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682화 (682/916)

682화. 생각이 바뀌다

방진이 하는 말을 들은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는데 복잡한 기분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석두, 근데 들어보니 왜 그 성녀가 종수 누나 같지?”

채아가 석목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이 말했다.

“성녀가 수련을 한 경지는?”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두 손으로 침상 끝을 꽉 잡으며 물었다.

“대충 봐서는 성계 후기 같았는데 풍기는 기운이 매우 깊었죠.”

서유금이 눈알을 굴리며 대답했다.

“그럼 종수 누나는 아니겠지? 그때 데려갈 때 지계 경지라고 했잖아. 혈맥을 각성했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성계 후기에 도달했다고?”

채아가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천봉 일족의 혈맥은 상식으로 가늠해서는 안 되니까.”

석목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석목은 곧바로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남해성 출신인데다 인족이야. 몸속에 깃든 천봉 혈맥을 각성했다고 해도 천봉 일족의 성녀가 될 리 없어.”

서유금을 비롯한 세 사람은 서로 눈치를 살폈는데 석목이 이러는 모습을 처음 봐서 다들 어찌할 바를 몰랐다.

“혹시 성녀의 이름을 알고 있어? 혹시 종수인가?”

석목이 서유금 일행 세 명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건…… 제가 알기로 이름에 ‘수’자가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종수는 아니고 조영수(趙靈秀)라고 했습니다.”

서유금이 생각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망설이는 기색을 드러내며 고개를 푹 숙이고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석목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정중하게 말했다.

“선발에 참여해야겠네요.”

“네?”

방진과 서유금이 그 말을 듣고는 동시에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석 형이 참가하신다면 저는 어쩔 수 없이 대전을 포기해야겠네요. 그런데 십 위 안에 들어가면 꽤 풍성한 포상을 받는다죠. 그리고 우리 종족에서 위치도 적잖이 올라갈 테니 꽤 수확을 얻겠군요.”

서유금이 후후 웃으며 말했다.

“두 분, 저는 꼭 대결에 참여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요. 만약 이 성녀가 정말 제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 해도 배필이 될 수 없죠. 만약 제가 찾는 사람이 아니라면 저 또한 일 위로 올라가려 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저는 미천거원 일족의 운명이 달린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어서 이 대결에서만큼은 스스로를 증명하여 미천거원 일족이 다시 힘을 얻어 천봉 일족과 연합을 하게 만들어야 해요.”

석목이 침묵을 깨며 말했다.

석목의 하는 말을 들은 방진은 굳었던 표정을 조금 풀었다. 다시 희망이 조금 생긴 것 같았다.

“석 형이 이렇게 말씀하시니 당연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만약 축하 선물이 부족하다면 저도 석 형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서유금이 말했다.

“선물은 괜찮아요. 다만 저는 천봉 일족에서 보내준 초대장이 없는데 이 대결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석목이 물었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죠. 천봉 일족은 천하 성역에서 온 작은 종족들도 거절하지 않았어요.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어요.”

서유금이 말했다.

“우리라니요? 서 형도 초대장이 없습니까?”

석목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서유금의 종족은 실력이 절대 약한 편이 아니라 천봉 일족이 신경을 쓰지 않을 리 없었다.

“석 형이 모르셔서 그래요. 우리 비천서 일족은 오랜 시간 동안 상업에 신경을 쏟아 붓느라 결투하는 일에 크게 관심이 없었죠. 그래서 우리 종족에는 저처럼 종족의 예전 위치와 영광을 되찾으려는 족인들이 그리 많지 않아요. 그리고 종족 안에서도 명령을 내렸지요. 천봉 일족과는 거래만 할 뿐 이번 축전에 참여하는 걸 찬성하지 않았어요. 저는 제멋대로 나온 거예요.”

서유금이 설명을 했다.

“그렇군요. 그럼 우리가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석목이 물었다.

“공자, 천봉 일족은 초대장이 없는 각 종족의 제자들을 이렇게 안내하고 있어요. 충분한 축하 선물만 내밀 수 있다면 점검을 받을 기회를 한 번 준대요. 점검을 통과하면 뒤에서 이루어지는 정식 선발에 참여할 수 있다죠.”

안화가 말했다.

“무슨 점검?”

석목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채아가 물었다.

“내일 아침 일찍, 천봉 일족은 봉익성의 내성과 외성이 맞닿는 구역에 점검장을 하나 설치할 거예요. 그리고 신경 강자 한 명을 보내서 초대장이 없는 참가자들을 점검하겠지요. 만약 신경 강자가 날리는 일격을 견딜 수 있다면 정식 선발 자격이 주어진대요.”

안화가 계속해서 말했다.

“평범한 제자가 신경 강자에게 일격을 받는다고? 이 조건이 너무 까다로운 거 아니야?”

채아가 놀라 소리를 질렀다.

“때문에 점검을 받는 자들에겐 아무런 제한이 없죠. 어떤 비술이나 보물을 사용해도 되는데 어찌 되었든 이 한 방만 견딜 수 있으면 돼요.”

서유금이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은 이만 헤어지고서 내일 아침 일찍 가면 되겠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전혀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다.

셋은 일제히 대답을 하고는 물러났다.

* * *

다음날 아침, 해가 막 떠올랐을 때쯤.

석목 일행은 아침 일찍부터 객잔에서 나와 주작대로를 따라 성시 안으로 향했다.

대략 반 각 후, 내성 궁전에 높이 걸려있는 기와와 금색 봉황 조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성과 외성이 맞닿는 곳, 다시 말해 내성의 출입문 밖에는 세 뼘 정도 올라온 붉은색 석대가 있었는데 그 크기가 족히 백 장은 되었고, 석대 주변으로 다양하게 생긴 각 종족의 제자들이 서 있었다.

대부분은 다양한 복식을 입은 요족 제자들이었다.

대충 훑어보니 수만 명은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사방팔방에서 계속 인파가 모여들고 있었다.

“쯧쯧, 성녀가 지닌 매력이 예사롭지 않은가보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다니.”

채아가 석목의 어깨에 서서 석대 아래에 빼곡히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며 재잘거렸다.

“후후. 모두가 성녀를 위해서 온 것만은 아닐 거야. 대결에서 십 위 안에만 들어도 충분한 포상이 주어진다고 했으니 욕심을 부려볼 만 하지.”

서유금이 웃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때, 석대에서 갑자기 빛이 반짝이더니 천봉 일족의 복식을 입은 젊은 남자 두 명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점검을 받을 제자분들은 석대 오른쪽에서 줄을 서십시오. 신분 심사를 하겠습니다.”

얼굴 윤곽이 유난히 각진 남자가 빼곡히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신분 심사? 이건 또 뭐죠?”

석목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게…… 어제 저녁 환영회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사항이라 우리도 잘 몰라요.”

서유금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모인 참가자들 대부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며, 석대 아래는 순식간에 왁자지껄해졌다.

“신분 심사는 출신과 경력을 보겠습니다. 천정과 연루된 점이 있는지 심사를 할 것입니다. 빨리 줄 서십시오.”

이번에는 또 다른 천봉족 남자가 말했는데 용모가 단정한 청년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시를 내린 대로 석대 오른쪽에서 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석목 일행도 대열 중간쯤에 서서 심사를 기다렸다.

가장 앞줄에는 머리에 외뿔이 자라난 청년 한 명이 얼굴이 각진 남자 앞으로 다가가 검은색 철패(鐵牌:쇠로 만든 영패)를 건네었다.

남자는 아무런 표정 없이 철패를 한참 들여다봤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남자는 다시 철패를 청년에게 돌려주었다.

“귀우일족(鬼牛壹族)입니까?”

얼굴이 각진 남자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귀우족 제 이백삼십일 대 족장 장청(藏青)입니다.”

청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저쪽에 가셔서 선물을 바치세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가까이에 서 있는 용모가 준수한 천봉 일족을 가리켰다.

장청이라 불리는 귀우족은 가볍게 대답을 하고는 남자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용모가 준수한 청년은 장청을 향해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장청은 오른쪽 검지에 끼고 있던 푸른색 저장 반지를 빼서 청년의 손에 올려놓았다.

청년은 두 눈을 감고는 한참 동안 저장 반지 속을 들여다보았다. 다시 눈을 뜬 청년이 장청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석대 위에서 기다리라고 안내를 했다.

이때, 누군가 석목의 뒤에서 뜬금없이 수군거렸다.

“귀우족처럼 천한 종족도 성녀 배필 선발에 참여하겠다고 저러고 있으니. 이렇게 주제 파악이 안돼서야.”

“후후, 내 말이 그 말이야. 아마 저 선물을 마련하겠다고 종족이 지닌 전 재산을 털었을 거야.”

말을 받은 건 보라색 얼굴에 수염이 더부룩한 남자였다.

“귀우족은 그렇다 쳐. 어찌 됐든 우리 천하 성역의 백요족 중 하나잖아. 저기 저 자식은 말이야. 요족도 아닌 게 선발에 참여하겠다고 저렇게 떡하니 서 있잖아.”

염소 머리에 얼굴이 노란 한 노인이 비아냥거렸다.

지나치게 석목을 무시하는 말이었다.

어느 성역을 가나 인족은 늘 괄시를 받는 대상이었기에 석목은 별볼일 없는 사람들이 하는 말까지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또한 석목은 머릿속에 온통 종수를 찾아야한다는 생각뿐이라 수군거리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채아의 성격으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어이, 염소. 나이도 잡술만큼 잡순 양반이 여기는 왜 왔어? 우리 석두가 선발에 적합하지 않다면 너는 어울리고? 나잇값을 해야지. 창피한 줄 알아!”

채아가 석목의 어깨에서 돌아선 후에 소리를 질렀다.

“고작 영총 따위가 내 앞에서 나불거려? 털을 뽑아버리고 삶아먹는 수가 있어.”

채아가 하는 말에 얼굴이 노란 노인도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어이구 이 늙은 염소야. 이 채아 어르신을 삶겠다고? 염소 구이로 만들어줄까?”

채아는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이렇게 사람 한 명과 새 한 마리가 언성을 높이며 싸우자, 자연스럽게 이목을 끌었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은 한 번도 이런 대우를 받은 적이 없었던 터라, 화를 주체할 수 없었는지 빛을 드리우며 석목에게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순간, 뼈에 사무치는 살기에 노인이 화들짝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다.

석목의 싸늘한 시선과 마주친 노인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여긴 천봉 일족이 다스리는 구역입니다. 싸움질이나 하라고 마련한 곳이 아니죠. 한 번만 더 질서를 어기는 사람이 있다면 가차 없이 봉익성에서 내쫓겠어요. 두 번 다시 들어올 생각하지 마십시오.”

얼굴이 각진 남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며 시선을 의식한 듯이 석목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석목은 개의치 않으며 눈을 감고는 휴식을 취했다.

다시 고요한 상황으로 돌아왔다. 신분 심사는 계속되었으며 줄도 점점 줄어들었다.

* * *

대략 반 시진 후에 드디어 석목의 차례가 돌아왔다.

“족휘(族徽)나 족패가 있습니까?”

얼굴이 각진 사내가 석목을 향해 친절하지 않은 말투로 물었다.

석목이 장로 영패를 남자에게 건네었다.

영패를 받은 남자는 흠칫했다.

“미천거원 일족의 장로십니까?”

같은 남자의 목소리였지만 이전과는 조금 다른 태도였다.

가까운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도 남자가 묻는 말을 듣자 수군거려 정적이 깨지며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그렇죠.”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이 말을 마치는 순간, 주변에 있던 수만 명이나 되는 요족들은 전부 하나같이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석목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천하 성역에서 미천거원 일족은 조금 특별한 위치였다. 오랜 옛날에 천하성역의 팔황고족 중에 우두머리였던 미천거원 일족은 수많은 종족들 중에 실력이 가장 뛰어났다.

하지만 미천거원 일족은 천 년 가까이 자취를 감췄으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지 오래였다. 그리하여 젊은 사람들은 미천거원 일족을 전설 속에서만 내려오는 종족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족의 몸을 지닌 석목이 미천거원 일족을 대표하여 복귀했으니 충분히 놀라고도 남을 일이었다.

“퉤. 미천거원 일족이 이 지경까지 추락한 건가? 고작 인족을 대표라고 내보냈으니. 천하 성역의 체면을 저 종족들이 다 망치는군.”

이때다 싶은 얼굴이 노란 노인이 침을 뱉으며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지껄였다.

“조용!”

이때, 석대 위쪽 하늘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마치 큰 종을 친 것 마냥 석대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무시무시한 음파공(音波功)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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