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679화 (679/916)

679화. 천봉족에 잠입하다

그리고 근처 골목을 따라 이리저리 굽이돌아 인파 속에 묻혀 높은 벽 앞으로 다가왔다. 벽 앞에는 큰 문이 하나 있었으며 양쪽에는 천봉족 수비병들이 득실거렸다.

“석두, 할 일 있다며. 왜 이 성시에 온 거야?”

채아가 큰 문과 인파를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이 성시에 볼일이 있어.”

석목이 걸음을 재촉하며 말했다.

봉익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나뉘었다. 외성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구역이며 누구든 드나들 수 있었으나 내성은 천봉 일족이 거주하는 곳이라 천봉 일족 사람들만이 드나들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저녁에 환영회를 열어 성문이 열려있었다.

석목은 인파를 따라 내성으로 들어갔다.

내성도 부지가 작지 않았으며 봉익성 구역 중에 삼분의 일을 차지하는 것 같았다.

주변에 건물이 이어져 있었지만 번화하고 시끌벅적한 외성과 달리 훨씬 조용했다. 그리고 엄숙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대문에는 영접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내성에 들어온 각 종족에서 온 사람들은 이곳에서 풍기는 분위기 때문인지 전부 침묵을 지키며 영접하는 사람의 안내에 따라 앞으로 향했다.

석목도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채아도 여기저기 훑어보았지만 눈치를 살피느라 너무 빤히 쳐다보지는 않았다.

잠시 후에 커다란 광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길 옆에 선 천봉족 사람들이 지금 들어오는 사람들을 엄격히 통제했다.

석목은 눈에서 금빛을 뿜어냈다. 길 양옆에는 미세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그것들은 탐측하기 어려운 정교한 진법이었다. 누구든지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몰래 여길 통과하려고 한다면 들키고야 말 터였다.

석목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석두, 환영회에 가려는 건 아니지?”

채아가 주변을 훑어보며 심신으로 전음을 보내서 물었다.

“여긴 수비가 매우 삼엄한데 혹시 뭐 발견한 게 있어?”

석목이 물었다.

“지하에도 진법이 포진되어 있는데 매우 얇아. 네가 지닌 흙의 힘으로 토둔을 시전하고서 내 시력까지 합치면 아마 들키지 않을 거야.”

채아의 목소리가 석목의 마음속에서 울렸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자.”

석목이 좋아하며 대답했다. 그리고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는 앞으로 걸어가는 듯했는데 점점 위치가 인파 사이에서 뒤로 밀려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파는 골목을 돌아 흘러갔다. 이 골목만 돌아 가면 수비병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석목이 입을 중얼거리며 몸을 흔들자 순식간에 땅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석목 앞에서 걸어가던 사나이가 의아한 기색을 드러내며 고개를 돌려 쳐다보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등 뒤에 분명 누군가가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사나이는 주변을 한번 훑어보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잘못 봤다고 생각했다.

* * *

석목은 이미 노란빛으로 변하여 땅속 깊은 곳에 도착했다.

땅속에는 부문에서 나는 빛이 촘촘하게 펼쳐져 큰 거미줄 같은 진법을 형성하였다.

석목은 온 힘을 다해 구전현공을 시전하여 몸을 가장 작게 줄였다. 그리고 한 갈래 얇은 빛으로 변하여 거미줄 같은 진법 틈을 이리저리 비집으며 다녔다.

석목은 고개를 돌려 진법을 바라보았는데 진법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긴장을 풀었다.

노란빛을 반짝이며 석목은 먼 곳까지 잠입했다. 채아가 시력으로 도움을 주어 석목은 곧바로 어두운 곳에서 땅 위로 올라왔다.

석목이 다시 입으로 중얼거리자 몸이 투명하게 변하여 희미한 그림자가 되더니 내성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석두, 종수 누나를 찾을 거야? 그런데 천봉 일족이 이렇게 큰데 어떻게 찾으려고?”

채아가 석목의 어깨에 앉아 전음으로 물었다.

“걱정 마. 내게 방법이 있어.”

석목이 말했다.

내성에도 건물이 숲을 이루었으며 궁전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고, 유난히 삼엄한 이곳에는 순찰하는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지나다녔다.

궁전 곳곳에는 많은 금제 진법들이 설치되어있었다. 이 진법들은 너무 변화무쌍하여 평범한 사람이 아무리 조심해도 한두 개 정도는 부딪칠 터였다.

하지만 석목은 영목신통을 지녔으며 또 채아도 실력이 뛰어나 모든 금제를 다 발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석목은 매우 순조롭게 내성으로 잠입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수비가 점점 삼엄해졌다. 곳곳에서 순찰을 도는 수비병들이 무리를 지어 다녔다. 수비병들은 대부분은 천위 경지였으며 그중에는 성계 존재도 있었다.

석목이 이룬 경지와 실력으로 이 수비병들을 피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 * *

일각 후에 석목은 한 거처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채아와 시선을 연결하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석목은 기쁜 기색을 드러내며 몰래 낮은 정원으로 향했다.

정원에 자리한 방에서 천위 경지인 붉은 머리 청년이 눈을 감은 채 수련을 하고 있었다. 복식을 보니 수비병인 게 확실했는데 아마 지금은 휴식을 취하는 시간인 것 같았다.

붉은 머리 청년은 몸에서 빛을 번쩍이며 진기 파동을 흘려보냈다.

순간, 청년 앞에서 그림자가 반짝이더니 갑자기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났다.

붉은 머리 청년은 곧바로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는 눈을 번쩍 떴다.

이때,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손을 흔들자 옅은 안개가 붉은 머리로 드리웠다.

붉은 머리 청년은 눈앞이 캄캄해지며 정신이 희미해졌다.

그리고 그림자가 반짝이더니 석목이 나타났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석목의 분신이었다.

석목의 분신이 수련을 한 건 제대로 된 마계 마공이라 파괴력이 강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비술도 시전할 수 있었다. 분신이 조금 전에 시전한 비술은 혼을 어지럽히는 최면 비술이었다.

이 비술은 같은 경지에겐 아무런 작용도 일으킬 수 없었지만 붉은 머리 청년은 천위 수련자라 그 최면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천봉 일족 중에 종수라는 여인이 있는가? 수백 년 전에 남해성에서 여기로 왔지.”

석목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아니…… 들어본 적이…… 없어……”

붉은 머리 청년이 고개를 흔들었다.

석목이 실망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절대 쉽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조령롱(赵玲珑) 장로는 어디에 있는가?”

석목이 계속해서 물었다.

조령롱은 예전에 종수를 데려간 여자의 이름이었다.

종수를 찾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걸 알아 우선 조령롱을 찾은 다음에 다시 종수를 찾기로 결심했다.

“서쪽 구역…… 명염전……”

붉은 머리 청년은 눈빛이 희미해진 채로 말했다.

“지금 바로 내성의 지도를 하나 그려, 그리고 명염전의 위치를 제대로 찍어봐.”

석목이 옥간을 하나 꺼내서는 붉은 머리 청년에게 건네었다.

붉은 머리 청년은 멍한 표정으로 옥간을 받고는 신식으로 옥간을 훑었다.

잠시 후에 청년이 지도를 완성했다.

석목이 옥간을 다시 훑어보았다.

석목은 최면 비술을 쓰는 게 그리 익숙하지 않았다. 옥간에 그린 지도 그림도 매우 간략하여 큰 틀만 알아볼 수 있었으나 다행히 명염전의 위치는 제대로 찍어두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옥간을 거두어들였다.

“자라. 모든 건 다 꿈이야. 내일 일어나면 다 잊게 될 거야.”

석목이 말했다. 목소리는 매우 희미했으며 몽환적이었다.

분신이 두 손을 흔들며 검은빛을 청년의 머릿속으로 불어넣었다.

붉은 머리 청년이 몸을 비틀거리며 자리에 눕더니 잠이 들어버렸다.

분신은 비술을 시전하여 오늘 밤 청년의 기억을 지웠다. 다시 깨어나게 되면 오늘 밤에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지 못할 터였다.

“석두, 이런 것도 할 줄 알다니. 대단해.”

채아가 말했다.

“이 비술을 수련한 적이 없어. 그저 경지가 낮은 수련자 정도만 혼미하게 만들 수 있을 뿐이야.”

석목이 그리 말하며 분신을 거두어들이고는 정원에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옥간에 그려진 지도 표시를 따라 빠르게 서쪽 구역으로 갔다.

* * *

“석두, 저기 명염전이 앞에 있어.”

채아가 눈에 빛을 반짝이며 앞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눈에서 빛을 반짝이더니 신식을 보내 조심스럽게 앞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궁전 앞에 도착하여 어두운 곳으로 잠입했다.

궁전에는 붉은색 편액이 하나 걸려있었는데 편액에 ‘명염전(明焰殿)’이라는 세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었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렸다.

영목신통으로 바라보니 이 대전은 금제가 층층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여기 둘러진 금제는 조금 전에 지하에 드리운 금제와 완전히 달랐으며 매우 정교한 진법이라 절대 조용히 잠입할 수 없었다.

“채아, 고생스럽겠지만 영목으로 궁 안쪽 상황을 좀 봐줘.”

석목이 시선을 거두어들이고는 잠깐 침묵을 했다가 채아를 바라보며 심신으로 전음을 보내며 말했다.

“이 궁전 밖에는 금제가 너무 많아. 내가 온 힘을 다한다고 해도 투시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채아가 말해다.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자.”

석목이 말했다.

“알았어!”

채아가 그리 말하며 눈에 빛을 밝혔다. 일곱 가지 화려한 빛이 번갈아 나타나더니 빠르게 채아의 눈에서 흘러 다녔다.

석목은 두 눈을 감고는 채아와 시선을 연결했다.

시선을 연결하자 명염전을 겹겹이 둘러싼 금제가 천천히 투명해지며 안쪽 상황이 어렴풋이 보였다.

금빛이 흐르자 어렴풋이 보이던 광경이 점점 뚜렷해졌다.

이때, 채아가 힘겨운 기색을 드러내며 영롱한 빛을 점점 더 빠르게 흘렸다.

하지만 궁전에 금색 광막이 나타나더니 수많은 금색 부문이 광막에서 튕겨져 나왔다. 그러자 뚜렷했던 광경이 다시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채아가 온 힘을 다해 영목신통을 시전하였지만 여전히 광막을 조금도 뚫을 수 없었다.

석목은 채아가 힘겨워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서 그만해도 된다고 말하려고 할 때였다.

순간, 가벼운 목소리가 궁전에서 흘러나왔다.

“누구냐, 감히 염탐하다니!”

화난 목소리와 함께 반짝이며 얇은 금빛 화염이 튀어나왔다.

석목이 깜짝 놀라 도망을 가려고 하려다 다시 멈춰 섰다.

금색 화염은 석목에게 향한 게 아니라 다른 쪽 허공에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퍽!

허공이 부서지며 검은 기운을 두르고 있던 그림자가 나타났다. 검은 그림자는 금빛 화염에 부딪쳐 몸이 불타올랐다.

하지만 검은 그림자도 실력이 매우 뛰어났다. 불이 붙은 와중에 낮게 소리를 지르자 검은 기운이 더욱 강력해져 순식간에 금빛 화염을 꺼버렸다.

그림자는 손을 들어 허공을 살짝 그었다. 그러자 허공에서 파동이 일렁이더니 앞 쪽 공간이 찢어져 틈을 한 줄 만들어놓았다.

검은 그림자는 한 치도 망설이지 않은 채 몸을 날려 틈새로 날아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림자가 사라지자 벌어졌던 틈도 흔적을 감추었다.

틈이 사라지는 동시에 명염전 주변에 설치된 금제가 한참 동안 일렁이며 일곱 빛깔의 긴 피풍의를 두른 여인이 허공에 나타났다.

그녀는 조령롱이었다.

“빨리도 도망가네. 조금도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니.”

조령통이 눈을 감고서 기운을 찾으려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때, 여기저기서 그림자가 날아오며 명염전 근처로 다가왔다. 주변에서 순찰을 하던 대오였다.

“령롱 장로님, 무슨 일입니까?”

한 성계 경지 대장이 조령롱에게 인사를 올리고는 물었다.

너무 짧은 순간이라 순찰을 하던 수비병들은 기운 파동을 느꼈지만, 검은 그림자를 보지는 못했다.

“아니다. 물러나거라.”

조령롱이 눈에 빛을 반짝이며 손을 흔들었다.

누군가 내성에 잠입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면 천봉 일족의 이름을 더럽힐 터였다. 특히 지금처럼 천하 성역의 각 종족들이 봉익성으로 모인 특별한 시기에 이런 일은 더욱 밖으로 퍼지면 아니 되었다.

“네!”

수비병들은 멈칫하더니 더 묻지 않고는 인사를 올리며 빠르게 떠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