧은 곤봉으로 줄여 무사들을 향해 휘둘렀다.

“석두, 저놈들은 너에게 맡길게. 나는 저 위로 가서 좀 숨어 있어야겠어.”

채아가 날개를 펄럭이며 석실 천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직 꼭대기에 닿기도 전에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석두, 피해.”

석실 천장에서 붉은빛 두 갈래가 예고도 없이 뿜어져 나왔고, 빛이 흩어지며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떨어지듯이 바닥으로 내려왔다.

석목은 이미 조금 전부터 그곳의 이상한 낌새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림자가 날아오자 석목은 덮쳐오는 갑옷을 두른 무인 한 명을 밀어내며 몸을 비틀어 그림자를 피했다.

탱!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은색 삼치(三齒) 작살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석목이 서 있는 바로 앞바닥을 찍었다.

이어서 그림자 하나가 천장에서 내려와 한 손으로 삼치 작살을 덥석 잡은 뒤에 ‘푹!’ 소리를 내며 단숨에 꽂혀있는 작살을 뽑아들었다.

“신경 인형!”

석목이 실눈을 뜬 채 입으로 중얼거렸다.

“야마자 어르신!”

금색 갑옷을 두른 무사와 교전 중이던 서유금이 빠르게 눈을 돌려 석목이 있는 곳을 쳐다보고는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긴 피풍의를 두른 검은 그림자는 긴 비단을 바닥까지 늘어트리고 있었으며 키가 훤칠한 몸은 살짝 앞으로 기울어져 등허리가 굽어 있었다. 흉악한 얼굴은 돌문에 새겨진 그림과 다른 점이 단 하나도 없었다.

검은 그림자의 눈도 금색 갑옷을 두른 무사의 눈처럼 붉은색이었고, 매우 기이한 빛이 돌고 있었지만 인지 능력은 없는 듯이 보였다.

석목이 눈을 크게 뜨고는 곤봉을 검처럼 쥐고서 앞으로 찔러가며 먼저 공격했다.

그러자 검은색 인형이 삼치 작살을 들어오려 석목을 향해 휘둘러 두 무기가 강하게 부딪쳤다.

‘퉁!’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그 여파로 석목의 팔이 한참 동안 떨렸다. 온 세상을 휩쓸 것만 같은 강력한 힘이 밀려와 석목의 몸통이 뒤로 밀려났다.

쿵!

석목이 돌벽에 부딪치려는 찰나, 갑자기 몸을 비틀어 발로 등 뒤에 놓인 돌벽을 밟았다.

돌벽을 밟은 다리에 힘을 주어 반발력으로 날아가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여의빈철곤을 길게 뽑아 천기곤초와 분리하여 검은색 인형의 머리 위를 세차게 내리쳤다.

곤봉의 끝에서 희미한 그림자가 나타나 태산처럼 커지더니 인형의 머리를 짓눌러버렸다.

그러자 인형은 눈에서 붉은빛을 반짝이며 삼치 작살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서 떨어지는 빈철곤을 막아냈다.

쾅!

금색 곤봉 그림자가 터져버리며 단번에 주변에 있던 금색 갑옷 무인 일고여덟 구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석두, 조심해. 내가 다칠 뻔했잖아.”

석실의 꼭대기에 숨어있던 채아가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한편, 서유금도 이 상황이 당황스럽긴 했지만, 곧바로 몸에 빛을 드리우며 등 뒤로 커다란 쥐의 허영을 만들어서 몰려오는 무사들과 격렬한 싸움을 펼쳤다.

석목의 눈에 싸늘한 빛이 스쳤으며 동시에 곤봉이 몇 배나 더 불어나 아래쪽 바닥을 짓눌렀다.

탱!

검은 인형이 들고 있던 삼치 작살의 뾰족한 톱니 하나가 부러져버렸다.

빈철곤이 그대로 짓눌러가며 검은 인형의 어깨를 강하게 내리쳐 그 힘을 버텨내지 못한 인형은 무릎을 꿇은 채로 버텼다.

예상치 못한 소리였다. 석목은 마치 딴딴한 금강석을 누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검은 인형은 몸을 어떤 특수한 재질로 만들었는지 단단하기 그지없는 돌 같았다.

이때, 검은 인형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 붉게 물든 두 눈으로 석목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순간, 인형의 몸에서 검은빛이 밝아지더니 바람도 없는데 갑자기 옷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바람에 석목은 밀려서 뒤로 물러났다.

석목은 빠르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열려있는 일곱 돌문 중에 아무 생각 없이 하나를 골라서 들어갔다.

검은 인형이 곧바로 석목을 뒤쫓았다.

석목이 도망을 가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무사들이 전부 서유금에게로 몰려들었다.

갑자기 몰려든 무사들 때문에 부담이 더해졌지만 서유금이라고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온 힘을 다해 저항했고, 쉴 틈 없이 막아내느라 억울해할 틈도 없었다.

* * *

돌문너머 공간은 바깥쪽보다 좀 더 작았지만 무사들이 없었기에 더 넓어 보였다.

검은색 인형이 들어올 때마다 석목은 곤봉으로 밀쳐냈다.

인형은 삼치 작살로 석목이 날리는 공격을 막았다.

이때, 석목이 곤봉을 잘못 휘두르자 눈앞이 희미해지더니 검은색 인형의 모습이 시선에서 사라져 버렸다.

석목은 불안해져 지체하지 않고서 곧바로 진기를 불어 구룡쇄금갑으로 몸을 감싸고는 노란색 돌갑옷과 물갑옷도 전신에 둘렀다.

그러나 아직 물갑옷을 완전히 두르기도 전에 인형의 작살이 석목을 등 뒤에서 찔렀다.

탱!

석목은 등 뒤에서부터 괴력이 몰려오는 것만 같았고, 몸통이 격하게 흔들려 힘을 다스리지 못한 채 날아가 버렸다.

아직 석목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이었으나 검은색 인형은 몸통이 ‘훅!’ 흔들리더니 순식간에 석목의 코앞에 나타나 강철 작살을 들고서 가슴을 찔렀다.

석목은 이 상황에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이 정도 속도라면 순간이동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었다.

석목은 다급하게 긴 곤봉을 줄여 작살의 끝부분을 밀어내면서 몸을 살짝 비틀어 피했다.

동시에 석목의 몸에서는 검은빛이 반짝이더니 분신이 튀어나와 손에 붉은색 단검을 들고서 인형을 찔렀다.

‘휙!’ 바람 소리와 함께 검은 인형이 붉은색 단검 아래로 사라지더니 갑자기 분신의 머리 꼭대기에서 나타나 삼치 작살을 치켜들고서 아래를 향해 내리쳤다.

펑!

석목이 곤봉을 가로로 들고는 삼치 작살을 밀어버려 인형은 튕겨져 날아갔다.

바닥에 떨어진 인형은 눈에 핏빛이 더욱 짙어졌다. 순간, 인형은 몸이 검은 연기로 갈라지더니 허공에 검은색 안개를 뭉게뭉게 피워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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