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695화 (695/916)

695화. 석목의 도전

“이 물건은 천봉족과 미천거원 일족이 연합했을 때 주고받은 신물이죠. 또한 두 종족이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서 함께 적을 물리쳤다는 중요한 증거기도 하지요. 만약 장로님께서 이 물건도 충분하지 않다고 하시면 저도 더는 할 말이 없습니다.”

석목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조주동도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할지 몰라서 고개를 돌려 여장로를 한 번 바라보고는 아예 자리로 돌아가 몇몇 사람들과 의논을 나누기 시작했다.

“저 비녀라면 물론 선물로서는 충분하죠. 다만 석목은 인족이라 진정한 미천거원족이 아닙니다. 그리고 제때 대결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니 한절과 대결을 펼치라고 한다면 아마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천봉 일족의 장로 한 명이 말했다.

“그러니까요! 규칙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또 다른 천봉족 장로들도 전부 고개를 끄덕이며 당치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주굉(朱宏) 장로님, 그 말을 옳지 않아요. 석목은 예전에 팔황고족의 우두머리였던 미천거원 일족이 밀어주고 있는 사람입니다. 미천거원 일족은 예전에 천정과 대항하던 주된 세력 중에 하나였으니 백원왕의 체면을 봐서라도 석목에게 기회를 줘야 마땅하겠죠.”

조주명은 석목을 좋게 보았던 터라 여러 장로들이 내놓은 의견을 반박했다.

금봉 할머니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옆에 있는 진 부인과 조령롱을 바라보았다.

진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령롱은 성녀의 사부죠. 예전에 령롱이 황량하고 외진 곳에서 성녀를 데려왔어요. 성녀는 늘 령롱을 친모처럼 생각했으니 령롱에게 의견을 들어봅시다.”

그 말을 들은 조령롱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서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는 시선을 종수에게로 던졌다.

사부와 제자는 오랜 세월을 함께 했기에 서로를 잘 알았다. 종수는 조령롱이 망설이며 자신에게 의견을 구하는 기색을 빠르게 읽어냈다.

그러자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서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종수를 본 조령롱은 눈에 복잡한 기색이 어렸다. 그리고 가볍게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석목이 모든 면제 조건에 부합하니, 한절은 마땅히 석목의 도전을 받아들여야 하겠죠.”

령롱이 긍정적으로 말을 하자, 다들 반박하지 못했다.

* * *

조주동은 다시 관전대 앞으로 걸어가 우렁찬 목소리로 선포했다.

“석목에게 도전을 할 자격이 주어졌으니, 한절은 꼭 석목을 이겨야만 성녀에게 도전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동공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먼 곳에 있는 종수를 바라보니 그녀도 입꼬리를 올린 채 웃고 있었다.

한쪽에 서서 두 사람을 바라보던 한절은 안색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석 도우, 도전하시겠다고 말했으니 그럼 빨리 시작하죠.”

한참 후에 한절이 석목에게 말했다.

석목은 종수를 향해 고개만 살짝 끄덕였을 뿐, 한절이 하는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종수는 두 사람을 향해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다시 관전대로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시작합시다.”

석목이 시선을 거두어들이며 한절을 향해 담담하게 말했다.

“당신이 성녀와 어떤 사이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찌 되었건 꼭 당신을 이길 거예요. 성녀는 제 배필이어야만 하거든요.”

한절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는데 화가 나서 그런 게 아니라 한절이 하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이 말을 흘려 일부러 석목을 화나게 하려는 것만 같았다.

“그럼 우선 저부터 이기고 보시지요.”

석목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한절은 심각한 표정을 드러내며 푸른 창을 치켜들었다.

석목은 실눈을 뜨며 더욱 신중하게 생각했다.

한절이 들고 있는 긴 창이 매우 특이했기 때문이었다. 푸른 창은 겉면이 매끈하지 않았으며 마치 손가락 굵기만 한 푸른 덩굴 서너 개를 꼬아서 만든 것 같았다.

또한 창끝도 그리 날카로워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둔탁하고 소박해 보였다.

하지만 이 푸른 창은 절대 등급이 낮은 영보가 아니었다.

한절이 긴 창을 치켜들자, 창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밝아졌다. 그리고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디뎠을 뿐인데 석목과 거리가 순식간에 열 장이나 가까워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절의 긴 창이 이미 석목을 겨누고 있었다.

석목은 깜짝 놀라 발끝을 짚으며 몸을 날려 뒤로 몇 장 정도 물러나서는 여의빈철곤을 꺼내 들었다.

한절이 날린 공격은 허공에 떨어졌지만, 창은 기세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이어서 한절의 창끝이 땅을 찔렀다.

챙!

둔탁해 보이는 창끝이 생각지도 못하게 연무대 바닥을 뚫고 지나 돌까지 파고 들어갔다.

다시 자세를 가다듬은 한절은 천천히 창끝을 들어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더니 창에 푸른빛을 드리우며 다시 한번 석목을 찔렀다.

석목은 여의빈철곤을 휘둘러 ‘훅!’ 소리와 함께 푸른 긴 창을 날려버렸다.

쿵!

석목은 팔에 심한 떨림을 느꼈으며 빈철곤도 흔들렸다.

한절의 긴 창도 빗나가버려 ‘쓱!’ 소리와 함께 땅에 긴 줄을 그어놓았다. 그러자 바닥에서 부서진 돌들이 흩날렸다.

석목이 콧방귀를 뀌며 앞으로 한달음에 날아가 두 팔을 휘둘러 여의곤에 금빛을 번쩍였다. 빈철곤이 허공에 커다란 원을 그리며 한절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그러자 한절은 다급하게 몸을 굽혀 두 손으로 푸른 창을 가로로 들고는 위로 치켜들어 곤봉을 막아냈다.

쾅!

순간 굉음이 울려 퍼졌다.

빈철곤이 긴 창을 내리치자 창이 몇 뼘 정도 구부러져 마치 활처럼 변했다.

“하!”

석목은 낮게 소리를 지르며 몸에서 빛을 터뜨렸다. 그리고 손에 힘을 가해 여의빈철곤을 아래로 꾹 눌렀다.

푸른 창은 심하게 구부러져 한절의 어깨를 짓누르는 게 곧 부러져버릴 것 같았다.

한절은 푸른 창을 치켜들고는 다리를 굽힌 채로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무릎이 곧 땅에 닿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전혀 고통스러운 기색 없이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어 오히려 석목이 불안해졌다.

이때, 한절의 입가에 난데없이 웃음기가 어렸다. 이어서 한절은 발끝으로 땅을 꾹 누르며 창을 그대로 두고는 몸을 굴려서 공격을 피했다.

온 힘을 다해 아래를 누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받쳐주는 힘이 사라지자, 석목은 한순간 힘을 통제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빈철곤이 푸른 창을 누른 채 그대로 땅을 찍어버렸다.

쾅!

‘건’ 자 석대에 큰 웅덩이가 생기더니 먼지와 부서진 돌들이 튕겨져 날아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한절은 손으로 복잡한 법결을 시전하며 입으로 현묘한 구결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금 전에 생긴 웅덩이에서 푸른빛이 크게 번지며 숲의 기운이 속에서 밀려 나왔다.

석목이 뭔가 잘못된 것을 느끼고는 곤봉을 뽑아 도망가려 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훅!’ 소리와 함께 굵은 덩굴이 여러 갈래 빠르게 웅덩이를 뚫고 나와 석목의 여의빈철곤을 꽁꽁 묶어버려 더는 뽑을 수 없게 되었다.

석목은 안색이 살짝 바뀌더니 왼팔에 빛을 번쩍였다. 그 순간, 양의 화염이 타오르며 덩굴로 뻗어갔다.

하얗게 빛나는 화염이 덩굴에 닿자 곧바로 활활 타오르며 연무대 위를 뜨거운 기운으로 가득 채웠다.

관전대에 있던 사람들도 안색이 살짝 변하였다.

“구전현공, 정말로 백원왕의 의발을 받은 후손인가?”

금봉 할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자는 스스로 미천거원 일족의 장로라고 했죠. 그리고 열반봉채도 지니고 있었으니 미천거원 일족에서도 신분이 낮지 않은 자인가 보네요. 그렇다면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요.”

진 부인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대답했다.

조령롱은 눈빛을 반짝이며 석목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종수를 데리고 남해성을 떠났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아직 놀랄 때가 아니에요. 저 석목이라는 자는 놀랄만한 점이 너무 많죠.”

조주명은 한쪽에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 *

관전대의 분위기는 편안했지만, 석목은 전혀 편안하지 않았다.

석목의 왼팔에서 화염이 끊임없이 나가며 푸른 덩굴을 태워버렸다.

장작이 타는 소리가 들리며 이미 까맣게 타버렸지만, 덩굴은 전혀 끊어지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하, 힘은 그만 빼시죠! 이 푸른 덩굴은 우리 종족에서 수백 년 동안 전해지던 영보예요. 당신이 쓰는 화염은 절대 이겨낼 수 없지요. 그럼 제 청련성화나 맛보시죠.”

한절이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푸른 조롱박을 하나 꺼내 들었다.

한절은 입으로 무엇인가 중얼거리며 두 손으로 법결을 시전하였다. 그러자 조롱박에 새겨진 화염 그림이 ‘훅!’ 밝혀지더니 불빛을 반짝이며 푸른 화염을 뿜어내 석목을 덮으려 했다.

이때, 석목의 머릿속에 서유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 형, 한절이 쓰는 청련성화는 화기가 안에 숨겨져 있어요. 힘이 응축되어있어 위력이 만만치 않으니 꼭 조심하세요.”

석목은 뜨거운 느낌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불안한 예감이 엄습했다. 그래서 더는 망설이지 않고 빈철곤을 내버려 둔 채 몸을 날려 뒤로 물러났다.

석목은 발이 땅에 닿자 발목에 진통을 느꼈다. 그래서 고개를 숙여 바라보니 한절의 창에 긁힌 틈에서 얇은 덩굴이 뻗어 나와 종아리를 꽁꽁 묶어버렸다.

충분한 거리를 두고서 물러나지 않아 오히려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결국 석목은 곤경에 빠져버렸다.

관전대에 있는 종수는 푸른 화염이 석목의 몸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는 초조한 마음에 벌떡 일어서려 했다.

그러자 옆에서 누군가가 종수의 팔을 눌렀다.

종수가 고개를 돌려보니 조령롱이 고개를 흔들며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고 일깨워주었다.

종수가 고개를 돌려 석목을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때, 푸른 화염이 석목의 앞으로 다가왔다.

석목이 팔을 앞으로 뻗자, 희미한 기운이 뿜어져 나가 투명한 안개를 흩날리며 푸른 화염을 막았다.

하지만 숨을 돌리기도 전에 하얀 안개는 푸른 화염에 타버려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푸른 화염이 다가오는 속도는 조금 주춤하는 듯했지만, 전혀 꺾이지 않은 기세로 석목을 짓눌렀다.

석목은 곧바로 몸에 금빛을 드리웠다. 금빛이 번지며 둥그런 광막이 나타나더니 석목의 몸을 감싸며 푸른 화염과 부딪쳤다.

푸른 화염이 금색 광막과 부딪치는 순간, 금빛이 마구 흔들리며 용 여섯 마리가 끊임없이 헤엄을 치다가 한 곳으로 모여서는 눈에 불을 환하게 밝혔다. 그리고 입으로 빛기둥을 뿜어내어 화염과 대치 상태를 이뤘다.

한절은 눈에 싸늘한 빛이 스쳤다.

순간, 한절이 빠른 속도로 석목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조롱박의 주둥이에서 불이 ‘훅!’ 붙더니 화염 한 갈래가 석목에게로 몰려왔다.

푸른 화염이 한 갈래 더해지자, 금색 광막은 견디지 못하고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푸른 화염은 계속해서 뻗어 나가 석목에게로 다가왔다. 하지만 지금 석목 앞에는 아무런 보호막도 없었다.

더는 참지 못한 종수는 벌떡 일어서서 앞으로 날아가려 했다.

하지만 이때, 석목의 앞에서 차가운 기운이 모이더니 파란색 빙염(氷炎)이 나타나 몇 장이나 되는 얼음벽을 만들어 단 한 뼘 정도 사이를 두고서 푸른 화염을 막아냈다.

이전에 만들던 하얀 얼음벽과 달리 지금 나타난 얼음벽은 파란빛을 반짝였으며 냉기도 훨씬 강력해진데다가 단단해졌다.

얼음벽을 본 한절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눈빛이 한 층 더 싸늘해졌다.

얼음벽 뒤에 서 있는 석목은 손에 파란 영선을 들고 있었다. 영선은 깃털이 꼿꼿이 섰으며 문양이 찬란하게 반짝였다.

석목은 영선으로 발목을 감고 있는 푸른 덩굴을 가리켰다. 그러자 영선에서 푸른 빙염이 뿜어져 나와 덩굴을 감았다.

푸른 덩굴이 순식간에 빙염에 꽁꽁 얼어버렸다.

석목은 몸에서 금빛을 반짝이며 날카로운 기운을 주변으로 튕겨 보냈다.

쩍!

가벼운 소리가 들렸다.

석목의 발목을 감싸고 있던 얼음이 터져버리며 질기게 달라붙어있던 덩굴도 부스러기가 되어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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