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9화. 성동격서
석목은 흑백 날개를 펼치고는 마치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처럼 영리하게 회색 번개를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빠르게 진안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다른 사람들도 전부 제자리를 찾아갔다.
이때, ‘쿵!’ 소리가 전해졌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던 석목은 안색이 살짝 바뀌었다. 한절이 회색 번개에 맞았으나 다행히 오색 갑옷을 두르고 있어서 별문제는 없었다.
오색 갑옷의 겉에서 푸른색, 노란색, 하얀색, 붉은색, 검은색 빛이 다섯 갈래로 날아 나와 몸 앞에 오색 광막을 만들어 쏟아지는 회색 번개를 막았다.
이때 회색 번개가 순식간에 어두워지며 흩어졌다.
물론, 한절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지만 오색 갑옷은 처음보다 조금 어두워졌다.
“죄송합니다. 방심했어요.”
한절이 미안해하며 말했다. 그리고 몸을 잠깐 멈춰 세웠다가 곧바로 진안 근처로 날아갔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렸다. 한절과 대결을 펼쳤던 석목은 한절이 갖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회색 벼락을 맞았다니?
“조심하게! 진안 밖엔 금제가 한 층 있네. 우선 금제부터 깨야겠지.”
금봉 할머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목은 고개를 흔들며 한절에 관한 생각을 잠시 접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진안 근처로 다가가며 쏟아지는 번개를 피했다.
진안과 가까이 다가갈수록 회색 번개는 점점 빈번하게 쏟아졌으며 마치 커다란 그물처럼 앞을 막았다.
석목은 날렵하게 회색 번개를 뚫고서 지나갔다.
스무 장, 열다섯 장, 열 장, 다섯 장……
석목은 두 눈을 크게 뜨고는 금빛을 반짝여 손으로 허공을 틀어쥐었다. 그러자 ‘퍽!’ 소리가 나더니 하얀 화염이 석목의 손에서 타오르다가 화염 검으로 변하였다.
석목이 팔을 흔들자 하얀 화염 검이 허공을 내리치며 불을 주변으로 뿜었다.
쿵!
허공이 격하게 흔들리며 밀물처럼 회색빛이 쏟아져 밀려오는 화염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이 화염은 석목 몸속에 남은 모든 양의 힘을 뭉친 것이라 위력이 엄청나 쉽게 막아낼 수 없었다.
퍽!
회색빛이 터져버리며 허공에 커다란 균열을 만들어놓았다. 그러자 균열에서 회색 소용돌이가 나타났는데 바로 진안이 자리한 곳이었다.
강력한 파동이 회색 소용돌이에서 흘러나왔다.
순간, 석목은 깜짝 놀랐다. 이 파동이 지닌 힘을 수련자의 경지와 비교하면 신경 초기 단계나 마찬가지였고, 이런 진안을 깨버리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번천곤을 쓸까?
석목은 곧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매우 복잡한 상황 속에 있는데 만약 번천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해버리면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을 할 수 없었다.
석목은 왼손에 분신의 힘을 써 검은색 기운을 흘려보냈다. 그러자 손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붉은 단검이 나타나 손에 쥐었다.
윙윙!
단검의 빛이 점점 넓어져 크기가 몇 장 정도 되는 붉은 검광으로 뭉치더니 법칙 부문들이 수도 없이 나타났다. 이 힘은 분신이 지닌 파손된 영역의 힘이었다.
주변에서 쏟아지던 회색 번개는 검광이 풍기는 괴이한 기운 때문에 이상하게 일그러져 빗나갔다.
“지금이야!”
금봉 할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석목은 낮게 소리를 지르며 손에 법결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단검을 들어 올리는 순간, 붉은 검광이 회색 회오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그러자 회색 회오리에서 빛이 뿜어져 나가며 방대한 힘이 터져 단검이 부들부들 떨렸고, 뒤로 튕겨져 날아갈 것만 같았다.
석목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근육을 크게 부풀려 팔뚝에 힘줄이 툭툭 튀어나온 채 온 힘을 다해 핏빛 단검을 움직였다.
단검에서 풍기는 기운은 더욱 짙어지더니 힘겹게 소용돌이의 깊은 곳까지 뚫고 들어가서는 중심을 그대로 그어버렸다.
쾅!
회색 소용돌이가 터지며 엄청난 힘이 쏟아져 나와 가까이에 서 있던 석목의 가슴을 내리쳤다.
석목이 두르고 있던 오색 갑옷은 빛을 번쩍이며 잠깐 힘을 막아내는 듯하더니 이내 터져버렸다. 하지만 밀려오는 힘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채 석목의 몸을 강하게 내리쳤다.
방대한 힘이 곧장 석목의 가슴에 부딪쳐 마치 오장육부가 순식간에 자리를 옮긴 것만 같은 고통이 밀려왔고, 입에서는 피를 토해냈다. 또한 그의 몸통마저 밀려서 날아가 버렸다.
‘퍽!’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회색 번개 몇 갈래가 동시에 쏟아지며 석목의 몸을 내리쳤다.
석목은 곧바로 법결을 시전하여 구룡쇄금갑을 두르고는 그대로 쏟아지는 벼락을 맞았는데 다행히 갑옷은 전혀 망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몸속에 깃든 진기가 거의 다 소진되어갔다!
석목은 숨을 돌리며 선급 영석을 하나 쥐었다. 그리고 몸을 날려 쏟아지는 번개 사이를 이리저리 피하면서 날아가며 동시에 구룡쇄금갑도 거두어들였다.
구룡쇄금갑은 번천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쉽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물건이었다.
굉음이 연이어 울려 퍼졌다. 석목이 진안을 뚫어버렸을 때, 나머지 여덟 명도 각자 법보를 꺼내서 강력한 공격을 시전하여 각자 맡은 진안을 망가뜨렸다.
한동안 회색 공간이 격하게 흔들렸는데 그 와중에 회색 구름이 밀물처럼 용솟음을 치다가 이내 점점 자취를 감췄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누군가 음모를 꾀했으며 분명 천정과 엮인 일일 터였다.
미양 성역, 심지어 다른 이웃 성역을 통틀어도 신경조차 벗어날 수 없는 대진을 설치할 능력을 갖춘 이들은 없었다. 오직 천정만이 이런 진법을 설치할 수 있었다.
삼대 종족의 족장들이 절대 이곳에 있을 리 없었으며 붙잡혔다는 말도 거짓말일 터였다. 이러는 사이에 분명 어떠한 오해가 생겼을 것이며, 누군가 일부러 이렇게 조작을 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 문제는 삼대 종족의 신경 강자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석목의 머릿속은 오로지 한 가지 생각으로만 가득 찼고, 그것은 빨리 이곳을 벗어나 종수와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때, 이변이 일어났다.
백 리 밖에서 비명이 들려오더니 공간에서 흩어지던 회색 구름이 갑자기 멈춰버렸다.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본 석목은 깜짝 놀랐다.
열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 회색 소용돌이가 터지지 않은 것이었다. 진안 옆엔 까맣게 타버린 사람이 한 명 누워있었는데 그 사람은 한절이었다.
진안을 부수다가 벼락에 맞은 것 같았다.
회색 소용돌이에서는 ‘윙윙’ 소리가 울려 퍼지며 점점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회색 공간을 가득 채우던 떨림이 사라지더니 소용돌이치던 구름마저 멈추어 설 기미를 보인다는 점이었다.
“큰일이다!”
석목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지금은 진안과 너무 멀리 떨어져있어 다시 돌아가려 해도 이미 늦어버렸다.
이때, 눈부신 붉은빛이 날아왔다. 붉은빛은 지팡이 모양인 무언가에 감겨 날아오는 것만 같았으며 겉에서는 부문이 맴돌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날아오르는 기러기 같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붉은빛은 회색 소용돌이 가운데를 뚫고서 지나갔다.
쾅!
회색 소용돌이가 순식간에 멈추더니 이내 사라져버렸다.
붉은빛이 반짝이더니 지팡이가 금봉 할머니의 손으로 날아갔다.
석목은 목구멍까지 튀어 올랐던 심장을 다시 내려놓았다.
마지막 진안이 부서지자, 회색 구름도 빠르게 흩어졌으며 쏟아지던 번개도 사라져버렸다.
순간, 커다란 틈이 몇 갈래 벌어지더니 빠르게 퍼져갔다. 이어서 묵직한 굉음과 함께 회색 공간은 드디어 산산조각이 났다.
* * *
일행들은 눈앞이 희미해졌다가 다시 서하도의 상공에 나타났다.
석목은 깊은숨을 내뱉으며 주변으로 신식을 보냈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렸는데 저 멀리 하늘에서 희미한 빛이 빠르게 도망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빛은 시선의 끝에서 한 번 반짝이고는 이내 사라져버렸다.
“흥! 역시 누군가 여기서 매복을 하고 있었군.”
금봉 할머니를 비롯한 일행들도 사라지는 빛을 보았다.
“보아하니 누군가가 우리를 이곳으로 유인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걸까요?”
조령롱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큰일입니다! 봉익성!”
석목이 갑자기 무엇인가 떠오른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 말을 들은 금봉 할머니도 안색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래. 성동격서의 계(計)를 쓴 거야. 빨리 돌아가자!”
금봉 할머니는 날개가 달린 비주를 소환하였다.
비주는 붉은빛을 밝히며 빠른 속도로 봉익성으로 날아갔다.
석목은 비주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옆을 바라보며 눈빛을 반짝였다.
한절은 진안을 부술 때, 꽤나 큰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단약을 삼키며 상처를 회복하는 중이었다.
한절도 석목이 보내는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고는 마찬가지로 고개를 돌려 석목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는 실례했네요. 여러 번 실수하면서 큰 사고가 생길 뻔했군요. 석 도우만큼 신통이 뛰어나지 못해서.”
한절의 태도는 이전보다 훨씬 겸손해졌는데 자신이 저지른 실수가 꽤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아닙니다. 금봉 할머니께서 빠르게 도와주셨잖습니까? 자책할 필요 없어요.”
석목이 후후 웃으며 말했다.
둘은 가볍게 두어 마디 더 주고받으며 각자 눈을 감고는 상처를 회복했다.
금봉 할머니는 지금 혼자서 비주의 가장 앞쪽에 서있었는데 그녀의 안색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금봉 할머니의 옷자락이 바람에 크게 부풀어 있는 것을 보면 가장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피부로 느끼기에 서하도로 오던 속도보다 더욱 빠른 것 같았다.
* * *
잠시 후, 봉익성이 눈에 훤히 들어왔다.
석목은 일어서서는 두 눈에 금빛을 반짝이며 봉익성을 바라보았다.
이 시각, 봉익성을 수많은 사람이 둘러싸고 있었으며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을 둘러싼 이들은 전부 은색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너무나도 익숙한 천정의 복식이었다.
이 밖에, 거대한 전함들이 열 몇 척이나 성시 위를 떠다녔으며 끊임없이 빛기둥으로 성시를 공격했다.
봉익성 주변에 두른 금제는 이미 뚫려버려 빛기둥이 떨어질 때마다 성시에 있던 건물들이 무더기로 무너져 내렸다. 성시는 곳곳이 불타올랐으며 이미 절반 정도는 폐허가 되었다. 울부짖는 소리와 애원하는 소리가 봉익성을 가득 채웠다.
석목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눈에서는 사나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눈앞에 펼쳐진 이 처참한 광경은 청란성에서, 그리고 이곳으로 오는 길에 지나친 자양성에서도 똑같이 펼쳐졌었다.
성시 안에 있던 천봉 일족과 다른 여러 종족들이 온 힘을 다해 천정 놈들에 맞서 격전을 펼치고 있었다.
다만 지금은 성시를 지키던 전력이 대부분 다른 곳으로 이동했었기에 그 숫자나 수련 경지만 놓고 보았을 때 천정이 절대적으로 우위를 차지했다.
“천정 놈들!”
금봉 할머니가 소리를 지르자, 그녀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금봉 할머니는 마지막 한 글자를 내뱉는 순간, 이미 커다란 붉은빛으로 변하여 앞으로 날아갔다. 그녀가 공격을 하러 날아간 상대는 놀랍게도 전함이었다.
다른 신경 강자들도 전부 화를 내며 천정 사람들을 향해 덮쳤다.
“공격!”
석목을 비롯한 성계 강자들도 뒤따라서 날아가 전투를 치렀다.
“금봉 할머니, 조주동 장로님, 조령롱 장로님!”
성시에 남아있던 천봉 일족들은 석목 일행을 보자 크게 좋아했다.
하지만 천정 사람들은 깜짝 놀라는 듯했다. 아마 석목 일행이 돌아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