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7화. 성녀 데릴사위
“신경 중기!”
그 말을 들은 석목이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기는 했으나 심장은 덜컹했다.
신경의 경계들 사이에는 엄청난 실력 차이가 있어 하늘과 땅 차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천봉 일족이 천하 성역의 삼대 종족이라 불리는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신경이 일곱 명이나 있을 뿐만 아니라 진 부인이라는 사람만 봐도 이렇게 대단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미천거원 일족은 비비지도 못할 실력이었다.
“조금 전에 내뿜은 금색 화염은 엄청 대단한 것 같은데 혹시 무슨 신통인지 아십니까?”
석목이 물었다.
“천봉 일족은 불속성, 속도, 공간 신통을 주로 쓰죠. 조금 전에 쓴 금색 화염은 아마 천봉 일족의 유명한 신통인 현강금염(玄罡金焰)일 겁니다. 천봉 일족에서도 이 화염 신통을 수련한 자는 몇 없다고 들었네요.”
서유금이 말했다.
“현강금염!”
석목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이름을 새겨두었다.
예전에 종수를 데려간 사람도 이 금색 화염을 시전했다. 천봉일족 안에서도 이 신통을 수련한 자가 많지 않다고 하니 종수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예상치도 못한 일들을 겪게 되자 입구에서 치러지는 확인 작업은 더욱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대전에서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은 더 적극적으로 확인 작업에 임했으며 곧바로 석목 일행의 차례가 다가왔다.
“저는 석목이라고 합니다. 미천거원 일족이죠. 천봉 일족의 성녀 수임 축전을 축하하러 왔습니다.”
석목이 미천거원 일족의 장로 영패를 꺼냈다.
“미천거원 일족!”
천봉 일족 사람은 안색이 변했다.
팔황고족의 이름은 이미 사람들에게 많이 잊혀졌지만 천봉 일족 사람들이 미천거원을 모를 리는 없었다.
미천거원 일족은 이미 바깥 세계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어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니 조금 당황스럽긴 할 터였다.
서유금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으나 안화와 방진은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석목은 두 사람에게 신분을 노출하지 않았었다. 석목의 신분이 절대 평범하지 않으리라고는 예상했지만 미천거원 일족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붉은 갑옷을 두른 사나이가 영패를 들고는 한참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영패를 석목에게 돌려주었다.
“미천거원 일족의 벗이군요. 들어오세요!”
사나이가 공손하게 말했다.
서유금, 방진, 안화도 각자의 신분을 증명할 물건들을 꺼냈다.
붉은 갑옷을 두른 사나이는 안색이 계속해서 바뀌었다. 석목 일행은 전부 예전에 천봉 일족과 나란히 팔황고족에 속했던 종족이었기 때문이었다.
“여러분들이 우리 봉익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러분들은 특별한 신분이시니 따로 거처를 배정해드릴까요?”
사나이가 침묵을 깨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저희는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요.”
석목이 담담하게 말하고는 사나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장 먼저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일행들은 빠르게 사라졌다.
붉은 갑옷을 두른 사나이는 석목 일행이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사람을 불러 귀에 대고 뭐라 말을 전했다.
그러자 말을 전해들은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다른 곳으로 향했다.
석목을 비롯한 네 사람은 봉익성 안에 도착했다. 봉익성의 공기 속에는 화염 기운이 훨씬 짙었으며 하늘과 땅이 모두 옅은 붉은색이었다.
여기는 건물들마저 붉은색이 주를 이루었다.
성시의 길거리는 매우 번화했으며 규모가 큰 상점들이 곳곳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붐볐기에 걸어가는 내내 어깨를 계속 부딪쳤다. 석목이 천하 성역에서 봤던 그 어떤 성시보다 적어도 열 배는 더 번화한 것 같았다.
* * *
며칠 뒤, 주작성.
봉익성은 주작성에서도 남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성벽을 백 장 높이까지 쌓아 올린 웅장한 성시였다. 성벽은 적요석(赤曜石)으로 빚었으며 벽에는 온통 화염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커다란 치류동(熾琉桐) 나무문 두 개가 양쪽으로 열려있었으며 문에는 화봉 그림이 절반씩 새겨져 있는 것이 매우 화려하고도 아름다웠다.
성벽의 입구에서 사람들과 마차가 끊임없이 지나갔다. 다양한 복식을 입은 생김새가 기이한 요족들이 성시로 몰려오고 있었다.
성문 바로 앞 주작대로에도 사람들이 붐볐다. 그리고 모양이 다양한 기와를 얹은 건물들이 촘촘히 서 있었다.
상점들과 건물들마다 나무가 한둘씩 뻗어 있었는데 위에는 붉은 깃발이 걸려있어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북쪽으로 백 장 정도 뻗어 나간 길 왼쪽에 높이가 십 장인 삼 층짜리 주루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주루 꼭대기에서 거리와 가까운 창가에는 붉은 나무 탁자가 놓여있었으며 그 탁자에 네 명이 앉아있었다.
그중 키가 훤칠하고 용모가 단정한 사람 한 명이 때마침 찻잔을 들고 있었다. 그 사람은 잔을 들어 입이 아닌 어깨로 가져다 댔다.
어깨는 깃털이 화려한 앵무새 한 마리가 뾰족한 입을 찻잔에 가져다 댔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선 입가심하고는 찻물을 뱉어 냈다.
그리고 나머지 세 명도 전부 개성이 있게 생겼다. 그 중 한 사람은 머리가 붉었으며 한 사람은 눈동자가 보라색이었다.
이들은 석목 일행이었다.
“천봉 일족은 역시 명문 종족인 것 같습니다. 성녀 수임 축전을 한 번 여는데 요계의 다양한 세력들이 모두 와서 축하를 한다니, 대단합니다.”
서유금이 부러운 얼굴로 감탄을 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도 한때는 팔황고족이었는데 지금은…… 휴……”
안화가 한숨을 내뱉으며 술을 한 잔 들이켰다.
방진은 아무 말도 없이 술만 마셨다.
“십 장 정도 떨어진 곳 마다 천봉 일족의 복식을 입은 수비병이 한두 명씩 지키고 있습니다. 길 양옆에 들어선 건물에도 적잖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것 같으니 이번 수임 축전을 치르는 건 그리 순조롭지는 않겠네요.”
석목이 찻잔을 내려놓고는 시선을 다시 거두어들이며 말했다.
“공자, 모르세요? 이번 천봉 일족의 축전은 단순히 새로운 성녀를 수임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목적이 있어요. 그것은 성녀를 위해 쌍수(*雙修: 남녀가 함께 수련하다.) 배필을 찾는 거죠.”
안화가 그 말을 듣더니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이 조금 놀랐다. 미천거원 일족에서 전해들은 소식은 수임 축전만 열린다고 들었을 뿐, 데릴사위와 관련된 일은 전혀 듣지 못했다.
허나 미천거원 일족은 근황을 아무도 몰랐으며 초대장마저 받지 못한데다가 이번 일은 종족에서 작게 넘어가려 했으니 석목이 모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 쌍수 배필이라. 그럼 성녀가 천봉 일족에서 갖는 지위로 봤을 때, 협력이나 마찬가지인 게 아닌가?”
그 말을 들은 서유금이 순간 정신을 차리며 다급하게 물었다.
“그런 의미가 있긴 하지요. 그러니 요족들이 전부 여기로 모인 겁니다. 명성이 있는 세력들은 전부 대표를 선발해 이 축전에 참여시켰어요.”
안화가 말했다.
“이번 쌍수 선발에 요구 조건이나 제한이 있나?”
석목이 침묵을 한 후에 물었다.
“물론 있습니다. 우선 천하 성역에서도 유명한 종족 출신이어야 하며 천봉 일족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천봉 일족이 보낸 초대장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각 종족에서 우수한 제자를 보내 축전에 참여시켰지요. 그 다음으론 천봉 일족에게 충분한 축하 선물을 보내야만 시합에 참여할 자격이 생기죠.”
계속 침묵만 지키던 방진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대결을 한다고?”
채아가 물었다.
“당연하죠. 천봉 일족의 성녀와 함께 할 배필을 뽑는 일인데 무능한 자를 뽑을 수는 없잖아요? 대결에 참여하는 종족들의 제자들은 여러 차례 힘겨운 대결을 치러야만 하죠. 그중에 십 등 안에 들어가면 적잖은 포상도 받게 된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일 등은 천봉 일족의 성녀를 아내로 맞을 기회도 부여되며 천봉 일족과 친밀한 연합을 할 수 있게 되지요.”
방진이 계속해서 말했다.
“히히, 재미있는데. 이건 평범한 세상에서 여는 ‘비무초친(*比武招親: 신랑 후보들이 무술 대결을 하는 것.)과 같잖아. 그런데 성녀가 예쁜지, 못생겼는지, 뚱뚱한지, 말랐는지는 모르겠네?”
채아가 웃으며 말했다.
“천봉 일족과 연합을 맺을 기회가 생기는데 성녀가 어떻게 생겼는지 뭐가 중요하겠어?”
서유금의 눈에서 뜨거운 빛이 번쩍였다.
“혹시 성녀가 사나운 여자면 어떻게 해? 데려가도 감당하지 못할걸?”
채아가 고개와 날개를 동시에 흔들며 말했다.
“채아 어르신, 그 말은 틀렸어.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성녀는 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녀처럼 예쁘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수련 경지까지 갖췄다나. 세력이 막강한 종족의 제자들이 거리에 몰려드는 꼴을 봐. 어떻게든 해보려고 난리잖아.”
방진이 웃으며 말했다.
“석두, 선녀처럼 예쁘대. 너도 해봐.”
채아가 음흉한 웃음을 내비치며 말했다.
채아가 하는 말을 들은 방진과 서유금은 멈칫하더니 전부 석목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석목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먹보야. 우리가 이번에 왜 왔는지 잊었어? 그럴 이유가 없는데 왜 성녀를 맞는 대결에 참여하겠어?”
“석 형이 만약 이번 대결에 참여하신다면, 저는 기회를 다 잃게 되는 셈이에요.”
석목이 말을 꺼내자 서유금이 긴장을 풀며 말했다.
그때 방진이 다급하게 말했다.
“만약 공자가 참여하신다면 각 종족의 젊은이들 중엔 공자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너도 대결에 참여하려고?”
석목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
“공자, 방진 이 녀석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자세하게 알지도 못했을 테죠.”
안화가 웃으며 말했다.
“실은 우리가 도둑질을 한 이유도 이번에 축하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서 꾸민 일이었죠.”
방진이 망설이며 말했다.
“축하 선물은 종족에서 가져와야지.”
채아가 말했다.
방진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희 자정마우 일족과 천봉 일족은 많은 거래를 하고 있어요. 그리하여 종족에서도 대표를 보내 이번 축전에 참여하게 되었고, 심지어 배필 선발에도 참여하게 되었어요. 헌데 저는 종족의 직계 혈맥이지만 종족 사람들이 중요시 여기지 않으니 당연히 저를 대결에 내보내지 않겠죠. 그리하여 저 혼자 이렇게 나와서 방법을 찾아다니던 중이었고요.”
“너 따위가? 대결에 참여해서 성녀의 배필이 될 자격이 있다고? 너무 분수를 모르는 게 아니야?”
그 말을 들은 서유금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저…… 시도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압니까?”
방진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석목이 있어서 제멋대로 움직이지는 못했다.
“하하, 웃기고 있네. 초대장도 없는데다가 축하 선물도 없잖아?”
서유금이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방진은 멈칫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술 주전자를 들어 전부 들이켰다.
“천봉 일족도 정말. 성녀의 배필을 찾으려면 실력만 보면 될 걸 왜 축하 선물까지 보내라고 해서 사람을 이렇게 난감하게 만드는 거야. 이렇게 되면 수많은 종족의 우수한 제자들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할 게 확실하잖아?”
방진이 어색하게 앉아있자 안화가 마음이 쓰이는 듯이 말했다.
“그렇다고 천봉 일족을 탓할 일도 아니지.”
석목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