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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694화 (694/916)

694화. 이 물건이면 자격이 주어집니까?

이제야 첫 번째 대결이 모두 끝났는데 참가자들은 이미 지쳐버렸다. 그리하여 대략 반 시진 정도 지나고 나서야 다시 대결을 시작했다.

“이제 두 번째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참가자들 열 명이 서로 도전을 하며 순위를 가릴 겁니다.”

조주동이 말했다.

깃발에 앉아있던 참가자들은 전부 한절을 바라보았다.

한절은 새 옷을 한 벌 갈아입고는 덤덤한 표정으로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을 즐겼다.

조역과 먹물뜨기를 한 반귀족 청년이 한절에게 도전을 하고 싶어 하는 눈빛을 드러냈다.

두 사람에게 포상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는데 일 등을 하지 못하면 실패한 셈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두 분, 혹시 제게 도전하고 싶으시면 바로 말씀하시죠. 저는 아직 ‘청련성화’를 다루는 게 서툴러 때마침 연습을 하던 참이었습니다.”

한절이 고개를 돌려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러자 조역은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변해버렸고, 그의 눈에서 두려움이 스치더니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반귀족 청년도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한숨만 내쉬며 시선을 옮겼다.

둘이 도전하길 포기했으니 다른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일 등 자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으니 십 위 안 다른 순위는 크게 재미가 없었다. 이후 몇 차례 가벼운 대결이 이어져 드디어 아무도 도전장을 내밀지 않는 순간이 되었다.

“후후, 계속된 격전들을 거쳐 드디어 십 위까지 결정이 났습니다. 한절, 축하하네. 우리……”

조주동이 웃으며 말했다.

“조 장로님, 잠깐만요.”

이때,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조령수가 일어섰다.

조령수가 말을 하자 모두가 바라보는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많은 사람이 뜨거운 눈길을 보냈지만, 한절은 여전히 차분한 얼굴이었다.

“령수, 무슨 일이냐?”

조주동이 물었다.

조령수는 산골짜기 밖을 한번 쳐다보았다. 눈에서 흥분한 기색이 스쳤다가 다시 평온해졌다.

“한절 도우님은 실력이 대단하죠. 하지만 저는 예전부터 제가 맞을 배필에게 작은 소망을 하나 품고 있었습니다. 혹시 한절 도우님이 그 소망을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조령수가 입을 열었다.

“성녀님의 요구라면 당연히 들어드려야지요. 말씀하세요.”

한절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저는 강한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라 제 배필의 실력이 저보다 뛰어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한절 도우님이 쓰시는 화염 신통은 매우 뛰어난 것 같아 저 또한 궁금해졌으니 한 수 가르쳐주시겠습니까?”

조령수가 또박또박 말을 뱉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지자 현장은 수군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금봉 할머니를 비롯한 신경 강자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데릴사위를 뽑겠다는 결정은 삼대 종족이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배필을 뽑는 진정한 목적은 따로 있으며 애당초 조령수가 희생을 해야 한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지금 조령수가 자신의 배필을 시험해보겠다고 말을 하니 아무도 반대를 하지 못했다.

조령롱은 성녀를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뱉었다.

선기가 초롱초롱한 눈을 깜빡였다.

“하하, 이런 소망이라면 최선을 다해 성녀님이 부탁하신 바를 들어드려야겠죠.”

한절이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한절이 말을 마치고는 곧바로 날아올라 ‘건’자 무대로 올라갔다.

“성녀님,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한절은 곧바로 서서 조령수와 마주하고는 겸손한 자세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천갱 주변에 있던 구경꾼들은 실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예의까지 갖춘 영부족 청년을 응원했다.

조령수가 고개를 돌려 옆에 앉아있던 조령롱을 한 번 쳐다보았다. 조령수의 아름다운 얼굴에서 고집스러운 기색이 비쳤다. 이어서, 조령수는 몸을 날려 빛으로 변하더니 ‘건’ 자 석대로 올라갔다.

“성녀님의 마음을 얻기 위해섭니다. 실례하겠습니다.”

한절이 다시 조령수를 향해 인사를 올리고는 공손하게 말했다.

“긴 말 하실 필요 없습니다. 시작하시지요.”

조령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화가 이제 막 끝나고, 둘이 몸에 빛을 드리우고는 격전을 치르려 할 때였다. 갑자기 허공에서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깐만요. 성녀님과 대결을 펼치시려면 저를 먼저 이기셔야 합니다!”

그 목소리를 들은 조령수는 안색이 일그러지더니 눈가가 촉촉해졌다.

다들 누군지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빛 한 갈래가 골짜기에서 빠르게 날아왔다.

사람들이 빛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등 뒤로 날개를 펼친 그림자가 ‘건’ 자 석대로 올라왔다.

석목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석목을 보자 한절은 눈에 의외라는 기색이 스쳤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관전대 위에 앉은 조령롱은 안색이 살짝 일그러졌으며 석목을 바라보는 눈에 착잡한 심경이 가득했다.

조령통의 옆에 있던 조선기도 석목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의아한 눈빛을 던졌다. 그리고 표정이 알 수 없게 바뀌었다.

“누가 이렇게 무례한가?”

석목이 나타나자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갑자기 나타난 석목의 신분을 추측했다.

“무례하구나! 여기가 어딘지 알고 함부로 들어오느냐?”

조주동은 석목이 언짢았다. 게다가 이렇게 막무가내로 쳐들어오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석목은 그런 말들이 들리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석목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석목은 오직 그와 십 장 남짓 떨어져 있는 여인으로 세상을 가득 채웠다.

그녀의 눈동자는 예전과 똑같았으며 화장은 훨씬 아리따워진데다가 맑은 두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깊은 눈에 머금고 있는 감정 역시 여전히 그대로였다.

“수아……”

석목이 전음으로 불렀다.

“석 오라버니. 정말 오라버니인가요? 정말 수아를 찾으러 온 겁니까?”

천봉 일족의 성녀가 된 종수의 눈은 더욱 촉촉해져서 전음을 보내 물었다.

“수아, 나야. 내가 왔어.”

석목이 대답했다.

“찾아올 줄 알았어요. 석 오라버니는 절대 저를 버리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어요. 꼭 올 거라고 믿었어요.”

종수가 전음을 보내며 말했는데 행복한 감정이 종수가 하는 말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종수가 석목에게로 다가오려고 하자, 석목이 말렸다.

“수아, 우리는 아직 아는 척을 하면 안 돼. 우선 눈앞에 놓인 일부터 해결하고 다시 얘기하자.”

석목이 전음을 보냈다.

종수는 발길을 멈추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네. 오라버니 말만 들을게요.”

종수가 전음으로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수아, 너는 내 아내야. 내 여자라고. 절대 너를 다른 사람에게 보낼 수 없어.”

석목이 단호하게 말했다.

석목의 말을 들은 종수는 심장이 쿵쿵 뛰며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꿀을 먹은 것처럼 달콤한 기분이 들었다.

구경꾼들은 석대 위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다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후후, 이제 재미있어지겠군.”

서유금이 두 눈에 빛을 반짝이며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네놈은 대체 누구냐? 계속 답하지 않겠다면 쫓아내주마.”

조주동이 화가 치밀어 오른 채 말했다.

“장로님, 저는 미천거원 일족의 넷째 장로이자 미천거원 일족의 대표인 석목입니다.”

석목이 담담하게 말했다.

“아, 자네군. 대결 시간을 지키지 않아서 이미 자격을 박탈당했네. 어서 돌아가게.”

조주동은 안색이 여전히 차가웠다.

“빨리 꺼져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천갱 주변에 모인 구경꾼들이 짜증을 내며 소리 질렀다.

그들이 보기에 석목은 대결하길 포기한 사람이었다. 천하 성역의 수많은 종족들이 무력을 숭배하며 강자를 존경하고 흠모했으니 대결을 포기한 자는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때, 관전대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나더니 조주동을 비롯한 장로들 옆으로 다가가서는 인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장로님들, 석 형은 한절에게 도전할 자격이 있습니다.”

석목은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고는 흠칫 놀랐다. 서유금이 자신을 위해 말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게 무슨 말인가. 석목은 앞선 대결에 단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네. 그런데 어째서 도전할 자격이 있다고 하는가?”

조주동이 되물었다.

“장로님, 석 형에겐 면제권이 있어서 앞선 대결들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었죠.”

서유금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첫 번째 대결에서부터 이미 면제권을 지닌 이들이 적힌 명단을 보여주었네. 그 열 명 중엔 석목이 없었지. 함부로 나서지 말게.”

조주동의 얼굴에 여전히 화가 잔뜩 묻어 났다.

“장로님께서 전에 말씀하셨지요. 그 열 명은 전부 뛰어난 세력에서 온 출중한 제자들이며, 매우 귀한 축하 선물을 보냈기에 면제권을 받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서유금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네.”

조주동은 서유금이 전한 깊은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석 형은 팔황고족인 미천거원 일족의 대표입니다. 이 정도 세력이라면 출중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서유금이 물었다.

미천거원 일족은 비록 몰락한지 천 년이나 되었지만 팔황고족에서 지닌 지위와 명성은 절대 반박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천 년이나 은거하며 지내서 아무도 미천거원 일족이 갖춘 진정한 실력을 알 수 없었다.

“미천거원 일족이라면 물론 뛰어난 세력이지.”

조주동이 생각에 잠긴 듯이 말했다.

“석 형은 성계 중기 실력으로 우리 종족이 만든 신경 인형을 죽인 적도 있죠. 그러니 실력도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서유금이 계속해서 물었다.

“뭐? 신경 인형을 죽였다고?”

조주동이 깜짝 놀라며 믿지 못하는 표정을 드러냈다.

잠시 후에 조주동은 관전대에 있는 금봉 할머니와 시선을 교환한 후에 다시 돌아와서는 말했다.

“앞선 두 조건이 적합하다 해도 석목은 적절한 축하 선물을 올리지 않았네.”

“석 형이 준비한 축하 선물은 여기에 있습니다.”

서유금이 하얀 옥병을 꺼내 들었다.

옥병이 나타나자 관전대에서 짙은 물속성 본원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옥병에서 화려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간간이 붉은빛도 흘려보냈다. 보기만 해도 절대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는 건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서 형, 이 열해천령은 연합을 할 때 쓸 선물……”

석목이 전음을 끝내기도 전에 서유금이 석목이 보낸 말을 끊어버렸다.

“후후, 석 형, 실은 이 물건은 제가 혼인을 맺기 위해서 남겨두었죠. 그런데 이제는 기회가 없어졌어요. 하지만 석 형에겐 아직 기회가 있잖습니까? 저는 석 형이 꼭 저 녀석을 이기리라 믿어요. 그러니 이 보물을 석 형에게 걸겠어요. 그러니 석 형, 이 거래가 꼭 성사될 수 있게 도와주셔야 해요.”

서유금이 전음을 보내며 대답했다.

“이 은혜는 나중에 꼭 갚을게요.”

석목이 심각한 표정으로 전음을 보내며 말했다.

“이 열해천령은 귀한 선물이겠지요?”

서유금이 웃는 얼굴로 조주동에게 물었다.

조주동은 하얀 옥병을 한참 훑어보며 망설이는 기색을 내비쳤다.

“이 열해천령이 귀한 보물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흔하지 않은 보물은 아니네. 다른 열 명이 올린 축하 선물에 비하면 많이 뒤처지지.”

조주동이 침묵을 깨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서유금은 안색이 굳어버렸다.

“석 형, 죄송해요.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귀한 보물은 바로 저 물건이에요.”

서유금이 난감해하며 전음으로 말했다.

“됐네. 그만했으면 이제 물러나게.”

조주동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천갱 주변에 모인 구경꾼들도 지루해졌는지 빨리 내려가라며 소리를 질렀다. 이제 성녀와 한절이 치를 대결을 봐야 하니 석목은 빨리 꺼지라는 뜻이었다.

“열해천령도 안된다면, 이 물건이라면 자격이 주어지겠습니까?”

석목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이는 시끌벅적한 소리를 눌러버리기에는 충분했다.

석목이 손을 들어 올리자 손에서 붉고 투명한 옥비녀가 하나 나타났다.

옥비녀의 끝부분에 새겨진 봉황은 마치 살아 숨을 쉬듯 생생했다. 비녀는 투명하고도 따뜻했으며 속에 붉은 줄기가 그어져 있었다. 이건 일전에 대장로가 석목에게 준 ‘열반봉채’였다.

“열반봉채……”

금봉 할머니를 비롯한 석대 위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단번에 이 물건을 알아보고는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이 물건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봉채 속에 흐르는 한없이 순수한 천봉 혈맥이 느껴져 이 물건이 천봉 일족에게 얼마나 중요한 물건인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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