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05화 (705/916)

705화. 각성

석목은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더니 두 손으로 종수의 피부를 더듬거렸다.

석목의 손이 종수의 피부에 닿을 때마다 종수는 파르르 몸을 떨었으며, 종수의 살결에서는 다채로운 빛깔이 일렁였다. 그리고 종수도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다.

석목이 종수의 몸에 들어가는 순간, 종수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종수의 뒤로 붉은색 봉황의 허영이 날아 나와 울부짖는 자세를 취하고는 종수의 몸을 세 번 정도 맴돌다가 다시 석목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석목은 눈을 번쩍 떴으며 붉게 물들었던 두 눈은 사라져 금빛으로 바뀌었다.

피부 속 혈관에서 들끓던 붉은빛은 여전히 기세가 꺾이지 않았지만, 이전처럼 막무가내로 치솟아 오르는 게 아니라 무엇인가에 이끌리듯이 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순간, 석목은 자신의 몸과 종수의 몸이 연결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두 사람의 몸에 흐르던 피는 더 이상 자기 혈관에서만 흘러 다니는 게 아닌 서로의 몸을 타고 흘렀다.

종수의 몸속에 흐르던 특별한 피가 석목의 몸속으로 들이치자, 석목의 혈맥 속에서 나던 빛들이 점점 밝아졌다.

하나, 둘, 셋

빛들은 마치 온몸을 태워버릴 것만 같았다.

드디어, 석목의 몸속에서 수많은 금빛들이 번쩍이더니 피가 들끓기 시작했다. 또한 혈관에서 피가 미친 듯이 용솟음치더니 혈맥을 늘리며 다시 조금씩 피부를 피로 적셨다.

석목은 마치 몸을 이루는 모든 피와 살이 용광로에 들어가 뜨겁게 제련되는 것만 같았는데 그 느낌은 고통스러우면서도 기뻤다.

우르릉!

염작산의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천둥소리가 울려 퍼져 채아는 깜짝 놀라 수 십 장 밖으로 도망갔다.

이어서 커다란 원숭이의 허영과 봉황의 허영이 화산 입구에서 날아올라 하늘 속으로 찔러 들어갔다가 두 갈래 빛이 되어 흩어졌다.

* * *

첫 통증을 겪은 후로 석목과 종수는 매우 조화롭게 움직였다.

둘이 점점 절정을 향해 다다르자, 모든 게 자연스러워졌다.

종수는 석목의 몸 위에서 규칙적으로 움직이며 한 손으로는 석목의 목을 감싼 후에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으나 여전히 새가 지저귀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억누르진 못해 세상으로 흘려보냈다.

석목의 정신은 뚜렷하게 돌아왔으며, 스스로 혈맥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걸 느꼈다. 그리고 몸을 이루는 꽤 많은 부분이 종수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그런데 유독 복부에 자리한 뜨거운 불덩이만 점점 타오르고 있었다.

“수아, 수아……”

석목은 끊임없이 종수의 이름을 부르며 두 손으로 그녀의 볼을 감싸고는 뜨겁게 입을 맞췄다.

* * *

한 차례 소나기가 지나간 후로 석목은 정신이 더욱 완전히 맑아졌다. 온몸에서 힘이 차고 넘쳤는데 그 힘은 자신의 혈맥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석목의 옆에서 ‘스륵’ 소리가 났는데 종수가 석목을 등진 채 옷을 주섬주섬 입는 소리였다.

그 모습을 본 석목은 종수의 어깨를 잡고는 얼굴을 마주했다.

종수는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이 입은 옷만 매만졌다. 종수는 차마 고개를 들어 석목을 마주하지 못했다.

석목은 그런 모습이 더욱 좋아 종수의 턱을 받쳐 들었다.

둘은 다시 시선을 마주쳤다.

“수아, 고마워.”

석목이 진심을 가득 담아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종수는 안색이 오히려 어두워졌다.

“수아, 평생 책임질게!”

석목이 정중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종수는 눈시울이 뜨거워져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은 종수를 품에 안고서 조용히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며칠 뒤에 화산 입구의 허공에 조용히 떠있던 하얀 계란 모양 법보가 갑자기 갈라지더니 빛이 한 갈래 날아 나왔다. 그리고 석목의 옷자락이 휘날렸는데 그는 하얀빛을 감고 있었다.

계란 모양 법보밖으로 나온 석목은 곧장 하늘로 솟아올랐다.

석목의 몸에는 큼직한 근육이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었는데 피부에 난 은색 털이 빠르게 자라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하얀 거원으로 변해 방대한 기운을 풍겼다.

석목은 두 눈에 금빛을 번쩍이더니 마치 운석처럼 허공에서 떨어져 화산을 격하게 뒤흔들어놓았다.

혈맥과 근육에 담긴 방대한 힘을 느낀 석목은 백원으로 변하여 두 주먹을 땅으로 내리치며 통쾌하게 소리를 질렀다.

석목은 다시 몸을 날려 종수 옆으로 다가왔다.

“석 오라버니, 조금 전에는……”

종수가 놀라며 물었다.

“미천거원 일족의 변신술이야. 다 네 덕분이지. 드디어 미천거원의 혈맥을 각성했어.”

석목이 말했다.

“미천 혈맥을 각성했다고요? 그럼 우리는 드디어……”

종수는 흥분된 얼굴로 활짝 웃다가 갑자기 얼굴이 붉어져서는 고개를 숙였다.

“그래, 우리 이제 정정당당하게 혼인을 맺을 수 있어!”

석목이 하하 웃으며 종수를 끌어안았다.

순간, 종수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일들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분수처럼 벅차올랐다.

“어머니, 저는 드디어 가장 사랑하는 인연을 얻게 되었어요!”

석목이 속으로 외쳤다.

종수는 석목이 풍기는 강렬한 남자의 기운을 맡으며 꽉 끌어안았다.

종수는 어렸을 때부터 석목과 혼인을 맺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드디어 꿈이 이루어져 분위기에 심취했다.

둘은 한참 동안 끌어안고 있었다.

“수아, 우리가 쌍수 배필을 맺은 후엔 곧바로 미천거원 일족으로 돌아가자. 나는 네가 계속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어. 우리 함께 여길 떠나는 거야.”

석목이 종수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야 물론 오라버니와 함께 하고 싶지요. 다만……”

종수가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다만 뭐?”

석목이 물었다.

“사부님과 천봉 일족의 다른 사람들도 모두 저를 많이 챙기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특별한 신분이라 오라버니와 함께 떠나겠다고 하면 아마 다들 반대할 거예요.”

종수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래.”

석목은 생각에 잠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수의 신분이 오히려 두 사람이 함께하는 걸 방해했다.

“석 오라버니, 걱정하지 마요. 오라버니가 나타난 순간, 다시는 헤어지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니까요. 제가 족장에게 가서 성녀의 신분을 포기하겠다고 하면 돼요. 그러면 우리는 다시는 떨어져서 지내지 않아도 돼요.”

종수가 석목의 볼을 매만지며 부드럽게 말했다.

석목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천봉 일족의 성녀는 매우 높은 자리였다. 종족 안에 있는 모든 자원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련을 할 때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종수가 자신과 함께 지내기 위해 이 모든 것들을 미련 없이 버릴 생각을 했다니.

“수아, 앞으로 절대 헤어지지 말자.”

석목이 종수의 두 손을 꽉 잡았다.

“어이고. 말랑말랑해라. 내 뼈까지 녹아버리겠어. 부러워 죽겠네.”

채아가 어디에서인지 모르게 나타나 근처에 솟아난 돌 위에 살포시 앉으며 놀리는 투로 말했다.

종수는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다급하게 손을 뺐다.

석목이 눈살을 찌푸리며 무엇인가 말을 하려다가 갑자기 안색을 바꿔 밖을 내다봤다.

“석두, 둘이 보낼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려는 게 아니라 중요한 일이 있어서 왔어.”

채아의 목소리가 석목의 가슴속에서 울려 퍼졌다.

“석 오라버니, 왜 그러세요?”

종수는 석목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석목은 대답을 하지 않고는 밖으로 날아가 동굴 밖에 놓인 커다란 돌로 향했다.

검은 그림자 하나가 돌 뒤에서 날아 나와 빠른 속도로 도망갔다.

“어딜 도망가!”

석목이 소리를 지르며 찬란한 불빛을 날렸다. 불빛은 순식간에 붉은 화조(火爪)로 변하여 순식간에 검은 그림자를 따라잡았다.

“폭!(爆)”

석목이 눈빛을 반짝이며 빠르게 법결을 시전하였다.

우르릉!

붉은 화조가 순식간에 터져버려 열 장이나 되는 화염구로 변해 검은 그림자를 감싸버렸다.

석목은 눈에 화색이 돌았다. 얼마 전에 깨우친 구전현공 불의 힘을 이렇게나 바로 쓸 수 있어 혹시나 해서 시전해 봤는데 역시나 대단했다.

이때, 검은 그림자가 공에서 날아 나와 전혀 다치지 않은 듯이 날아갔다.

석목은 멈칫했다.

석목이 머뭇거리는 사이에 검은 그림자는 빛을 번쩍이며 순식간에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석목은 저 멀리 허공을 바라 보며 미간을 찌푸린 채 멈춰 섰다.

이때, 종수와 채아가 뒤에서 날아와 석목의 옆으로 다가왔다.

“석 오라버니, 혹시 저 검은 그림자가 우리가 하는 말을 엿들었나요?”

종수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석목과 나눈 정담을 누군가가 들었다고 생각하니 종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수아, 걱정하지 마. 채아, 누군지 제대로 봤어?”

석목이 채아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기이한 검은빛을 두르고 있었는데, 그게 내 영목을 막았어.”

채아가 고개를 흔들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침묵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자는 평범한 첩자가 아니야. 전에도 만난 적이 있어.”

채아가 놀라며 물었다.

“언제?”

“환영회 때, 우리가 내성으로 잠입했잖아. 그때 나타났던 검은 그림자가 바로 저 자야.”

석목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석 오라버니, 둘이 무슨 얘기하는 거예요?”

종수가 채아를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시선을 석목에게로 던지며 물었다.

석목은 봉익성에 잠입했었을 때 일어났던 일들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누굴까요? 천봉 일족에 잠입을 한 것부터 또 우리를 엿보는 걸 보니 천정일까요?”

종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하지.”

석목이 생각에 잠긴 듯이 말했다.

“됐어. 이 일은 나중에 얘기하고, 우선 봉익성으로 돌아가자.”

석목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종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 * *

두 사람과 새 한 마리가 봉익성으로 향했다.

석목은 곧장 족장인 조윤을 찾아가 이미 혈맥을 각성했다는 사실을 말해주려 했으나 종수가 말렸다.

“석 오라버니, 우선 사부님과 상의를 해보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종수가 말했다.

종수는 천봉 일족의 성녀였지만 분명 외부인인데다가 인족이라 천봉 일족의 다른 사람들과는 아무런 혈연관계가 아니었다.

하지만 절세 미모인 종수는 이미 수많은 천봉족 청년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헌데 이번에 천봉 일족의 데릴사위가 된 사람이 난데없이 나타난 외부인인데다가 천봉 일족의 청년들이 흠모하던 미인이 인족과 눈이 맞았으니 천봉일족은 그 결과에 많은 불만을 품고 있었다.

게다가 종수가 석목을 위해 삼 년 동안 성 밖에서 살며 지켜주었기에 천봉일족이 품은 불만은 정점을 찍었다.

이렇게 무작정 족장을 찾아가 두 사람이 맺을 혼사 얘기를 꺼낸다면 기필코 적잖은 파동이 일 터였다.

종수의 마음속에서 석목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였지만 천봉 일족을 향한 감정 또한 무시할 수 없던 터라 석목과 천봉 일족이 충돌하는 일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그래.”

석목은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 *

둘은 다시 조령롱의 거처로 날아가 한 대전 밖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대전에 걸려있는 편액에 ‘명염전’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석목은 예전에 몰래 잠입했던 곳이라 눈을 반짝였다.

석목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인사를 올리려고 하던 찰나, 대전의 문이 활짝 열리며 냉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조령롱이었다.

석목이 멋쩍게 눈썹을 치켜 올렸다가 종수를 데리고서 걸어 들어갔다.

대전 안에 놓인 돌의자에 앉아있던 조령롱은 마치 두 사람이 나타날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바라보았다.

“사부님.”

종수가 조령롱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조령롱 장로님.”

석목이 손을 굽히며 인사를 했다.

“삼 년간 폐관수련을 하더니 실력이 많이 늘었군. 이미 성계 후기에 올랐으니. 좋아.”

조령롱이 석목을 훑어보며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석목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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