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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693화 (693/916)

693화. 봉명골로 가다

대결은 끝자락을 달리고 있었으며 도전하는 사람도 점점 드물어졌다.

무대에 선 사람들은 대부분 한절을 바라보았다.

세 번째 대결이 시작된 후부터 지금까지 한절은 조용히 서서 단 한 번도 나서지 않았다.

쾅!

한 도전자가 처참하게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결과를 선포하기도 전에 창피해하며 무대에서 내려와 인파 속을 뚫고는 사라져버렸다.

“도전할 사람이 더 있습니까?”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아무도 도전을 하지 않자 조주동이 물었다.

“아무도 계속 도전하지 않겠다면 저……”

조주동이 말을 마치자 한절이 무대 위로 날아올랐다.

“저는 적양에게 도전하겠습니다.”

한절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자 또다시 현장은 왁자지껄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도 적양에게 도전장을 내밀지 못했다.

적양은 눈을 번쩍 떴다. 싸늘한 빛이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적양은 몸을 벌떡 일으켜 곧바로 무대 위로 날아올랐다.

* * *

봉익성 앞의 허공, 석목이 허공에서 주변을 훑어보며 의아한 기색을 내비쳤다.

성문은 활짝 열려있었으며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었다.

앞선 며칠 동안 성문은 바람 한 점조차 샐 수 없을 정도로 닫혀있었다. 심지어 커다란 진법을 펼쳐 온 성시를 막아 사람들이 드나드는 걸 엄격히 제한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석목이 눈을 깜빡거리며 성문 주변에 내려왔다.

“저기, 도우님.”

석목이 천위 경지인 푸른 피풍의를 두른 요족 청년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 은근히 성계 경지의 기운을 그대로 풍겼다.

“선배님, 무슨 일입니까?”

요족 청년이 공손하게 물었다.

“봉익성은 성문이 왜 갑자기 열렸나요? 며칠 동안 엄격하게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석목이 물었다,

“선배님께선 모르셨나보네요. 천봉 일족은 오늘 성 밖의 봉명골에서 축전을 펼칩니다. 모든 사람들이 전부 성 밖에 있으니 성문을 계속 봉쇄할 필요가 없어진 셈이죠.”

요족 청년이 말했다.

“축전이 성 밖에서 열린다고요?”

석목은 어리둥절했다.

“봉명골은 천봉 일족의 성지라 성녀 수임 축전은 늘 거기서 열렸죠.”

요족 청년이 말했다.

“그렇군요. 그럼 봉명골은 어디에 있습니까?”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남쪽으로 삼 천 리 정도 가야 하죠.”

요족 청년이 대답을 했다.

“감사합니다.”

‘감’자를 내뱉으며 석목은 이미 하늘로 솟아올라 남쪽으로 날아갔다.

* * *

봉명골의 연무대 위.

적양과 한절이 마주 보고 선 채 아무도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적양의 몸에서 검은색 빛이 번지더니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나에게 도전하겠다고? 하하하! 주제 파악을 너무 못하는군!”

“저는 령수 성녀님을 위해 왔죠. 그런데 이를 어찌합니까? 큰 돌 하나가 가로 막고 있네요. 그러니 돌을 한쪽으로 옮겨놔야하지 않겠습니까?”

한절이 차분한 눈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말을 하는 동안 팔도 가볍게 흔들었고, 하얀 바퀴 법보가 나타나자 빙글빙글 돌며 적양에게 향했다.

이어서 부문들이 바퀴 법보에서 원을 그리며 날아 나왔으며 바퀴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빛은 전보다 훨씬 찬란했다. 바퀴에 달린 톱니가 주변을 베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적양은 눈에서 빛을 반짝이더니 차갑게 웃었다.

그리고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자 오른팔에서 검은 비늘이 겹겹이 나타났다. 비늘은 마치 돌처럼 울퉁불퉁했으며 손가락에는 뾰족한 손톱이 돋아 매서운 빛을 뿜어냈다.

적양의 오른팔은 흉악하기 그지없었는데 태고 흉수의 기운이 하늘로 치솟으며 층층이 강해졌다.

적양이 손을 흔들어 하얀 바퀴를 손으로 잡았다.

바퀴 법보가 미친 듯이 베어댔지만 검은 비늘엔 상처를 조금도 입히지 못했다. 그저 불꽃만 튀며 부딪치는 쇳소리만 울려 퍼질 뿐이었다.

적양이 하하 웃으며 오른손 손가락 사이마다 검은빛을 크게 드리우더니 손을 더 꽉 움켜쥐었다.

쩌걱!

하얀 바퀴 법보에 균열이 줄줄이 생기며 곧바로 터져버렸다.

장로들이 모인 석대 위에서 금봉 할머니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구룡혈맥(鸠龍血脈)! 저 적양이라는 자는 흔하지 않은 혈맥을 각성했군요.”

“금봉 할머니 과찬입니다. 하지만 적양이 지닌 자질은 우리 지룡 일족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편인 건 맞죠. 그러니 성녀와 아주 잘 어울리겠지요.”

지룡 일족의 적봉이 웃으며 말했다.

“적봉 장로님이 하신 말씀은 이번 대결에서 적양이 꼭 이긴다는 말씀입니까?”

금봉 할머니가 자상하게 웃으며 말했다.

적봉은 그 말을 듣고는 멈칫했다가 이내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한절은 실력이 뛰어나긴 합니다만 종족이 힘을 받쳐주지 못하니 절대 적양에겐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요? 그럼 어디 한 번 기대해보죠.”

금봉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 * *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눌 때, 적양과 한절은 격전을 치르고 있었다.

적양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몸을 날려 순식간에 한절의 앞까지 다가가 다섯 손가락을 용의 발처럼 꺾어쥐며 힘껏 그어댔다.

한절은 눈에 빛을 반짝이더니 피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휘갈겼다.

한절의 몸에서 하얀빛이 한층 나타났으며 팔에서도 수많은 부문들이 생겼고, 몸통은 마치 공기가 가득 찬 듯이 크게 부풀어 근육마저 곧 터져버릴 것 같았다.

콱!

주먹과 손바닥이 부딪치며 둘은 몸이 심하게 흔들렸다.

한절은 뒤로 몇 걸음 밀려났다가 멈춰 섰다.

방대한 힘 때문에 적양도 뒤로 한 걸음 밀려나 눈살을 찌푸렸다.

“육신의 힘으로 내 일격을 받아내다니!”

적양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천하 성역에 있는 종족만 수천에서 수만이지. 너희 지룡 일족은 육신이 강력하기로 유명하지만, 천하무적은 아니니까.”

한절이 말했다.

“그 건방진 말을 한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

적양의 몸에서 검은빛이 타오르듯 밝아지더니 검은 비늘이 몸을 촘촘하게 감쌌다. 적양은 몸통이 순식간에 몇 배나 커져 마치 검은 괴물 같았다.

섬뜩한 기운이 적양의 몸에서 끝없이 터져 나오더니 경지가 신경에 가까워졌다.

이어서 적양은 매우 기괴한 자세로 몸을 좌우로 비틀거리더니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순간, 적양이 귀신처럼 한절의 등 뒤에 나타나 열 손가락에서 검은 날이 뻗어 나와 한절의 몸을 사납게 긁어댔다.

한절이 얼굴을 찌푸리며 몸에 하얀빛을 뿜어내어 번개 같은 속도로 돌아선 후에 두 주먹을 연이어 휘둘렀다.

희미한 주먹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날아와 검은 날과 부딪치며 터지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한절의 몸통이 심하게 흔들렸고, 간신히 적양이 날린 공격을 받아내긴 했으나 몸은 뒤로 밀려났다.

적양이 낮은 소리와 함께 검은빛을 넓게 뿜어내며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이 날아가는 속도는 유난히 느려 보였는데 실제로는 엄청나게 빨랐다.

쾅!

검은 주먹 그림자가 비틀거리는 한절의 몸을 내리쳤다.

한절은 마치 가벼운 종잇장처럼 휙 날아갔으며 무겁게 연무대에 떨어져 버렸고, 사방으로 흩어지는 돌조각들 사이로 큰 웅덩이가 하나 파였다.

순간, 그림자가 반짝이더니 적양이 순식간에 웅덩이 위에 나타나서는 입을 크게 벌렸다. 적양의 입에서 칠흑 같은 검은빛이 쏟아져 나와 한절과 웅덩이를 보이지 않게 묻어버렸다.

특수한 재질로 만든 연무대가 빠르게 녹아내리며 ‘퍽, 퍽!’ 소리가 들렸다.

“금봉 할머니, 잘못 보셨다고 했잖습니까?”

근처 석대에 앉아있던 적봉이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금봉 할머니는 안색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으며 목소리도 매우 담담했다.

그러자 적봉이 오히려 눈살을 찌푸렸다.

이때, 검은 화염이 갑자기 들끓더니 한 방향으로 빠르게 모여들어, 상대를 삼키다시피 파고 들어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한절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미 몸 곳곳이 까맣게 타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이어서 한절은 천천히 푸른 조롱박을 하나 꺼내 들었고, 조롱박 위에 화염 그림이 줄줄이 새겨져 있었으며 조롱박의 주둥이는 옅은 검은빛을 풍겼다. 바로 이 조롱박이 검은 화염을 흡수한 것이었다.

“흥!”

적양은 어안이 벙벙했으나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는 코로 찬 공기를 불어냈다. 그리고 다시 몸을 날려 한절을 덮쳤다.

적양이 다시 한번 손에 검은빛을 부풀리자 굵직한 번개가 빛을 튀기더니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 번개가 날카로운 빛날 다섯 갈래로 변하였고, 다섯 자루 검 같은 빛날들이 한절의 머리로 향했다.

한절은 눈빛을 반짝이더니 피하지 않고는 입으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조롱박의 주둥이에서 불빛이 반짝이며 사람 머리만 한 푸른 화염이 뿜어져 나와 적양의 손과 강하게 부딪쳤다.

검은 번개로 만든 빛날이 푸른 화염과 부딪치자 마치 눈이 불에 녹듯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스르륵!

푸른 화염은 곧바로 적양의 오른손을 감아버렸고, 손은 타버려 먼지가 되어버렸다,

적양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퍼렇게 질려서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리고 몸도 뒤로 튕겨져 나가 수십 장 밖에서 떨어졌다.

적양은 오른쪽 팔꿈치 아랫부분이 전부 사라져버렸으며 타들어간 살이 까맣게 재가 되어 버렸다.

적양이 빠르게 부적을 꺼내 상처가 난 곳에 붙였으나 얼굴은 백짓장처럼 질려있었다.

“푸른 화염? 이건 무슨 신통이야?”

적양은 심장이 쿵 내려앉으며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건…… 청련성화(青蓮聖火)!”

금봉 할머니는 푸른 화염을 보며 안색을 바꾸었다.

석대 위에 있던 사람들도 전부 의아한 기색을 내비쳤는데 아무도 청련성화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적봉은 얼굴에 화가 난 기색이 스쳤다.

한절이 담담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법결을 시전하였다. 그러자 푸른 화염이 한참 동안 들끓다가 푸른 화염 뱀으로 변하여 적양을 덮쳤다. 그 속도는 매우 빨랐으며 순식간에 적양의 앞까지 다가갔다.

안색을 굳힌 적양은 발로 바닥을 짚어 몸을 뒤로 날리는 동시에 손을 흔들어 검은색 방패를 꺼내서 몸 앞을 가로막았다.

푸른 화염 뱀이 거침없이 검은 방패를 들이받았다.

이때, 검은 방패는 마치 촛불처럼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뭐야!”

적양은 안색이 시꺼멓게 변해버렸다.

이 방패는 최상급 법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튼튼한 방어 보물이었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화염 뱀이 몸을 감으며 다시 푸른 검으로 변하더니 적양의 복부를 잘랐다.

단단하기 그지없는 검은 비늘도 푸른 화염 검 앞에서는 마치 종잇장처럼 가볍게 타버렸다.

“풉!”

적양의 복부에는 몇 척 정도 되는 큰 상처가 생겼으며 상처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림자가 희미해지더니 한절이 다시 적양의 등 뒤에 나타났다. 그리고 큰 소리를 지르며 두 주먹을 흔들어 적양의 몸을 강하게 내리쳤다.

적양은 마치 떨어지는 운석처럼 바닥에 쿡 박혀버렸고, 방금까지 벌어졌던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으며 바닥에 웅덩이가 크게 생겨 먼지가 흩날렸다.

한절이 눈에서 차가운 빛을 반짝이며 다시 손을 흔들자 푸른색 검이 화염으로 변하여 웅덩이로 날아갔다.

이때, 노란빛이 허공에서 번쩍이더니 원판 모양 법보가 나타나 푸른 화염을 막아냈다.

칙칙!

원판 법보도 적양의 방패처럼 푸른 화염이 지닌 위력 때문에 녹아내렸다. 다만 방패와 달리 녹는 속도는 현저히 느렸다.

순간 그림자가 반짝이며 적봉이 나타났다.

“이번 대결에서 졌다는 걸 인정하겠네.”

적봉이 차갑게 말했다.

한절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손을 흔들어 푸른 화염을 소환하더니 다시 조롱박 속에 집어넣었다.

적봉도 노란 원판을 소환하였는데 원판이 타버려 움푹 파여 있었고, 뿜어내는 빛도 매우 어두워졌다.

원판을 거두어들인 적봉의 눈에 놀라운 기색이 스쳤다.

흩날리던 먼지가 가라앉으며 적양의 모습이 드러났다. 변신이 해제되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배에 난 상처는 오히려 점점 더 찢어져 내장까지 밖으로 드러났다.

적봉은 깜짝 놀라 다급하게 노란빛을 날려 적양에게 드리웠다.

둘은 빠르게 먼 곳으로 날아갔으며 축전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번 대결은 한절 승리!”

조주동이 결과를 선포했다.

한절은 조주동을 향해 손을 굽혀 인사를 하고는 첫 번째 깃발로 날아가 착석했다.

다른 깃발에 앉아있던 몇몇 참가자들이 일제히 한절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 눈빛에는 걱정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푸른 화염이 지닌 위력은 실로 놀라웠다. 하물며 신경 강자가 쓰는 법보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으니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계속 도전할 참가자가 있습니까?”

조주동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깃발 아래에 있는 참가자들은 얼굴에 기쁨이 어렸다.

십 위안에 들어갔으니 풍성한 포상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렇게 먼 길을 올만한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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