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6화. 급보
석목이 덩굴을 벗어나는 모습을 본 한절은 얼굴이 얼어붙었다. 한절은 다급하게 조롱박을 하늘 높이 치켜들더니 다른 한 손으로 빠르게 법결을 시전하여 조롱박 밑단으로 날려 보냈다.
그러자 조롱박이 심하게 흔들렸으며 그 위에 새겨진 화염 그림이 마치 실재하는 불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조롱박의 주둥이에서도 화려한 빛이 번지더니 푸른 화염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와 석목을 습격했다.
석목도 양손으로 앞을 가리키며, 다른 한 손으로 법결을 짚더니 부채 자루를 강하게 짓눌렀다. 그러자 영선에서 문양이 빛나더니 파란 빙염이 튕기듯이 뽑혀 나가 조금 전에 나타난 얼음벽에 스며들었다.
얼음벽에서 빛이 크게 번쩍이자 얼음벽은 다시 커다란 파란 빙염으로 변하여 한절이 날린 푸른 화염과 부딪쳤다.
쾅!
마치 양옆에서 몰려오는 홍수가 강하게 부딪히는 것 같았으며, 두 힘은 절반은 푸르고 절반은 파란 굵직한 빛기둥으로 뭉치더니 하늘 위로 백 장 높이까지 치솟았다.
미처 뭉치지 못한 화염과 빙염은 다시 불바다로 번지며 반대 방향으로 밀려갔다.
그러자 석목과 한절은 몸을 날려 각각 ‘건’ 자 석대 양쪽에 있는 ‘태’ 자 석대와 ‘간’ 자 석대로 날아갔다.
석대에 내려선 순간, 석목은 재빠르게 단약 몇 알을 꺼내서 삼켰다. 그리고 선급 영석을 꽉 틀어쥐었다.
‘간’ 자 석대가 놓인 돌기둥의 절반은 파란 빙염이 흐르며 얼음으로 변해버렸고, 나머지 반쪽은 푸른 화염이 타올라 불빛으로 물들었다.
한참 뒤에 돌기둥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가운데가 ‘쩍!’하고 갈라지며 두 동강이 나 와르르 무너졌다.
천갱에서 번개가 내리치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며 먼지가 소용돌이쳤다.
그 광경을 본 구경꾼들은 전부 어안이 벙벙했으며 석목과 한절을 바라보는 눈빛은 경외심으로 가득 찼다.
조주동은 흩날리는 먼지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리더니 손을 흔들어 붉은빛을 날려 천갱을 덮었다. 그러자 흩날리던 먼지와 부서진 돌들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저기 파란 빙염은 대체 뭐기에 청련성화와 위력이 비슷한가요?”
지룡 일족의 적봉 장로가 궁금한 듯이 물었다.
“석목이 들고 있는 건 등급이 높은 영보죠. 저게 머금고 있는 빙염은 남극빙수(藍亟冰獸)만이 지닌 극한의 빙염이에요. 이 극에 달한 힘은 우리 천봉족이 다루는 진화(眞火)라 해도 완전히 녹일 수는 없을 겁니다. 절대 가볍게 볼 게 아니지요.”
금봉 할머니가 말했다.
“두 후배가 보여주는 실력이 실로 놀랍군요. 각자 귀한 보물을 지니고 있으니 어느 쪽이 이길지 전혀 알 수 없잖아요?”
진 부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둘은 아직 전력을 다하지 않았죠. 그러니 더 예측할 수도 없겠습니다.”
조주명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어느 쪽이 이기든 이렇게 훌륭한 후배들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 천하 성역엔 복이네요.”
금봉 할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종수는 장로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석목에게서 두 눈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종수의 맑은 눈동자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종수의 표정을 살피던 조령롱도 걱정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하지만 조선기는 달랐는데 오히려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 * *
석목은 ‘태’자 석대에 서서 영석의 영력을 빠르게 흡수했다. 그리고 조금 멀어진 한절을 바라보며 얼굴을 더욱 차갑게 굳혔다.
청련성화 속에 알 수 없는 본원의 기운이 담겨 있어 화염이 지닌 위력이 유난히 강력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후에 석목은 이미 회색이 되어버린 영석을 던져버리고는 한 손을 허공에 대고서 흔들었다. 그러자 천갱 아래에 널브러진 돌더미들이 갑자기 격하게 흔들리더니 부서진 돌들이 우르르 아래로 떨어졌다.
폐허 속에서 여의빈철곤이 바람 소리를 내며 석목의 손으로 날아왔다.
석목은 곧바로 팔에 빛을 드리우며 대범반무진경을 시전하였다.
순간, 팔뚝의 근육이 백 배나 불어나며 하늘을 찌르는 커다란 손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커다란 손으로 쥐고 있던 여의빈철곤도 재빠르게 길어져 하늘을 찌르는 거대한 기둥처럼 커졌다.
석목은 거인의 손을 하늘로 치켜들었다가 다시 아래로 휘갈겼다.
여의빈철곤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모든 걸 파멸시킬 기세로 바닥을 내리쳤다.
천갱 주변에 있던 구경꾼들이 놀라서 소스라치며 소리를 질렀다.
한절도 놀랐는지 안색이 굳어버렸으며 차가운 눈빛은 공기마저 얼려버릴 것만 같았다. 한절은 미간 사이에 포악한 기운을 잔뜩 담은 채 찌푸리고 있었다. 그리고 몸 주변으로 여러 갈래 빛을 뿜어내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그 직후 원래 자리와 한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한절이 나타났다. 한절은 두 발로 무겁게 땅을 짚은 채 두 팔을 높이 치켜들어 여의곤을 받아치려 했다.
“저 녀석 미친 거 아니야? 육신의 힘으로 저걸 받아치겠다고?”
지룡족 한 명이 그 모습을 보며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정신이 나갔군……”
한절이 생각지도 못하게 대응을 하자 구경꾼들은 전부 경거망동이라며 수군거렸지만 아무도 다가가서 말리지는 않았다.
이때, 여의빈철곤에서 금빛이 넓게 펴지더니 ‘간’ 자 석대를 가득 메운 공기를 짓눌러 층층이 터뜨렸다. 그러자 천갱에서 터져나가는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고, 구경꾼들의 가슴마저 떨렸다.
“하!”
한절이 소리를 지르며 높이 든 두 팔에 푸른빛을 드리웠다.
그러자 한절이 팔목에 끼고 있던 두꺼운 팔찌에 새겨진 기괴한 푸른 짐승이 입을 크게 벌리더니 화려한 빛을 두 갈래 뿜어냈다.
화려한 빛이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순간, 얽히고설키며 이어지더니 빠르게 반원형 광막을 펼쳐 한절을 보호했다.
‘쾅!’
석목의 거대한 빈철곤이 푸른 광막을 강하게 내리쳤다.
이어서 ‘휙!’ 바람이 일어 형태가 없는 기운 파동이 부딪힌 곳에서부터 사방팔방으로 불었다.
석대와 가까이에 서 있던 구경꾼들은 마치 거센 폭풍이 몰려오는 것처럼 느꼈다. 그들은 영력으로 몸을 고정하려 했지만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광막에서는 터지는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으며 푸른빛과 금색 번개가 끊임없이 부딪치고 터져 ‘간’ 자 석대가 격하게 흔들렸다.
그 광경은 마치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이 두려웠다.
관전대는 이미 붉은 결계를 한 층 덮고 있어서 몰려오는 떨림을 전부 밀어냈다.
결계 안에 있는 관중들이 짓던 표정은 전부 제각각이었다.
종수는 아주 흡족한 얼굴로 지켜보았다. 물론 석목을 늘 맹목적으로 믿었으나 지금 석목이 갖춘 실력은 그녀가 예상한 정도를 훨씬 벗어났다.
조령롱은 안색이 복잡했는데 기쁜 건지 걱정을 하는 건지 전혀 읽어낼 수 없었다.
조선기는 초롱초롱한 두 눈으로 ‘간’ 자 석대를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굉음은 끊이질 않았으며 연무대에는 여전히 빛들이 부딪치고 있었다.
빈철곤은 금빛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채 주변을 짓누르며 내려왔다.
푸른 광막도 빛이 눈부시게 번지며 전혀 꿀리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한절이 밟고 있는 연무대는 버티지 못했다.
우르르!
‘간’ 자 석대가 심하게 흔들리더니 돌덩이가 하나둘씩 떨어지다가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강력한 압력 때문에 한절의 발은 이미 땅에 파묻혀 있었던 터라 연무대가 아래로 주저앉는 동시에 한절도 천갱 아래로 빠졌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 틈에 공격을 가하지 않고는 손에 빛을 반짝이며 여의곤을 거두어들였다.
천갱 아래로 석대가 무너져 내려 짙은 먼지가 위로 솟아올랐다.
석목이 실눈으로 천갱을 훑어보고 있을 때, 그림자 하나가 갑자기 바닥에서 날아올라 먼지를 뒤집어쓴 채 ‘진’ 자 석대로 올라왔다.
한절은 ‘진’ 자 석대로 올라간 이후로 더는 공격을 하지 않았다. 한절은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석목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그만하겠습니다! 석 도우의 실력이 저보다 더 뛰어나네요. 패배를 인정하겠습니다.”
한절이 옷자락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고개를 들어 석목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석목은 의외인지라 살짝 어리둥절했다.
한절은 분명 전력을 다하지 않았으며 또 다른 수완도 꽤나 갖춘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여하튼 석목은 이미 목적을 달성했다.
석목이 관전대로 시선을 돌리자 종수가 때마침 석목을 향해 걸어오며 웃고 있었다.
한절이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을 본 조주동은 흠칫 놀라며 한참 후에야 선포했다.
“석목 승리.”
하지만 원래 규정을 따르면 석목이 한절을 이겼지만 십 위안에 들어간 다른 사람들에겐 여전히 석목에게 도전장을 내밀 자격이 있었다.
“석목에게 도전하여 일 등 자리를 쟁취할 자가 더 있습니까?”
조주동은 서유금을 비롯한 사람들을 일일이 훑어보며 물었다.
“더 도전할 참가자가 없으면 일 등이 석목이라 선포하겠습니다.”
조주동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조주동이 말을 마치는 순간, 허공에서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급보요……”
‘급보’라는 말을 듣자 모든 사람이 놀라 일제히 시선을 한곳으로 돌렸다.
석목도 멈칫하며 시선을 돌려 보니 온몸이 피범벅이 된 사람이 허공에서 떨어지듯 내려왔다.
“급보입니다. 천봉, 반귀, 지룡 일족의 족장들이 붙잡혔습니다……”
통보를 하러 온 사람은 바닥에서 일어서기도 전에 소리를 질렀다.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조거(趙炬) 장로님!”
인영이 비치더니 금봉 할머니가 나타나 통보를 하러 온 사람 옆으로 다가가며 한 손을 흔들었다.
붉은빛이 금봉 할머니의 손에서 날아가 붉은 피를 뒤집어 쓴 듯한 사람을 부축했는데 자세히 바라보니 눈썹이 붉은 중년 남자였다.
붉은빛이 중년 남자의 몸속으로 들어가자, 그의 안색이 조금 돌아왔다.
“조 장로님, 세 족장이 붙잡혔다니요? 어떻게 된 일인지 빨리 말해보세요!”
금봉 할머니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쓱, 쓱, 쓱!
다른 신경 장로들도 순식간에 조 장로에게로 다가왔는데 다들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오늘 세 족장님들을 따라 시찰을 나갔다가 다시 봉익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하도(棲霞島)에서 신분을 알 수 없는 무리에게 기습을 당했습니다. 세 족장님들은 묶여버려 저만 죽을힘을 다해 도망을 쳤죠. 놈들은 머릿수가 워낙 많은 데다 신경 강자도 여러 명 있었습니다. 빨리 가서 구해야 해요. 늦으면 큰일 납니다!”
조 장로가 초조한 얼굴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 말을 듣자, 분위기는 더욱 심각해졌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렸다가 이내 시선을 돌려 종수를 바라보았다.
종수도 때마침 석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의 시선에서 불꽃이 튀었고, 마음이 벅차올랐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서로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종수의 옆에 서 있던 조선기는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눈에서 빛을 반짝였다.
“세 족장을 붙잡아 둘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라면, 혹시 천정 놈들인가?”
금봉 할머니가 물었다.
“세 족장을 기습할 수 있는 놈들은 천하 성역에서는 천정 놈들밖에 없죠! 그만 생각하고 빨리 가서 구합시다!”
머리가 푸른 반귀족 신경 장로가 다급하게 말했는데 그는 환영회에 참가했던 무운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 너무 의심스럽잖습니까? 세 족장은 왜 서하도를 지나고 있었을까요? 게다가 그분들이 갖춘 실력으로 이렇게 가볍게 붙잡힐 리 있습니까?”
조주동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조주동 장로님, 그 말씀은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겁니까?”
조거 장로가 화가 나서 말을 뱉고는 갑자기 기침을 마구하며 피를 쏟아냈다.
“조거 장로님, 오해 마세요.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 이 일 자체가 의문스럽다는 뜻입니다.”
조주동이 눈에 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서하도는 봉익성과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가 우리가 간다고 해도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겁니다! 게다가 지금은 주춤거릴 때가 아니죠. 우리 세 종족의 모든 신경 강자분들이 곧바로 서하도로 가서 세 족장님들을 구합니다!”
금봉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금봉 할머니가 말을 한 이상, 아무도 반대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