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4화. 영부족(靈芙族)
방진이 석대에서 내려와 석목과 서유금이랑 간단하게 대화를 나누고는 한쪽 구석으로 가서 가부좌를 틀고서 기운을 다스렸다.
“후후, 저 녀석도 통과했으니 저도 도전해봐야죠.”
서유금이 방진의 뒷모습에서 석목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먼저 올라가세요. 저는 좀 더 지켜보겠습니다. 천하 성역에 있는 종족들에대해 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걸요.”
석목이 말했다.
서유금이 고개를 끄덕이며 석대로 올라갔다.
여러 차례 시험을 거치며 석대는 이미 꼴이 말이 아니었다. 서유금은 그중에서도 가장 평평한 곳을 찾아가 바로 섰다. 그리고 조주명을 향해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서유금의 도전이 시작되었고, 조주명은 똑같이 손바닥을 눌러 구름 손을 소환하여 아래로 짓눌렀다.
서유금은 눈알을 굴리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가슴 앞으로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였다.
서유금이 이상한 행동을 하자 석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중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이제 와서 기도해도 소용이 없을 걸?”
하지만 석목의 눈빛은 담담했다. 서유금은 절대 하늘의 도움이나 요행을 바라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분명 독특한 수단을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서유금은 맞붙였던 두 손을 양옆으로 열었다. 그 사이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창망하고 예스러운 기운이 흘러나와 석대에서 흘러 다녔다.
서유금의 두 손에 해바라기 씨만 한 금색 씨알이 하나 나타났는데 그 위에 복잡한 무늬가 박혀있었다. 딱 봐도 절대 평범한 물건은 아니었다.
“이건…… 규갑련(葵甲蓮)!”
누군가 그 물건을 알아봤는지 큰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사람들이 헛바람을 들이키며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석목도 멈칫했지만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석목도 규갑련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 물건은 상고시대의 유명한 이종(異種)이었는데 연(蓮)이라 불리지만 연꽃 종류는 아닌, 땅속 깊은 곳 극한의 환경에서만 자라나는 규갑이라는 나무에서 나오는 씨앗이었다.
이 물건에 영력을 불어넣으면 연꽃 모양 갑옷으로 변하여 신경 강자가 날리는 일격도 거뜬히 막아낼 수 있어 목숨을 지키는 신물이라 불렸다. 갑옷 모양이 연꽃 모양이라 규갑련이라 불리며, 이 씨앗은 한 번 밖에 쓸 수 없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이 나무는 백 년에 단 한 알만 씨가 자라난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 나무는 이미 만 년 가까이 멸종된 상태라 천하 성역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만약 비천서 일족이 어마어마한 재력을 소유한 종족이라는 걸 알지 못했더라면 석목도 이 씨앗을 봤을 때 적잖게 놀랐을 터였다.
하지만 지하 궁전 보물 창고에 들어간 후로부터 서유금이 아무리 희귀한 보물을 꺼낸다고 해도 석목은 놀라지 않게 되었다.
씨앗에서 금빛이 번지더니 서유금을 안으로 드리웠다.
눈에 보이는 금빛 줄기가 얽히고설키며 눈 깜짝할 사이 석대에 커다란 금색 연꽃이 뭉쳤다. 연꽃은 아직 봉우리인 상태로 서유금을 완전히 감싸버렸다.
붉은 구름 손은 이미 서유금 가까이까지 짓누르며 다가왔다.
쾅!
격한 흔들림과 함께 나머지 반쪽 석대도 아래로 주저앉았다. 석대가 흩날리는 먼지 속에 완전히 묻혀버렸다.
잠시 후에 먼지가 다시 흩어지며 석대에 놓인 금색 꽃잎이 한 장, 한 장 벗겨졌다. 서유금이 그 속에서 걸어 나와 활짝 웃는 얼굴로 조주명을 향해 인사를 올리고는 석목에게로 다가왔다.
서유금이 금색 연꽃을 벗어나는 순간, 연꽃은 곧바로 금빛으로 흩날리며 사라졌다.
석목에게로 걸어오던 서유금이 갑자기 신음소리를 내며 피를 한 모금 뱉어냈다.
“괜찮으세요?”
석목이 물었다.
“진동이 심했나 봐요. 저는 괜찮습니다만 이 규갑련이 너무 아깝네요. 목숨을 지키는 보물이 하나 줄었어요.”
서유금이 못내 아까워하는 표정을 드러냈다.
서유금이 손바닥을 펴자 쥐고 있던 금색 씨앗이 영력을 소진하여 가루로 부서져 바람에 흩어져버렸다.
“후후, 석 형. 이제 석 형 차례입니다.”
서유금이 다시 웃는 얼굴로 석목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방진의 옆으로 다가가 단약을 한 알 삼키고는 휴식을 취했다.
도전자가 연달아 두 차례나 승리를 거두자, 석대 밑에 있던 참여자들도 드디어 자신감을 찾았는지 줄줄이 석대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반나절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았다. 시험에 통과한 사람이 몇 명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경 강자가 쓰는 위력의 단 십분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평범한 성계 존재는 절대 감당할 수 없는 힘이었다.
석목은 고개를 들어 서쪽으로 기울어진 태양을 쳐다보더니 석대로 걸어갔다.
“장로님께 인사드립니다.”
석목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미천거원 일족의 대표라고 했는가?”
조주명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석목이 엄숙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미천 거원일족의 대표가 제일 먼저 올라올 줄 알았네.”
조주명이 말을 하는 투에 어딘지 모르게 실망이 묻어있었다.
석목이 막 대답을 하려고 할 때, 조주명이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시작하지.”
허공이 들끓으며 붉은 구름 손이 다시 나타났다.
석양 때문일까? 구름 손이 전보다 훨씬 더 붉어졌으며 더 두꺼워진 것 같았다. 마치 붉은 손은 구름이 아닌 산으로 뭉쳐진 것 같았다.
천천히 구름 손 아래에 선 석목은 그제야 구름 손이 지닌 엄청난 압력을 느낄 수 있었다.
구름 손이 아직 내려오기도 전이었지만, 석목은 벌써부터 무거운 힘이 밀려오는 걸 느꼈으며 압박을 받아 뼈에서 ‘부드득!’ 소리가 났다.
사람들 속에서 석대를 바라보던 얼굴이 노란 노인이 웃는 얼굴로 수염을 매만졌다.
“고작 인족 따위가 신경 강자가 날리는 일격을 막아내겠다고? 정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을 모르는군.”
주변 사람들은 전부 의아한 기색을 드러냈다. 구름 손이 풍기는 기운이 전보다 훨씬 더 강력해졌다는 것을 그들도 똑같이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때, 조주명이 손에 힘을 주며 강하게 아래로 짓눌렀다.
훅!
하늘에 뜬 구름 손에서 화염이 타오르며 기세가 몇 배나 불어나 뜨거운 기운을 몰고서 석목의 머리를 눌러갔다.
석목은 점점 강력해지는 압박을 느끼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대범반무진경을 시전했다.
석목의 손에서 하얀빛이 반짝이더니 뼈에서 ‘쩍, 쩍!’ 소리가 났다. 팔 근육도 울퉁불퉁 튀어나오며 백 배나 커진 손바닥으로 구름 손을 받았다.
이 광경을 본 조주명은 눈에서 이채가 스쳤는데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조주명은 손에 힘을 살짝 더 불어넣었다. 그러자 화염을 두른 구름 손이 아래로 누르는 힘이 더 강력해졌다.
쾅!
석목의 커다란 손바닥과 화염을 두른 구름 손이 강하게 부딪쳤다.
하늘에서 화염 구름이 들끓었으며 불길이 솟아올라 위아래로 펄럭였다.
석목의 거대한 손바닥 위엔 붉은빛이 가득했는데 마치 불바다를 받쳐 들고 있는 것처럼 웅장했다.
허공이 한참 동안 일그러지더니 붉은 불기둥이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이 허겁지겁 피하려던 찰나, 형태가 없는 광막이 붉은 불기둥을 밀어냈다.
다른 참여자들은 전부 어안이 벙벙해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노란 노인마저 입을 벌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노인은 목젖을 미세하게 떨며 침을 꿀컥 삼켰다.
이전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 이 일격은 앞선 몇 번의 일격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위력을 머금고 있었다.
불바다는 한참 동안 타오르다가 불길이 점점 줄어들더니 드디어 사라져 버렸다.
타오르던 화염이 사라지자 석목이 나타났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석목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이 일격을 받아내며 거의 모든 기운을 쏟아부은 것 같았다.
석목은 깊게 숨을 들이키며 커다란 손바닥을 거두고서 단약을 한 알 삼키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주명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석목을 한참 바라보았는데 얼굴에 웃음기가 어렸다.
“석목이라고 했나? 좋아. 통과.”
조주명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미소를 지으며 조주명을 향해 손을 굽혀 인사를 하고는 석대에서 내려왔다.
석목이 다시 석대에서 내려왔을 때, 사람들이 보는 시선은 이미 바뀌어있었다.
* * *
시험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반 각도 채 되지 않는 사이, 이미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패배를 맛보았다.
사람들은 그제야 석목이 범상치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석목처럼 가볍게 신경 강자가 날린 공격을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에 그들은 다시 한 번 놀라움에 휩싸였다.
영부족에서 온 청년 한 명이 아무런 비법과 법보도 사용하지 않은 채 조주명이 날린 공격을 받아냈기 때문이었다.
“영부족은 천하 성역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종족인데 이 정도 고수가 나왔다니. 정말 다시 보게 되는군요.”
서유금이 감탄을 자아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다시 시선을 돌려 영부족 청년을 훑어보았다.
키가 훤칠했으며 인족과 흡사한 외모였지만 귀는 얇고 길었다. 그리고 피부도 인족보다 더욱 하얬다.
석목은 왠지 모르게 이 청년이 익숙하게 느껴졌으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혹시 이름이 뭔지 아세요?”
석목이 물었다.
“전에 정보를 수집했었는데, 저 자는 한절(罕折)이라 하네요.”
서유금이 생각을 되짚으며 말했다.
석대를 내려오던 한절이 석목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석목이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것 같았다.
석목과 눈을 마주친 한절은 고개를 끄덕이며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다.
석목도 한절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돌린 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험은 계속되었으며 각 종족에서 뛰어난 제자들이 도전을 했지만 통과한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다.
시간이 지나자 아무도 석대로 올라가지 않았다.
“도전할 분이 더 있습니까?”
조주명이 말했다.
석대 아래는 물을 뿌린 듯이 조용했다.
“그럼 시험은 끝내고, 통과한 사람들은 이쪽으로 오세요.”
조주명이 말했다.
석목을 비롯하여 통과한 사람들이 석대로 올라갔다.
도전한 사람들은 천 명 가까이 되었으나 통과한 사람들은 고작 열 몇 명이었다.
“시험에 통과한 것을 축하드려요. 열흘 뒤의 대결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드리겠습니다.”
조주명은 석목을 비롯한 일행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장로님, 감사합니다.”
일행들은 일제히 인사를 올렸다.
“사전 시험일뿐입니다. 진정한 대결은 뒤에 있지요. 아직 열흘 정도 시간이 있으니 충분히 휴식을 취하세요.”
조주명이 말을 마치고는 자리에서 떠나버렸다.
시험에 통과한 사람들은 서로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며 각자 머물던 자리에서 떠났다.
“공자님, 서 형, 방 형, 시험에 통과한 걸 축하드려요.”
석목을 비롯한 세 사람이 내려오자 안화가 활짝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
“후후, 이 시험도 통과하지 못하면 십 위 안은 꿈도 못 꾸지.”
서유금은 눈에서 빛을 반짝였다.
하지만 방진은 얼굴이 흥분으로 가득 찼다.
드디어 시험을 통과했으니 이제 방책과 똑같이 대결에 참여할 자격이 주어졌다. 이제 자정마우일족 사람들에게 누가 진정한 승자인지 증명해 보일 차례였다.
석목은 덤덤했는데 이 정도 시험은 석목에게 식은 죽 먹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