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690화 (690/916)

690화. 혼전

서유금은 한절에게 정신이 팔려 있어 등 뒤에서 습격을 하는 곽저를 미처 막지 못했다.

곽저가 처음부터 습격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서유금이 너무 큰 허점을 드러내고 있는데다 아무리 살펴도 일부러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아 참지 못하고 습격을 한 것이었다.

곽저의 단창이 서유금의 등을 찍으려는 찰나, 이겼다는 확신 때문인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곽저를 등지고 있는 서유금의 얼굴 또한 웃음으로 가득했다.

곽저의 단창이 찔러 들어가려는 찰나, 서유금은 몸에서 빛을 번쩍이더니 커다란 쥐 그림자가 나타나 곽저를 가둬버렸다.

이와 동시에 곽저의 발밑에서 노란빛이 밝아지며 두 발을 꽁꽁 묶어버렸다.

순간, 곽저는 몸이 무겁게 가라앉았으며 두 발이 마치 진흙탕에 빠져버린 듯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단창이 찔러가는 속도도 현저히 느려졌다.

그리고 이 짧은 순간 서유금은 갑자기 돌아서서 맹렬하게 주먹을 날렸다.

곽저는 눈앞이 희미해지더니 격렬한 불꽃이 눈앞에서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쾅!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번개가 섞인 붉은빛이 터져버려 허공에 불꽃이 튀었다.

곽저의 몸통이 불꽃 속에서 튕겨져 날아가 천갱에 떨어졌다.

관전대에 있던 조주동은 그 모습을 보고는 곧바로 옷자락을 흔들어 붉은빛을 날려 천갱 깊은 곳에서 곽저를 꺼냈다.

서유금은 잠깐 숨을 고르고는 앞으로 걸어가 몸을 낮추더니 땅을 더듬거렸다.

그러자 바닥에서 반투명 피지(皮紙)가 하나 뜯겼다.

그 피지에는 푸른색 무늬가 줄줄이 그어져 있었는데 매우 작고 정밀한 금제 진법이었다.

조금 전 곽저를 묶어버린 게 바로 이 피지였다.

하지만 아무도 서유금이 언제 이 피지를 붙여놓았는지 알지 못했다.

실은 서유금은 처음 이 연무대를 쿵쿵 밟을 때, 이미 몰래 모든 준비를 마쳤다.

모든 것들을 정리한 후, 서유금은 관전대를 향해 인사를 올리고는 다시 방진의 옆으로 날아갔다.

“축하합니다. 서 공자.”

방진이 말했다.

“후후, 운이 좋았을 뿐이네. 이제 자네 차례군.”

서유금이 웃으며 말했다.

* * *

파란 공간 속.

석목은 두 눈을 꼭 감고는 채아와 심신을 연결했다.

영목신통 두 개가 겹치자 석목의 시력이 폭발하여 눈앞이 매우 뚜렷하게 보였다.

눈앞에 놓인 공간은 반투명으로 변하였으며 곳곳에서 오색영롱한 빛들이 끊임없이 흘러 다녔다.

이 빛들은 전에도 보였는데 지금은 더 뚜렷하게 보였다.

이 빛들은 전부 부문이었으며 서로 연결되어 은은하게 어떤 규칙을 이루고 있었다.

“석두, 뭐 발견한 게 있어?”

채아가 전음을 보내며 물었다.

“이 부문들은 보기에는 복잡해 보이는데 서로 연결되어 작은 금제를 이루는 것 같아.”

석목이 침묵을 깨며 말했다.

“그러니까 뭔가 알아냈다는 거지?”

채아가 다시 물었다.

“아마도. 금제의 흔적을 찾았으니 이제 움직여도 될 것 같아.”

석목이 가볍게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어차피 축전은 늦어버렸으니 오히려 석목은 차분해졌다.

“수수께끼를 하자는 거야? 그런 건 풀 시간 없으니까 빨리 말해.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채아가 눈알을 희번덕이며 말했다.

“아주 간단해. 작은 단서를 따라서 출구를 찾으면 돼.”

석목이 담담하게 말하고는 눈앞에 놓인 부문들을 쫓아가며 입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는 계속해서 부문들을 하나하나 짚어 마치 셈을 세는 것만 같았다.

잠시 후에 석목은 눈앞이 환해지더니 몸을 날려 한쪽 방향으로 날아갔다.

앞으로 갈수록 부문들이 점점 촘촘해졌다.

그 광경을 본 채아는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석목은 방향을 끊임없이 바꾸었다. 빛들이 밀집된 방향으로 무작정 쫓아가는 게 아니라 간간히 멈춰 서서 한참 고민을 하다가 다시 앞으로 날아가곤 했다.

* * *

봉명골.

여덟 연무대에 설 수 있는 제자들은 전부 천하 성역의 각 종족에서 온 실력이 뛰어난 제자들이라 대결은 전례 없이 치열했다. 굉음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며 관전을 하러 온 구경꾼들은 화려한 전투를 보며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런 성계 강자들이 치르는 대결을 볼 기회는 그리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또한 구경꾼들도 수련 경지를 끌어 올리는 데 꽤 많은 도움을 받을 터였다.

반 시진도 채 지나지 않아 현장에서 치르는 전투 소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이는 첫 번째 대결이 전부 승부를 가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다음 차례에 치러진 대결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한 시진도 채 지나지 않아 세 번째 대결도 막을 내렸다.

이때, 조주동이 다시 일어서서 마지막 대결을 치를 대진을 선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건’자 석대에서부터 선포하는 게 아니라 나머지 일곱 연무대의 대진들을 전부 발표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미천거원 일족의 대표인 석목이 현장에 오지 않아 ‘건’자 석대의 도전자인 방진은 곧바로 다음 대결로 오르게 되었습니다.”

말을 마친 조주동은 손을 흔들어 옷자락에서 옥첨을 날렸다. 옥첨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글씨 한 줄이 나타났다.

“마지막 차례, ‘건’자 석대.”

조주동이 말을 마치자 천갱 주변이 시끌벅적해졌다.

“하, 저 방진이라는 자는 정말 운이 좋군!”

“이 자식은 아마 자정마우 일족에서 온 것 같은데. 그 유명하다는 팔황고족 중에 하나잖아.”

“오, 그 석목이라는 자는 미천거원족이라지. 전설로 내려오던 팔황고족의 우두머리 종족이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되다니. 종족을 대표한다는 놈이 대결에 참여도 하지 않았네.”

“몰락한 황족의 후손이라기에 엄청나게 기대했는데!”

이때, 관전대에서 면사포를 쓰고 있던 성녀의 가냘픈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성녀가 천갱 주변을 훑어보며 마치 무엇인가를 찾는 것 같았다.

성녀 옆에 있던 조선기가 성녀의 표정을 살피며 의아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에 성녀는 두 눈을 감았다. 영력 파동이 주변으로 넓게 퍼지더니 산골짜기를 훑었다.

성녀 옆에 앉아있던 조령롱이 성녀의 손을 가볍게 몇 번 두드렸다.

다시 눈을 뜬 성녀는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가득했다.

조령롱도 무엇을 찾는 것만 같은 눈빛이었다. 하지만 조령롱도 아무 말 없이 고개만 흔들었다.

이제 막 연무대 위로 올라가려던 방진은 어리둥절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너 이 자식 운이 좋네. 석 형과 대결을 치를 뻔했는데 때마침 석 형이 없군.”

서유금이 방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방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미소를 띠던 방진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머릿속에서 그의 형인 방책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흥, 이런 개똥 같은 운이 있나. 그런데 다음 대결을 치를 땐 운이 그리 좋지 않을 거다.”

서유금은 방진의 안색을 살피다가 시선을 먼 곳에 있는 방책에게로 던졌다. 방책이 비꼬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경 쓰지 말게. 이제 대결을 치르면 어차피 실력이 밝혀질 테니.”

서유금이 낮은 목소리로 일깨워주었다.

“맞아요.”

방진이 깊은숨을 내뱉으며 돌아서서 애써 외면했다.

마지막 전투도 빠르게 끝나버렸다.

육십네 명이나 되던 참여자들은 절반으로 줄어 달랑 서른두 명만 남았다.

* * *

이 시각, 석목은 여전히 파란 바다 위를 날아다니며 이리저리 방향을 틀었다가 자리에 한참 멈춰 서기를 반복했다.

바다는 마치 영원할 것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석목의 표정은 차분했지만, 어깨에 앉아있던 채아의 표정은 매우 초조했다. 석목에게 대체 제대로 나가고 있는 게 맞는지 묻고 싶었지만, 채아는 간신히 참아냈다.

잠시 후에 석목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바다를 향해 파고들었다.

채아가 물어보기도 전에 석목이 광막을 감싸고는 ‘풍덩!’ 소리와 함께 바다 속으로 빠져버렸다.

그리고 바다의 깊은 곳까지 헤엄을 쳤다. 석목은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리까지 잠수를 하여 내려왔지만, 여전히 바다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 석목이 눈을 반짝이며 멈춰 서서는 앞을 바라보았다.

영목신통으로 바라보니 눈앞에 빛나는 점들이 촘촘하게 뭉쳐져서는 부문으로 커다란 벽을 이루고 있었다.

벽 뒤로 희미하고 혼돈된 빛이 일렁거렸다.

“여기다!”

석목의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그럼 빨리 금제를 깨뜨리자. 시간이 없다고!”

채아가 그리 말을 하고는 몸을 날렸다. 그리고 날카로운 두 발에 빛을 뿜어내어 벽을 힘껏 긁어댔다.

“조심해!”

석목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채아의 발이 이제 막 부문 벽에 닿는 순간 파란 번개가 난데없이 나타나 채아에게 내리쳤다. 그리고 채아가 두르고 있던 보호 광막을 가볍게 깨부수더니 채아의 몸으로 뻗었다.

이때, 옆에서 커다란 손이 채아의 꼬리를 잡아 뒤로 힘껏 잡아당겼다. 동시에 구룡쇄금갑을 두른 석목의 몸이 채아의 눈앞에 나타났다.

쾅!

파란 번개가 구룡쇄금갑에 부딪치며 터져버렸으나 다행히 석목은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다.

채아가 겁에 질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석목이 막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큰일이 날 뻔했다.

“야, 석두, 내 꼬리는 왜 잡아당겨! 털이라도 빠지면 어쩌려고!”

채아가 꼬리를 털어내며 투덜거렸다.

석목은 채아를 거들떠보지도 않고는 시선을 앞에 있는 벽으로 던졌다.

순간, 석목이 번천곤을 꺼내 들었다. 시간을 들여 금제를 풀 인내심이 더는 없었다.

번천곤이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뿜어내며 강하게 벽으로 내리쳤다.

부문 벽의 신통도 대단했지만, 번천곤으로 날린 일격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쩍!

부문 벽이 부서지며 눈앞에 혼돈의 공간이 나타났다.

석목이 다시 손에 금빛을 터뜨리며 손바닥으로 허공을 잡아 혼돈의 공간으로 빛을 뿌려 넣었다.

칙, 칙!

혼돈된 허공에 커다란 틈이 하나 벌어졌다.

석목이 몸을 날려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눈앞이 희미해지며 파르스름한 세상이 펼쳐지더니 크기가 몇 장 정도인 빛나는 푸른 구체가 눈앞에 나타났다.

구체는 수많은 파란색 부문으로 이루어졌는데 매우 복잡한 진법이었다.

“이게 핵심 금제야?”

채아가 물었다.

“원래 주인이 죽어버려서 이 법보는 이제 주인이 없어.”

석목이 말했다.

“그럼 빨리 이 진법을 약화시켜.”

채아가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을 흔들어 파란색 진법 속으로 법결을 줄줄이 날렸다.

그러자 파란 진법은 빛이 짙어지며 ‘윙윙’ 바람 소리를 냈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왜 그래. 석두?”

채아가 물었다.

“큰일이야. 이 금제 진법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해. 간단하게 장악할 수 있는 단계까지만 가려고 해도 아마 두세 시진은 걸릴 것 같아.”

석목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축전은 이미 시작되었으니 금제를 약화하여 이 공간을 벗어나는 방법 말고는 별다른 길이 없었다.

석목이 깊은 숨을 내뱉으며 법결을 줄줄이 날려서는 금제 진법을 약화시키기 시작했다.

* * *

봉명골.

첫 번째 대결이 끝나고 난 후에 잠깐 휴식 시간을 가진 뒤, 조주동이 다시 걸어 나왔다.

“두 번째 대결을 펼치겠습니다. 두 번째는 혼전입니다. 첫 번째 대결에서 승리한 서른두 명이 여덟 조로 나뉘어 네 명씩 여덟 연무대에서 동시에 대결을 펼칠 겁니다. 조마다 승자 두 명를 선발하여 세 번째 대결을 치르겠습니다.”

조주동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서유금과 방진은 서로 눈을 마주하며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모두가 대결 방식을 예상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이것은 서른두 명이 각각 속한 조의 명단입니다.”

조주동이 손을 흔들어 붉은빛을 날리자 붉은빛이 다시 광막으로 펼쳐졌다.

광막에선 이름이 줄줄이 나타났으며 네 명씩 한 석대에서 혼전을 치르게 되었다.

순간, 서유금과 방진은 동시에 웃음꽃을 피웠다. 두 사람이 같은 조로 묶인 것이었다.

“서 형, 우리……”

방진이 전음을 보내며 말했다.

“말할 것도 없지. 우리는 벗이니 당연히 힘을 합쳐 싸워야지.”

서유금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방진이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