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화. 덫
금봉 할머니가 가장 앞에서 날아가며 한 손을 들어 다시 휘두르자 붉은빛이 번개처럼 날아갔다.
지팡이가 허공에서 나선형으로 춤을 추자 겉에 드리운 부문도 점점 밝아졌다. 이어서 봉황이 우는 소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지더니 지팡이가 순식간에 족히 열 장이나 되는 붉은 봉황으로 변하였다. 봉황은 날개를 활활 태우며 펄럭였는데 그 기세와 속도는 실로 놀라웠다.
금봉 할머니가 입으로 무엇인가 중얼거리며 법결을 줄줄이 날렸다. 그러자 봉황의 몸에서 번지던 화염이 점차 바뀌며 붉은 금색으로 변하였다. 그 순간 엄청나게 뜨거운 기운이 흘러나와 허공이 격하게 흔들렸다.
불타는 봉황이 두 날개를 펼쳐 곧바로 전함과 강하게 부딪쳤다.
쾅!
전함이 겉에 두른 보호막은 마치 종잇장처럼 닿는 순간 바로 터져버렸다.
이어서 금색 봉황은 속도가 전혀 줄어들지 않은 채 순식간에 전함에 구멍을 뚫으며 반대편으로 튀어 나와서는 두 날개를 펼쳐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퍽!
전함이 불타오르며 허공에서 떨어지자 처참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눈 깜짝할 사이, 전함 한 대가 깨끗이 타버려 먼지만 흩날렸다!
이 광경을 본 석목을 비롯한 성계 제자들은 정신이 번쩍 들어 각자 법보를 꺼내어 전투에 참여하려 했다.
금봉 할머니는 타버린 전함을 거들떠보지도 않고는 다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금색 봉황이 또 다른 전함을 향해 덮쳤다.
하지만 이때, 허공에서 하얀빛이 크게 터지더니 빙글빙글 돌았다. 그 모습은 마치 피지 않은 연꽃 같았는데 연꽃이 눈부신 빛을 뿜어내며 점점 커지더니 찬란한 검광으로 변하였다.
이 하얀 검광은 보기에 매우 평범해 보였으나 끝없이 차가운 검기를 풍기며 번개 같은 속도로 불타는 금색 봉황을 베었다.
금색 봉황은 날카로운 소리를 내고 몸에 두른 화염을 더 크게 불태우며 전혀 두려워하지 않은 채 검광을 맞이했다.
하늘이 찢어질 듯한 굉음이 울려 퍼지며 허공이 심하게 한 번 흔들렸다.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금색 봉황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하나 생겼다.
동시에 하얀 비검도 뒤로 튕겨져 날아갔는데 검신에서 나던 빛이 어두워졌고 녹아버린 흔적이 보였다.
하얀빛이 반짝이자 하얀 그림자가 금봉 할머니 앞에 나타나더니 다시 비검을 손에 들었다.
석목은 동공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하얀 그림자는 중년 남자였는데 드러난 윤곽이 조각상 같은 남자는 그리 젊지는 않았지만 매우 잘생겼다.
“오풍(敖豐)신장!”
금봉 할머니의 눈에서 사나운 빛이 스쳤다. 하지만 눈앞에 선 사람이 절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인지하고는 곧바로 몸을 멈춰 세웠다.
“금봉 장로님, 오랜만입니다.”
오풍 신장이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웃는 소리가 매우 유쾌해 모르는 사람이 들었더라면 금봉 할머니의 오래된 벗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당신이군. 지난번 전방에서 승부를 가리지 못했는데 다시 한번 제대로 겨뤄보지!”
금봉 할머니가 차갑게 말했다. 이어서 그녀의 옆에서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화염이 활활 타올랐다. 화염은 마치 한 마리 봉황처럼 빠르게 날아올랐다.
불타는 금색 봉황은 가슴에 생겼던 상처가 빠르게 아물더니 금봉 할머니와 함께 날아올랐다.
크고 작은 봉황 두 마리가 하늘을 붉게 물들였으며 뜨거운 온도 때문에 지나간 곳마다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오풍 신장은 느릿느릿 하얀 비검을 거두어들이고는 한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하얗고 파란빛이 섞인 옥치 법보 하나가 나타나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기운을 풍겼다.
오풍이 법결을 몇 번 바꾸자, 옥치가 튀어나가 파란빛을 크게 드리우더니 단번에 크기가 백 장이나 되는 파란색 빙룡으로 변해 불타는 봉황을 막았다.
거대한 두 마리 짐승이 서로를 물어뜯자 오풍은 몸을 날려 금봉 할머니를 덮쳤다.
석목 일행이 다시 돌아오자 봉익성을 지키는 세력의 실력은 다시금 막강해졌다. 금봉 할머니를 비롯한 여섯 신경 강자들을 빼더라도, 실력이 가장 약한 자마저 성계 경지인 뛰어난 제자들이었다. 이들이 전투에 투입되자 아슬아슬하던 봉익성의 국면이 빠르게 돌아섰다.
천정은 하는 수없이 더욱 많은 인력을 투입하여 공격을 막아냈다.
그중 천정의 몇몇 신장들은 조령롱 같은 신경 강자와 격전을 치렀다.
나머지 천정의 무인들은 석목과 같은 이들을 덮쳤다.
한동안 이전보다 더 강력한 굉음이 울려 퍼졌으며 싸움은 훨씬 더 치열해졌다!
석목이 들고 있는 여의빈철곤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수많은 곤봉 그림자로 변하여 동시에 천정의 성계 무인 두 명을 내리쳤다.
두 성계 무인은 강한 타격을 받아 입으로 피를 뿜어내며 무겁게 땅에 떨어졌는데 그 고통은 죽느니만 못했다.
천정의 성계 강자 두 명을 물리친 석목이 다른 무리를 향해 방향을 틀며 동시에 두 눈으로 빠르게 성시 안을 훑었다.
그러자 잔뜩 긴장했던 얼굴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석목이 사람들과 별 탈 없이 함께 있는 종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종수는 때마침 천정의 성계 강자 두 명과 격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종수와 헤어진 뒤로 그녀가 누군가와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미 성계 정상에 도달한 종수의 부드럽고 우아한 몸짓 사이에서 금색 화염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종수가 쓰는 금색 화염은 현진금염(玄真金焰)이었다.
종수는 홀로 적을 두 명이나 상대하고 있었지만, 전혀 밀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석목은 그제야 안심하며 전투에 몰입했다.
석목은 두 눈과 빈철곤에서 금빛을 뿜어냈다. 통천십팔곤을 시전하는 석목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마치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웠으며, 그 어떤 성계 강자도 두 번을 받아내지 못할 만큼 막강했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중요한 건 석목과 성계 경지 무인들이 주고받는 시시한 공격이 아니라, 허공에서 치열하게 무기를 휘두르는 신경 강자들이 치르는 싸움이었다.
고막이 찢어질 듯한 굉음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빛들이 부딪치며 허공이 수도 없이 찢어지더니 여기저기에 균열이 생겨 당장이라도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기세였다.
양측 신경 강자들은 숫자가 엇비슷했기에 한참 동안 기세로 승부를 가릴 수 없었다.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가운데 흰빛과 붉은빛 두 갈래가 격렬하게 부딪치고 뒤엉키며 하늘을 뚜렷한 적백 세상으로 갈라놓았다. 그 두 갈래 빛은 금봉과 오풍 신장이었다.
“하!”
오풍이 하얀빛을 휘감은 주먹으로 허공을 내리치자 희뿌연 빛이 커다랗고 투박한 주먹 그림자 서른여섯 갈래로 갈라졌다.
주먹들은 힘이 제각각으로 강했으며 허공을 가르는 와중에도 다양하게 변해 화려한 빛이 되어 번졌다. 그 기세는 어떠한 힘도 막아낼 수 없을 듯 웅장하기 그지없었다.
“허, 네놈이 삽십육 천강권법(天罡拳法)을 이 정도 경지까지 수련했구나. 애썼다!”
금봉 할머니는 확실히 비웃으며 몸에 붉은빛을 더욱 크게 드리웠다. 그러자 몸에서 붉은 화염이 떼를 지어 뿜어져 나갔다가 다시 주변에 네다섯 장정도 되는 둥그런 화해(火海)를 만들었다.
삽십육 천강권법은 화해에 닿는 순간, 마치 진흙탕 속에 빠진 듯이 순식간에 빠져서 사라져버렸다.
“이건…… 영역!”
오풍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금봉 할머니가 두른 화해를 바라보았다.
“보는 눈은 있군!”
의기양양한 웃음을 드러내고 있던 금봉 할머니는 순식간에 수십 장 거리를 건너뛰어 오풍 옆에 나타나더니 동시에 화해 영역으로 몸을 덮어씌웠다.
당황한 오풍이 다급하게 손을 흔들자 파란색 빙룡(氷龍)이 단숨에 금색 화봉(火鳳)을 밀어내고는 오풍의 앞을 막아섰다.
“폭!(爆)”
오풍은 눈을 흉악하게 뜨더니 잽싸게 법결을 바꾸었다. 그러자 앞에서 몸을 막고 있던 파란색 빙룡이 터졌다가 다시 구름으로 뭉쳤다. 뭉친 구름 속에선 파란색 부문이 나타나 영역을 잠시나마 밀어냈다.
그 틈에 오풍은 한 갈래 빛으로 변하여 금봉 할머니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피했다.
대충 주변을 둘러보며 전황을 파악해보니 천정이 확연하게 밀리고 있어 오풍은 몹시 망설여졌다.
이때, 어떤 광경이 눈에 들어왔는지 오풍이 갑자기 안색을 바꾸며 소리를 질렀다.
“목적 달성! 철수!”
오풍이 말을 떨어뜨리는 순간, 천정의 병사들이 일제히 공격을 멈추고는 빠른 속도로 전장과 멀리 떨어진 전함 몇 척으로 뿔뿔이 흩어져 날아갔다.
조령롱을 비롯한 신경 강자들과 격전을 치르던 놈들도 각자 수법을 써서 전장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들은 전함이 아니라 오풍에게로 향했다.
천정의 병사들이 보여준 동작은 마치 수십 번 훈련을 거친 것처럼 매우 신속하고도 숙련되었으며 빈틈없이 깔끔했다. 단 몇 번의 호흡을 할시간 뒤에는 봉익성에서 천정 놈을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광경을 보고서 놀란 천봉 일족은 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천정의 전함에 새겨진 부문에서 다양한 빛이 번쩍였으며 진법도 예외 없이 돌아갔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천정 놈들은 멀리 도망을 가버렸다.
오풍을 비롯한 신경 강자들도 전장에서 벗어나 전함 뒤를 빠르게 따라갔다.
“쫓아가!”
어느 천봉 일족의 장로가 외치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되네. 성계 후배들은 절대로 전함을 따라잡을 수 없거니와 쫓아간들 우리들이 갖춘 힘만으로는 절대 잡아 올 수도 없는 일이네. 우선 성시 안에서 벌어진 상황부터 살피는 편이 좋을 것 같군.”
금봉 할머니가 반대를 했다.
결국 쫓아가자던 천봉 일족의 장로는 금봉 할머니가 하는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금봉 할머니는 아직 안정되지 못한 영역의 힘이 못내 아쉬웠다. 더욱 안정된 영역이었더라면 오풍은 절대 도망갈 수 없었을 터였다.
사람들 앞에 드러내지 않은 채 최후의 수단으로만 쓰겠다며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공격을 빨리 막는 편이 유리했기에 금봉 할머니도 어쩔 수 없이 필살기인 영역의 힘을 꺼낸 것이었다.
허공에 있던 사람들은 다급하게 아래로 내려왔으며 다시 지시를 받고서 뿔뿔이 흩어져 성시에 번지는 불을 끄며 피해를 본 사람들을 구했다.
* * *
나머지 신경 강자들과 석목을 비롯한 실력이 뛰어난 성계 무인들이 한곳으로 모였다.
석목을 본 종수는 얼굴에 안도를 한 기색이 어렸으며, 종수와 눈을 마주친 석목의 눈빛에도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난데없이 천정 놈들이 웬 일이지? 왜 갑자기 들이닥친 게야?”
금봉 할머니가 한껏 어두워진 낯빛으로 성시를 둘러보며 물었다.
“장로님 일행이 세 족장님들을 구하러 서하도로 향했을 때, 저희도 곧장 봉익성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시 밖에 천정의 전함이 나타나더니 성시를 포위했죠.”
진 부인이 말했다.
“아무런 징조도 없었느냐? 전송대전에서도?”
금봉이 다시 물었다.
“없었어요. 꽤 오래전부터 근처에 잠복을 하고 있었던 것 같네요. 그것 말고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아요.”
금봉 할머니는 침묵에 잠겼다.
“금봉 장로님, 세 족장님들은 어디에 계십니까?”
한 천봉 일족의 장로가 물었다.
“흥! 족장들이 붙잡혔다고? 우리가 속았네. 세 족장은 애당초 서하도에 계시지도 않았네. 우리는 놈들이 놓은 덫에 걸려서 대진에 빠졌다가 간신히 탈출해 다급하게 돌아왔지.”
금봉 할머니가 분노에 찬 목소리를 냈다.
“속았다니요? 조거 장로가 거짓말이라도 했다는 말씀입니까?”
진 부인이 믿기지 않는 얼굴로 물었다.
“그래. 그놈은 지금 어디 있는 게지? 내가 묻고 싶은 말이 많군!”
금봉이 지팡이로 변신한 금색 화봉으로 강하게 바닥을 내리치면서 윽박을 지르듯이 소리를 질렀다.
진 부인을 비롯한 장로들은 서로 눈치만 살피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으며 얼굴에 막연한 기색만을 드러냈다.
갑자기 들이닥친 천정 놈들을 상대하느라 혼란에 빠져 아무도 조거 장로가 어디로 갔는지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금봉 선조님. 조거 장로님은 전에 큰 부상을 당하여 봉익성의 내성에서 회복을 하시던 중이었습니다. 아마 성화단(聖火壇)에 계실 겁니다.”
조선기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금봉 할머니는 곧장 몸을 날려 번개 같은 속도로 내성으로 날아갔다.
석목을 비롯한 일행들도 전부 금봉 할머니를 뒤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