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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716화 (716/916)

716화. 밀서

석목은 긴장을 풀지 않고 구전현공을 시전하여 주먹을 날렸다.

붉은 화염이 석목의 몸에서 날아가 커다란 손에 화염이 번지더니 달탄을 내리쳤다.

달탄이 입을 벌려 노란 방패 법보를 꺼내자 방패에서 누런빛이 넓게 펼쳐지더니 화염 주먹을 막았다.

하지만 이 화염 주먹은 구전현공 일곱 번째 단계의 힘으로 뭉친 주먹이었고, 그 중 불속성 본원의 힘이 흡수된 강렬한 화염은 세상 모든 것들을 태워버릴 수도 있었다.

붉은 화염이 들끓자 노란 방패도 나쁘지 않은 법보였지만 곧장 끄트머리부터 녹아버리더니 노란빛을 쏟아내며 빠르게 줄어들어 곧 터지기 직전이었다.

멀리서 은색 피풍의를 두른 사람들은 이 광경을 지켜보며 모두 어안이 벙벙해 서로 눈치를 한 번씩 살피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저 멀리 날아갔다.

격전을 치르던 석목과 달탄의 눈에도 멀리 도망가는 천정 사람들이 비쳤다.

석목이 눈살을 찌푸리며 붉은 주먹을 더 밝게 태워 노란 방패를 빠르게 녹여버리자 방패는 순식간에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달탄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절망한 기색을 숨기지 못해 왼손에 낀 붉은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달탄은 눈에 결연한 기색이 스치는 듯하더니 반지를 빼서는 단번에 부숴버리려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석목은 안색이 살짝 일그러지며 빠르게 붉은빛을 날렸다.

손바닥에서 화염이 반짝이더니 눈부신 붉은빛이 날아 나와 ‘퍽!’ 소리와 함께 노란 방패를 뚫어버리고는 번개 같은 속도로 달탄의 왼손을 잘라버렸다.

달탄은 입에서 묵직한 신음소리를 흘렸으며 드디어 노란 방패도 터져버려 붉은 화염 손이 빠르게 내려와 달탄의 몸을 감싸버렸다.

처참한 소리가 불구덩이에서 울려 퍼졌다가 곧바로 사라지자 검게 타버린 시체만 남아있었다.

석목이 손을 흔들어 붉은 반지를 불러들여 고개를 돌린 후에 은색 피풍의를 두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잠깐 사이에 그들은 백 장 멀리까지 날아갔으며 아주 영리하게 뿔뿔이 흩어져서 도망을 쳤다.

허나 번천곤을 본 이상 절대 도망가게 내버려둬서는 아니 되었다.

붉은 화염이 반짝이며 몇 갈래 불기둥이 튕겨져 나오더니 붉은 화조(火爪)로 변하여 몇몇 사람들을 쫓아갔고, 그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으며 단 몇 번 호흡을 할 동안 그들의 머리에 구멍을 뚫어버렸다.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지자 도망을 가던 놈들이 멈춰 섰는데 그들은 머리가 전부 사라지고 없었지만 몸통은 찢어진 곳 하나 없이 그대로였다.

그 광경을 본 안화는 눈에 또 다시 경외하는 기색이 스쳤다.

“공자님, 실력이 놀랍네요. 신경 강자도 공자님에겐 상대조차 되지 않다니요.”

안화가 말했다.

석목이 담담하게 웃고는 머리가 잘려나간 시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날 구하다보니 법보가 망가졌더군. 저 놈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있겠지. 그걸 보상으로 주겠네.”

안화는 눈에 기쁜 기색이 스쳤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저 놈들은 전부 공자님이 죽이신 거죠. 전리품은 당연히 공자님께서 거두셔야죠.”

석목이 웃으며 붉은 반지를 하늘로 던졌다가 다시 받았다.

“큰놈들은 다 여기에 있지. 저런 물건들은 내가 가져도 별 쓸모가 없으니 사양하지 않아도 되네.”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안화가 망설이다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은색 피풍의를 두른 시체들로 날아갔다.

석목이 손가락을 튕겨 화염 한 점을 날려 달탄의 잘린 손을 태워버렸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려 옆을 바라보니 비주 하나가 조용히 허공에 떠있었다.

석목이 비주를 한참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주를 만든 재질은 용우비차와 비슷했으나 달탄이 쓰던 물건이니 대놓고 쓸 수는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을 한 석목은 우선 비주를 챙겨두기로 결정했다.

안화도 머리 없는 시체들이 가진 물건들을 전부 챙겼으며 시체들을 태워버리고는 다시 날아왔다.

“공자님, 이 자들을 만났다는 사실을 방진에게 알려야할까요?”

안화가 물었다.

“이미 해치웠으니 자정마우 일족도 당분간은 큰 걱정은 없을 테지. 이제 막 족장의 자리에 올라서 해야 할 일도 많을 텐데 이 사실을 알리면 좀 안심이 되겠네.”

석목이 말했다.

안화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얀 진반을 하나 꺼내 낮은 목소리로 뭐라 중얼거렸다. 그저자 진반에서 빛이 반짝였다가 사라졌다.

“가자.”

석목이 용우비차를 불렀다.

둘은 비차 위로 날아올라 금빛으로 변해 저 멀리 날아갔다.

* * *

석목은 안화에게 비차를 운전하라 명하고는 자신은 비차에 있던 비밀 석실에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잠깐 휴식을 취한 뒤에 석목은 붉은 반지를 꺼냈다.

달탄이 죽기 전에 없애려던 물건이라 절대 평범한 반지가 아닐 터였다.

석목이 정신을 가다듬고는 신식으로 반지를 훑어보니 얼굴에 기쁨이 어렸다.

천정의 신장인 달탄은 역시 그 값을 톡톡히 했으며 반지엔 보물들이 가득했다.

다른 건 몰라도 선급 영석 열 몇 개만으로도 석목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법보, 광석, 재료, 단약 등등 모두 귀한 물건들인 건 맞지만 석목이 사용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석목은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이 물건들은 전부 평범한 물건들인데 달탄이 왜 이 반지를 없애려 했을까? 단순히 죽은 뒤에 석목이 가져가는 게 싫었을 뿐이었나?

석목이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죽기 전에 그런 생각을 할 사람은 없을 터였다.

석목은 계속해서 신식으로 반지를 샅샅이 훑었다. 잠시 후에 석목은 눈을 반짝이며 손에 하얀 옥합을 꺼내 쥐었다.

반지 속에 든 다른 물건들을 자세히 훑어봤지만 특이한 점은 없었다. 하지만 이 옥합은 특수한 힘이 드리워져있어 신식으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었다.

석목은 손에 불빛을 반짝이며 다섯 갈래 불길로 옥합을 감싸고 있던 힘을 힘껏 찔러버렸다.

퍽!

가벼운 소리와 함께 옥합을 지키던 힘이 갈라졌다.

석목이 이제 막 옥합을 열려고 할 때, 옥합에서 ‘훅!’ 소리가 울려 퍼지며 하얀 화염이 옥합을 감았다.

석목이 깜짝 놀라 손가락으로 앞을 짚었다.

두 갈래 흑백 빛이 날아 나와 옥합을 감싸고는 순식간에 혼돈된 봉인 원판으로 변하더니 하얀 화염과 옥합을 봉쇄해버렸다.

봉인 속에서 하얀 화염은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불꽃이 일렁이는 형태를 유지했다.

석목은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다행히 재빨리 대처했지만 여전히 조금 타버렸다.

석목이 주문을 외우며 한 손을 흔들자 하얀 옥합이 봉인에서 날아 나와 손으로 떨어졌다.

혼돈된 봉인에서 빛이 갈라지더니 하얀 화염도 사라져버렸다.

옥합은 약간 녹아버렸으며 잠금 장치도 망가졌다. 석목이 손가락 끝에 날카로운 금빛을 맺어 천천히 옥합을 가르자 옥합에는 옥간 하나가 놓여있었는데 옥간도 약간 타버렸다.

석목이 옥간을 꺼내들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까지 신중하게 보관한데다가 강제로 열면 스스로 망가지는 금제까지 드리운 걸 보니 절대 평범한 옥간은 아닐 터였다.

석목이 신식으로 옥간을 훑어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옥간이 타버려 내용 일부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석목은 옥간을 빠르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막 옥간을 읽기 시작한 석목은 안색이 퍼렇게 질렸다.

그리고 읽는 내내 표정이 여러 번 바뀌었다.

잠시 후에 석목은 천천히 눈을 뜨고는 옥간을 바라보며 지극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 옥간은 천정의 밀서로 천정이 세운 방대한 작전 계획이 적혀있었는데, 그 내용은 단번에 팔황 고족을 무너트리겠다는 내용이었다.

내용 중에 일부는 훼손되었지만 천봉 일족과 자정마우 일족과 관련된 일들은 아주 명확하게 적혀있었다.

허나 다른 내용들과 연결이 되지 않아 계획을 유추할 수도 없었다.

석목은 잠깐 침묵하다가 안화를 불렀다.

“안화, 잠깐 들어와 보게.”

“공자님, 무슨 일이십니까?”

안화가 비밀 석실로 들어오며 물었다.

석목은 안화를 한번 쳐다보고는 잠깐 망설이다 옥간을 건넸다.

“이걸 보면 알게 될 거야.”

안화가 영문을 알 수 없어 우선 옥간을 받아들곤 신식으로 내용을 확인한 후에 안색이 굳어버렸다.

내용을 확인한 안화가 퍼렇게 질린 얼굴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이건 어디서 구하신겁니까? 그런데 일부가 보이지 않는 것 같네요.”

안화가 물었다.

조금 전에 안화는 비주를 운전하며 은색 피풍의를 두른 성계 무인들이 쓰던 저장 반지를 확인하느라 석목이 무엇을 하는지 보지 못했다.

석목이 옥간을 얻은 출처를 말해주자 안화의 얼굴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렇게 은밀하게 갖고 다니는 걸 보니 옥간에 적힌 내용이 진실인 것 같네요.”

안화가 말했다.

“그렇네.”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계획에 염호 일족은 말하지 않았지만 팔황 고족을 상대한다는 건 염호 일족도 그 속에 포함되었다는 뜻이겠죠. 공자님, 빨리 염호 일족으로 돌아가야겠어요.”

안화가 갑자기 초조해하며 말했다.

“그럼 빨리 가자.”

석목은 안화를 데리고 비밀 석실 밖으로 나와 법결을 몇 갈래 날렸다. 그러자 용우비차는 겉에 새로운 문양이 나타나더니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안화는 얼굴에 기쁨이 스쳤으며 석목을 바라보면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공자님, 염호 일족을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막강한 실력을 갖춘 석목이 도와주기만 한다면 안화는 천정이 꾸미는 그 어떤 음모도 두려워하지 않을 터였다.

“그래. 같이 가보자.”

석목이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염호 일족은 몰락했지만 어찌됐든 팔황고족 중에 하나여서 절대 잃어서는 아니 되었다. 만약 염호 일족을 잃어버리면 천하 성역은 꽤나 큰 충격을 받을 터였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안화가 감격스러운 투로 말했다.

석목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염호 일족은 지금 어떤 상황인가? 지난번에 자네가 염호 일족은 계속 은거만 할 생각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크게 걱정할 건 없지.”

안화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염호 일족이 은거하고 있는 건 사실이나 종족이 처한 상황은 그리 좋지 않죠. 내우외환이라 할 수 있어요.”

“내우외환? 무슨 일이 있나?”

석목이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

“염호 일족은 자정마우나 천봉 같은 다른 종족들과 달리 족장이 둘이죠. 종족이 두 계파로 나뉘어 한 족장은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고 다른 한 족장은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스리죠. 그렇게 서로 견제를 하며 균형을 이루죠.”

안화가 말했다.

“그렇군.”

석목은 염호 일족이 다스리는 이런 제도가 신기했다.

지금까지 접한 팔황고족들을 둘러보면 종족마다 각자 특이한 점이 있었고, 천하 성역의 백족들의 모습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다양한 차이가 있었다.

“이런 제도가 좋고 나쁜지는 따질 수 없죠. 이렇게 오랜 기간 시행을 한 제도에 큰 문제가 없다는 건 그만한 역할을 한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십 여 년 전, 바깥일을 다스리던 족장께서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족장의 신물을 잃어버렸어요. 그때부터 종족에 파란이 일었지요.”

안화가 말했다.

“족장의 신물은 총 몇 개인가?”

석목이 물었다.

“족장의 신물은 총 두 개죠. 두 족장이 각각 하나씩 가지고 계셨습니다. 허나 바깥 족장 계파에서 신물을 잃어버려 그동안 계속 바깥 족장을 선발하지 못했어요. 그 틈에 안쪽 계파는 세력이 강해지기 시작했지요. 안타깝게도 안쪽 계파는 고지식하고 보수적이라 다른 이들과 교류를 차단하면서 종족은 그간 발전하지 못한 채 제자리에서만 맴돌고 있죠. 다른 팔황고족들보다 많이 뒤처졌어요.”

안화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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