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8화. 담보
“공자,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안화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
방진도 멈칫하며 석목을 바라보았다.
“천하 성역은 천정이 오랫동안 넘보던 곳이야. 천봉일족은 천하 성역의 삼대 종족 중에 하나니 천정과 맞서 싸우는 주요 세력이지. 충분한 물자와 자원이 받쳐줘야 하니 당연히 그런 보물들을 찾아볼 수밖에 없어. 이 밖에도 성녀의 데릴사위를 찾는 본질은 더 많은 힘을 모으기 위해서 그런 거니 막강한 종족의 힘이 받쳐주는 사람이 필요할 거야. 그래야만 또 천봉 일족을 도와줄 수 있는 능력도 될 테고.”
석목이 설명을 했다.
“그러니까 천봉 일족이 축하 선물을 받는 이유는 천정과 싸우기 위하여 자금을 마련하는 셈이나 다름이 없다는 거네요?”
서유금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안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방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푹 떨구었고, 석목이 방진을 바라보았다.
“방진, 너희 종족에서도 대결에 참여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잖아. 누군지 알아?”
석목이 물었다.
방진이 고개를 들었다. 보라색 눈에서 분노가 스쳤다.
“아마 제 이복형제인 방책(方策)일 거예요. 저와 마찬가지로 친족이지요. 하지만 방책의 어머니는 천하망족(天河望族)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종족에서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자랐죠. 그리고 실력도 뛰어나니 아마 이번 대결에 그 자가 나올 거예요.”
“그럼 형제는 수련 경지가 어떤가? 자네가 이길 가능성은 있나?”
석목이 침묵하더니 물었다.
“제가 종족에서 나올 때, 이미 성계 후기에 올랐죠. 실력이 저와 비슷하긴 하나 저는 이길 자신이 있어요.”
방진이 잠깐 고민하다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서 형, 논의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괜찮습니까?”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갑자기 서유금을 바라보며 물었다.
“석 형,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에요. 저는 비천서 일족이지만 우리 일족은 지금 몰락한 상황이라 남아있는 게 그리 많지 않아요.”
서유금은 이미 예상한 듯이 눈알을 굴리며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
“방진이 갖춘 실력을 잘 알지 않습니까? 이번 대결에서 일족의 형제인 방책을 이길 수만 있다면 종족에서 지위를 뒤엎을 큰 기회죠. 그때 다시 몇 배로 돌려달라고 하면 더 좋은 게 아닌가요?”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방진은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안화도 석목을 바라보는 눈빛이 확연히 달라졌다.
“만약 이길 수만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이기지 못한다면 제 투자는 전부 물거품이 되겠죠.”
서유금은 손바닥을 비비며 여전히 망설이는 듯이 말했다.
“장사라는 게 다 그렇지 않나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없죠. 서 형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다시 도적질이나 할 텐데요? 그럼 부촉성은 도적떼가 들끓는 곳이 되겠네요.”
석목이 눈썹을 살짝 치켜뜨더니 깊은 뜻이 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서유금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리고 눈알을 데구루루 굴리더니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석 형이 말씀하시는 거라면 저 또한 거절할 수 없겠지요. 제 걱정은 석 형의 약속 한 마디면 해결이 됩니다. 석 형이 담보를 해주시면 제가 도와주지요.”
“좋아요. 제가 담보하지요.”
석목은 망설이지 않고는 곧바로 대답했다.
그러자 방진이 깜짝 놀라 석목을 바라보며 정중히 말했다.
“공자께서 이렇게 믿어주시니 은혜를 꼭 갚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죽을 힘을 다해서라도 공자를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요.”
석목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 서 형, 전에 천봉 일족에 현강금염 신통을 수련한 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했었는데 혹시 알아낸 정보가 있나요?”
석목이 서유금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이미 알아냈습니다. 지금 현강금염을 수련한 사람은 총 세 명입니다. 자세한 정보는 여기에 있습니다.”
서유금이 옥간을 하나 꺼내서 석목에게 주었다.
석목이 감사 인사를 하더니 신식으로 옥간을 훑어보았다.
옥간에는 세 사람의 정보가 적혀 있었으며 움직이는 그림도 있었다. 세 명은 전부 신경 강자였다.
한 명은 전에 봤던 진 부인, 또 다른 한 명은 중년 남자였으며 세 번째는 머리에 봉관을 올린 채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이었는데 그림으로만 보아도 신성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석목은 몸을 파르르 떨었다. 바로 이 여자였다!
비록 종수가 끌려갈 때 석목은 혼미했지만, 이 사람이 내뿜는 기운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신성한 느낌이었다.
“서 형, 무슨 연유로 이 일을 알아봐 달라고 하신 겁니까?”
서유금이 물었다.
“이유가 있습니다. 서 형이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꼭 이 은혜를 갚을 게요.”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석 형, 그런 말씀 마세요. 우리는 이제 좋은 벗인데 서로 도와주는 건 당연한 일이죠.”
서유금이 후후 웃으며 말하더니 눈에서는 화색이 돌았다.
석목 같은 사람을 도와주면 나중에 큰 쓸모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석목이 부탁한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꽤 괜찮은 거래였다.
이때, 주루 밑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며 오만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이 거기, 꼭대기 층에 있는 놈들을 좀 밖으로 내보내. 지금 손님 접대를 해야 하는데 우리가 식사하는 걸 방해하면 이 주루도 문 닫아야 할 줄 알아!”
석목이 미간을 찌푸렸다.
“누가 이렇게 오만하게 구나? 이 봉익성에서.”
서유금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가장 앞장서서 걸어온 청년은 금색 피풍의를 두르고 있었으며 끄트머리에 붉은색 꽃무늬가 수놓아져 있었다. 옷자락에 봉황 그림이 수놓인 걸 보니 천봉 일족이 입는 복식이었다.
석목이 눈빛을 반짝였다. 천봉 일족에서도 적계(*嫡繼:적실 혈통)였으니 이렇게 오만스럽게 굴었지.
봉익성에서 이틀을 보내며 석목은 천봉 일족에 대해 꽤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금색 복식은 천봉 일족에서도 적계 제자들만 입을 수 있는 복식이었다. 보통 제자들은 전부 붉은 복식을 입었다.
금색 피풍의를 두른 청년은 용모가 꽤 괜찮았다. 하지만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전혀 호감이 생기지 않았는데 수련 경지는 성계 중기였다.
청년의 뒤에서 몇몇 사람이 따라 나왔는데 붉은 갑옷을 두른 눈썹이 짙은 사나이 말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보라색 피풍의를 두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두 눈에서 옅은 보랏빛이 흘러나왔다.
석목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고개를 들어 방진을 한 번 바라보았다.
방진은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사람들을 노려보며 몸이 굳어버린 것 같았으며 두 손은 부서질 듯이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사람들도 방진을 보더니 안색이 변했다.
“어이, 내 말 안 들려? 빨리 다 꺼지라고 해. 이 층은 나만 쓸 거야!”
금색 피풍의를 두른 청년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차갑게 말했다.
꼭대기 층에서 식사를 하던 사람들은 금색 피풍의를 두른 청년의 복식을 보자 전부 얼굴이 퍼렇게 질려 허겁지겁 밖으로 나갔다.
석목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만 조용히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여 유난히 눈에 띄었다.
“너희는 귀가 안 들리는 거냐? 살고 싶으면 빨리 꺼져. 너희가 먹은 건 내가 사도록 하지.”
금색 피풍의를 두른 청년은 석목 일행을 바라보며 얼굴이 구겨질 정도로 지껄였다.
“천봉 일족은 천하 성역 삼대 종족 중에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천봉 일족의 성녀 수임 축전에 참여하러 왔는데 당신은 천봉 일족의 적계 제자면서 이렇게 손님을 막 대하다니요. 정말 듣기와는 다르군요.”
서유금이 부채를 쫙 펼쳐 들고는 천천히 흔들면서 말했다.
부채에 금색 쥐 그림이 새겨져 있었는데 금색 쥐가 커다란 금 원보를 안고 있는 모양새는 매우 익살스럽고 귀여웠다.
“그러니까, 공간이 이렇게 큰데 너희 몇 사람이 앉을 자리가 없겠어? 아, 알겠다. 다들 먹는 모습이 돼지 같아서 남들 앞에서 음식을 씹지 못하는구나. 그렇지?”
채아가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이 새대가리가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죽지 못해 안달이 났나!”
금색 피풍의를 두른 청년은 화가 치밀어 올라 붉은빛을 번쩍였다.
“어르신, 화 내지 마십시오.”
옆에 서 있던 붉은 갑옷을 두른 사나이가 서유금이 든 부채를 보며 안색이 어두워져서는 금색 피풍의를 두른 청년의 귀에다가 대고 속삭였다.
금색 피풍의를 두른 청년이 서유금의 부채를 바라보자 안색이 변하였다.
“금서상회(金鼠商會)!”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사람들도 서유금의 부채를 보고는 안색이 굳었다.
금서상회는 비천서족이 경영하는 거대한 상회였다. 그들이 펼친 사업은 천하 성역에 자리한 성시 대부분에 퍼져있으며 천봉 일족과도 많은 거래를 했다. 그리하여 비천서 일족은 이미 몰락하였지만,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조역(趙易) 형, 오늘 초대 해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요. 식사나 한 끼 하는 건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죠.”
얼굴이 네모난 청년이 보라색 피풍의를 두른 무리 속에서 걸어 나와 후후 웃으며 말했다.
말하는 동안 방진을 훑어보던 청년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금색 피풍의를 두른 청년이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래요. 방 형이 이렇게 말씀하시니. 흥!”
주루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금색 피풍의를 두른 청년 일행을 다른 자리로 안내했다.
네모난 청년은 잠깐 멈칫했다가 방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방진, 예전에 가족을 떠나더니 너도 봉익성에 왔구나. 혹시 축전에 참가하려는 건가?”
“너도 봉익성에 오는데 나는 오면 안 돼?”
방진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 아무나 올 수 있겠지. 하지만 대결에 참가하려면 축하 선물부터 준비해야 할 거야.”
청년이 비아냥거리며 웃더니 방진을 한번 흘겨보고는 곧바로 금색 피풍의를 두른 청년에게로 향했다.
“저 자가 방책인가?”
석목이 네모난 얼굴 청년의 모습을 한번 쳐다보고는 말했다.
“네. 배다른 형제입니다. 자정마우 일족을 대표하여 축전에 참가하는 것 같네요.”
방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이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비록 방책의 경지는 성계 후기에 도달했지만 기운 파동이 심한 걸 보니 최근에 억지로 경지를 끌어올린 게 분명했다. 정말 맞붙어 싸우게 된다면 아마 성계 중기보다도 못할 터였다.
서유금은 눈에 화색이 스쳤다.
방책이라는 자는 아무리 봐도 얼뜨기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방진에게 한 투자가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서유금은 석목을 바라보며 두 손을 비벼댔다.
서유금에게 석목은 정말 복덩어리였는데 석목을 만나고부터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렸기 때문이었다.
* * *
방책 일행이 난동을 피우자 석목 일행은 흥미가 떨어져 식사를 빨리 마치고는 주루에서 나왔다.
날이 점점 어두워져 길거리에 등불이 켜졌다. 하지만 지금도 인파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고, 여전히 시끌벅적한 모습이었는데 오히려 낮보다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 같았다.
석목은 사람들을 살펴보며 의아해했다.
대부분 사람이 전부 한 곳을 향해서 가고 있었는데 거긴 천봉 일족이 있는 곳이었다.
“이상하네. 이 사람들이 전부 천봉 일족에게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채아도 눈치를 챘는지 중얼거렸다.
“아, 깜빡했네요. 수임 축전 전에 환영회가 있는데 바로 오늘 밤이죠. 천봉 일족을 비롯한 삼대 종족의 관사들이 축하를 하러 온 사람들과 먼저 만나는 자리예요.”
서유금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채아가 눈을 반짝였다.
“아, 그런 일이 있었나요?”
석목이 멈칫했다.
“석 형, 이 환영회는 뒤에 열리는 축전만큼이나 규모가 큰 축제죠. 미리 가서 삼대 종족에서 한 자리를 하는 인물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우리는 지금 할 일도 없으니 가서 구경이나 할까요?”
서유금이 말했다.
방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살짝 쥐었고, 안화는 별다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는 가지 않을래요.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니 먼저 가서 구경하세요.”
석목이 침묵을 깨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 석두, 구경하러 안 갈 거야?”
채아가 투덜거렸다.
“공자, 무슨 일이죠? 저희가 도와드릴까요?”
안화가 물었다.
“공자, 무슨 일이죠? 괜찮으시다면 저희가 처리할게요.”
방진도 같은 말을 했다.
“아니네. 큰일이 아니니 나 혼자면 충분하지. 흥미가 있으면 서 형과 함께 환영회에 가보도록.”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안화와 방진이 대답했다.
채아는 서유금 일행이 멀어져가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만 봐. 이제 가자.”
석목이 자리에서 잠깐 서 있다가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