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680화 (680/916)

680화. 또 한 마리의 건앵

조령롱이 허공을 보며 눈을 깜박이다가 다시 명염궁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안색이 다시 바뀌더니 가까운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조령롱이 바라본 곳은 한 구석에 서있던 벽이었는데 거기서 하얀빛이 반짝였다.

조령롱은 하얀빛이 나는 곳으로 다가갔다.

하얀빛은 하얀색 수정이었는데 수정 아래에 흰 종이가 한 장 눌려있었다.

조령롱이 손을 흔들자 수정과 하얀 종이가 그녀의 손으로 날아갔다.

수정은 별 특별한 점이 없는 평범한 월광석이었으나 종이에는 작은 글씨가 한 줄 적혀 있었다.

‘종수가 천정 사람들에게 잡혀갔다. 도움을 요청한다!’

글씨를 본 조령롱은 얼굴을 파르르 떨며 몸에 금빛을 두르고는 먼 곳을 향해 날아갔다.

한참 동안 날아가던 조령통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 일그러진 얼굴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방대한 신식을 주변으로 쏟아지며 내성 곳곳을 덮어버렸는데 매우 세심하게 훑었다.

명염전에서 수 백 장 떨어진 땅속 깊은 곳에서 석목은 옅은 노란빛을 뒤덮어 쓴 채로 주변에 드리운 흙의 기운과 완전히 융화되었기에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조령롱의 신식은 석목이 있는 곳을 여러 번 훑으며 지나쳤다. 전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석목은 식은땀을 흘리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깊은숨을 여러 번 몰아쉬며 평온을 되찾았다.

조금 전 종이는 석목이 남긴 것이었다. 나름 술수를 부렸지만, 조령롱은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지금까지 일어난 상황으로 봤을 때, 종수는 아마 천봉 일족에 있을 터였다. 이 사실은 석목에게 심장이 터져 나올 정도로 벅찬 일이었다.

그리고 조령롱이 지은 표정으로 봤을 때, 종수는 종족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게 분명했다.

종족에서 지위가 매우 높은 신경 강자가 긴장하는 걸 보면 전혀 나쁜 일은 아니었다.

종수가 안전하게 여기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석목은 막혀있던 가슴이 뚫리는 것만 같으며 긴장되었던 신경이 조금은 풀렸다.

족히 일각이나 지나서야 조령롱이 드리운 신식은 완전히 사라졌다.

신식을 거두고도 조령롱은 그 자리에 한참 동안 서 있다가 의문이 풀리지 않는 얼굴로 돌아갔다.

조령롱이 돌아갔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도 석목은 한참 동안 땅속에 숨어 있다가 천천히 나와서는 그림자로 변신하여 밖으로 나갔다.

종수가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목적은 이룬 셈이었다. 하지만 종수를 찾으려면 아마 좀 번거로울 터였다. 여긴 신경 강자가 머물고 있어 큰 움직임을 보여서는 아니 되었다. 자칫 잘못되었다간 일만 꼬이게 될 게 뻔했다.

석목이 빠르게 날아가며 곧 천봉 일족이 머무는 핵심 구역을 벗어나려던 참이었다.

이때, 붉은빛이 옆쪽 궁전에서 번개처럼 날아와 석목을 감아버렸다.

너무 갑자기 나타난 빛 때문에 석목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붉은빛에 끌려 궁전으로 날아갔다.

* * *

석목이 깜짝 놀라며 금빛을 크게 드리워 구룡쇄금갑을 둘렀다. 이어서 손에서도 금빛을 번쩍이더니 여의빈철곤을 꺼내 들고는 주변을 바라보았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바라보니 석목은 대전에 놓여있었는데 주변은 붉은색 광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광막에서 빛이 타오르는 모습을 보니 절대 쉽게 깨트릴 수 없는 광막이었다.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리며 금색 피풍의를 두른 그림자가 대전 깊은 곳에서 걸어 나와 석목과 몇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섰다. 옅은 금색 치마를 입은 소녀였다.

소녀는 스물한두 살 정도 되어 보였는데 계란 같은 얼굴에 피부가 맑은 걸 보니 용모가 매우 뛰어났다.

“음, 누구시죠? 감히 우리 천봉 일족이 주둔하는 땅에 들어오시다니. 조금 전에 명염전에서 투법 파동이 전해지던데, 혹시 당신인가요?”

금색 피풍의를 두른 소녀는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매우 듣기 좋은 목소리였으며 말투에도 적의가 없었다.

석목은 한참 동안 침묵을 한 후에 말했다.

“아니예요. 조금 전에 소란을 피운 사람은 제가 아니예요. 저는 석목이라고 해요. 천봉 일족에 잠입한 이유는 소란을 피우려는 게 아니라 사람을 찾으러 왔죠.”

석목은 손을 굽히며 말했다.

금색 피풍의를 두른 소녀는 망설이며 수비병을 부를지 말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인가 떠오른 듯이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석목…… 이름이 귀에 익은 것 같네요. 종족 안에 있는 등급 책자에서 당신을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맞네요. 미천거원 일족에서 왔죠?”

“네.”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분을 증명할 물건은 있나요?”

금색 피풍의를 두른 소녀가 또 물었다.

석목은 아무 생각 없이 미천거원 일족의 장로 영패를 건네었다.

“미천거원 일족의 넷째 장로시군요. 실례를 범했네요.”

금색 피풍의를 두른 소녀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 영패를 돌려주었는데 경계하던 기색이 조금은 풀려 웃는 얼굴로 석목에게 손을 굽혔다.

“아닙니다. 선생께선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석목이 물었다.

“아, 조금 전에 누군가를 찾는다고 하셨지요? 찾는 사람이 누군가요?”

금색 피풍의를 두른 소녀는 석목이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는 또 물었다.

“그건 제 사사로운 일이라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석목이 망설이더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석목이 하는 말을 들은 소녀는 안색이 어두워진 채 미간을 찌푸렸다. 기분이 언짢은 것 같았다.

“이 오만한 녀석. 허락도 없이 제멋대로 천봉 일족의 부저에 들어와서 우리 아가씨에게 들켜버렸는데도 이런 태도를 보이다니. 아가씨, 망설이지 말고 빨리 수비를 불러 이 오만한 자식을 잡으라고 해요!”

찢어진 북을 치는 것만 같은 거친 목소리가 대전에서 울려 퍼지며 ‘쉬익’ 소리와 함께 영롱한 그림자가 날아와 소녀의 어깨 위로 올라앉았는데 바로 앵무새였다.

석목은 깜짝 놀랐다.

소녀의 어깨에 앉은 깃털이 영롱한 앵무새는 또 다른 건앵이었다. 하지만 그 앵무새는 깃털이 고동색이라 채아와 달랐다.

“너…… 동두(铜头)!”

채아가 앵무새를 보더니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흥! 채아, 오랜만이군!”

동두는 채아를 보더니 차갑게 말했다.

“둘이 아는 사이야?”

석목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쟤도 건앵 일족이야. 뭐…… 익숙한 사이라 치지.”

채아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두 앵무새는 적의가 가득한 눈으로 서로 마주 보았는데 예전에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석목은 눈을 반짝였다. 소녀가 석목을 발견한 이유는 그녀에게도 시력이 뛰어난 건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비록 석목은 미천거원 일족의 장로라는 명분으로 여기 왔지만 남의 부저를 잠입한 것도 사실이었다. 만약 금색 피풍의를 두른 소녀가 다른 사람을 부른다면 석목은 아마 주작성에서 쫓겨날 터였다. 그렇다면 연합은 물 건너가는 셈이었다.

“아가씨, 빨리 사람 불러요. 이 두 놈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모르는데, 빨리 잡아다가 처형을 해야죠!”

동두가 말했다.

석목은 안색이 굳었다. 그리고 몸에서 금빛이 들끓더니 도망을 갈 궁리만 했다.

하지만 이때, 소녀가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을 보였다.

소녀가 고개를 살짝 들어 법결을 하나 시전하였다.

휙!

붉은 광막이 찢어지며 한 명 정도 드나들 수 있는 통로가 생겼다.

“가세요.”

소녀가 말했다.

석목은 멈칫했으며 동두도 안색이 바뀌었다.

“아가씨, 왜 그냥 보내요?”

동두가 또 소리를 질렀다.

“우리 천봉 일족이 축전을 열며 초대장을 보낸 이유는 천하 성역의 각 종족들과 연합해 함께 천정에 대항하기 위해서예요. 미천거원 일족은 팔황고족중에 하나로 예전에 천정과 맞섰던 주요 병력이죠. 오늘 밤 벌어진 일이 많이 당혹스럽긴 하나, 미천거원 일족의 장로라고 하시니 이 일은 그냥 지나갈게요. 저 또한 다른 종족 사람들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고요. 빨리 가세요.”

소녀가 동두를 신경 쓰지 않고는 말했다.

“감사합니다.”

석목은 눈빛을 반짝이며 소녀에게 손을 굽혀 인사를 올리고는 다시 구룡쇄금갑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파란빛을 반짝이며 희미한 빛으로 변하여 멀리 날아갔다.

금색 피풍의를 두른 소녀는 석목이 어둠 속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표정이 유난히 차분해 보였다.

동두도 소녀의 어깨에 서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녀는 한참 동안 그곳에 서 있다가 다시 대전으로 돌아갔다.

* * *

석목은 대전에서 튀어나와 뒤를 한 번 쳐다 보고는 지체하지 않고서 먼 곳으로 숨으며 날아갔다.

석목이 내성을 탐색하고 있을 때, 내성의 광장에서는 환영식이 열리고 있었다.

광장에는 사람들이 수천 명 모여 있었으며 천봉 일족이 안내하는 가운데 순서대로 착석했다.

이번 환영식은 삼대 종족이 함께 주최했지만, 천봉 일족이 주작성의 주인이라 적잖이 신경을 쓴 흔적이 보였다.

광장을 매우 화려하게 꾸몄으며 허공에는 각양각색인 빛이 번쩍여 밤하늘을 낮처럼 환하게 비추었다.

여기에 구경을 온 손님들은 전부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의자 옆에 있는 작은 탁자에는 정성이 드러나는 다과와 영차, 영과 같은 게 준비되어 있어 군침을 돌게 만들었다.

광장 앞에는 높은 석대가 하나 있었으며 석대 위에 중요한 위치에 오른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가운데에 나란히 앉아있는 금색 피풍의를 두른 사람들은 천봉 일족의 신경 강자들이었다.

왼쪽에는 진 부인, 오른쪽에는 금색 피풍의 두른 남자가 있었는데 남자는 네모난 얼굴에 얇은 눈썹이 돋보였으며 깊은 기운을 풍겼다.

둘은 가운데에 앉아있는 은발 노부인을 매우 공경하는 것 같았다.

노부인은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했는데 얼핏 보면 평범한 노인들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노부인은 머리에 금색 봉황 비녀를 꼽고 있었으며 비녀에는 금색 꽃이 몇 송이 박혀있었다.

세 사람 양옆에는 머리가 푸른 노인 한 명과 노란 피풍의를 두른 사나이가 한 명 앉아있었다.

푸른 머리 노인은 얼굴이 몹시 여위었으며 안색은 거무칙칙했지만, 눈빛만은 매우 맑았다.

노란 피풍의를 두른 사나이는 시종일관 웃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음침하고도 차가운 느낌을 주는 웃음이었다.

이들도 신경 강자였다.

서유금이 속한 비천서 일족의 위치 덕분에 일행 세 명은 전부 앞쪽에 앉았다.

“서 공자, 이 신경 강자들은 다 어떤 신분입니까?”

안화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진 부인은 전에 봤던 분이고. 금색 피풍의를 두른 중년은 천봉 일족의 또 다른 신경 강자인데 이름은 조능(趙能)이지. 실력이 매우 막강하여 진 부인과 비슷하다고 들었네. 중간에 앉은 은발 노부인은 더 대단한 분이지. 천봉 일족에서 둘째가는 인물인데 누군가는 노부인이 갖춘 실력이 이미 천봉 일족의 현임 족장을 뛰어넘었다고 하더라고. 다들 금봉(金鳳) 할머니라 부르지.”

서유금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여 보기 드문 심각한 기색을 드러냈다.

안화와 방진은 얼굴이 얼어붙었다. 천봉 일족이 갖춘 실력은 실로 놀라웠다.

“옆에 앉은 푸른 머리 노인과 노란 피풍의를 두른 사나이는요?”

안화가 물었다.

“푸른 머리 노인은 반귀 일족의 장로인 무운(巫雲), 노란 피풍의를 두른 사나이는 지룡 일족의 신경 강자인 적봉(狄峰)이지.”

서유금이 말했다,

둘은 서유금이 하는 말을 들으며 찬 숨을 들이마셨다,

자리에 앉아있는 몇몇은 전부 신경 중기였다. 신경 초기는 저 자리에 앉지도 못할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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