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697화 (697/916)

697화. 큰 이변

“금봉 장로님, 놈들이 대범하게 세 족장을 공격했다는 건 이제 곧 봉익성을 습격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우선 사람을 어느 정도 둬서 봉익성을 지켜야 할 것 같아요.”

조령롱이 말했다.

그러자 금봉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리가 있군. 그럼 몇몇 장로들은 남아서 봉익성을 지킵시다.”

“상대 쪽 인원수가 많아요. 성계 경지도 함께 가는 편이 좋을 거예요.”

조거 장로가 말했다.

“그럽시다.”

금봉 할머니는 잠깐 침묵했다가 붉은빛을 펼쳐 주변에 있던 성계 강자 이삼십 명을 말아 옆으로 옮겼다.

석목을 비롯한 십 위 안에 든 사람들도 빛 속에 있었으며 나머지 사람들도 전부 삼대 종족에 속한 실력이 뛰어난 성계 강자들이었다.

석목은 흠칫 놀랐는데 붉은빛이 몸에 드리운 순간 조금도 반항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금봉 할머니가 갖춘 실력은 역시 막강했다!

갖은 고난을 겪으며 드디어 종수를 만나서 하고 싶은 말이 산처럼 쌓여있었기에 다시 헤어지는 게 너무도 싫었지만, 석목은 긴박한 상황이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할머니, 저도 가겠습니다!”

종수가 갑자기 일어서며 말했다.

“수아, 너는 천봉 일족의 성녀란다. 신분이 존귀하니 절대 위험에 휘말리면 안 되는 몸이지. 그리고 네가 간다고 해도 큰 도움이 되진 않을 테니 여기서 기다리는 편이 좋은 게다.”

금봉 할머니가 부드러운 투로 말했다.

종수는 내키지 않았지만 한숨만 내쉴 뿐 더는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금봉 할머니가 그녀를 아끼니 할머니가 내뱉은 말을 절대 거역할 수 없어서, 아무리 설득해도 절대 따라가지 못하리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종수가 더 말을 이어가지 않자, 금봉은 곧바로 손을 흔들어 길이가 열 장 정도 되는 날개 달린 비주를 소환하였다.

“긴박합니다. 이 비주가 빠르니 전부 이 비주로 올라오세요.”

금봉 할머니가 몸을 날려 비주에 올라갔다.

삼대 종족의 신경 강자들도 전부 날아올랐으며 석목을 비롯한 성계 실력자 들도 비주에 올라탔다.

“저도 가겠습니다!”

조거 장로가 허우적거리며 일어서서는 비주로 날아올랐다.

“이렇게 중상을 입었는데 남아서 쉬세요. 세 족장은 우리가 가서 구할게요.”

금봉 할머니가 붉은빛을 날려 조거 장로를 막아내고는 종수 쪽으로 보냈다.

“조거 장로님, 금봉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을 따르세요. 세 족장님들을 꼭 구해서 돌아오실 겁니다.”

조선기가 조거 장로를 부추기며 말했다.

조거 장로는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주 위에 선 석목은 종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종수는 입을 살짝 벌리고는 무엇인가 말을 하려다 다시 삼켰다.

금봉 할머니가 법결을 날리자 붉은색 비주가 날아올라 먼 곳으로 날아갔다.

* * *

석목의 눈앞이 희미해지며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비주가 엄청난 속도로 앞으로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석목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용우비차도 어디서 속도로는 꿀리지 않는다고 늘 자부했는데 금봉 할머니의 비주와 비교하니 별 보잘 것도 없는 물건이었다.

비주에는 지금 신경 강자들이 총 여섯 명 있었는데 천봉 일족에서 온 신경 세 명은 각각 금봉 할머니, 조령롱, 조주동이었다.

반귀 일족에서 온 신경은 두 명인데 한 명은 남자, 한 명은 여자였다. 두 사람은 무운과 서른 몇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노란 옷을 입은 부인이었다. 부인은 외모가 평범했지만, 몸매는 꽤 예뻤다.

지룡 일족에서 온 신경 강자 한 명도 타고 있었는데 수염이 많이 난 과묵한 사나이였다.

원래 지룡 일족은 신경 강자 두 명이 축전에 참여했는데 적봉이 적양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돌아갔기 때문에 지금은 수염이 난 사나이 한 명만 남았다.

신경 강자 여섯 명은 비주 앞쪽에 서서 낮은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논의하고 있었다.

석목을 비롯한 일행들은 자연스럽게 비주 뒤편에 모였다. 석목은 비주의 가장자리에 앉아 선급 영석을 하나 꺼내 들고는 조금 전에 전투를 치르며 소모했던 진기를 회복하고 있었다.

“후후, 석 형. 대회에서 일 등을 하신 걸 축하드려요. 미인을 품에 안으셨네요.”

서유금이 다가와 석목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전부 대결을 치를 수 있게 해준 서 형 덕분이지요. 열해천령까지 내놓으시다니, 정말 감동스럽네요.”

석목이 말했다.

“별일 아닙니다. 나중에 석 형이 승승장구하게 되면 꼭 이 아우를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서유금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했다.

“물론입니다.”

석목이 엄숙하게 대답했다.

“후후, 그건 그렇고 석 형, 오늘 아침에 어디 갔었습니까?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서유금이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어젯밤에 일이 조금 있었는데 늦어졌네요.”

석목이 눈빛을 반짝였다. 어제 일어난 일을 말하지 않았다.

“그렇군요. 아, 석 형, 지금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석목이 자세하게 말을 하려고 하지 않자, 서유금도 눈치를 채고는 화제를 돌렸다.

먼 곳에 서 있던 한절은 석목을 한 번 쳐다보았다. 눈에는 내키지 않는 기색이 스쳤으나 다시 시선을 거두어들이고는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 * *

비주는 약 반 시진이나 날아서야 커다란 섬 위에 멈춰 섰다.

“여기가 서하도군.”

석목이 비주에서 날아 나와 아래에 있는 섬을 내려다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섬은 매우 드넓었는데 족히 백 리는 되어 보였다. 주변 바다는 붉은색을 띠고 있었으며 섬에는 화산들이 가득하여 간간이 불기둥이나 용암들이 하늘로 치솟아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붉은 용암이 짙은 먼지를 뿜어내 섬 전체를 감싸서 허공에서는 아래쪽 상황이 잘 보이지 않았다.

석목은 섬을 내려다보며 의아한 기색을 내비쳤다.

“세 족장님들이 이곳에 계신다고요?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합니까?”

한 신경 강자가 중얼거렸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석목이 눈을 반짝이자 채아가 영수 주머니에서 날아 나와 석목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채아가 나올 때, 많은 사람은 시선을 모았지만 그저 영총 한 마리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자, 모였던 시선이 다시 흩어졌다.

“채아, 네가 가서 봐봐.”

석목이 전음을 보내서 말했다.

채아가 대답을 하고는 눈에 칠색 빛을 뿜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때, 이변이 일어났다!

아래쪽 섬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온 섬이 격하게 흔들렸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이 화산 수십 개가 동시에 폭발하여 용암 불기둥이 넘실거렸다.

이윽고 섬 가운데가 천천히 갈라지며 커다란 골짜기가 생기더니 섬을 두 개로 갈라놓았다.

우르르!

산중턱이 잘리며 커다란 돌들이 우르르 굴러 떨어졌다.

갈라진 땅 사이에서 검고 짙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사악한 기운을 풍겼는데 마치 모든 빛을 삼켜버릴 듯한 기세였다.

검은 기운은 눈 깜짝할 사이에 치솟아 오르던 불빛을 감싸고서 땅속 깊은 곳으로 끌어당겼다.

“저기입니다!”

조령롱이 눈빛을 반짝이며 소리쳤다. 그리고 곧바로 아래를 향해 날아가려 했다.

이때, 갑자기 누군가가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러자 다들 안색을 바꾸며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소리를 지른 사람은 석목이었다.

석목은 눈에 금빛을 반짝이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미간에 파인 골이 점점 깊어졌다.

“석목. 어디서 함부로 명령을 하는 게냐! 장로님들이 모두 여기 계신다. 네가 왜 소리를 지르느냐!”

이때, 조역이 혐오스러운 표정을 잔뜩 드러내며 차갑게 소리를 질렀다.

비록 조역과 석목은 두 번째로 만나는 것이었으며 또 별달리 부딪치지도 않았지만 무엇 때문인지 조역은 석목이 혐오스러울 만큼 싫었다.

적잖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으며, 특히 신경 강자들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래. 석목, 뭔가 발견하기라도 했느냐?”

금봉 할머니가 석목이 눈에 금빛을 뿜어내는 것을 보고는 물었다. 금봉 할머니는 의아한 말투일 뿐 불만은 없어 보였다.

“아래쪽 갈라진 틈이 좀 이상합니다.”

석목이 잠깐 망설이며 말했다.

석목은 채아와 시선을 연결하고 있어 영목신통 두 개가 겹쳤다. 갈라진 틈 사이 허공에 미세한 빛이 반짝였는데 얼마 전 바리때 법보가 만든 공간에서 본 부문과 비슷한 것 같았다.

“이상하다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각자의 신통을 시전하여 아래를 내려다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금봉 할머니는 눈썹을 살짝 움직이며 석목을 한 번 흘겨보았다.

금봉 할머니도 조금 전에 비술을 부려 아래를 훑어보았으나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른 신경 존재들도 당연히 미리 찾아보았을 터, 정말 무엇인가 이상한 점이 있었더라면 아무도 말을 하지 않을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석 도우님, 무얼 보신 겁니까? 우리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한절이 후후 웃으며 말했다.

조역은 이때다 싶어 비아냥거리는 얼굴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입가가 살짝 흔들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섬에서 다시 큰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갈라진 땅이 천천히 합쳐졌는데 아마 다시 닫히려는 모양이었다.

갈라진 틈에서 검은 기운이 들끓는 것을 보니 큰 이변이 생긴 게 분명했다.

금봉 할머니는 안색이 바뀌었다.

“상황이 좋지 않군요. 조심해서 다녀옵시다!”

말을 마친 금봉 할머니는 붉은빛으로 변하더니 틈 사이로 날아갔다.

다른 사람들도 다급하게 따라나섰다.

석목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 * *

전부 신경과 성계 경지라, 그들은 순식간에 갈라진 틈 사이의 허공에 도착했다.

금봉 할머니가 손을 흔들자, 크기가 수십 장 되는 붉은 검기가 날아가 틈 사이에 드리운 검은 기운을 베었다.

퍽!

검은 기운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더니 터져버렸다.

검은 기운이 사라지며 드러난 골짜기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었다.

금봉 할머니는 안색이 바뀌었다.

이때, 주변 풍경이 희미해지며 천지가 빙글빙글 돌아가다가 회색 공간으로 변하였다.

공간에선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으며 음산한 죽음의 기운으로 가득 찼다.

다들 안색이 말이 아니었다.

“여긴 어디야?”

석목은 안색이 달라지며 여러 가지 생각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 공간은 어제 갇힌 공간과 매우 흡사했다. 다만 어제 갇혔던 공간은 법보로 만든 공간이었는데 지금 있는 공간은 어떤 진법으로 만든 공간 같았다.

“당황하지 마세요. 여긴 진법으로 만든 공간이에요. 우리가 적이 깔아둔 덫에 걸린 것 같네요.”

금봉 할머니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석목은 아무런 표정 없이 조용히 한쪽에 서 있었다.

“하하! 이 멍청이들아. 아까 석두가 경고할 때는 아무도 안 듣더니. 덫에 걸려버렸구나.”

채아가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몇몇 신경 강자들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창피함을 감출 수 없었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채아를 째려봤다.

그제야 채아는 ‘흥!’하고 콧방귀를 뀌며 입을 다물었다.

“영목신통이 이렇게 뛰어나다니. 내 생각이 틀렸네.”

금봉 할머니가 말했다.

“아니에요. 저도 우연히 단서를 찾았을 뿐이죠. 헌데 이 진법은 어떤 진법인가요?”

석목이 물었다.

“이 진법은 지음지한(至陰至寒)의 진법이네. 내가 잘 못 본 것이 아니라면 아마 전설 속의 현음미천진(玄陰彌天陣)일 걸세.”

금봉 할머니가 말했다.

금봉 할머니가 하는 말을 듣자, 다들 표정이 어리둥절했다. 아무도 이 진법을 들어본 적 없는 것 같았으며 그건 신경 강자들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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