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681화 (681/916)

681화. 음양란봉(陰陽鸾鳳)

“여러분, 우리 성녀 수임 축전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는 족장이 직접 여러분을 맞이하려 했으나 지금 전방이 긴장된 상태라 족장도 빠르게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이죠. 그래서 제가 족장을 대신해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겠습니다.”

금봉 할머니가 일어서더니 말했다.

금봉 할머니는 목소리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목소리에 기이한 마력이 섞여 있어 광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금봉 할머니, 과한 말씀이십니다.”

“축전에 올 수 있는 건 우리의 영광입니다.”

“맞습니다.”

광장 여기저기에서 소리가 들렸다.

금봉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말을 끝내자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우리 천봉 일족이 이번에 축전을 열게 된 건 첫째로 우리 종족의 성녀를 수임하기 위해서이며 둘째로는 천하 성역이 처한 지금 상황에 대해 논의를 하기위해서 입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 광장 사람에 선 사람들은 다양한 표정을 드러냈다.

모든 사람이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천봉 일족에서 이렇게 직접 말을 꺼내니 그 의미는 또 달랐다.

“지금 천하 성역은 가장 중요한 시기에 들어섰습니다. 천정의 그림자가 곳곳에서 떠다니며 군사들이 끊임없이 몰려와 우리 천봉, 반귀, 지룡 일족이 연합하여 대응을 하고는 있지만, 상황은 점점 안 좋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모를 텐데, 바로 보름 전에 천정에서 신장 다섯 명을 전방으로 보냈습니다. 지금 전방에 천정의 신경 강자가 이미 스무 명이 넘게 모여 있습니다!”

금봉 할머니가 말했다.

그러자 광장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신경 강자 스무 명, 그것은 하늘과 땅을 뒤바꿀 정도인 힘이며 천하 성역을 헤집어 놓을 수도 있는 방대한 힘이었다.

“게다가 이게 천정이 지닌 힘의 다가 아닙니다. 천정과 대항을 하려면 여기 있는 우리 종족들은 마음을 합쳐야만 합니다.”

금봉 할머니가 잠깐 멈칫하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사람들이 귓속말로 수군거리며 의논을 펼치며 대부분 얼굴에 이미 흥분된 기색이 어렸다.

천봉 일족을 비롯한 삼대 종족이 패배를 한다면 다른 종족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죽음뿐이기 때문이었다.

축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전부 연합을 이루는 걸 동의하는 종족들이었다.

“여러분들이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안목을 지니셔서 저 또한 그 마음이 존경스럽습니다. 우리가 연합을 하여 마음을 합친다면 천정이 아무리 막강하다 해도 이길 수 있습니다.”

금봉 할머니가 사람들이 짓는 표정을 살피며 마음을 놓은 듯이 말했다.

“금봉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맞아요.”

“천정은 세력이 막강하긴 하지만 동시에 여러 성역을 공격하고 있어서 우리가 연합하면 충분히 저항할 수 있을 거예요.”

“맞아요. 천정과 싸워야만 해요. 심지어 우리는 다른 성역과도 연합할 수 있어요.”

광장이 시끌벅적해지며 분위기가 뜨겁게 타올랐다.

금봉 할머니 옆에 있던 푸른 머리 노인과 노란 피풍의를 두른 사나이는 서로 한번 마주 보며 흡족해했다.

“여러분들이 하신 말씀들은 전부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연합은 나중에 다시 얘기를 나누기로 하고 오늘은 또 다른 중요한 일을 선포하려 합니다. 이번 축전은 성녀 수임 축전일 뿐만 아니라, 우리 천봉 일족은 이번 축전을 빌어 성녀를 위한 배필을 뽑으려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종족에서 내려오는 음양란봉쌍수비법(陰陽鸾鳳雙修秘法)을 함께 수련할 겁니다.”

금봉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천봉 일족에서 내려오는 음양란봉쌍수비법은 천하성역에서도 매우 유명했다. 그 법결은 쌍수 비술 중에 하나였는데 이 비술은 아주 정교해서 빠르게 시전자들의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 비술이 지닌 또 다른 효과는 몸속에 깃든 혈맥의 힘을 끌어 올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천하 성역에 있는 종족 대부분은 전부 이족과 요족이라 몸속에 다양한 혈맥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천봉 일족에서 내려오는 쌍수 비술의 가치는 그야말로 가늠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천봉 일족이 축전 때 데릴사위를 맞이하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음양란봉쌍수비법을 전수해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천봉 일족이 음양란봉쌍수비법마저 꺼냈다니.”

서유금이 고개를 흔들며 감탄했다.

방진과 안화도 어안이 벙벙했다.

“천정이 점점 위협과 압박을 더하고 있습니다. 우리 종족도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게 절대로 쉽진 않았죠. 허나 신경이 단 한 명이라도 늘어날 수 있다면 이길 희망이 조금이라도 더 생기는 것입니다.”

금봉 할머니가 감탄하며 말했다.

“금봉 할머니, 이번에 성녀님의 쌍수 배필을 선발하는 데 어떤 조건이 있나요?”

광장에서 누군가가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가 금봉 할머니를 바라봤으며 눈에 열정이 가득했다.

“여러분은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선발 조건은 그리 각박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신분이 뚜렷하며 또 수련 경지가 성계에 도달한 젊은이, 그리고 축하 선물을 보낼 수 있는 자라면 참여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이번 대결에서 십 등 안에 들어간 자에게는 많은 자원이 주어질 겁니다. 그리고 우리 천봉, 반귀, 지룡 일족이 최선을 다해 지원을 해서 최대한 수련 경지를 신경으로 끌어올려 천정과 대항할 예정입니다.”

금봉 할머니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광장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예전에는 소문으로만 전해 들었지만, 금봉 할머니가 이렇게 직접 말씀을 하시니 절대 거짓일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 등은 그렇다 쳐도 십 등 안에만 들어도 꽤 많은 혜택이 주어졌다.

“천봉, 반귀, 지룡 일족이 정말 준비를 많이 한 것 같군.”

서유금이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방진과 안화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금봉 할머니, 이번 대결은 꼭 최선을 다해 임할 겁니다. 하지만 성녀님을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광장 앞에서 검은 피풍의를 두른 청년이 일어서더니 말했다.

그 말은 광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천봉 일족의 성녀는 매우 신비스러운 존재여서 아직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각 종족에서 온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성녀에 대해 알아보려 했지만 아무런 수확을 얻지 못했다.

“후후, 그래요. 영수야, 나와 봐.”

금봉 할머니가 웃으며 말해다.

할머니가 말을 마치자 허공에서 파동이 일더니 빛이 반짝이며 푸른색 옷을 입은 소녀가 나타나 천천히 내려왔다.

소녀는 몸매가 매우 아름다웠으며 새하얀 팔목에서는 옥 같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수려한 머리카락이 찰랑거려 마치 하늘의 선녀가 이 세상에 내려온 것 같았다.

조금 아쉬운 점은 푸른 옷을 두른 소녀가 하얀 면사포를 두르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신식으로도 들여다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소녀가 풍기는 분위기는 광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우러러 바라볼 정도였다.

서유금 일행도 멍하니 푸른 옷을 입은 소녀를 바라보자 숨이 멈춰버릴 것만 같았다.

광장에 있던 젊은 남자들은 전부 이들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녀는 맑은 눈동자로 광장에 선 사람들을 한 번 훑어보더니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금봉 할머니의 뒤로 가서 서 있었다.

금봉 할머니는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이 만족스러운지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축전은 곧바로 끝났다.

서유금을 비롯한 세 사람은 아쉬운 듯이 푸른색 옷을 입은 소녀를 쳐다보며 사람들을 따라 내성에서 떠났다.

* * *

봉익성, 성 바깥쪽 조용한 거리의 상공에서 빛을 반짝이며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는데 바로 석목이었다.

이미 깊은 밤인데다가 여긴 매우 외진 곳이라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채아가 고개를 돌려 내성 방향을 한번 쳐다보며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아직 놀란 마음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왜? 너도 무서울 때가 있다니.”

석목이 채아를 놀렸다.

“누가 무섭대. 흥!”

그러자 채아가 고개를 치켜들며 아니라고 우겼다.

“아, 조금 전에 그 건앵 말이야. 둘이 뭐 안 좋은 일이 있었어?”

석목이 후후 웃으며 물었다.

채아가 몸을 살짝 비틀며 얼굴에 원망이 가득한 기색을 드러낸 채 말했다.

“흥! 저 빌어먹을 자식은 나랑 아주 원수 사이야. 저놈이 아니었더라면 나를 그때 국 뚱보…… 아니, 속승 진인이 소환해 가지 않았을 거야. 정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도 만난다고 하더니, 이곳에서 저 자식을 만나다니!”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둘 사이에 원한이 깊은 것 같군.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해.”

“정말이야?”

채아가 일어서서는 좋아하며 말했다.

“그럼.”

석목이 대답했다.

그리고는 내성 방향을 한번 쳐다보고는 몸을 날려 객잔으로 향했다.

* * *

깊은 밤, 석목은 전에 갔었던 주루로 들어가 몰래 이미 예약을 해놓은 방으로 들어갔다.

한 시진 후에 석목은 두 눈을 감고는 나무 침상에 앉아 수련을 하지도, 그렇다고 휴식을 취하지도 않았다. 석목은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창가에 자리한 보라색 나무 탁자에서 채아가 영석을 ‘우두둑!’ 소리를 내며 씹어 먹었다.

잠시 후에 영석을 전부 삼켜버린 채아는 몸에서 흐르는 영력을 느끼며 눈에 만족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그리고 두 날개를 펼쳐 탁자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멍하니 앉아있는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두, 왜 계속 멍하니 앉아있는 거야.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각시 생각?”

채아가 물었다.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괜찮았는데 봉익성에 오니 오히려 걱정이 되는군.”

석목이 채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뭐가 걱정이야? 아, 알겠다. 그 뭐냐…… 고향과 가까워질수록 걱정이 많이 되어서 지나가는 사람한테도 묻지 못한다고 말하잖아. 너는 수아와 가까워질수록 더 애틋해져서 불안한 거지?”

채아가 웃으며 말했다.

“만약 수아가 이곳에 없다면 이 망망한 천하 성역에서 나는 또 어디로 가서 수아를 찾을까?”

석목이 채아가 던진 장난을 받아주지 않고는 가볍게 한숨을 내뱉었다.

“너는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너답지 않아! 많은 것들이 말해주잖아. 종수 누나는 이 천봉 일족에 있을 거야!”

채아가 날개를 펄럭이며 말했다.

“어쨌든 아직 보지 못했으니까.”

석목이 말했다.

“그런데 너는 이미 그때 종수 누나를 데려갔던 사람을 찾게 되었잖아. 그럼 그 여자를 통해서 종수 누나의 소식을 알아내면 되지. 그리고 오늘 내성에서도 꽤 많은 것들을 알아냈잖아.”

채아가 탁자에서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엄숙한 표정으로 석목에게 말했다. 그 모습은 마치 서당에서 글을 가르치는 훈장 같았다.

“그러길 바랄 뿐이지.”

일리가 있는 말을 들은 석목은 마음이 조금 놓였다.

이때, 밖에서 안화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자, 우리가 돌아왔어요.”

안화가 공손하게 말했다.

“들어와.”

석목이 대답했다.

‘끼익!’하고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더니 서유금이 가장 앞장선 채 방진과 안화가 뒤따라 차례로 들어왔다.

일행들은 얼굴에 흥분한 기색이 어려있었다.

“어땠나? 환영회에서 특별한 소식을 들었나?”

일행들이 방에 들어와 앉자 석목이 물었다.

“석 형, 현장에 가셨어야했어요. 좋은 걸 놓치셨어요.”

서유금이 두 눈에 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공자, 천봉 일족의 여인들은 전부 다 절세미인입니다.”

안화가 붉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흥분을 하면서 말했다.

석목은 동의를 하는 듯이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행들은 끊임없이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새로 수임하는 성녀가 가장 아름다워요.”

서유금이 감탄하며 말했다.

“면사포를 한 겹 쓰고 있는데도 알아보셨다는 말씀입니까? 그건 아니지요.”

안화는 동의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야. 신임 성녀의 자태와 분위기는 절대 다른 천봉족 여인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였어.”

방진은 돌아와서 단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심각한 얼굴로 이런 말을 내뱉었다.

“그래? 새로 수임하는 성녀는 뭐가 그렇게 특별한데?”

석목은 별 생각 없이 물었다.

“성녀는 천봉 일족이지만 다른 천봉족들처럼 붉은 옷을 입은 게 아니라 푸른 옷을 입었어요. 자태 또한 매우 뛰어났지요. 얇은 면사포를 쓰고 있었지만, 피부는 눈처럼 하얗게 빛났으며 버드나무 같은 짙은 눈썹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은 별처럼 빛났는데 눈빛에는 또 따듯한 기운이 가득했어요. 천봉족 사람들처럼 사나운 기색은 전혀 없었는데 오히려 친근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였죠.”

방진은 눈이 마치 꿈을 꾸듯 희미해졌다. 보아하니 이미 성녀에게 푹 빠진 게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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