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10화 (710/916)

710화. 떠나다

시간이 흘러 족히 반 시진이나 기다려서야 서유금이 돌아왔다.

“죄송하네요. 오래 기다렸지요. 정보를 수집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어요.”

서유금이 후후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부탁을 드렸는데요.”

석목이 말했다.

서유금이 손을 흔들어 주먹만 한 투명한 돌을 하나 꺼냈다.

서유금이 법결을 날리자 돌에서 부드러운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흩날리는 빛들이 커다란 성역의 지도를 이루었다.

이 빛점들은 붉은색과 하얀색으로 나뉘었는데, 각각 절반 씩 구역을 차지하는 것 같았다.

성역의 지도는 길쭉하고 은색 띠 모양인 천하 성역을 드러냈다.

“이 붉은 행성들은 혹시……”

석목은 지도를 빠르게 훑어보며 물었다.

“네, 이미 천정에게 점령당한 행성들이죠.”

서유금이 말을 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하얀빛이 지도 위에서 펼쳐지며 행성들을 연결시켰다.

서유금이 하는 말을 들은 석목과 안화는 깜짝 놀라 찬바람만 들이마셨다.

이미 절반이 넘는 행성들이 함락되었다는 사실을 조금 전에 전해 들었지만 이렇게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역시나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심지어 지도의 일부는 온전히 붉은색으로만 물들어있었다.

“비천서 일족이 수집한 정보로 이 노선을 만들어보았어요. 비록 돌아서 가는 길이지만 지금 같은 시국에서는 가장 안전한 길이죠.”

서유금이 말했다.

석목은 지도에서 빛나는 노선을 바라보며 잠깐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서 형이 만든 노선이라면 당연히 믿고 가야죠.”

서유금이 미소를 지으며 둥그런 돌을 석목에게 건네었다.

“서 형, 감사해요. 이 영석은 보수로 드릴게요.”

석목이 선급 영석 두 개를 꺼내주며 말했다.

“석 형, 안 그러셔도 되요. 석 형은 제 벗인걸요. 당연히 도와야죠. 그리고 보수라면 이미 받았죠.”

“네?”

석목이 의문을 드러냈다.

“하하, 성녀의 데릴사위를 뽑는 대결을 치르기 전에 성시에 노름판이 열렸죠. 누가 마지막 승자가 될 지 가리는 노름이었지요. 석 형이 나타난 후로 만만치 않은 금액을 석 형에 걸었어요. 그래서 꽤 많은 영석을 벌어들였으니, 이런 작은 일로 또 영석을 받을 수는 없죠.”

서유금이 후후 웃으며 말했다.

석목은 처음 듣는 얘기라 흠칫했다.

그렇다면 석목도 굳이 사양할 필요는 없었다.

“아, 그리고 이 물건은 석 형이 가지고 싶어 했던 물건이지요. 제가 갖고 있어봤자 큰 쓸모가 없으니, 석 형에게 선물로 드리겠어요.”

서유금이 하얀 옥병을 꺼내 석목에게 건넸다.

하얀 옥병에서 극도로 강렬한 물속성 파동이 일렁였다. 이건 열해천령이 아니었나!

석목은 눈을 반짝였다. 구전현공 일곱 번째 단계인 불의 힘을 석목은 이미 대성까지 수련했다. 그리고 여덟 번째 단계는 물의 힘이라 이 열해천령이 필요했다.

“때마침 필요했던 물건이네요. 서 형, 너무 감사해요.”

석목은 망설이지 않고서 열해천령을 받고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탁자 위에 법보 네 개와 단약 네 병이 나타났다.

법보에서 놀라운 영력 파동이 일었으며, 단약에서도 짙은 약냄새가 풍겼다. 딱 봐도 매우 귀한 법보와 단약이었다.

이 물건들은 석목을 봉익성 밖으로 유인했던 신장의 저장 반지에서 꺼낸 물건들이었다.

“제가 갖고 있는 영석은 많지 않네요. 하지만 이 물건들은 전부 가치가 있는 물건들이니 열해천령과 바꾸지요.”

석목이 말했다.

“제가 말씀 드렸잖습니까? 석 형에게 선물로 드린다고요. 굳이 바꿀 필요는 없어요.”

서유금이 고개를 흔들며 단호하게 말했다.

“조금 전에 정보를 얻은 값은 그렇다 쳐도, 열해천령은 비천서 일족에서 오랫동안 소장해온 물건이지 않습니까? 제가 어떻게 그냥 받겠습니까?”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귀한 물건은 맞습니다만 제겐 영석이나 조금 더 바꿀 수 있는 물건일 뿐이죠. 큰 쓸모가 없어요. 그리고 이 물건 때문에 목숨까지 잃을 뻔했지 뭡니까.”

서유금이 말했다.

“네? 어찌된 일입니까?”

석목이 안색을 바꾸며 물었다.

“며칠 전에 외출을 했다가 습격을 당했죠. 꼭 이 열해천령을 내놓으라고 하지 뭡니까. 그래서 목숨을 지키는 보물 하나를 써서 그 녀석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죠. 이런 물건을 가지고 다니면 오히려 화만 불러와요. 그러니 석 형에게 주면 마음이라도 편하겠지요.”

서유금이 말했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석 형, 혹시 그냥 받기 불편하신 거라면 나중에 귀한 영재나 영초를 구해 저희 비천서 일족이 장사를 할 때 좀 밀어주시죠.”

서유금이 말했다.

“좋습니다. 서 형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더 사양하지는 않겠어요. 이 물건은 제가 받고, 나중에 꼭 제대로 보답해드리지요.”

석목이 열해천령을 거두어들이며 말했다.

서유금은 그제야 활짝 웃으며 말했다.

“석 형, 그럼 언제 떠날 예정입니까?”

“바로 떠날 예정입니다.”

석목이 말했다.

“그렇다면 석 형, 드릴 말씀이 있는데.”

서유금이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석목이 물었다.

“방진과 관련된 일입니다.”

서유금이 말했다.

“방진이요? 이미 떠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석목이 의아한 듯이 물었다.

“방진도 안화처럼 계속 봉익성에 머무르며 석 형이 출관하기를 기다렸죠. 하지만 열흘 전에 갑자기 봉익성을 떠나 자정마우 일족이 있는 자전성으로 돌아갔어요.”

석목은 생각에 잠겼다. 자정마우 일족과 얽힌 일이라면 석목도 어느 정도 들은 내용이 있었다.

자정마우 일족의 족장이 삼 년 전에 봉익성에서 죽어버린 후로 족장 자리는 이미 방책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방책은 천봉 일족을 비롯한 삼대 종족 연합에 합류하지 않았으며 그 길로 자정마우 일족이 머무는 행성으로 돌아갔다.

방진은 왜 자전성으로 돌아갔을까?

“저도 방진이 품은 정확한 의도는 모르겠습니니다만 우리 비천서 일족이 얻은 정보에 의하면 자정마우 일족에 변고가 생겼다고 하네요. 그래서 다급하게 돌아간 것 같아요.”

서유금이 말했다.

“자정마우 일족을 방책이 다스리고 있으니, 이렇게 돌아가면 위험에 처하겠죠.”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도 그 부분이 걱정돼요. 자전성은 석 형이 가는 길 중간에 있어요. 노선을 살짝 비틀기만 하면 되지요. 다시 돌아오실 때 한 번 들러보세요. 그래도 우리는 모두 벗이잖습니까?”

서유금이 말했다.

이에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방진이 자전성으로 돌아가 족장의 자리를 되찾으려는 것 같아요. 석 형이 만약 그 녀석을 도와 족장 자리를 찾아준다면 우리에게는 막강한 맹우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겠죠.”

서유금이 계속해서 말했다.

석목도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있던 참이었다.

“자정마우 일족에는 어떤 고수들이 있나요?”

잠깐 침묵하던 석목이 물었다.

“모두 이 안에 있어요. 자정마우 일족의 족장은 이미 죽었으니 남은 신경 강자는 단 둘 뿐이며 그것도 신경 초기죠. 석 형이 갖춘 실력이라면 전혀 문제가 없을 거예요.”

서유금이 석목에게 옥간을 하나 건네주었는데 보아하니 서유금이 꽤나 철저히 준비를 한 것 같았다.

“좋아요.”

석목이 옥간을 챙기며 말했다.

두 사람은 가볍게 몇 마디를 더 주고받은 뒤, 석목은 안화와 함께 상점에서 나와 전송대전으로 걸어갔다.

전송대전은 예전과 다를 것이 없었지만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석목은 가볍게 한숨을 내뱉고는 안화와 함께 전송진법으로 걸어 들어갔다.

잠시 후에 빛이 반짝이더니 둘은 사라져버렸다.

* * *

눈 깜짝할 사이 보름이 흘렀고, 성역의 허공 어딘가에서 비차 하나가 하늘을 가르며 날고 있었다.

비차 위에는 석목과 안화가 서 있었다.

서유금이 알려준 노선은 역시 정확해 보름 동안 그들은 별 문제 없이 순조롭게 여기까지 왔다.

이미 자전성과 많이 가까워졌으며 반나절 정도만 더 가면 되었다.

전쟁의 여파로 자전성으로 가는 전송진법이 이미 망가져 석목과 안화는 용우비차로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비차는 안화가 몰고 있었으며 석목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석목의 몸에서는 구전현공 불의 힘이 타오르고 있었다.

잠시 후에 석목이 기쁜 표정으로 눈을 뜨자 동시에 몸에서 번지던 화염도 사라졌다.

보름 동안 석목은 계속해서 몸속에 깃든 불의 힘을 최대한 익히려 했다.

구전현공의 일곱 번째 단계를 삼 년 만에 수련해서 근본이 탄탄하지 않았기에 이전 몇 단계들보다 다스리기 수월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로 오는 보름 동안 석목은 최대한 불의 힘을 단단하게 만들려고 애를 썼다.

석목은 열해천령이 조용히 누워있는 저장 반지를 살살 매만졌다.

그리고 한참 고민하다가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일곱 번째 단계가 이미 자리를 잡았으나 앞선 몇 단계가 아직 평형을 이룬 건 아니었기에 무턱대고 여덟 번째 단계를 수련하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석목이 일어서서 앞쪽을 바라보았다.

앞쪽에 떠있는 파란 행성이 점점 커지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자전성과 관련된 자료를 뒤적이다가 본 적이 있는데 앞에 보이는 행성은 천우성이라 불리며 자전성과 매우 가까이에 있는 행성이었다. 자정마우 일족의 부속 행성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자정마우 일족은 비록 몰락하였지만 미천거원 일족처럼 철저히 숨어서 생활하지는 않았다. 마치 잠깐 겨울잠을 자는 느낌이었는데 그럴 수 있던 건 필시 천정이 미천거원 일족만큼 자정마우 일족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지 않아서 그럴 터였다.

“안화, 급하게 자전성으로 가지 말고 앞에 있는 천우성에 가서 어떤 상황인지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군.”

석목이 갑자기 말했다.

안화는 멈칫하더니 이내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용우비차를 몰고서 천우성으로 날아갔다.

* * *

천우성은 그리 큰 행성은 아니었지만 영기가 매우 짙었다. 행성은 대부분은 파란 바다로 뒤덮여 있어서 석목의 고향인 남해성과 매우 흡사했다.

벽란성(碧瀾城)은 천우성에서 가장 큰 성시였으며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강 몇 갈래가 벽란성을 가로지르고 있어 교통이 편리해 성시가 번화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석목과 안화는 천우성에 정보를 약간 얻으러 왔으니 곧장 벽란성으로 들어갔다.

벽란성은 천우성에서의 가장 큰 성시여서 봉익성처럼 커다란 성시만큼은 아니라도 나름 특색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성시 속에 떠다니는 공기에는 옅은 술냄새가 섞여있어 숨만 쉬어도 살짝 취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성시는 빛깔과 맛이 좋은 술을 많이 생산하여 애주가들에겐 성지나 다름이 없었다.

이때, 채아가 영수 주머니에서 날아 나와 석목의 어깨로 올라가서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음…… 아주 독특한 술냄새군. 석두,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맛이라도 보자.”

채아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치 취한 듯이 말했다.

석목이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길가에 있는 주루로 들어갔다.

“공자님, 소식을 얻으려면 갈라져서 움직이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안화가 말했다.

“그래.”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정마우 일족은 비록 신경 강자가 단 두 명뿐이었지만, 팔황고족들 중 하나로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는 종족이었다. 그러니 철저하게 움직이는 편이 안전했다.

“그럼 공자님, 이곳에서 술이나 한잔하시며 잠깐 쉬세요. 제가 가보겠습니다.”

안화가 말을 하고는 먼 곳으로 걸어갔다.

“석두, 안화 녀석은 꽤 괜찮은데.”

채아가 멀어져가는 안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화는 정말 괜찮은 녀석이었으며 충심도 있는 것 같았다.

석목은 집중하여 수련을 하느라 바빴기에 이런 사람을 한 명 곁에 두는 편이 좋긴 했다.

“그럼 안화에게 정보를 수집하라고 했으니 우리는 여기서 술이나 한번 맛보자고!”

채아가 재잘거렸다.

석목은 고개를 흔들며 주루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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