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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675화 (675/916)

675화. 몰락한 황족

얼마 지나지 않아 석목과 서유금은 지하 궁전에서 밖으로 나왔다.

이미 밤은 깊었다.

서유금이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할 때 석목이 갑자기 낮게 소리를 질렀다.

“큰일이다.”

석목이 말을 끝내자마자 이변이 일어났다!

둘을 중심으로 주변 백 장 가까운 범위에서 노란빛이 나타나 광막으로 변하더니 두 사람을 가둬버렸다.

동시에 땅에서 노란색 줄기가 줄줄이 나타나 순식간에 두 사람의 몸을 묶어버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채아는 석목의 어깨에서 빠르게 날아올랐기에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순간, 주변에서 그림자들이 번쩍이더니 그림자 열 몇 개가 줄줄이 나타났으며 그림자들이 두 사람을 둘러쌌다.

“하하! 방 형, 다행히 방 형이 쓰는 진법이 있어서 이렇게 가볍게 잡을 수 있었어.”

거친 목소리가 주변에서 울려 퍼졌는데 흥에 겨운 목소리였다.

목소리의 주인은 몸집이 웅장한 사나이였다. 붉은색 짧은 머리에 짙은 눈썹과 큰 눈이 돋보였으며 포악한 기세를 풍겼다.

붉은 머리 사나이와 가까운 곳에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청년이 서 있었는데 두 눈에선 옅은 보라색이 뿜어져 나왔다.

아마 저 자가 붉은 머리 남자가 말하는 방 형일 터였다.

“안 형, 과찬이야. 말하기도 귀찮은 아주 소소한 재능이지.”

눈동자가 보라색인 청년이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말했다.

둘은 성계 후기 경지였으며 두 사람 옆으로 인파가 수십 명이나 모여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천위 경지였으며 성계는 단 몇 명만 있었는데 그것도 성계 초기였다.

석목은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았다.

드리운 진법을 보니 위력이 강한 대단한 진법처럼 보이긴 했지만 석목을 가둬둘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석목은 서유금을 한 번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는 다급하게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움직이지 못하는 척을 하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일부러 밖에서 기다린 것 같은데 누굴까?

“혹시 천정 놈들인가? 내 행적이 폭로되었나?”

석목이 깜짝 놀라 신식을 보내 넓게 드리워 멀리서 벌어지는 상황을 확인했다.

주변 수백 리 안에 잠복한 지원군은 없었으며 눈앞에 있는 놈들이 전부였다.

이쯤 되자 서유금도 처음만큼 당황스러워하지 않았다. 서유금도 점차 냉정을 되찾고는 두 눈을 영리하게 굴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너희 둘, 비경에서 주워온 물건들을 전부 내놓으면 목숨은 살려주지.”

붉은 머리 남자가 석목과 서유금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하는 놈들이야?”

석목이 갑자기 물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상황 파악을 했으면 빨리 물건이나 내놔. 빨리 내놓지 않으면 죽여 버릴 거야.”

붉은 머리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를 질렀다.

이어서 남자가 한 손을 들자, 손에서 불빛이 반짝이며 붉은 깃발이 하나 나타났는데 깃발의 끝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와 석목 옆에 있는 땅으로 떨어졌다.

쿵!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며 땅 위에 깊이가 몇 장이나 되는 깊은 웅덩이가 생겼다.

석목은 실눈을 떴는데 눈에서 의아함이 스쳤다.

말하는 꼴을 보니…… 강도였나?

“이 비경이 있는 곳은 우리 비천서 일족 말곤 아무도 모른다. 너희는 여길 어떻게 알게 된 거지?”

서유금이 갑자기 붉은 머리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말이 진짜 많네! 그냥 죽여 버려!”

붉은 머리 사나이가 귀찮은 듯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부하들이 전부 몸을 날려 법보를 휘두르며 석목과 서유금을 공격했다.

눈동자가 보라색인 청년은 노란색 진반을 하나 꺼내 들고는 입으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렸다.

노란 진법은 빛이 더욱 밝아지더니 석목과 서유금 주변에 드리운 노란빛이 짙어지며 빛줄기들이 순식간에 굵어졌다.

석목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몸에 금빛을 드리우며 토템 변신을 하여 격하게 몸을 흔들자 몸을 묶고 있던 노란색 줄기가 썩은 나무 줄기 처럼 끊어져 버렸다.

그리고 주먹을 휘둘러 맷돌만 한 눈부신 주먹 그림자를 날려 노란 광막을 내리치자 광막은 마치 달걀이 부서지듯 터져버렸다.

서유금도 회색빛을 드리우며 땅에서 뻗어 나온 줄기에서 벗어났다.

붉은 머리 사나이와 눈빛이 보라색인 청년은 그 광경을 보고는 안색이 어두워져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안 돼. 빨리 돌아와!”

하지만 이미 늦었다!

석목이 한 손을 휘두르자 화염이 나타나서는 하얀 화염벽으로 뭉쳤다.

날아오던 법보의 빛이 전부 화염벽에 떨어지며 순식간에 녹아버렸으나 벽은 조금도 뚫리지 않았다.

법보가 망가지자 몰려오던 놈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으며 심지어 몇몇은 입으로 피를 쏟아냈다.

석목이 손가락으로 앞을 가볍게 짚자, 화염벽이 터져버리며 하얀 화염구 스무 개로 변하여 석목을 공격해오던 사람들에게로 날아갔다.

“으아아아!”

울부짖는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고, 적들은 성계 초기 두 명만 도망갔을 뿐 나머지 스무 명 정도 되는 천위 경지 강도들은 전부 불타버려 재로 변하였다.

석목의 눈에 기분 좋은 빛이 맴돌았다. 구전 현공을 여섯 번째 단계까지 수련하자 첫 번째 단계인 양의 힘이 훨씬 강해졌다.

석목은 머릿속으로 현공을 떠올리며 공격을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석목은 곧바로 몸을 날려 순식간에 성계 초기 두 명을 따라잡으며 다시 여의빈철곤을 꺼내들었다.

여의빈철곤에서 금빛이 번지더니 두 갈래 곤봉 그림자가 번개 같은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두 성계 초기는 소리도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머리가 터져버려 성배 원신마저 도망가지 못했다.

한편, 서유금은 회색빛을 뿜어내는 기괴한 장검을 들고 있었는데 장검에서 사나운 회색 검기가 뿜어져 나와 단번에 천위 열 몇 명와 성계 초기 한 명을 해치웠다.

붉은 머리 남자를 비롯한 두 명은 얼굴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부하들이 전부 죽어버렸다.

사나이는 화가 치밀어 올라 소리를 지르며 붉은 깃발에 문양을 줄줄이 밝혔다가 ‘훅!’ 소리와 함께 화염을 피웠다.

사나이의 몸에서도 붉은빛이 줄줄이 나타났으며 이마에서는 ‘왕(王)’자 모양 꽃무늬가 나타나 뿜어내는 기운이 훨씬 강력해졌고, 사나이는 붉은빛으로 변하여 석목에게로 날아왔다.

눈동자가 보라색인 청년도 소리를 지르며 굵은 낭아봉 법보를 꺼내 들고는 서유금을 덮쳤다.

청년도 몸에 보랏빛이 크게 번졌다. 머리에는 뾰족하고 구부러진 뿔이 자라며 소머리로 변했고, 보라색 번개가 구부러진 뿌리를 감았다.

“화염호문! 자전우각! 염호 일족(炎虎壹族)과 자정마우 일족(紫睛魔牛壹族)이잖아!”

서유금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염호 일족……”

석목은 붉은 머리 사나이가 변신을 하는 걸 바라보며 동공이 흔들렸다.

붉은 머리 사나이는 서유금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석목에게로 날아와 손에 든 붉은 깃발에 화염을 더 크게 드리우며 석목을 내리쳤다.

쿵!

커다란 화룡이 깃발에서 튀어나와 흉악한 이를 드러내며 석목을 덮쳤는데 주변 수십 장이 순식간에 뜨거워지며 땅마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화룡이 날아 나오는 순간 굵은 곤봉이 화룡을 내리쳤다.

펑!

화룡은 터져버렸다.

금색 곤봉은 기세가 전혀 줄어들지 않은 채 붉은 머리 남자를 향해 밀려가며 바람 소리를 일으켰고, 공기도 격하게 흔들렸다.

“하!”

붉은 머리 사나이는 눈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 이어서 포악한 기운과 함께 몸이 순식간에 공처럼 불어나더니 몇 배나 더 커졌다.

피부에선 붉은 꽃무늬가 층층이 나타났으며 울퉁불퉁한 근육도 더욱 선명해졌다.

사나이는 두 손으로 붉은색 깃발을 잡고는 여의빈철곤을 맞이했다.

쾅!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붉은 머리 사나이는 안색이 어두워졌고, 강력한 힘이 몰려와 사나이의 몸통이 뒤로 밀려나며 부숴진 암벽에 강하게 부딪혔다.

쾅!

벽이 부서지자 붉은 머리 사나이의 몸도 무겁게 땅으로 떨어졌다.

석목은 뒤로 살짝 밀려나더니 곧바로 몸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는 입으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리자 몸에 노란빛이 크게 번지더니 발로 땅을 ‘쿵!’ 하고 내리찍었다.

땅에서 번지던 빛이 사슬로 이어져 단번에 붉은 머리 사나이를 꽁꽁 묶어버렸다.

붉은 머리 사나이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몸에 두른 붉은 화염으로 노란 사슬을 끊어내려 했지만, 노란 사슬은 매우 단단했기에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순간, 커다란 손바닥이 나타나 붉은 머리 사나이의 영해를 내리쳤다.

검은빛과 하얀빛이 손바닥에서 튀어나와 혼돈의 봉인을 이루며 붉은 머리 사나이의 영해 속으로 들어갔다.

붉은 머리 사나이는 몸에 번지던 화염이 흩어져 버렸으며 표정도 멍했고, 영해에 중압감이 더해져 진기를 조금도 쓸 수가 없었다.

영해에 깃든 진기를 쓸 수 없게 되자 사나이의 몸통도 빠르게 작아져 원래 크기로 돌아왔으며 변신도 해제되었다.

석목이 손바닥을 거두어들이고는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서유금과 눈동자가 보라색인 청년은 여전히 격전을 치르고 있었다. 비록 서유금이 이기고 있는 것 같았지만 단번에 끝내버리지는 못할 것 같았다.

눈동자가 보라색인 청년은 붉은 머리 사나이가 제압을 당한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란 얼굴로 보랏빛으로 변하여 멀리 도망가려고 했다.

서유금은 안색이 어두웠다. 석목은 이미 상대를 제압했는데 자신은 아직 꾸물대고 있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이어서 서유금이 콧방귀를 뀌더니 몸에 회색빛을 크게 드리우며 등 뒤로 커다란 회색 쥐의 허영을 만들었다.

두 갈래 희미한 빛이 번개처럼 빠르게 날아와 눈동자가 보라색인 청년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눈동자가 보라색인 청년은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쿵!’ 바닥에 떨어졌다.

서유금은 손에 든 회색 장검에 빛을 크게 드리우며 굵은 검영으로 뭉쳤다.

“서 형, 우선 죽이지 마세요.”

이때, 석목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말을 들은 서유금은 눈에 빛을 반짝이며 회색 장검을 거두어들였고, 장검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도 사라졌다.

그리고 서유금이 손을 흔들자 검은빛 한 줄기가 손에서 튀어나왔는데 검은색 밧줄 법보였다. 밧줄 법보가 청년을 꽁꽁 묶어버렸다.

서유금은 한 손으로 청년을 잡아서 석목 옆으로 날아갔다.

펑!

눈동자가 보라색인 청년이 붉은 머리 사나이 옆으로 던져졌다.

둘은 눈을 한번 마주치더니 고개를 숙였다.

“너희는 대체 누구냐? 어떻게 이 비경의 입구를 알게 되었지?”

서유금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르신들, 우리는 부촉성의 도굴꾼들입니다. 얼마 전 어르신께서 여길 드나드는 모습을 보았는데 방 형이 어르신의 신분을 알아봤기에 몰래 따라가다가 여길 알게 되었습니다.”

붉은 머리 사나이가 멈칫하더니 말했다.

서유금이 눈썹을 추켜세웠다.

비천서 일족은 부유하기로 유명했다. 비천서 일족이 몰락한 후로 부촉성에 와서 보물을 찾는 사람도 많아졌으니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렇게 조심해서 행동했는데 따라오는 것도 몰랐다니.

“저희 눈알이 삐었습니다. 어르신들 살려주십시오.”

눈동자가 보라색인 가진 청년이 빌며 말했다.

“석 형, 어떻게 할까요?”

서유금이 석목을 바라보았다.

“염화 일족과 자정마우 일족 사람들은 그래도 팔황고족인데 왜 강도짓이나 하고 있는가?”

석목이 물었다.

붉은 머리 사나이는 그 말을 듣더니 망설였다.

“사실대로 말하고 싶지 않으면 나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마.”

석목이 담담하게 말하며 손에서 눈부신 금빛을 뿜어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사실대로 고하겠습니다! 선배님, 염호 일족은 이미 몰락하여 온 종족이 숨어서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평생 숨어사는 것이 억울해서 혼자서 도망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부촉성에서 강도짓이나 하며 명을 이어가고 있었습죠.”

붉은 머리 사나이가 급히 사실을 털어놓았다.

“아……”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동자가 보라색인 청년을 바라보았다.

“어르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종족에서 배척을 당해 혼자 도망 나와 이곳으로 왔습니다.”

눈동자가 보라색인 청년이 말했다.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들은 석목은 잠깐 침묵을 하더니 물었다.

“너희 종족이 처한 상황은 어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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