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7화. 안화의 신분
“그렇다면 너는 바깥 계파 사람이지?”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렇죠.”
안화가 말했다.
“염호 일족은 세상을 등지고 은거하고 있다지만 제아무리 은거를 해도 종족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자원이 필요할 텐데? 행성에서 채굴을 하는 건가? 그렇다면 언젠가는 자원이 고갈될 텐데.”
석목이 다시 물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종족 근처에 부속 행성이 몇 개 있는데 거기서 사는 작은 종족들과는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죠. 이 종족들은 우리 염호 일족에게 의지하며 일정한 공봉을 올리지요. 그리고 우리는 암암리에 그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을 해결해주고 있죠. 각자 이익을 챙겨야 하니까요.”
안화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렇다면 자네가 보기에 만약 천정이 염호 일족을 치려고든다면 어디서부터 시작이 될 것 같은가?”
석목이 물었다.
안화는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네요.”
“우선 종족으로 돌아가세.”
석목이 말했다.
안화가 깊은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염호 일족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둘은 쉬지 않고 가장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사흘 뒤에 석목과 안화는 드디어 호왕성에 도착했다.
호왕성은 매우 큰 행성이었으며 주작성 만큼은 아니지만 크게 차이가 나지도 않았다.
별하늘에서 바라보면 온 행성이 푸른색이라 마음이 편안해졌다.
석목과 안화는 용우비차에 서서 호왕성을 내려다보았다.
“공자님, 염호 일족은 외부인을 배척해요. 몇몇 부족을 제외하고는 외부인은 아무도 들어갈 수 없어요.”
안화가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래. 그럼 은닉비술을 시전해서 몰래 잠입해야 하나?”
석목이 물었다.
“그럴 필요는 없어요. 공자님은 외모를 바꾸는 비술을 시전하시니 이 사람으로 변신하시면 돼요.”
안화가 손을 흔들어 붉은빛을 날리자 빛들이 광막으로 뭉치더니 광막 속에 마른 청년이 한 명 나타났다.
“이 자는 누군가?”
석목이 광막을 바라보며 물었다.
“안우(安宇)라는 녀석인데, 예전에 저와 함께 호왕성을 떠난 시종이죠. 그리고 죽어버렸어요. 하지만 염호 일족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이 녀석으로 변신하면 종족으로 들어가실 수 있어요.”
안화가 하는 말에는 슬픔이 어려 있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칵, 칵!’ 소리를 내며 안우라는 청년으로 변신하였다.
석목이 변신하는 걸 여러번 봤지만 안화는 눈에 여전히 놀라움과 존경이 어렸다.
“네 시종은 실력이 어땠나?”
석목이 물었다.
“성계 초기였죠.”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기운에 변화를 주어 성계 초기로 둔갑했으며 또한 기운의 성질도 안화와 비슷한 화염 속성으로 바꿨다.
“공자님, 정말 못하시는 일이 없군요! 이러면 흠 잡을 데가 하나도 없네요.”
안화가 감탄하며 말했다.
석목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자.”
안화가 호왕성으로 날아갔으며 석목이 그 뒤를 따랐다.
* * *
한 시진 뒤.
호왕성에 자리한 붉은 산봉우리에서 두 갈래 빛이 먼 곳에서부터 날아와 산봉우리 앞에서 멈춰 서자 석목과 안화가 나타났다.
안화가 붉은 영패를 꺼내들고는 살살 비비다가 앞쪽 허공으로 빛을 날렸다.
허공에서 파동이 일더니 작은 틈 하나가 천천히 벌어져 붉은 피풍의를 입은 사람 몇몇이 날아 나왔다.
“당신…… 안화 도련님. 드디어 오셨군요!”
붉은 피풍의를 입은 몇몇 천위 수련자가 안화를 향해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석목도 눈썹을 치켜떴는데 보아하니 안화는 염호 일족에서도 꽤 높은 신분인 모양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석목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음. 종족에는 별일 없느냐?”
안화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도련님, 종족엔 별일 없습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문지기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안화는 안도의 숨을 내뱉으며 석목과 함께 틈 속으로 날아갔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바뀌며 커다란 산이 나타났는데 산 위에는 건물들이 수천 개 줄지어 서 있는 것 같았다.
호왕성의 건축 양식은 봉익성, 영뢰성과는 또 달랐다. 거칠고 웅장했으며 건물들 중심에는 넓은 전당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대전 위에는 붉은 호랑이 조각상이 엎드려 있었다. 조각상은 마치 살아있는 듯이 언제든 튀어나올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 대전을 중심으로 염호 일족의 건물들은 확연하게 두 곳으로 나뉘었다.
“염호 일족은 내족과 외족으로 나뉘는데 거주하는 곳도 나뉘어져 있죠. 왼쪽은 외족이 거주하는 구역이며 오른쪽은 내족이 거주하는 구역이에요.”
안화가 전음으로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화를 따라 한 광장으로 내려왔다.
“공자님, 우선 숙부께 인사를 드리죠. 그분은 지금 외족의 우두머리셔요.”
안화가 전음을 보내 석목에게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화를 따라 광장 끝으로 걸어갔다.
“아니 안화 아우가 아닌가. 오랜만일세.”
어색하게 친절한 말이 들리더니 몇몇 사람들이 다가왔다.
가장 앞에서 걸어오는 청년은 용모가 잘생긴 편이었지만 볼에 살이 없어서 홀쭉했으며 매부리코에 눈썹은 위로 찢어져 음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조금 전에 말을 꺼낸 사람은 바로 이 청년이었는데 그의 뒤로 시종 같은 몇몇 사람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안화는 청년을 한번 쳐다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석목은 안화의 표정을 살피며 다시 매부리코 청년을 바라본 후, 눈에 빛을 반짝였다.
청년은 수련 경지가 이미 성계 정상에 도달했다.
“안화 아우, 이번에 잃어버린 족장의 신물을 찾으러 나갔다고 들었는데 수확이 있는가?”
매부리코 남자는 이죽거리며 물었다.
“소주님, 안화 소주님의 표정을 보니 아무것도 찾지 못한 것 같은데 그렇게 물으시면 안화 소주님께서 속이 상하시겠지요.”
옆에 있던 뚱뚱한 청년이 후후 웃으며 말했다.
석목은 담담한 표정으로 안화를 살폈다.
저 뚱보가 안화를 소주라고 부르는 걸 보니 혹시 염호 일족에서 안화의 신분은……
“그래, 그래. 내가 그걸 배려하지 못했구나. 안화 아우의 심정을 살피지 못해서 미안하군.”
매부리코 남자는 전혀 미안하지 않은 투로 비아냥거렸다.
안화는 안색이 어두워져서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서 멀리 걸어갔다.
석목이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매부리코 남자는 멀어져가는 안화와 석목을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
“저 자는 누구인가?”
석목이 전음을 보내 물었다.
“전부 내족 사람들이죠. 저 매부리코 청년은 안도(安都)라고 하는데 내족의 소주예요. 그리고 공자님도 아셨다시피 저는 외족의 소주죠. 그러니 저와 안도는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아요.”
안화가 전음으로 대답했다.
“자네 소주였나? 그럼 전에 출타하셔서 돌아가셨다는 외족의 족장은……”
석목이 안색을 바꾸며 물었다.
“제 부친이시죠. 그때 노인네가 출타를 한다며 나가신 후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셨죠. 그리고 족장의 신물도 잃어버렸지요. 저는 외족의 소주로서 족장의 신물을 찾아야할 의무가 있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몇 년간 실마리도 찾지 못했죠.”
안화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석목은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 침묵만 지켰다.
“그럼 우선 숙부부터 만나보시죠.”
안화는 기분을 바꾸며 석목에게 말했다.
둘은 곧바로 대전 밖에 도착했다.
“안화 도련님, 돌아오셨군요.”
대전 밖을 지키던 수위가 안화를 보고는 기쁜 마음으로 맞이했다.
“숙부는 안에 계시는가?”
안화가 수위를 향해 웃으며 물었다.
“계십니다. 안예(安睿) 장로님은 안에 계셔요. 제가 알리고 오겠습니다.”
수위가 말을 하며 대전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잠시 후에 수위가 걸어 나왔다.
“안화 도련님, 안예 장로님이 들어오시랍니다.”
안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매무새를 한 번 더 가다듬고는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대전 안엔 키가 훤칠하고 안색이 조금 고되어 보이는 중년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자상한 눈으로 안화를 바라보았다.
“숙부님, 돌아왔어요.”
안화가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
석목도 뒤따라 인사를 올렸다.
놀라운 건 중년 남자도 경지가 성계 정상이었다. 외족을 이끄는 자는 신경 일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보아하니 염호 일족은 정말로 몰락한 것 같았다.
“후후, 돌아왔으면 됐구나. 인사치레는 되었으니 얼른 앉아라.”
중년 남자가 후후 웃으며 옆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안화가 걸어가서 앉았다.
석목은 안화의 시종이니 앉을 수 없어 안화의 뒤에 서 있었다.
“화야, 그동안 밖에서 뭘 좀 알아낸 게 있더냐?”
중년 남자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안화를 바라보았다.
안화는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중년 남자도 얼굴에 실망하는 기색이 스쳤지만 곧바로 표정을 바꾸었다.
“화야, 걱정하지 말거라. 족장의 신물은 잃어버린 지 오래라 아마 쉽게 찾지는 못할 게다. 별탈없이 돌아왔으면 됐구나. 나는 내내 네가 걱정이 되었단다.”
중년 남자가 말했다.
“숙부님, 제가 돌아온 것은……”
안화가 고개를 들었다.
“안화, 잠깐만. 천정과 관련된 일은 우선 비밀로 하자.”
안화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석목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서 울려 퍼졌다.
안화가 멈칫하며 말을 멈춰버렸다.
“왜? 무슨 일로 돌아왔느냐?”
안예가 이상한 듯이 물었다.
“아녜요. 천하 성역이 처한 국면이 혼란스러워 종족이 걱정되어 돌아왔죠.”
안화가 말했다.
“바깥 상황은 나도 알고 있단다. 하지만 우리 호왕성은 외진 곳에 있어서 당분간 전란에 휩싸이진 않을 게다.”
안예가 말했다.
안예가 하는 말을 듣자 안화는 쓴웃음만 지었다. 종족 사람들은 너무 낙관적이라 지금 밖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마침 잘 돌아왔구나. 이틀 뒤 내족 족장 어르신의 생신이라 관례대로 성대하게 잔치가 열릴게다. 우리 염호 일족에 의탁하고 있는 종족들이 축하연에 함께할 테니, 우리 외족도 선물을 올려야겠구나. 선물은 내가 이미 준비해 두었단다. 네가 나를 대신해서 잔치에 참가하거라.”
안예가 말했다.
“생신……”
안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올해는 내족 족장의 백 세 생신이라 잔치를 더 성대하게 치를 모양이더구나. 가장 마음에 드는 선물을 올린 사람에겐 황월 고정으로 가서 한 달 동안 수련할 기회를 준다고 했단다.”
안예가 웃으며 말했다.
“황월 고정!”
안화는 많이 놀란 듯했다.
“그래. 우리 외족이 그럴듯한 선물을 보낼 수는 없어도 그 기회는 노려봐야 하지 않겠냐?”
안예가 그리 말하자 안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숙부님, 걱정 마세요.”
안화는 숙부에게 인사를 올린 후에 석목을 데리고 대전에서 떠나 두 사람은 날아가지 않고 걸어서 거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공자님, 왜 저를 말리셨습니까? 왜 천정이 염호 일족을 공격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숙부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안화가 걸어가며 물었다.
“멍청아, 그걸 굳이 설명해줘야겠어? 내가 말해 줄게! 너는 이제 막 종족으로 돌아왔으니 종족이 그간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 석두는 네가 실수로 천정의 첩자들에게 소식을 흘릴까봐 걱정했던 거잖아.”
채아가 날개를 펄럭이며 확신에 차서 말했다.
“제 숙부는 외족의 일을 오랫동안 도맡아하셨으며 항상 저를 챙기시는 분이에요. 믿을만한 분이죠.”
안화가 단호하게 말했다.
“염호 일족 중에 그 누구도 천정의 첩자가 아니란 생각은 버리게. 우리가 돌아온 이유가 흘러나가기라도 한다면 자네 종족에게 통제를 받게 되겠지. 그러니 천정이 대체 어떤 꿍꿍이를 숨겼는지 자네와 나, 단 둘이서 알아봐야 하네. 아직은 아무도 믿을 수 없어.”
석목이 말했다.
“공자님께서 하신 말씀이 맞네요. 큰일인 만큼 조심하는 편이 좋겠어요.”
석목이 하는 말을 들은 안화는 그제야 납득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염호 일족은 내, 외 두 계파로 나뉜다 했지? 외족의 우두머리는 숙부님이시니, 그럼 내족의 족장은 누군가?”
안화와 나란히 걷고 있던 석목이 물었다.
“내족의 족장은 안일산(安逸山)이에요. 우리 염호 일족의 유일한 신경 강자지요. 내족과 외족은 한 조상을 모시고 있지만 분리된 지 꽤 오래 되어 이미 독립된 두 족계(族系)나 다를 바가 없죠.”
안화가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