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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711화 (711/916)

711화. 방진이 위험에 처하다

주루는 깨끗하고 넓었다. 그리고 총 세 층으로 나뉘었는데 일, 이 층은 매우 화려했으며 삼 층은 용과 봉황이 새겨져 있어 매우 고풍스러웠다.

삼 층에 놓인 탁자들 사이에는 병풍이나 화분 같은 물건들이 놓여 탁자마다 독립된 공간을 만들어냈다.

석목은 곧장 삼 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이어서 열 몇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 웃는 얼굴로 오더니 인사를 올렸다.

“손님, 처음 뵙는 것 같은데 우리 벽란성은 처음이신가요? 그렇다면 우리 성시의 특산품인 이자주(狸子酒)를 한 번 드셔보세요. 아마 만족하실 거예요.”

푸른 옷을 입은 소년은 매우 영리해 보였다.

“이자주? 이름이 매우 독특하군. 뭐로 담근 술이냐?”

석목이 관심을 보였다.

“손님, 이 이자주는 아주 특별한 이과로 담근 술인데 이과는 벽란성 밖에 자리한 이자산에서만 자라죠. 향이 매우 독특해 천하제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절대 흔한 술은 아니지요.”

소년이 자랑스러워하며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두 병 가져와 보거라. 안주거리도 몇 개 내오고.”

석목이 후후 웃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소년이 대답을 하고는 빠르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소년이 떠난 후에 석목은 신식을 드리워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주루에 손님이 꽤 많았기에 주의 깊게 들어보면 유용한 정보를 얻을지도 몰랐다.

잠시 후에 석목은 눈썹을 치켜뜨며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선 사람들이 모여앉아 자정마우 일족과 관련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소리를 차단하는 금제를 드리우고 있었지만 석목의 귀를 막을 수는 없었다.

한참 주의 깊게 얘기를 듣던 석목이 미간을 찌푸렸다. 온통 잡다한 얘기들뿐이었으며, 유일하게 얻어낸 정보는 근래에 자정마우 일족이 축전을 열 것이라는 소식뿐이었다.

“손님, 술과 안주를 올리겠습니다.”

푸른 옷을 입은 소년이 다가왔다.

“그래.”

석목은 소년에게 영석을 주며 내려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손님, 혹시 자정마우 일족과 관련된 일을 알아보는 중이신가요?”

소년이 낮은 목소리로 석목에게 물었다.

석목은 눈을 반짝이며 살짝 싸늘한 눈빛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석목이 담담하게 물었다.

석목은 기운을 숨기고 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눈빛에서 위압감이 흘러나왔다.

깜짝 놀란 소년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이를 악물고는 간신히 비틀거리는 몸을 멈춰 세웠다.

석목은 의아한 눈빛이 스쳤다. 소년도 진기를 갖고 있었지만 고작 선천 경지 수준이었는데 석목이 내뿜는 위압을 버텨냈다.

석목은 다시 기운을 추슬렀다.

그제야 소년은 긴장을 풀며 부러운 눈길로 석목을 한번 쳐다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저 근거 없는 짐작일 뿐이에요. 조금 전에 계속 저쪽에 계신 손님들이 자정마우 일족과 관련된 얘기를 나누는 걸 보시기에 조심스럽게 여쭤봤죠.”

“눈치가 빠르군. 좋아, 자정마우 일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

석목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인은 조금 알고 있죠. 며칠 전에 큰 위험을 무릎 쓰고 몇몇 자정마우 일족 분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어요. 그리고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지요.”

소년이 잠깐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으며, 이렇게 두어 마디를 마치고는 다시 입을 다문 채 석목을 한 번 쳐다봤다. 마치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소년을 훑어보는 석목은 꽤 관심을 쏟는 눈치였다.

“좋아, 담대하군. 나와 흥정을 다 하다니. 얘기해봐라, 무엇을 원하느냐?”

석목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자 소년이 기다렸다는 듯이 좋아하며 대답했다.

“선배님이 저에게 적합한 지계 공법을 하나만 알려주신다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걸 말씀드리죠.”

석목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튕겼다. 소년은 홀로 수련을 하는 사람이라 몸속에 흐르는 진기가 순수하지 않았는데 보아하니 적합한 공법을 수련하지 못했거나 좋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것 같았다.

석목은 이상한 감정이 북받쳤다. 바로 눈앞에 선 소년이 예전의 자신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석목은 미소를 띠며 옥간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네 체질은 흙 속성에 가깝구나. 이 <이토결(離土訣)>은 네가 익히기에 아주 적합한 공법이지. 위에 적힌 공법은 네가 천위 경지까지는 거뜬히 수련할 수 있을 게다. 다만 어떤 성과를 거둘지는 온전히 너에게 달렸단다.”

석목이 소년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이 하는 말을 들은 소년은 떨리는 두 손으로 옥간을 받았다.

그리고 무릎을 굽히며 바닥에 꿇어앉으려고 했다.

“선배님, 공법을 하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존함을 말씀해주시면 그 은혜를 영원히 마음에 새겨두겠습니다.”

소년이 말했다.

“아니다. 기분 좋게 주는 공법이니 내게 자정마우 일족에 관한 일이나 말해주거라. 최근에 축전을 연다고 했더냐?”

석목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보이지 않는 힘이 무릎을 꿇으려는 소년을 일으켰다.

동시에 석목은 소리를 막는 금제를 펼쳤다.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일어서서는 눈에 온통 부러운 빛을 뿜어냈다. 하지만 이내 깊은 숨을 내쉬고는 평정심을 찾은 뒤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배님, 자정마우 일족의 전임 족장이 갑자기 운명하여 자정마우 일족은 몇 년간 혼란에 빠졌죠. 하지만 다행히 다음 족장이 정해져 족장의 수임 축전을 열기로 했어요.”

“족장 수임 축전? 새 족장은 방책이라는 자인가?”

석목이 물었다.

“맞아요. 비록 평판은 좋지 않지만 예전 족장이 정한 다음 족장이라 자정마우 일족 사람들도 별다른 이견이 없다고 해요.”

소년이 말했다.

“그래, 자정마우 일족에서 방책이 족장 자리를 수임하는 걸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느냐?”

석목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네. 헌데 소인도 지나가는 말만 듣고서 유추해냈어요. 정확히 누가 반대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 장로 중 한 명일 것 같아요.”

소년이 말했다.

석목의 눈에서 의아한 기색이 스쳤다.

소년이 내린 분석과 판단은 꽤 일리가 있었는데 소년의 계층이나 지위를 봤을 때 기껏해야 자정마우 일족에서도 최하층인 자들과만 만났을 터인데 이렇게 많은 것들을 분석해낸 게 신기했다.

서유금에게서 얻어낸 정보에 따르면 자정마우 일족의 두 장로들 중에 방책과 뜻이 맞지 않는 장로가 한 명 있다고 들었다.

“아, 네가 엿들었다는 중요한 일은 또 무엇이더냐?”

석목이 계속해서 물었다.

“며칠 전에 자정마우 일족을 배신하고 도망을 쳤던 사람 한 명이 잡혔다고 해요. 그리고 이번 축전 때 그 자를 사형에 처한다고 들었죠.”

소년이 석목에게로 바싹 다가와서는 모기 같은 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석목은 깜짝 놀랐지만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래? 그럼 잡힌 사람이 누군지는 알고 있나?”

석목이 계속해서 물었다.

“그건 저도 정확하게 듣지는 못했는데…… 무슨 방진이라고 했던 것 같아요.”

소년은 한참 동안 기억을 되짚다가 말했다.

이미 예측은 했으나 정확한 이름을 들으니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석목이 추측했던 대로 방진은 정말 위험에 처했다.

그것도 매우 큰 위험에.

석목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소년은 눈치껏 조용히 입을 다물고는 한쪽에 서 있었다.

“방진이 왜 붙잡혔는지는 알고 있나?”

석목이 침묵을 깨며 물었다.

“그건…… 저도 잘 몰라요.”

소년이 고개를 흔들며 미간을 찌푸렸다.

석목은 손을 흔들어 소년에게 내려가라고 했다.

소년은 어딘가 아쉬운 눈으로 석목을 한 번 쳐다보고는 눈치껏 물러났다.

“석두, 방진이 정말 자정마우 일족에게 잡혔나봐. 이 무능한 녀석!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하지?”

채아가 말했다.

“그래도 방진은 내 부하였어. 천정과 싸우려면 그 어떤 세력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끌어내야 해. 그래야만 싸워보기라도 할 수 있거든. 방진은 자정마우 일족이 연합에 들어오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사람이야. 우선 그 녀석을 구하고 보자.”

석목이 한숨을 내뱉으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이때,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안화가 심각한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안화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석목과 채아를 발견하고는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안화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자, 석목도 덩달아 가슴을 졸였다.

“안화, 앉게. 알아낸 소식이라도 있나?”

안화가 입을 열기도 전에 석목이 물었다.

“네, 중요한 일을 알아냈죠. 방 형이 자정마우 일족에게 잡혀갔답니다.”

안화는 앉자마자 다급하게 말했다.

“나도 조금 전에 듣긴 했으나 자세한 내용은 알아내지 못했네.”

석목이 말했다.

“공자님, 자정마우 일족이 족장 수임 축전을 연다는 소문은 들으셨지요? 방 형이 족장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방책을 암살하려다 붙잡혔다고 하네요.”

석목이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안화는 잠깐 멈칫했다가 이내 평정을 되찾고는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석목이 눈썹을 치켜떴다.

“공자님, 이 소식이 정말인 것 같습니까? 방진이 정말로 방책을 암살하러 갔을까요?”

안화가 물었다.

“방진의 성격이라면 이런 일을 저지를 수도 있지. 어찌되었든 우선 사람부터 구해야 해.”

석목이 말했다.

“축전은 삼 일 뒤라더군요.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안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석목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석두, 이렇게 간다고? 이자주 맛이 좋은데? 나는 아직 더 마셔야한다고.”

채아가 소리를 질렀다.

“두 단지 더 사서 돌아가자.”

석목이 말했다.

채아가 좋아하며 곱게 석목의 어깨로 올라왔다.

두 사람과 새 한 마리는 빠르게 주루에서 나와 벽란성 밖으로 향했다.

석목이 용우비차를 불러 빛으로 변하더니 하늘로 솟아올랐다.

* * *

하루 뒤에 석목 일행은 자전성에 도착했다.

멀리 내다보니 행성의 절반은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검은 기운이 자욱했다. 구름 속에서는 커다란 보라색 번개가 뱀처럼 여기저기 헤엄쳐 다니며 하늘을 찢을 듯한 소리를 냈다.

“이래서 자전성이라 불리는 구나.”

석목이 산봉우리 꼭대기에 서서 온통 번개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을 보며 말했다.

“자전성은 지하에 번개 속성 광물이 풍부하게 묻혀있습니다. 게다가 여긴 수증기도 짙게 드리워 이렇게 번개 구름이 가득한 광경이 펼쳐지죠.”

안화가 설명을 해주었다.

“그렇군. 자네는 이곳을 익히 잘 알고 있군.”

석목이 안화를 한번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게 안화도 팔황고족 중에 하나였으니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게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석목은 자전성의 지도가 그려진 옥간을 꺼냈다.

자정마우 일족의 본부는 봉익성처럼 성시에 있는 게 아닌 영뢰골이라는 곳에 있었다.

석목은 빠르게 영뢰골의 위치를 파악하고는 용우비차를 몰아서 날아갔다.

“공자님, 자정마우 일족의 이름에 ‘자정(紫睛)’이라는 두 글자가 있잖습니까? 그들이 지닌 영목신통은 매우 뛰어나죠. 공자님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으니 자정마우 일족도 알아봤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러니 꼭 조심해서 다녀야 해요.”

안화가 말했다.

“그럼, 그 부분은 나도 이미 생각했지.”

석목이 허허 웃고는 몸에 뼈를 꺾는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머리카락이 붉으며 낯빛도 붉은 사나이로 변신하였다.

“공자님, 이골환위(移骨換位)를 시전하여 체형을 바꾸는 비술까지 익히셨다니요!”

안화가 놀라며 감탄했다.

“보잘 것 없는 역골술일 뿐이지.”

석목이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구전현공의 공력이 점점 깊어지며 석목은 몸속에 흐르는 오행의 기운을 더욱 자유롭게 전환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역골결도 훨씬 정교해져서 외모를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운마저 변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석목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코앞에서 변신한 석목을 바라보아도 절대 알아볼 수 없을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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