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5화. 달탄의 본체
다음 날, 저녁.
영뢰골 밖, 산골짜기의 입구 옆으로 석목을 비롯한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어지러운 종족을 바로잡고 배신자를 죽여 버릴 수 있었던 건 전부 공자님 덕분이네요. 공자님께 입은 큰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겠어요. 추후에 필요하시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서 도와드릴 테니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방진이 석목을 향해 허리 굽혀 인사하며 진심을 다해 말했다.
그러자 석목은 다급하게 방진을 일으켜 세우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한 종족의 족장이니. 앞으로 이러지 않아도 되네. 천정이 우리 종족에게 피맺힌 원수라는 사실만 영원히 기억하게! 한 종족의 족장이라는 신분으로 종족의 흥망성쇠를 책임지는 건 고된 일일 테니, 마음 단단히 먹게.”
“공자님께서 주신 가르침을 잘 새기겠습니다!”
방진이 말했다.
* * *
“아, 어제 방책을 복법(*伏法:형벌에 복종하여 죽임을 당함)할 때, 골짜기의 입구에서 은색 그림자가 날아가는 걸 보았네. 아마 천정의 첩자 중에 하나겠지. 어제 일어난 일은 아마 천정의 귀로 들어갔을 테니 절대 경계를 놓아서는 아니 되네.”
석목이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
“공자님, 걱정 마세요. 이 일은 잘 새겨두고서 꼭 조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종족에서 며칠 동안 모시며 제대로 대접을 해드리려 했는데 너무 급하게 가셔서 맘이 편치 않군요.”
방진이 말했다.
“나는 며칠 더 머물고 싶었다고. 허기나 좀 채우고 가면 얼마나 좋아.”
채아가 투덜거렸다.
“미천거원 일족을 떠난 지 이미 몇 년이나 흘러버렸네. 마음에 걸리는 게 많아 빨리 돌아가 봐야할 것 같군.”
석목이 말했다.
“네. 그럼 천정을 물리치고 꼭 다시 찾아주십시오. 그때 사흘 밤낮 동안 마셔봅시다!”
방진이 말했다.
세 사람은 서로 인사를 나눈 후에 석목과 안화는 그곳을 떠났다.
* * *
비주 하나가 자전성 근처 별하늘에 선을 그으며 날아갔는데 비주에는 몇몇 사람들이 서 있었다.
“뭐! 고작 이틀 자리를 비웠는데 이런 일이 생겼나. 방책과 방괴(方魁)가 죽었다니. 그럼 자정마우 일족은 방진의 손에 들어간 건가! 그런데 그걸 그냥 지켜봤다는 거야?”
키가 족히 두 장이나 되는 민머리 사내가 소리를 질렀다.
사내는 용모가 매우 흉악했으며 온몸에 촘촘한 무늬가 그어져 있었는데 노란색 피풍의 한 장으로 몸을 절반 정도 가리고 있었다.
그 사내는 석목이 변신했던 달탄 신장과 용모와 체형이 똑같이 생겼다.
달탄 앞에는 은색 피풍의를 두른 사람들이 몇 명 서있었는데 그들은 전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부들부들 떨며 달탄의 질책을 받고 있었다.
“달탄 신장 어르신, 자정마우 일족에 관한 일은 누군가 수작을 부린 것입니다……”
달탄이 화를 조금 가라앉히자 은색 피풍의를 두른 남자 한 명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는 자정마우 일족과 관련된 일을 자세하게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들은 달탄은 오히려 화를 가라앉히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달탄 어르신, 저희가 나서지 않은 게 아니라 그 자가 워낙 막강해서 우리가 나선다 해도 도움은커녕 신분만 노출될 게 뻔했습니다.”
은색 피풍의를 두른 남자가 말했다.
“누구지?”
달탄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곧바로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누구든지 내 일을 망쳤으니 이대로 지나갈 수는 없구나.”
달탄이 법결을 날려 비주에 빛을 크게 번지고는 멀리 날아갔다.
* * *
석목과 안화는 용우비차를 타고서 자전성과 멀리 떨어져 있는 망망한 별하늘을 날고 있었다.
“공자님.”
안화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석목은 눈을 감고서 수련을 하다가 안화의 목소리를 듣고는 눈을 떴다.
“왜?”
“노선을 따라 앞으로 사오 일 정도 더 가면 류람(琉藍)이라는 행성에 도착할 거예요. 거기엔 성계 전송진이 있어 염호 일족이 있는 호왕성(虎王星) 근처로 갈 수 있죠. 종족에 한번 들려야할 것 같네요.”
안화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염호 일족으로 돌아간다고?”
석목이 물었다.
“천하 성역이 워낙 혼란스러워 전란을 무사히 피해갈 수 있는 종족이 없을 것 같아요. 비록 염호 일족은 세상을 등진 채 숨어 살고 있긴 하지만 조금 걱정이 되어서요.”
안화가 말했다.
“그래, 가는 길이니 돌아가 보는 것도 좋겠구나.”
석목이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자님, 감사합니다.”
안화는 기분이 좋아졌다.
석목이 미소를 지으며 무엇인가를 더 말하려다 갑자기 표정을 바꾸며 뒤를 돌아봤다.
석목의 안색을 살피던 안화도 고개를 돌렸다.
시선 끝에서 금빛이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는데 그 기세가 매우 흉흉했다.
석목이 눈빛을 반짝이며 용우비차를 멈춰 세웠다.
금빛은 단 몇 번 숨을 쉴 동안 가까이 다가왔으며 빛이 사라지자 금색 비주가 하나 나타났다. 비주 위에는 달탄 신장을 비롯한 천정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안화는 달탄 신장을 보는 순간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석목은 크게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네가 방책을 죽였느냐!”
달탄 신장이 석목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래. 고작 나 따위가 죽였다. 네가 바로 몰래 그 자식과 결탁을 맺은 달탄 신장인가? 하는 짓거리가 딱 천정답군.”
석목이 담담하게 웃어보였다.
“죽지 못해 안달이 났나!”
석목이 뱉은 말을 듣자 달탄은 화가 치밀어 올라 손에 붉은빛을 드리우며 묵직한 검을 한 자루 꺼내 들었다. 검날에서 금색 문양이 줄줄이 나타나더니 뜨거운 기운을 풍겼다.
쾅!
검에서 금빛 화염이 타오르면서 넓적한 검영으로 변하더니 석목에게 향했다.
금빛 화염이 지닌 위력은 비록 천봉 일족의 현강금염만큼은 아니었지만 풍기는 열기가 매우 강력하여 절대 가볍게 볼 수 없었다.
금빛 검영이 스친 허공에는 커다란 틈이 생기며 가볍게 찢어졌다.
석목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토템 변신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금빛을 드리우더니 구룡쇄금갑을 둘렀다.
그 사이에 금색 물결이 석목을 중심으로 사방팔방으로 퍼지며 안화와 용우비차를 멀리 밀어냈다.
석목이 여의빈철곤을 꺼내들자 붉은 화염이 석목의 손에서부터 빈철곤으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낮게 소리를 지르며 곤봉을 휘둘렀다.
달탄의 눈에서 기쁜 기색이 스쳤다. 그리고 달탄은 검자루를 꽉 쥐고는 금색 화염을 다시 한번 강렬하게 드리웠다.
곤봉과 검이 부딪쳤다!
“염폭!(炎爆)”
달탄이 소리를 지르자 극한에 달한 광폭한 힘이 검끝에서 뿜어져 나와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때, 휘말리는 파도 같은 힘이 곤봉에서 흘러나왔는데 위력은 염폭이 풍기는 기운과 비슷했다.
굉음이 울려 퍼지며 달탄과 석목은 몸을 크게 흔들며 뒤로 날아갔다. 두 사람은 실력이 엇비슷했다.
“고작 성계가 이런 실력을 지녔다니!”
달탄은 믿기지 않는 눈빛을 내비치며 분노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
석목이 비아냥거리는 웃음을 드러내며 흑백 날개를 펼쳐 자리에서 사라져버렸다.
이어 곧바로 달탄의 뒤편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석목이 나타났고, 여의빈철곤은 곤봉 그림자 수십 갈래로 변하여 망을 이루면서 아래를 덮쳤다.
달탄이 번개 같은 속도로 돌아서서 검을 휘두르자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이 수십 갈래로 휘날렸다.
금색 화염을 감은 검영이 날아 나와서는 연꽃 모양을 이루었다.
연꽃들은 전부 화염 검영이었으며 엄청난 파동을 일으켜 그물처럼 드리운 곤봉 그림자와 부딪쳤다.
콰앙!
순간 굉음이 울려 퍼졌다.
화염 연꽃이 터져버리며 곤봉 그림자들을 부숴버렸다.
간신히 그림자를 부숴버리긴 했으나 달탄은 몸이 튕겨져 날아갔다.
달탄이 소리를 지르며 입으로 무엇인가 중얼거리면서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찬란한 금빛이 달탄의 손에서 날아 나와 금색 은하수로 변하였으며 은하수가 쏟아지자 물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달탄이 손가락을 굽혀 허공을 짚자 금색 은하수가 넓게 흩어지며 다시 금색 사막으로 변하더니 석목을 덮쳤다.
사막은 매우 넓게 퍼져 순식간에 석목을 안으로 덮어버렸다.
석목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리고 다급하게 온몸에 흐르는 진기를 여의빈철곤으로 불어넣어 빈철곤에 빛을 드리우더니 두르고 있던 화염을 두 배 불려 금색 사막을 강하게 내리쳤다.
탱!
사막은 미세하게 흔들렸다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본 달탄은 하하 웃으며 다시 중얼거렸다. 순간 금색 사막에서 수많은 빛들이 흩날리더니 석목에게로 몰려갔다.
금빛은 석목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순식간에 터져버려 석목의 몸을 빛으로 묻어버렸다.
“나서지 말라니까! 내 신성사(神星沙)가 어떠냐!”
달탄이 하하 웃으며 우쭐댔다.
“공자님!”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안화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순간, 안화가 이를 악물고는 몸을 날려 달탄을 덮쳤으며 수십 장에 이르는 붉은 검광으로 달탄을 베려했다.
달탄이 차갑게 웃더니 손가락을 구부리자 콩알만 한 금빛이 날아가 검광과 부딪쳤다.
이어 금빛이 터져버리더니 순식간에 구멍이 뚫렸다.
붉은 비검 한 자루가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미 구멍이 뚫려버려 만신창이가 되어 곧 부러져버릴 것만 같았다.
안화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저 자식을 죽여 버려라!”
달탄이 안화를 가리키며 음흉한 웃음을 드러내자 달탄의 부하 몇몇은 곧바로 몸을 날려 안화를 덮쳤다.
달탄이 금색 사막을 바라보며 법결을 날리자 금색 사막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하지만 모래의 밀도는 훨씬 높아져 더욱 촘촘한 금빛이 석목을 향해 날아가며 끊임없이 터져나갔다.
이때, 방대한 위압감이 사막에서 흘러나오자 마치 태고의 흉수가 두 눈을 번쩍 뜨는 것만 같았다.
달탄이 안색을 바꾸며 무엇인가 술수를 부리려 할 때, 금색 사막이 격하게 흔들리더니 이내 찢어져 버렸다.
막강한 위압감이 터지자 달탄은 뒤로 몇 걸음 밀려났다.
달탄의 부하와 안화도 그 힘에 밀려 전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이때, 서서히 몸을 드러낸 석목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채 금색 곤봉을 들고 있었으며, 곤봉에서 금색 무늬가 잔뜩 밝게 빛나며 금빛을 흘렸다. 그 곤봉은 바로 번천곤이었다.
방대한 위압감이 주변으로 퍼지자 곤봉이 미세하게 떨렸으며 허공은 이미 무너져 얇은 균열이 생겼다.
달탄은 석목이 들고 있는 번천곤을 바라보자 겁에 질려 버렸다.
석목은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다시 달탄의 앞에 나타나더니 번천곤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달탄을 그제야 정신을 차렸지만 움직이기도 전에 금색 홍수가 번천곤에서 쏟아져 나와 수많은 부문들이 달탄을 안으로 묻어버렸다.
상황이 뒤바뀌자 안화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전투를 멈추고는 멀리서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금색 홍수는 빠르게 흩어졌으며 달탄이 그 자리에 드러났다.
몸은 피범벅이었으며 얼굴이 하얗게 질린 달탄은 오른쪽 손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사라졌으며 들고 있던 붉은 검도 사라지고 없었다. 미루어보건대 검은 이미 망가진 것 같았다.
“내 팔을 잘라버리다니!”
달탄이 석목을 노려보며 원망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으나 그 눈빛에는 두려움도 섞여 있었다.
석목도 안색이 살짝 하얗게 질려 곧바로 선급 영석을 하나 꺼내들고는 소모된 진기를 보충했다.
한 방을 날리자 번천곤은 다시 석목의 영해 속으로 들어갔다.
달탄은 무슨 체신 비술을 시전했는지 팔 한 쪽을 날리는 대가로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번천곤은 위력을 대부분 소진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