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691화 (691/916)

691화. 금제를 뚫다

참여자들은 전부 각자의 연무대로 올라갔다.

‘곤’자 연무대에서 서유금과 방진은 각각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스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푸른 갑옷을 두른 청년과 검은 피풍의를 두른 사나이였다.

둘은 수련 경지가 전부 성계 후기였다. 하지만 서유금과 방진의 시선은 전부 푸른 갑옷을 두른 청년에게로 향했다.

푸른 갑옷에 거북이 등껍질 모양의 도안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건 반귀 일족을 상징하는 종족 표시였다.

“시작!”

조주동이 낮게 소리를 지르자, 연무대 여덟 곳이 동시에 밝아졌다. 연무대 주변에 네모난 광막이 하나 나타나더니 무대 전체에 드리웠다.

순간, 서유금과 방진이 동시에 날아올라 각각 한 명씩 덮쳤다.

서유금은 손에 회색빛을 번쩍이더니 장검 한 자루가 나타났다. 시퍼렇게 날이 선 검에서 사나운 기운을 풍기며 커다란 검영으로 뭉쳐져서는 반귀족 청년에게 향했다.

방진도 보라색 낭아봉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몸통이 번개로 변하여 검은 피풍의를 두른 사나이를 덮쳤다.

반귀족 청년은 심각한 얼굴로 순식간에 물빛을 넓게 펼쳤다. 순간, 물빛이 튀는 갑옷이 나타났는데 이 갑옷은 석목의 구룡쇄금갑과 매우 흡사했다. 다만 청년이 두른 갑옷에는 가시 따위가 자라나 있어서 방어를 하는 동시에 공격도 할 수 있었다.

청년은 장갑을 낀 손으로 주먹을 쥐더니 서유금이 날리는 회색 검광을 강하게 내리쳤다.

쾅!

굉음이 울려 퍼지자 서유금의 몸통이 가볍게 날아갔으며 입에서는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런데 날아가던 몸통이 때마침 검은 피풍의를 입은 사나이와 부딪쳤다.

반귀족 청년의 눈엔 의외라는 기색이 어렸다.

이렇게 약해 빠졌다니?

서유금이 튕겨져 날아오는 것을 본 검은 피풍의를 두른 사나이는 눈에 음흉한 웃음기가 어렸다.

그리고 검은 장검으로 빛을 뿜어내며 가로로 휘둘러 방진을 물리치고는 미간 사이 피부를 뒤집어 세로로 된 눈을 드러냈다.

세로로 자라난 눈에서 한 줄기 검은빛이 뿜어져 나와 다시 수만 갈래로 갈라지더니 서유금에게로 향했다. 이대로라면 서유금의 몸통이 또 다시 날아갈 게 뻔했다.

이때, 서유금은 날렵하게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매우 영리한 쥐처럼 몸을 비틀어 검은빛을 피하고는 순식간에 검은색 피풍의를 두른 사나이 앞에 나타났고, 서유금의 얼굴에 음흉한 웃음이 어렸다.

서유금의 회색 장검에서 빛이 터지듯 뿜어져 나왔으며 촘촘한 검기가 튕겨나와 소나기처럼 사나이에게로 쏟아 부었다.

방진이 한 손으로 법결을 짚으며 두 눈에 보랏빛을 반짝였다. 그러자 낭아봉에서 번개가 일더니 검은 피풍의를 두른 사나이를 향해 무겁게 내리쳤다.

그제야 검은 피풍의를 두른 사나이는 속았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놀란 기색을 드러냈다.

당황한 사나이는 세로로 자라난 눈에서 검은빛을 뿜어 진득한 액체 같은 빛들을 뭉치며 몸을 감쌌다.

그와 동시에 입에서도 검은빛이 뿜어져 나왔는데 그건 크기가 한 뼘 정도 되는 원판이었다. 원판은 빙글빙글 돌며 크기가 십 장까지 불어나 몸 앞을 가로막았다.

검은 피풍의를 두른 사나이가 방어를 마친 순간, 검기와 번개가 우르르 다가와 가장 먼저 검은 원판에 떨어졌다.

그러자 원판은 마치 썩은 나뭇조각처럼 부서져 나갔다.

사나이는 겁에 질린 표정을 드러냈지만 이미 늦었기에 피할 수도 없었다.

후훅!

진득한 액체 같은 빛이 잠시 버티는 듯했으나 이내 찢어져 버려 회색 검기와 보랏빛 번개가 사나이의 몸통을 묻어버렸다.

펑!

굉음과 함께 검은 피풍의를 두른 사나이의 몸통이 날아가 연무대에 드리운 금제와 부딪쳤다. 사나이는 온통 검에 긁힌 상처로 피범벅이 되어있었으며 몸 곳곳이 까맣게 타버려 성한 곳이 없었다.

서유금과 방진이 힘을 조절해서 사나이는 겨우 죽음을 면한 채 쓰러졌다.

서유금과 방진은 서로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반귀족 청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반귀족 청년은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서유금과 방진은 동시에 큰소리를 지르며 회색 검기와 보랏빛 번개를 몰고서 반귀족 청년을 덮쳤다.

* * *

또 다른 연무대 주변에서는 환호성이 끊이지 않았다.

무대 위에 선 한절은 혼자서 요족 청년 두 명과 싸우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연히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 회색 피풍의를 두른 청년 한 명이 연무대 구석에 서서 눈앞에서 펼쳐지는 대결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한절이 하얀색 바퀴 모양 무기를 들고서 가볍게 흔들자, 칼날처럼 생긴 빛이 줄줄이 뿜어져 나갔다.

하얀 빛날의 위력은 워낙 강력해서 두 사람이 힘을 합쳐야만 간신히 막아낼 수 있었다.

“이제 그만 하지.”

한절이 담담하게 한 마디를 던지고는 무기에 빛을 더 밝게 드리웠다. 순간, 바퀴 옆으로 둥근 허영 열 몇 개가 줄줄이 이어져 나왔으며 허영마다 크기가 열 몇 장 정도로 커졌다. 그리고 ‘윙윙’ 날카로운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한절이 손가락을 앞으로 짚자 바퀴 허영이 앞으로 날아가 두 사람을 내리쳤다.

깜짝 놀란 두 요족은 동시에 소리를 지르며 온 힘을 다해 공격을 막아내려 했다.

붉은 피풍의를 두른 요족 사나이가 낮게 소리를 지르며 몸에 눈부신 빛을 뿜어내자 크기가 스무 장 정도 되는 붉은 비늘을 두른 구렁이가 나타났으며 충혈된 듯이 붉게 물든 두 눈으로 싸늘한 빛을 뿜어냈다.

요족 사나이는 적망족이었다.

적망족은 팔황고족은 아니었지만, 천하 성역에서 꽤나 명성이 자자한 종족이었다.

또 다른 한 명도 몸에서도 붉은빛이 밝아지더니 순식간에 커다란 두꺼비로 변신하였다. 두꺼비는 크기가 열 몇 장 되는 갑옷 같은 껍질을 몸에 덮어쓰고 있었으며 툭 튀어나온 눈은 마찬가지로 붉은빛을 뿜어냈다.

혈합족(血蛤族)!

붉은 구렁이가 입을 크게 벌리자 입가에서 선이 뚜렷한 빛이 나타나 커다란 소용돌이를 만들어 강력한 흡인력이 맴돌았다.

하얀 바퀴가 붉은 소용돌이에 닿는 순간, 곧바로 기이한 힘에 묶여버려 빠르게 줄어들더니 결국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졌다.

붉은 두꺼비도 큰소리를 지르며 혈무를 뿜어내어 공격해오는 바퀴를 막았다.

하얀 바퀴가 핏빛 안개에 닿자 순식간에 부식되어 어두워졌다.

한절이 눈에 빛을 반짝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이어서 한절은 손을 흔들어 바퀴 법보로 붉은 구렁이를 공격하는 동시에 몸을 날려 두꺼비를 덮쳤다.

하얀 바퀴는 점점 불어나더니 순식간에 크기가 수십 장 되는 거대한 바퀴로 변하여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바퀴가 붉은 구렁이의 입가에 드리운 소용돌이를 내리치며 마구 갈겨 소용돌이가 두 개로 갈라질 것 같았다.

붉은 소용돌이는 힘겹게 돌아가며 하얀 바퀴를 삼키려 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구렁이는 눈에 고통스러운 기색이 어렸으며 둘은 한참 동안 대치 상태를 이루었다.

이때, 하얀 바퀴는 빛이 한층 더 밝아지더니 갑자기 하얀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바퀴가 지닌 위력이 전보다 훨씬 강력해진 것이었다.

펑!

붉은 소용돌이가 터져버리자 하얀 바퀴는 곧바로 구렁이의 머리를 내리쳤으며 구렁이의 몸통이 연무대에 드리운 광막에 ‘쿵!’ 부딪쳤다.

구렁이는 머리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깊은 상처가 패였으며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붉은 구렁이는 매우 약한 숨을 이어나갔으나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한절이 몸을 번쩍이며 두꺼비 앞에 나타났고, 한절의 몸에서도 하얀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는데 바퀴에 붙은 불과 똑같은 색이었다.

한절의 몸이 찬란한 불길로 변하더니 두꺼비를 향해 덮쳤다.

두꺼비 앞에 드리웠던 붉은 안개는 하얀 화염이 닿자마자 곧바로 ‘칙칙’ 소리를 흘려보냈다. 광막에 닿은 화염은 부식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푸른 연기를 피워올렸다.

두꺼비는 두려운 눈빛을 내비치며 갑자기 괴상한 소리를 내더니 입을 크게 벌려 다시 붉은 안개를 뿜어냈다. 안개가 뭉치자 또 다시 두꺼비의 몸 앞에 광막이 펼쳐졌다.

하지만 하얀 화염이 번쩍이며 안개 광막을 가볍게 뚫어버렸다.

두꺼비는 얼굴에 절망스런 기색이 어렸다. 그러더니 두 볼을 볼록하게 부풀렸다가 입을 벌려서 길고 얇은 무엇인가를 뿜어내어 하얀 화염을 공격했다. 내뿜은 것을 자세히 보니 두꺼비의 혀였다.

하얀 화염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먼저 울려 퍼지더니 그 뒤로 검영이 한 갈래 튀어 나왔다.

혀와 검영이 서로를 스쳤다.

이윽고 불빛을 반짝이며 한절이 나타났는데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때 두꺼비의 혀가 ‘퍽!’ 소리와 함께 부서졌고, 커다란 몸통은 제자리에서 굳어버렸으며 가슴께에 난 두꺼운 상처가 까맣게 타버렸다.

두꺼비는 몸통을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쓰러지며 입으로 피를 뿜어냈다.

“한절, 기예(齊豫) 승리.”

조주동이 우렁찬 목소리로 선포했다.

무대 밑에서 열렬한 환호성이 울려 퍼지더니 모든 사람이 한절에게 경외하는 눈빛을 보냈다.

한절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조주동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회색 피풍의를 두른 청년을 거들떠보지도 않고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단 한 번도 공격을 하지 않고서 승리한 청년은 착잡한 눈빛으로 천천히 연무대에서 내려왔다.

* * *

이 시각, 서유금과 방진도 이미 승리를 거두고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엄청난 녀석이군! 우리도 저 자와 단둘이 싸운다면 어림도 없겠어.”

서유금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한절을 바라보며 말했다.

방진은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순간 무엇인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서 형, 만약 석 공자가 있었더라면 저 자를 이길 수 있을까요?”

“석 형이 있었더라면 이길 수도 있었겠지.”

서유금이 말했다.

방진이 생각에 잠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석대 위에 있던 성녀와 조선기는 동시에 한절을 바라보았다.

“수아, 저 한절이라는 사람이 괜찮아 보이는데. 얼굴도 반듯한 게 실력도 뛰어나고, 예의도 바른 것 같아. 너랑 아주 잘 어울리는걸.”

조선기가 성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선기 언니, 장난치지 마세요.”

성녀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골짜기 밖을 한번 쳐다봤다가 다시 시선을 거두어들였다.

“수아, 아까부터 안색이 좋지 않아.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조선기가 물었다.

“아니예요. 조금 피곤해서요.”

성녀가 그렇게 말을 하며 눈을 감았다.

조선기가 눈에 빛을 반짝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수아, 이런 방법으로 네 배필을 찾는다는 게 썩 내키지 않는다는 건 알아. 하지만 이건 천봉 일족과 천하 성역을 위한 일이잖아. 어쩌겠어.”

“선기 언니, 저도 잘 알아요.”

성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근처 석대에 열 몇 명이 앉아있었다. 석대에선 자정마우 일족에서 온 방책, 그리고 주루에서 석목 일행과 충돌을 일으켰던 천봉 일족의 청년 조역이 자리를 지켰다.

이들은 전부 면제권을 받은 참여자들이었는데 그들도 한절이 신경 쓰이는 듯했다.

“한절이라는 녀석은 실력이 꽤 괜찮은 것 같군. 어디서 온 놈이지?”

조역이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전부 한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한절의 실력에 꽤나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들도 둘째가라면 아쉬워하는 사람들이라 애써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다.

이들 중에 가장 왼쪽에 있는 훤칠한 청년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두 눈을 감고 있었는데 매우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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