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07화 (707/916)

707화. 수많은 검광

서문설은 담담한 눈빛으로 목천절을 바라만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청란성지가 무너진 뒤로 우리 축운검파는 이미 종문까지 닫아버렸지. 그런데 어째서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 게냐?”

목천절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미양 성역은 오랫동안 세 세력으로 분리되어 있었죠. 하나로 통일은 해야겠는데 지금 청란성지는 멸망했으니, 축운검파가 존재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서문설이 웃으며 되물었다.

목천절이 초연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시선을 겹겹이 이어진 전함들 뒤로 넘기며 몸집이 거대한 고만족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청란성지가 무너질 때, 혹시 천정이 그린 그림은 아닐까 의심을 했었지. 역시나 너희는 모두 천정의 끄나풀이었군.”

“선배님, 이제 와서 그런 말씀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서문설이 수려한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 이미 정해진 파국이니 나도 종문의 제자들이 목숨까지 내던지며 저항하는 걸 볼 수는 없겠지. 우리 축운검파는 천정에 굴복하고 기꺼이 항복한다.”

목천절이 한숨을 내뱉으며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

“수많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선배님께선 세상만사 막힘이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보아하니 후배가 너무 높이 평가를 한 것 같군요. 오히려 우리 성주님이 선배님께 내린 평가야말로 옳았어요.”

서문설이 웃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더냐?”

목천절이 싸늘한 얼굴로 물었다.

“성주님께선 선배님을 ‘검도에 심취한 거친 사내’라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적절한 평가였던 것 같네요. 아직까지도 선배님께서는 그토록 순진한 생각에 빠져계시다니요. 이진종이 선배님께 살길을 열어 주리라 생각했습니까? 선배님, 혹시 모르시는 건 아니겠지요? 미양 성역에서 천정의 대리자는 하나로 족합니다.”

서문설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흥, 이진종 놈들! 우릴 철저히 해치우려던 속셈이었던 게냐? 나 목천절은 일평생 모든 걸 좌지우지하면서 살았지. 내가 겁먹을 것 같나? 이제는 물러날 곳이 없다면, 좋아. 이진종의 술수를 한번 맛봐주마. 그래, 이진종 관주라는 놈들이 함께 할 게냐, 아니면 고만족 저 야만인 놈들이 먼저 덮칠 게냐?”

목천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너무 번거롭게 굴 필요는 없죠. 선배님이야 저 하나로도 충분합니다.”

서문설은 전혀 표정이 달라지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

“네 실력이 뛰어난 건 인정하마. 젊은 나이에 성계 정상을 찍었으니. 허나 나와 겨루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지 않나.”

목천절이 몸을 살짝 비틀어 서문설을 한번 쳐다보고는 싸늘하게 말했다.

“동문 여러분, 저 혼자서 목 선배님과 대결을 펼칠 게요. 그러니 끼어들지 마시죠.”

서문설은 목천절이 하는 말을 무시한 채 이진종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그래, 그래. 죽으려고 안달이 난 건 네년이니 날 원망하지 마라.”

목천절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어서 손을 들어 어깨 뒤로 뻗은 후에 푸른 장검을 꽉 쥐었다.

목천절이 검의 자루를 잡는 순간, 몸 앞으로 파도처럼 아득한 검영들이 층층이 나타났다. 그리고 날카롭지만 또 하늘을 찌를 듯이 드높은 검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말로는 서문설을 한없이 작은 존재로 여겼지만 적을 대하는 신경 강자의 태도엔 경솔함이 없었다.

탱!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푸른 장검이 검집에서 뽑혀 나왔다.

목천절이 입은 무복은 바람도 불지 않는데 거세게 펄럭였다.

서문설은 담담한 표정으로 목천절이 준비를 마치기를 기다렸다. 이어서 서문설은 하얀 손을 소매에서 뻗어 허공을 쥐더니 칼인지 검인지 알 수 없는 금색 병기를 손에 넣었다.

병기에 손이 닿는 순간, 서문설이 지닌 기운이 순식간에 변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살기를 풍겼다.

서문설은 다시 병기를 몸 앞으로 감아오며 허공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탱, 탱, 탱!

연이은 쇳소리와 함께 허공에 그린 동그라미에서 불빛이 튕겼다.

동시에 서문설의 뒤편에서 처참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천절이 풍기는 형태가 없는 검기가 그 자리에서 사람들의 숨통을 끊어버린 것이었다.

서문설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맑은 두 눈으로 목천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목천절이 든 검신에서 푸른빛이 번쩍이더니 검이 우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 날카로운 소리 속에서 굽히지 않는 전의가 드러났다.

“질!(疾)”

목천절이 낮게 소리를 지르며 검결을 짚어 검자루를 강하게 내리쳤다.

‘우웅’

푸른 장검에서 순식간에 용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청룡이 갑자기 튀어나와 서문설을 향해 기세등등하게 날아갔다.

그러자 서문설이 병기를 치켜들고서 앞으로 내던져 병기가 허공에 둥둥 떴다.

서문설이 주문을 외우자 두르고 있던 금빛이 더 크게 드리우더니 기운이 갑자기 강해졌다.

그리고 두 손을 몸 앞에 두고서 좌우로 흔들어 각각 동그라미를 절반씩 그려내더니 다시 합치고는 맹렬하게 앞으로 밀고 나갔다.

윙!

금색 병기가 강하게 흔들리면서 순식간에 백 배나 불어나 커다란 병기로 변하더니 금빛을 반짝이며 곧장 청룡 그림자와 부딪쳤다.

쾅!

하늘을 울리는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지며 별하늘에서 찬란한 빛을 폭발했다. 커다란 금색 병기는 바람 소리를 일으키며 뒤로 날아가 서문설의 손에 떨어졌다.

눈부신 빛들이 주변으로 터짐과 동시에 청룡 그림자도 흩어졌다.

그 모습을 본 서문설은 눈에 순수한 빛을 반짝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며 얇게 펼친 두 손으로 검신을 누르고 있었다.

그러자 금색 병기가 ‘휙!’ 소리를 내며 꼿꼿이 서버렸다.

이때, 터져버렸던 청룡 그림자가 갑자기 귀를 찢는 듯한 소리를 내고 투명에 가까운 푸른 검영을 수도 없이 그리며 촘촘하게 날아와 질풍처럼 서문설에게 향했다.

이 검영들은 서문설이 도망칠 길들을 전부 막아버렸다!

하지만 서문설은 끄떡없는 표정으로 법결을 짚었다. 그 순간, 금색 병기가 심하게 흔들렸다.

휙!

몇 장이나 되는 금색 광막이 서문설의 손에서 퍼져나갔다.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처럼 ‘쏴!’ 소리가 울려 퍼지며 푸른 검영이 금색 광막에 닿았다. 그 순간 물결이 일어 금색 광막이 격하게 흔들리며 서문설은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금색 광막은 여전히 터지지 않았다.

서문설의 등 뒤에 나란히 줄지어 있던 전함들에서 ‘퍽, 퍽!’ 갈라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선체들은 상처투성이가 되었으며 전함 몇 척은 순식간에 부서져버렸다.

청룡은 단순한 검영으로 보였지만 그 속에는 현묘한 기운이 숨겨져 있었다. 검신을 뒤덮은 비늘 하나하나는 전부 독립된 검영이었으며 엄청난 기운을 머금고 있어 부딪치는 순간에만 힘이 터져 나와 엄청난 위압감을 풍겼다. 검영이 지닌 힘은 평범한 행성 하나 정도는 거뜬히 파멸시킬 기세였다.

서문설은 몸을 멈춰 세운 후에 다시 목천절을 바라보았는데 그녀의 눈에 심각한 기색이 더해졌다.

이어서 서문설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가냘픈 몸집을 돌려 걸음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병기를 끊임없이 휘둘렀다.

휘두르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서문설의 몸은 희미해졌다.

순간, 희미해진 몸이 순식간에 두 갈래로 갈라졌다.

이어서 번쩍일 때마다 계속해서 갈라졌다.

잠시 후에 목천절의 눈앞엔 서문설이 열여섯 명이나 서 있었다.

그들은 전부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이 움직였다.

목천절은 담담한 얼굴을 내비친 채 한 손으로는 검결을 짚었다.

이때, 서문설 열여섯 명이 동시에 날아올라 사방팔방으로 흩어져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병기를 휘두르며 목천절을 덮쳤다.

그림자 열여섯 갈래는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게 아니라 서로 호응을 하며 목천절이 움직일 뒷길을 전부 막아버렸다.

목천절의 눈에선 이채가 흘렀지만, 표정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이어서 목천절은 코웃음과 함께 푸른 장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찬란한 빛이 검심에서 튀어나와 백 장 안을 전부 뒤덮었다.

탱, 탱, 탱!

날카로운 소리 열 몇 갈래가 연이어 울려 퍼지더니 서문설이 만든 그림자들은 전부 푸른빛에 막혀 단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건…… 영역!”

육양리를 비롯한 이진종 사람들이 전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분명 신경 초기였는데, 어떻게 영역을 뭉쳤지?”

감수관의 관주 수무단이 입을 막은 채로 소리를 질렀다.

서문설이 만든 그림자 열여섯 갈래는 전부 푸른빛으로 막혀버렸다. 그녀는 놀라는 듯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만큼 격하게 굴지는 않았다.

“목 선배님, 실로 대단하시네요. 검으로 도를 익혀 영역과 같은 검역을 뭉치다니요. 하지만 아쉽게도 이 검역은 매우 단순해서 방어를 하실 때에만 시전하시겠지요?”

서문설 열여섯 명이 동시에 말을 했다.

“진정 방어만 할 수 있을지 직접 시험해보면 알 수가 있지 않겠느냐?”

목천절이 낯빛을 어둡게 드리우며 말했다.

순간, 푸른 장검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푸른 검역이 흔들리며 빛들이 흐르기 시작했다.

서문설은 눈을 크게 뜨고는 유유히 흐르는 빛들을 바라보았다. 흐르는 빛들은 그냥 보기에는 매우 따뜻했는데 마치 푸른 호수와도 같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 푸른빛을 진정한 호수로 생각하지 않았다. 조용한 물빛에 그 어떤 흉악한 검광이 숨어있을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에 푸른 호수에서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촘촘한 빛의 파동이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들처럼 빽빽하게 몰려와 푸른 호수에서 튀어나오려 했다.

목천절은 흘러 다니는 빛들을 한참 바라보고는 검신을 돌려 앞으로 겨누었다.

그러자 호수가 순식간에 들끓으며 미세했던 소리가 순식간에 쇳소리로 변하여 울려 퍼졌고, 하얀빛이 푸른 광막에서 튕겨져 나와 별바다에서 드넓은 그물처럼 펼쳐져서는 서문설을 향해 덮쳐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문설은 빛 열여섯 갈래를 동시에 밝히며 돌아섰다. 그리고 손에 쥔 병기를 서로 엮어 고리 모양 진법을 만들었는데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꽃잎 열여섯 개로 만든 금색 꽃 같았다.

진형을 이제 막 갖추자, 하얀빛 그물이 위에서 떨어지며 서문설이 만들어낸 꽃송이를 덮어버렸다.

탱, 탱, 탱!

이어 부딪치는 쇳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하얀빛으로 묻혀버린 곳에서 갑자기 찬란한 금색 빛기둥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더니 하얀빛들을 산산조각 내버리고는 그 가운데서 솟아올랐다.

이진종의 제자들은 폭풍과 가까이에 있어서 꽤 큰 여파를 맞았다.

“빨리 피해!”

육양리가 다급하게 전함 위에 선 이진종의 제자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 하얀빛들은 전부 검광이었다!

적잖은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고는 하얀빛에 몸이 찢겨 산산조각이 났다.

금색 폭풍에서 검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져 수많은 검광 때문에 사람들이 잘려나갔으나 더 많은 검광이 흘러들어왔다.

하얀 검광들은 마치 끊임없이 뽑혀 나올 것만 같은 기세로 계속해서 흘러들어 금색 폭풍으로 향했다.

금빛과 하얀빛이 계속해서 사방팔방으로 흘러갔다!

둘은 보기에는 대치 상태를 이루는 것 같았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얀 검광이 조금씩 금색 폭풍이 지닌 위력을 갉아내고 있었다.

* * *

봉익성.

성시는 한밤중이라 매우 조용했다.

이때, 검은색 그림자가 객잔에서 날아와 내성으로 향했다.

석목이었다.

축전 기간과 달리 내성은 수비가 조금 느슨한 편이었다. 석목은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서 쉽게 내성 깊은 곳까지 잠입하여 들어갔다.

종수가 머무는 거처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석목이 빠르게 근처로 다가가 잠입하려던 찰나였다.

“석 형.”

등 뒤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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