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674화 (674/916)

674화. 연합의 신물

검은 인형이 희미하게 변해버리자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분신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검은 인형이 흘려보낸 연기가 번쩍이며 다시 다섯 갈래로 분리되어 똑같이 생긴 인형 다섯 마리가 나타났고, 인형은 전부 부러진 작살로 석목을 공격했다.

그 모습은 마치 실체가 있는 것 같기도 했으나 또한 허영 같기도 했다. 인형들은 진짜인 듯, 아닌 듯 허공에서 번쩍이며 석목을 향해 몰려왔다.

인형은 아주 짧은 순간에 가까이 다가왔는데 그 속도는 조금 전에 시전한 순간이동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번에는 다섯 마리가 동시에 나타나서 석목은 피하거나 막아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석목은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을 보였고, 그는 전혀 피할 생각이 없이 빈철곤을 다시 곤초에 꽂았다.

석목에게로 몰려오는 다섯 검은 그림자는 작살 끝을 전부 다른 방향에서 석목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석목의 눈에 작살의 뾰족한 끝부분이 비치며 싸늘한 기운을 풍겼다. 하지만 석목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뾰족한 강철 작살이 석목의 몸통을 찌르려는 찰나에 다섯 그림자가 갑자기 멈춰버려 허공에 떠있었다.

이때, 석목은 눈에서 빛을 반짝였다. 팔에서도 하얀빛이 번지며 순식간에 열 배까지 자라난 커다란 손바닥으로 단번에 다섯 인형을 붙잡았다.

인형들이 꿈쩍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분신이 붉은색 단검으로 인형들 머리 중에 하나를 찔렀다.

인형의 머리에서 검은색 안개가 흐르더니 안개는 붉은색 단검으로 흘러 들어갔고, 단검이 내는 붉은빛이 더욱 짙어졌다.

나머지 인형들은 스스로 터지며 사라져 버렸다.

검은 인형의 눈에서 번지던 붉은빛이 어두워지는 것을 바라보던 석목은 조금 전에 겪은 위급한 상황을 떠올리자 다리에 힘이 모두 풀렸다.

분신이 쓰는 파손된 영역 금제가 인형들을 멈춰버리게 만들어 귀한 시간을 얻어내지 못했더라면 석목은 절대 버티지 못했을 터였다.

석목은 잠깐 숨을 고르며 분신을 거두어들이고는 석실로 걸어갔다.

* * *

다시 석실로 돌아간 석목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금색 갑옷을 두른 무사들이 입었던 찢어진 갑옷들이 바닥의 여기저기에 널려있었는데 무사들은 전부 쓰러져 있었다.

“서 형, 능력이 아주 출중하십니다.”

석목이 감탄을 자아내며 말했다.

그러자 서유금은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석 형, 그런 게 아닙니다. 석 형이 야마자 어르신을 죽여 버리자 이 무사들은 자연스레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래서 저도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 절대로 제가 실력이 강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석목은 그제야 이해가 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돌려 아직 닫혀있는 돌문을 바라보았다.

순간, 하늘에서 누군가가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휴, 드디어 끝났구나. 빨리 창고를 열어서 돈이나 줘. 이런 거지같은 곳은 단 한 순간도 못 있겠어.”

채아가 천장에서 석목의 어깨로 날아왔다. 그리고 날개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투덜거렸다.

“좋아.”

서유금은 아직도 조금 전에 치른 전투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는지 무표정하게 대답을 하고는 남은 돌문으로 향했다.

돌문 앞으로 걸어간 서유금은 잠깐 숨을 고르더니 손가락을 베어 정혈 한 방울을 뽑아 돌문에 스며들게 만들었다.

이어 돌문에 새겨진 문양이 밝아지더니 가운데가 한참 동안 희미해지면서 붉은색 그림자가 나타나자 돌문이 천천히 땅 속으로 들어갔다.

“석 형, 이곳입니다.”

서유금이 석목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뒤에 돌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석목도 채아를 데리고 따라 들어갔다.

* * *

돌문 안쪽 공간도 그리 크지는 않았으며 석목이 상상했던 금은보화가 가득한 광경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입구 바로 맞은편엔 나무로 만든 목자 세 개가 나란히 서 있었고, 목자 위에는 크고 작은 네모난 공간들이 가득했는데 큰 곳은 너비가 한 뼘 정도였으며 작은 것은 한 마디 정도였다.

네모난 공간마다 금색이 짙은 나무 상자가 하나씩 놓여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쇠로 만들어진 긴 영패가 걸려있는데 상자에 보관한 품목이 적혀 있었다.

“석 형, 전에 약속드린 것처럼 이 물건들 중에 열 개를 고르세요.”

서유금이 석목에게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목자로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나란히 세워진 목자 뒤편에 작은 석대가 하나 더 있었으며 석대 위에는 하얀색 옥병 하나 놓여있다.

짙은 물속성 기운이 옥병에서 천천히 흘러나왔다.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니 옥병에서 빛이 흘러 다니며 붉은빛을 간간이 뿜어냈는데 매우 화려했다.

“석 형,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이 열해천령만 빼고서 보물을 열 개 고르시면 됩니다.”

서유금은 석목의 시선이 하얀 옥병에서 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며 안색이 어두워진 채로 다급하게 말을 했다.

“서 형, 이 물건은 저에게 매우 의미가 있는 물건입니다. 보물 열 개는 포기할 테니 이것 한 개만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석목이 물었다.

하얀 옥병에 들어있는 건 매우 진귀한 물속성 본원의 물건이었으며 구전현공 여덟 번째 단계를 수련할 때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그럼 나도 선급 영석 스무 개를 포기할게. 열아홉 개만 줘.”

채아도 물속성 본원의 물건이 석목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말했다.

그러자 서유금이 난감한 기색을 드러내며 미간을 찌푸렸다.

“석 형, 실은 이 열해천령은 천봉 일족과 연합하기 위해 꼭 필요한 물건입니다. 우리 종족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중요한 물건이라 절대로 양보할 수 없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연합이요?”

석목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네. 지금 천봉 일족은 천하 성역을 이루는 삼대 세력 중에 하나입니다. 하지만 우리 비천서 일족은 몰락한 지 오래되어 원래 위치를 찾으려면 이 기회에 천봉 일족과 연합을 하는 쪽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서유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연합은 하면 되지. 꼭 열해천령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 다른 보물도 먹힐 거야.”

채아가 계속 설득했다.

“채아 어르신. 이 열해천령은 극열원해(極熱源海)에서 나온 보물이라 불속성 본원의 물건과 맞물리는데 천만 년이란 시간을 거치며 이미 많은 화원지력(化源之力)을 흡수했어. 그래서 자연스레 불과 물을 서로 융합시키는 힘을 지녀 천봉 일족에게는 매우 소중한 물건이야.”

서유금이 설명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채아가 계속해서 설득을 하려 했으나 석목이 채아를 말렸다.

서유금이 하는 설명을 듣자 석목은 물건을 갖고 싶은 열망이 더 커졌다. 이 열해천령이 정말 물과 불을 융합시킬 수 있는 물건이라면 네 번째 단계에서 이룬 융합보다 일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라 석목에게 이 보물이 지닌 가치는 훨씬 컸다.

하지만 석목은 잘 알고 있었는데 이 일은 강요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서 형, 종족을 부활시킬 책임을 지고 있으시다 했죠?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 또한 미천거원 일족을 부활시켜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기꺼이 다른 물건을 고르도록 하죠.”

석목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서유금은 그제야 긴장했던 마음을 내려놓았다.

석목의 말속에서 진심을 읽어냈기 때문이었다.

사실 서유금은 석목이 강제로 빼앗아갈까 걱정을 했었다. 물론 대비를 하고 있긴 했으나 그렇다고 정말 석목과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석 형, 감사합니다.”

서유금도 진심으로 감사를 전했다.

석목은 다시 나란히 서 있는 목자들을 훑어보았다.

잠시 후에 석목은 얼굴에 화색이 점점 짙어졌다. 조금 전에 내비친 실망스러운 표정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란히 선 목자들에 놓인 물건들은 전부 값비싼 보물들이었다. 그중 수련 단약인 절세 선약도 있었으며 귀한 보물로 제련한 최상급 영재도 있어서 석목은 눈으로 여기저기를 정신없이 훑고 다녔다.

그러다 세 번째 목자를 바라봤을 때, 석목은 눈에 빛이 가득 번졌다.

“천하성사!”

다시 시선을 아래로 옮긴 석목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곤륜응금석.”

석목은 활짝 웃는 얼굴로 목자들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 * *

잠시 후.

석목은 웃는 얼굴로 박제된 듯 근육이 그대로 굳어버린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도무지 이 기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한참 후에야 석목은 보물 열 개를 전부 골랐다. 공수자가 석목에게 전해준 하얀 종이에 적힌 최상급 영재 여덟 가지 중, 낙해명정을 뺀 나머지 일곱 가지를 전부 구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좀 진정시켜야만 했다.

“석두, 우리가 정말 제대로 왔네. 내가 십 년 동안 찾아다녔는데 찾지 못했던 보물들을 한 번에 일곱 개나 찾았잖아.”

채아가 참지 못하고는 소리를 질렀다.

“나도 생각지도 못했어. 이런 좋은 일이 다 있다니.”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이때 서유금은 이미 열해천령을 잘 챙겨두고는 목자에서 다른 영재 보물들을 몇 개 챙기더니 다시 석목에게로 다가왔다.

“석 형, 보물들은 맘에 드시나요?”

서유금이 웃으며 물었다.

“예상치도 못하게 얻은 귀한 물건인데 어찌 맘에 들지 않겠습니까?”

석목도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됐습니다. 이제 여기서 나가지요.”

서유금이 말했다.

“그래요.”

석목이 대답했다.

두 사람이 이제 막 떠나려 할 때, 채아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안 돼.”

“왜?”

석목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야! 이 비천서야. 나한테 준다는 영석은?”

채아가 석목의 어깨에 서서 날개 한쪽으로 서유금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하, 순간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깜빡했어. 채아 어르신, 화내지 마.”

서유금은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리고 손을 들어 선급 영석 스무 개를 꺼냈는데 영석에서 강력한 영기가 흘러나왔다.

영석을 본 채아는 곧바로 날개를 펄럭이며 서유금에게로 날아가 발로 영석을 채가며 얼마 전에 석목이 준 저장 반지에 넣어 두었다.

“여기에 이렇게 많은 보물들이 있는데 그냥 두고 간다고?”

채아가 아쉬운 듯이 물었다.

“여긴 우리 종족이 함께 쓰던 보물 창고이지 내 창고가 아니야. 전부 가져갈 수는 없어. 게다가 너무 많은 보물들을 가지고 다니면 화만 불러일으키지. 그냥 두는 편이 가장 좋은 선택일 거야.”

서유금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라면 그런 것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을 거야. 내 배에 들어간 물건들이 진정 내 것이 되는 거지.”

채아가 못마땅해 하며 말했다.

두 사람과 새 한 마리가 보물 창고에서 나가자 돌문이 다시 천천히 내려와 입구를 막아버렸다.

* * *

석목 일행은 다시 백 장 정도 되는 통로를 지나 극연금제가 걸린 돌벽 밖으로 나왔다. 서유금이 고개를 돌려 다시 돌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법결을 시전하자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계(啓).”

서유금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하자 바닥에서 ‘쿠구궁’대며 끌리는 소리가 울리더니 바닥으로 빠졌던 돌벽이 다시 나타나 보물 창고를 막아버렸다.

돌벽이 완전히 닫히자 서유금이 금색 영패로 돌벽을 눌렀다.

그러자 단단하던 돌벽이 순식간에 두부처럼 푹 꺼지더니 단번에 영패를 삼켜버렸다.

영패가 돌벽으로 빠져버리자 돌벽에서 금빛이 반짝이며 위에 새겨져 있던 금색 쥐가 마치 살아있는 듯이 몸을 굽힌 후에 머리와 꼬리를 맞붙였다.

“석두, 쟤 뭐 하는 거야?”

채아는 서유금이 하는 행동이 이상했는지 석목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석목이 곧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는 전음으로 말했다.

“우리를 믿지 못하는 거지. 원래 있던 금제 부진에 봉인을 한층 더 감았어.”

그 말을 들은 채아가 화가 치밀어 올라 욕설을 하려고 했으나 석목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저 자를 탓할 것도 없어. 당연한 생각이야.”

“됐습니다. 석 형, 갑시다.”

새로운 금제 봉인을 설치한 후에 서유금은 돌아서서 석목에게 말했다.

둘은 비행 법기를 타고는 앞뒤로 나란히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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