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2화. 도전 대결
파란색 공간에 자리한 바다 깊은 곳.
가부좌를 틀은 채 두 눈을 감고 있던 석목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열 손가락을 모아 몸 앞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입을 열어 파란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파란빛이 진법 속으로 스며들었다.
파란 진법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 나오더니 돌아가는 속도가 순식간에 몇 배나 더 빨라졌다.
“됐다!”
석목이 자세를 바로 잡고는 두 손을 흔들며 입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파란빛이 나타나 석목의 몸을 감쌌다. 채아는 다급하게 석목의 옷자락을 꽉 잡았다.
채아는 눈앞이 희미해졌다가 환해지더니 이윽고 황량한 산이 나타났다.
“됐다. 드디어 나왔어!”
채아가 흥분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석목이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그러자 파란 바리때 법보 하나가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석목이 손을 흔들자 법보가 손으로 날아왔다.
“엄청난 보물이군. 영보야!”
석목은 눈빛이 기쁨으로 가득 찼다.
이 바리때 법보는 깃털로 만든 파란 영선만큼이나 현묘했는데 지금은 이 영보들을 연구할 때가 아니었다. 축전이 시작된 지 한참이나 지났으니 빨리 가봐야만 했다.
석목은 바리때를 거두어들이고는 주변을 대충 훑어보았다. 그리고 한쪽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 * *
봉명골.
두 번째 대결이 끝났으며 열여섯 명이 승리를 거두었다.
“이제 세 번째 대결이 펼쳐질 예정입니다. 세 번째 대결은 도전 대결입니다.”
조주동이 한 손을 흔들자 깃발이 열 몇 개 날아 나와 ‘푹!’ 소리를 내며 팔괘 연무대 앞에 자리한 높은 석대 위에 한 줄로 꽂혔다.
깃발에는 숫자가 적혀있었는데 각각 일부터 십까지 적혀있었다.
“깃발로 가서 앉으시죠.”
조주동이 조역을 비롯한 면제권을 받은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면제권을 받은 사람들이 석대로 날아올라 깃발 아래에 순서대로 앉았다.
적양이 첫 번째 깃발에 앉았으며 두 번째 깃발에는 얼굴에 먹물뜨기를 한 청년이 앉았는데 복식을 보니 반귀 일족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깃발에 앉은 사람은 조역이었다.
방책은 여섯 번째 깃발 아래 앉아있었는데 매우 가벼운 표정으로 옥으로 빚은 사자 하나를 매만졌다.
그 모습을 본 방진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옷소매 안에 숨긴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이번 대결은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됩니다. 첫 번째 대결은 열여섯 명이 깃발 밑에 앉아있는 열 명에게 도전을 신청하여 승리하였을 때, 깃발 아래 자리를 얻게 되는 방식입니다.”
조주동이 말했다.
그러자 구경꾼들은 또다시 북적거리며 참여자들을 훑어보았다.
“두 번째 차례는 십 위 안에 든 참여자들끼리 서로에게 도전을 하여 정확한 순위를 가립니다. 우승을 한 사람은 우리 천봉 일족의 데릴사위가 될 것이며 성녀와 혼인을 맺게 될 예정입니다.”
조주동이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계속해서 말했다.
주변에서 열렬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모든 사람이 천봉 일족의 성녀를 바라보았다.
서유금, 방책을 비롯한 사람들이 천봉 일족의 성녀를 바라보며 열망하는 눈빛을 보냈다.
일 등을 하게 되면 엄청난 혜택을 받는 건 물론이거니와 미인까지 데려갈 수 있었다.
“이번 대결은 총 세 번 도전을 할 기회가 있습니다. 세 번을 넘긴다면 도전 자격을 상실합니다. 이제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조주동이 선포했다.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누군가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저는 두교라고 합니다. 아홉 번째 깃발에 앉은 엽(葉) 형에게 도전하겠습니다!”
얼굴이 까무잡잡한 청년이 일어서서 아홉 번째 깃발 아래에 앉아있는 잘생긴 청년을 바라보며 말했다. 청년은 머리에 금색 고리를 끼운 채 도금 부채를 흔들었다.
금색 고리를 쓴 청년은 그 말을 듣더니 눈을 희번덕이며 얼굴이 까무잡잡한 청년을 한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싸늘하게 웃으며 날아 내려왔다.
둘은 쓸데없는 말을 삼가고는 바로 대결을 펼쳤다.
쾅!
맹공격이 시작되며 치열한 전투를 펼치니 승부는 빨리 결정되었다.
금색 고리를 쓴 청년은 막강한 위력을 지닌 불속성 비차 법보를 지니고 있어서 얼굴이 까무잡잡한 청년은 큰 부상을 당한 채 패배를 맛보았다.
대결은 계속되어 곧바로 두 사람이 연무대에 올라왔는데 전부 상대를 꺾지 못했다.
이때, 방진이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앞으로 걸어갔다.
“잠깐 기다려봐. 네 형, 아주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은데 우선 다른 사람들이 도전을 하도록 놔두고서 실력을 좀 가늠해봐야 이길 수 있을 것 같군.”
서유금이 방진을 말리며 말했다.
“서 공자님께서 해주신 깊은 충고는 감사합니다만 우리 자정마우 일족은 전부 용맹과 날카로운 기운에 의지하여 전투를 치르죠. 머뭇거릴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방진이 웃어보이며 몸을 날렸다.
서유금은 미간을 찌푸렸다. 방진은 성격이 무모할 정도로 성급해 승산이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았다.
“저는 방진이라고 합니다. 저는……”
방진이 하던 말을 끊고는 시선을 돌려 여섯 번째 깃발 아래를 노려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저는 여섯 번째 깃발에 앉은 방책에게 도전하겠습니다!”
순간, 연무대 근처에 모인 구경꾼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방진과 방책의 신분과 관련된 소식은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다.
근처에 자리한 석대 위에 있던 자정마우 일족의 족장은 눈에서 빛을 반짝였다.
“하하! 방진. 내가 싸우는 걸 두어 번 정도는 지켜보고서 도전을 할 줄 알았는데, 보아하니 우리 자정마우족이 타고난 오기만큼은 네게 남아있는 듯하구나.”
방책이 큰소리로 웃으며 석대에서 내려오더니 방진의 맞은편에 섰다.
방진은 방책의 자신 있는 모습을 바라보자 가슴이 가라앉았다.
“그만 지껄여!”
방진은 큰소리를 지르며 보라색 낭아봉 법보를 꺼내 들더니 보랏빛 교룡으로 변하여 날아가서는 순식간에 방책 앞으로 다가가 낭아봉을 힘껏 휘둘렀다.
“흥! 오늘 제대로 보여주지. 누가 진정한 자정마우 일족의 소주인지!”
방책이 차갑게 웃으며 손에 보랏빛을 번쩍이자 커다란 보라색 전도가 하나 나타났다.
그리고 도를 위로 치켜들자 날카로운 기운이 줄줄이 뿜어져 나왔다.
도와 봉이 부딪치며 굉음이 울려 퍼지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고막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이어서 두 갈래 눈부신 보랏빛이 부딪쳤다가 다시 갈라졌다.
방진은 뒤로 ‘쿵, 쿵!’ 소리를 내며 한참을 밀려나서야 간신히 몸을 멈춰 세웠다.
방진은 입가에 붉은 피가 묻었는데 전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방책도 뒤로 몇 걸음 밀려나긴 했으나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말이 안 되잖아! 며칠 사이에 실력을 이 정도로 끌어올렸다고!”
방진이 낮게 소리를 질렀다.
“흥! 한 치 앞도 못 보는 주제에! 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지. 덤벼!”
방책이 큰소리로 웃으며 몸을 날렸다.
방진도 아무 말 없이 앞을 향해 덮쳤다.
허공에서 두 갈래 보라색 잔영이 끊임없이 부딪치며 연이은 소리를 하늘에 퍼뜨렸다. 눈 깜짝할 사이 수백 번은 부딪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쿵!
보라색 그림자가 허공에서 튕겨져 날아가 땅으로 파고들어 커다란 웅덩이가 생겼다. 튕겨져 나간 그림자는 방진이었다.
방진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가슴께의 뼈가 전부 움푹 꺼져버려 입에서 붉은 피를 뿜어냈다.
방진은 허우적대며 일어서려 했지만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철저하게 무너져 버린 것이었다.
“이제야 알겠군. 대력우마령(大力牛魔令)을 네가 갖고 있구나! 허, 그러니 실력이 갑자기 이 정도로 늘었겠지.”
방진이 피를 뿜으며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무대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석대에 앉아 하얀 눈썹을 드리운 자정마우 일족의 족장을 올려다보았다.
대력우마령은 자정마우 일족의 족장이 쓰는 신물이었다. 방책이 저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건 자정마우 일족의 다음 족장이 이미 결정되었다는 뜻이었다.
눈썹이 하얀 노인은 미간을 찌푸렸다가 다시 풀었다.
“흥! 나는 자정마우 일족의 소주야. 그러니 대력우마령은 당연히 내 꺼지.”
방책이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방진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띠었다. 오랫동안 쌓여있던 응어리가 드디어 풀린 것만 같았다.
“방책 승리!”
조주동이 결과를 선포했다.
주변 사람들이 다시 웅성거렸다.
방책은 입가를 꾹 눌렀는데 아쉬움이 남은 것이었다. 만약 천봉 일족에서 벌이는 축전이 아니라 살인을 저질러도 상관이 없는 자리였더라면 방책은 방진을 철저하게 죽여 영원히 뒤탈이 없도록 만들고 싶었다.
결국 방책은 콧방귀를 뀌며 다시 깃발 아래로 와서 앉았다.
방진은 한참 후에야 간신히 일어서서는 무대에서 내려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서유금은 방진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리고 멀리서 바라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 * *
대결은 계속되었으며 도전이 이어졌다.
깃발 아래에서 펼쳐지던 불패의 신화는 일곱 번째 깃발 아래에 앉은 요족 청년이 패배하여 자리를 내주며 곧바로 깨져버렸다.
그러자 도전자들은 자신감이 폭발했다.
하지만 서유금은 계속 한쪽에 서 있기만 했다. 도전할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도통 알 수 없었는데 서유금은 계속해서 한 차례, 한 차례 전투를 살펴보며 분석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반 시진이 흘렀으며 깃발 아래에 앉은 사람도 네 명이 나 바뀌었다. 그 사이에 도전자는 점점 줄어들었다.
이때, 서유금이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저는 서유금이라합니다. 아홉 번째 깃발에 앉은 엽 형에게 도전하겠습니다!”
“흥!”
금색 고리를 쓴 청년이 귀찮은 얼굴로 날아왔다.
청년은 순위가 낮은 편이라 도전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비록 매번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럼에도 도전자들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이번은 가볍게 지나가지 않을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하시지요!”
금색 고리를 쓴 청년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엽 형,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서유금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금색 고리를 쓴 청년이 손을 흔들자 불타는 작살 법보가 날아 나와 커다란 화룡으로 변하였는데 크기가 족히 십여 장은 되는듯했으며 화룡은 서유금을 덮쳤다.
화룡의 몸에서 불길이 기승을 부리더니 옅은 금색이 나타났다. 그리고 뜨거운 기운이 퍼져 연무대는 마치 용광로로 변한 것 같았다.
서유금은 눈을 반짝이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파란 고리 모양 법보가 날아 나와 빛을 번쩍였는데 그 속에서는 밀물이 출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서유금은 무엇인가 중얼거리며 손가락으로 앞을 짚었다. 그러자 파란 고리에서 빛이 점점 넓어졌다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이어서 파란색 고리가 허공에 나타나 화룡의 목을 묶어버리더니 고리에서 극한의 기운이 폭발하였다.
화룡은 고통스럽게 울부짖다가 몸통이 터져버렸다. 그리고 다시 화염 작살로 변하여 바닥에 떨어졌는데 작살에는 파란 얼음이 한 층 덮여있었다.
청년은 안색이 바뀌더니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동시에 몸을 날려 서유금을 덮쳤다.
서유금도 소리를 지르며 몸에 회색빛을 드리운 채 앞에서 공격을 맞이했다.
두 그림자가 얽히고설키며 회색빛과 붉은빛이 하나로 뭉쳐져 두 사람을 묻어버렸다. 빛 밖에서는 안쪽 상황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에 그림자 하나가 날아 나와 땅에 떨어졌는데 그 그림자는 금색 고리를 낀 청년이었다.
청년은 옷이 갈기갈기 찢어진 채 검은 밧줄 법보에 묶여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눈에서는 분노가 이글거렸다.
철저하게 패배를 맛본 것이었다.
하지만 절대 청년이 갖춘 실력이 뒤처지는 게 아니었다. 눈앞에 서있는 소위 상인 나부랭이가 청년의 수완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서유금은 다양한 법보를 바꿔가며 청년이 꼼짝도 할 수 없도록 공격을 했다.
서유금은 천천히 허공에서 내려왔는데 옷자락이 먼지 한 톨 묻지 않아 깨끗했다.
구경꾼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서유금 승리!”
조주동이 결과를 선포했다.
“엽 형, 실례했네요.”
서유금이 손을 흔들어 검은 밧줄과 파란 고리 법보를 거두어들이고는 아홉 번째 깃발 아래에 앉았다.
금색 고리를 쓴 청년이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무대 위에 놓인 화염 작살 법보를 거두어들이고는 축전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