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698화 (698/916)

698화.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보아하니 세 족장님들은 여기 안 계신 것 같네요.”

석목이 말했다.

“그렇군. 세 족장님들은 여기 없네. 우리가 속았어.”

금봉이 이를 갈며 말했다.

“속였다니요? 조거 장로가요? 왜죠?”

조령롱이 고개를 흔들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연유는 모르겠지만 상황을 보니 우리가 조거 장로한테 속은 게 맞는 것 같군요.”

조주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네요. 다시 생각해보니 의심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군요.”

“종족에서 꽤나 높은 위치인데, 조거 장로가 왜 우리를 속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더 쉽게 속았죠.”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속은 걸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조거 장로를 신경 쓸 때가 아닌 것 같네요. 우선 여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금봉 할머니, 이 진법을 좀 아시는 것 같은데 어떻게 깨야 합니까?”

반귀 일족의 무운이 말했다.

모든 시선이 금봉 할머니에게로 향했는데 수련 경지가 가장 높은데다가 경험도 가장 풍부하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진법은 음험하고도 악독하군. 상고시대 때부터 전해 내려온 가장 풀기 어려운 진법 중 하나일세. 나가기가 쉽지 않을 테지!”

금봉 할머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금봉 할머니, 여기에 이렇게 많은 신경 강자들이 모여 있어요. 그리고 할머니도 계시는데 이 작은 진법 하나를 깨지 못하겠습니까?”

조역이 입을 삐죽거리며 부정했다.

“만약 이 진법을 힘으로 깰 수 있다면 나도 걱정하지 않았겠지.”

금봉 할머니가 조역을 째려보며 말했다.

조역이 더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해봅시다!”

계속 침묵만 지키던 수염이 난 지룡족 사나이가 눈빛을 반짝이며 오랜만에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때 노란빛이 반짝이며 송곳 모양 법보 하나가 나타나 사나이의 머리 위에 떴다.

수염이 난 사나이가 입을 벌려 법보에 노란빛을 불어넣자, 법보에서 빛이 환하게 밝아졌다.

송곳 법보는 빠르게 돌아가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사나이가 법결을 날리자,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며 송곳 법보가 순식간에 노란빛으로 변하더니 회색 구름 속을 뚫어버렸다.

송곳 법보가 파고들자 비단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송곳 법보가 회색 구름에 조금씩 파고 들어갈 때마다 돌아가는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동시에 구름이 줄기줄기 찢어지며 송곳을 감아버려 법보가 밝히던 빛이 어두워졌다.

송곳 법보는 구름을 뚫고서 몇 뼘 정도 찔러 들어가는 듯하다가 완전히 멈춰버려 움직이지 못했다.

뚫리지 않은 회색 구름은 여전히 두텁게 쌓여있었으며 그 두께마저 가늠할 수 없었다.

사나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법결을 날렸다.

송곳 법보가 빛을 반짝이더니 다시 구름에서 뽑혀 나왔다.

구름이 송곳을 조여 어렵사리 구름에서 꺼내 다시 손에 넣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전부 심각한 표정을 드러냈다.

석목이 눈을 반짝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진법이 내뿜는 기운이 사령계면과 매우 흡사하여 연나가 있었더라면 아마 해결할 방법을 알았을 터였다.

다만 석목은 지금 연나와 간신히 심신 연결을 미약하게만 유지하고 있는데다가 예전에 연나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미리 말을 했었기에 부른다고 해서 이곳에 올 리가 없었다.

그렇게 쥐 죽은 듯한 침묵이 한참 동안 지속되었다.

이때, 회색 구름이 용솟음치며 수많은 소용돌이를 만들어 ‘윙윙’ 소리를 내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석목이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여의빈철곤을 꺼냈다. 빈철곤에서는 금빛이 크게 번졌으며 석목은 순식간에 토템 변신을 하며 경계했다.

다들 호법 법보를 꺼내 들고는 비술로 몸을 보호했다.

묵직한 천둥소리가 울리며 회색 소용돌이에서 번개가 날아 나와 사람들을 공격했다.

석목은 곧바로 흑백 날개를 펼쳐 빛과 같은 속도로 이동하며 잔영만을 남긴 채 쏟아져 내리는 회색 번개들을 피했다.

석목은 번개를 피할 수 있었지만 다른 성계 강자들은 그리 쉽게 피하지 못했다. 몇몇 성계 강자가 회색 번개에 맞더니 법보조차 가볍게 부서져 버렸고, 처참한 소리와 함께 시커멓게 타서 쓰러졌다.

그중에는 서유금도 있었다.

서유금은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 비록 많은 법보를 들고 있었지만, 회색 번개 앞에서 법보들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채 가볍게 부서져 버렸다.

서유금은 몸통이 까맣게 타버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때, 또다시 두 갈래 회색빛이 서유금에게로 향했다.

서유금은 조금도 움직일 수 없어 눈에 절망스런 기색이 스쳤다.

이때, 금빛이 빠르게 서유금의 곁을 스쳐 지나더니 그를 번쩍 들어올렸다.

“석 형, 감사해요!”

서유금이 긴장을 풀며 말했다.

금빛은 석목이었다.

회색빛에 맞은 다른 몇몇 성계들도 신경 강자들이 구해줘 다행히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었다.

금봉 할머니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화려한 뚜껑 모양 법보가 날아 나와 순식간에 커지며 머리 위를 막았다.

우르르!

회색 번개가 오색 뚜껑위로 쏟아졌고, 뚜껑이 강한 충격을 받아 한참 흔들렸지만 이내 다시 안정되었다.

“다들 이곳으로 오시죠.”

금봉 할머니가 말했다.

회색 번개를 피해 다니던 사람들은 한숨을 돌리며 화려한 뚜껑 밑으로 날아왔다.

석목도 서유금을 안고는 뚜껑 밑으로 들어갔다.

“금봉 장로님. 이 회색 번개도 현음미천진이 드리운 건가요? 위력이 엄청난 것 같군요!”

조령롱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조령롱은 조금 전에 회색 번개 두 갈래를 막아내면서 그 속에 담긴 엄청난 위력을 느꼈다. 조령롱은 번개 속에 매우 독한 부식 신통이 섞여 있는 걸 확인했는데 신경 강자인 그녀마저 막아내기 버거웠다.

“현음미천진은 원래 묶어두는 방어 진법인데 어째서 공격 능력이 더해진 걸까?”

금봉 할머니가 미간을 찌푸리며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어찌 됐든 빨리 벗어나야 해요. 이러다가 무슨 일이 또 생길지 모르겠군요. 금봉 장로님, 이 진법을 다스리는 방법을 전혀 모르시는 겁니까?”

조주동이 물었다.

“젊었을 때 상고 유적지에서 온전치 않은 현음미천진의 진법도를 본 적이 있네. 이 진법은 총 아홉 개의 진안(陣眼)이 동시에 돌아가며 진법을 지탱하지. 이 아홉 진안을 찾아 뚫어버리기만 하면 아마 나갈 수 있을 게야. 다만 그 아홉 진안은 전부 이 대진 속에 숨어있네. 헌데 조금 전에 찾아봤지만 아무런 흔적도 없었네.”

금봉 할머니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다들 실망하는 표정이었다.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이때, 누군가 목소리를 내었다.

석목이 금빛을 번쩍이며 밖을 내다보았다.

“석목, 뭔가 발견한 거라도 있나?”

금봉 할머니가 석목을 바라보며 물었다.

“회색 번개 덕분에 단서를 찾았어요.”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전부 어리둥절했다.

조역이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석목이 나서는 게 매우 탐탁지 않은 듯 했지만 뭐라 말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한절은 석목을 한 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눈에서 보이지 않는 이채가 스쳐 지났다.

“회색 번개 덕분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조령롱이 물었다.

“금봉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대로 이 현음미천진은 원래 묶여있는 사람을 공격할 수 없죠. 때문에 이 회색 번개는 놈들이 만든 또 다른 대진과 합쳐져 나오는 겁니다. 다만 조금 전 상황으로 봤을 때, 이 두 진법은 그리 완벽하게 합쳐지진 않은 것 같군요. 오히려 허점을 드러냈지요.”

석목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금봉 할머니는 잠깐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가 이내 눈을 번쩍 떴다.

“자네 말이 옳네! 그럼 빨리 진안이 있는 곳을 찾게. 밖에 있는 놈들이 허점을 없애 버릴수도 있으니까.”

금봉이 말했다.

실은 금봉 할머니가 말하기 전에 석목은 이미 몰래 채아에게 진안을 찾아보라고 지시를 내렸고, 그와 동시에 석목은 영목신통을 시전하여 실마리를 찾았다.

영목신통을 겹쳐서 쓰니 주변 수백 장까지 또렷이 보여 영력 파동은 조금도 석목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다양한 눈빛으로 석목을 쳐다보았다.

* * *

일각 후, 석목이 자신 있는 표정을 드러냈다.

“석목, 진안이 있는 곳을 찾아냈나?”

금봉 할머니가 석목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물론이죠. 진안 아홉 개를 전부 찾았습니다.”

석목이 미소를 지었다.

말을 마친 석목이 손을 흔들자, 다섯 손가락 사이에서 하얀빛이 반짝이더니 하얀 화염이 나타났고, 동시에 위아래로 뻗어져 나가 화염으로 빚은 긴 창으로 변하였다.

석목이 또다시 손을 흔들자 화염 창이 ‘쓱!’ 소리를 내며 하얀빛으로 변하더니 손에서 날아가 이백 장 떨어진 곳 상공을 찔렀다.

쿵!

하얀 화염 창이 터지며 파편이 주변으로 튕겼다.

그러자 보기에 매우 평범하던 허공에서 물결이 일렁이며 회색빛이 흘러나와 한 방향으로 맴돌다가 순식간에 소용돌이 허영으로 변하였다.

“맞군. 저게 진안이야.”

금봉 할머니가 눈에 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덕분에 다들 긴장했던 안색을 풀었다.

하지만 허공에 이는 파동은 잠깐 사이에 다시 돌아왔으며 회색 소용돌이도 허공에서 사라져버렸다.

신경 존재들이 짓는 표정은 그대로였지만 함께 온 성계 제자들은 몹시 당황했다.

“큰일이다! 다시 사라졌다.”

한 성계 요족 청년이 소리를 질렀다.

“괜찮네. 그 진안은 사라졌지만 다시 움직일 수는 없지. 위치를 알았으니 우리가 가서 해결하마. 석목, 나머지 여덟 진안도 알려주게.”

금봉 할머니가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 손을 들어 올리자, 또다시 하얀 화염이 나타나 긴 창으로 변하여 날아가서는 백 장 밖 허공을 찔렀다.

그러자 두 번째 진안이 나타났다.

쓱, 쓱, 쓱!

하얗고 길쭉한 화염 창이 석목의 손에서 줄줄이 날아가 나머지 일곱 진안도 뚫어버렸다.

금봉 할머니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표정이 드러났다.

“좋아! 아홉 진안이 있는 위치를 전부 파악했군. 하지만 이 대진을 깨버리려면 아홉 진안을 동시에 깨뜨려야 해. 진안들은 전부 연결되어있어서 동시에 터뜨리지 않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게다. 그리고 진안들을 깰 땐 굉장한 위력이 필요하지. 아마 우리 여섯 신경과 성계 세 명이 동시에 공격을 해야 할 게야.”

금봉 할머니가 말했다.

“석목, 한절, 무진(巫真). 자네들 셋이 지닌 힘이 필요하네.”

조주동이 말을 꺼내며 셋을 일일이 바라보았다.

먹물뜨기(*먹물로 살 속에 글씨나 그림을 새겨 넣음)를 한 반귀족 청년의 이름은 무진이었다.

조역은 내키지 않는 듯한 기색을 드러냈다가 점점 촘촘하게 쏟아지는 회색 번개를 보자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 장로님이 내리신 명을 받들겠습니다.”

한절이 손을 굽히며 말했다.

“네!”

석목과 무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금봉 할머니가 다시 돌아서서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며 법결을 날렸다.

휙!

머리 위를 덮은 화려한 뚜껑 광막이 격하게 흔들리더니 빛이 몇 갈래 분리되어 석목을 비롯한 세 사람에게로 떨어졌다.

석목은 화려한 빛이 반짝이며 몸을 따뜻하게 감싸자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서 바라보니 몸에 오색영롱한 갑옷이 하나 생겼다.

한절과 무진도 똑같은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회색 번개에는 지음지한의 힘이 담겨있어서 버티기가 버거울 수도 있지. 이 갑옷은 회색 번개를 두 번 막아줄 수 있으니 아마 너희를 보호할 수 있을 게야.”

금봉 할머니가 말했다.

“금봉 장로님, 감사합니다.”

석목을 비롯한 세 사람은 곧바로 손을 굽히며 말했다.

“가자! 꼭 기억해야 해. 동시에 진안을 망가뜨려야만 해!”

금봉 할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하고는 몸을 날렸다.

나머지 여덟 명도 각각 뚜껑 아래에서 벗어나 진안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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