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2화. 주역(诛逆)
안화는 곧바로 몸을 날려 종족들이 싸우는 곳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남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곧바로 안화를 쫓아가려했다.
하지만 남진이 날아가기도 전에 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이런 버러지 같은 놈이!”
남진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석목이 풍기는 기운은 성계 초기였으며 남진은 성계 정상의 강자였기에 석목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석목이 코웃음을 지으며 원래 모습대로 돌아오자 풍기는 기운도 점점 강해져 성계 정상에 이르렀다.
그 모습을 보던 남진은 입이 크게 벌어지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뭐야? 넌 누구냐?”
남진이 말을 더듬거리며 물었다.
석목은 남진이 내뱉는 말을 무시한 채 곧바로 금빛을 반짝이며 여의빈철곤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차갑게 소리를 지르며 흑백 날개를 펼쳐 허공에 허영을 줄줄이 그으며 남진을 공격했다.
깜짝 놀란 남진은 곧바로 법결을 시전했다.
남진의 몸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네모난 흑철기반(黑鐵棋盤)을 꺼냈다.
검은빛을 반짝이며 네모난 기반은 빠르게 부풀어 올라 석목이 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기(起)!”
남진이 소리를 지르자 네모난 기반이 휙휙 돌아가며 석목의 머리 위로 다가왔다.
석목은 두 손으로 법결을 시전하여 흑백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몸집을 크게 부풀린 후 흑철기반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다.
이때, 석목의 머리 위에서 불빛이 번쩍이더니 맹수가 포효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뜨거운 화염이 허공에서 우수수 쏟아졌다.
석목은 쏟아지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화염이 풍기는 위압감에 짓눌려 몸통이 ‘쾅!’ 흑철기반 위로 떨어졌다.
순간, 흑철기반의 겉면에 불규칙하게 그어진 무늬가 밝아졌다.
석목은 기이한 힘이 발끝을 타고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이한 힘이 몸에 흘러 들어오는 순간, 몸이 탈탈 털려버린 듯했으며 영력이 전부 사라진 것처럼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내 혼원기반 맛이 어떠냐?”
남진이 웃는 얼굴로 허공에서 내려와 기반을 밟으며 석목에게로 다가갔다.
석목은 코웃음만 칠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흑백 날개를 맹렬하게 펄럭이며 기반에서 날아오르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날개를 힘껏 펄럭여 봐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으며 마치 두 발이 기반과 하나가 된 것처럼 붙어있었다.
더 엉망인 건 날개였는데 조금 전에 흑백 날개를 펼쳐 펄럭였지만 뒷심이 받쳐주지 못해 날개가 빠르게 줄어들더니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후후, 힘 빼지 마. 네가 불어넣은 영기는 혼원기반이 전부 빨아들이지. 불어넣는 영기가 많아질수록 기반이 네 몸을 묶어두는 힘이 더 강력해질 테니 너는 결국 죽게 될 게다.”
남진이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헛소리는 다 했나?”
남진이 하는 말을 들은 석목은 더는 벗어나려고 힘을 빼지 않았으며 남진에게로 시선을 던진 후에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 죽게 생겨서 살려달라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입은 여전히 살아있군. 그렇다면 저승으로 보내주지.”
남진이 음흉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큰 걸음으로 앞으로 다가가 손바닥을 펼쳐 네모난 무엇인가를 꺼냈는데 그건 바로 안일산에게 중상을 입혔던 족장의 신물이었다.
신물에서 금빛이 반짝였으며 촘촘하고 번잡한 꽃무늬가 나타나자 현묘한 부문이 위아래로 흘러 다녔다.
후륵!
뜨거운 화염이 신물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맹렬한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석목이 고개를 들어보니 한참 동안 들끓던 화염에서 커다란 호랑이 머리 하나가 튀어나와 입을 크게 벌리고는 석목의 머리를 물어버리려 했다.
호랑이 머리는 화염으로 이루어졌지만 마치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생생했다. 머리에는 아득히 먼 옛날의 정취가 깃들어있었으며 짓누르는 힘 또한 막강했다.
조금 전에 석목은 바로 이 힘에 짓눌려 혼돈된 기반 위에 묶여버린 것이었다.
호랑이의 입에서 화염으로 뭉쳐진 뾰족한 이빨이 드러났으며 석목의 머리가 그 입에 박혀 씹어먹히기 직전이었다.
이때, 석목의 앞에 찬란한 금빛이 반짝이더니 괴력이 여의빈철곤에서 뿜어져 나왔다.
석목의 두 팔에서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고, 힘줄이 툭툭 튀어나왔다. 석목이 여의빈철곤을 맹렬하게 휘둘러 화염 호랑이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쾅!
이어 굉음이 울려 퍼졌다.
호랑이의 머리가 순식간에 움푹 패어버려 살벌하던 화염도 곧바로 응축되었다.
석목이 휘두르는 빈철곤은 기세를 꺾지 않고 계속 밀려갔다.
쾅!
또다시 굉음이 울렸다.
석목이 밟고 있던 검은색 기반이 격하게 흔들리며 ‘쩍!’ 소리와 함께 커다란 균열이 수십 갈래 생기더니 ‘펑!’ 소리를 내며 터져버렸다.
“아…… 아냐, 영력이 어째서 남았지? 영력은 이미 빨려 나갔을 텐데.”
남진은 가슴 아픈 얼굴로 부셔져버린 흑철을 바라보며 믿기지 않은 표정을 드러냈다.
석목이 한 손을 흔들자 여의빈철곤은 다시 천기곤초에 끼워졌다. 그리고 기지개를 펴고 있는 동안 빠져나갔던 영력도 조금씩 회복되었다.
“네가 이 철판이 내 몸속에 깃든 영력을 빨아들인다고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나를 묶어놓을 수 있었을 텐데.”
석목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물론 천기곤초에 영력을 저장하는 특이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남진에게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석목은 다시 흑백 날개를 펼쳐 앞으로 날아가 ‘훅!’ 붉은 화염을 드리웠다. 그러자 한 갈래 용 모양의 불기둥이 석목의 왼쪽 팔에서 뿜어져 나와 여의빈철곤을 감쌌다.
석목이 다시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입으로 “허!” 소리를 외쳤다. 그리고 화염을 감은 여의빈철곤을 높이 치켜들었다가 다시 남진의 머리를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
남진은 겁에 질려 떨어지는 빈철곤을 바라보았다.
붉은 곤봉 그림자가 겹겹이 쌓여 지극히 무거운 큰 산을 이루더니 자신의 머리를 향해 거센 기세로 밀고 들어오는 모습이 남진의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남진은 다급한 마음에 법결을 연신 시전해 금색, 붉은색, 파란색, 보라색 갑주를 줄줄이 만들어 몸을 갑주들 속에 구겨 넣었다.
마지막에는 두 손을 위로 받쳐 들며 다시 염호 일족 족장의 신물까지 날렸다.
신물이 날아 나오자 그 위에 적힌 번잡한 부문들이 다시 눈부신 빛을 뿜었으며 예스러운 기운이 유유하게 흘러나왔다.
크헝!
흉악한 소리와 함께 아득한 기운은 더욱 강력해졌다. 이어서 금빛 호랑이 한 마리가 네모난 물체 위에서 용맹한 기세로 튀어나와 묵직하게 내려오는 화염 산을 덮쳤다.
쿵쾅!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곤봉 그림자로 뭉쳐진 화염 산이 격하게 흔들려 무수히 많은 불덩이가 주변으로 튕겨져 나왔다.
그러나 호랑이 한 마리가 어찌 우뚝 솟은 웅장한 산세를 꺾을 수 있겠는가?
석목은 곤봉을 계속해서 짓눌렀으며 금색 호랑이의 숨결은 순식간에 약해져 무거운 곤봉 그림자에 눌려 끊임없이 추락했다.
마음이 다급해진 남진이 혀끝을 세게 깨물어 허공으로 정혈을 한 모금 내뿜었다.
정혈이 점이 되어 흩날리는 순간, 호랑이의 눈에서 즉시 한 줄기 붉은빛이 피어올랐다. 이어 몸에서 번지던 금색 화염은 번쩍이는 사이에 붉은색으로 변하였고, 예스러운 기운도 더욱 왕성해져 잔인하고 살벌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시뻘건 불길이 치솟으면서 호랑이가 갑자기 입을 크게 벌리자 순식간에 몸집이 백 배나 커져서는 석목이 내리친 곤봉을 밀어버렸다.
남진이 미소를 지으며 눈에서 광기어린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다시 호랑이의 몸에 정혈을 뱉어내며 “죽어.”라는 말을 읊조렸다.
순간, 호랑이의 몸집은 더 이상 불어나지 않았지만, 몸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두 배나 치솟아 올라 뜨거운 화염 때문에 석목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석목은 수십 장 뒤로 몸을 날려 내려오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서 붉게 물든 거대한 짐승을 바라보며 속으로 읊조렸다.
대범반무진경!
석목의 뼈에서 ‘툭, 툭!’ 소리가 나며 근육이 급격히 부풀어 몸이 천 장 가까이 불어났다.
몇 백 장 정도의 화염 호랑이는 순식간에 작은 고양이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남진은 얼굴에 괴로운 기색이 스쳤으며 곧바로 법결을 바꿔 잽싸게 앞으로 밀고나갔다.
그러자 호랑이가 몸을 날려 석목을 덮쳤다. 몸집이 크게 불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눈 깜짝할 사이에 석목의 몸에 부딪쳤으며 핏빛이 가득 드러난 호랑이의 입이 석목의 어깨 가까이 다가왔다.
석목이 곧바로 팔로 목 앞을 가로 막으며 동시에 몸에 노란빛을 둘렀다.
칵!
석목의 팔이 호랑이 입에 물려버렸다.
허나 석목의 굵직한 팔뚝에 두꺼운 돌갑옷이 덧붙여진 채 검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으며 뜨거운 화력이 석목의 돌갑옷을 뜨겁게 달구면서 피부로 파고들었다.
석목이 팔을 휘두르며 날카로운 금빛을 날리자 호랑이는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호랑이는 데굴데굴 네 바퀴 정도 굴러 남진의 몸에 부딪친 후에야 비로소 멈출 수 있었다.
이에 석목이 바짝 쫓아가서 빈철곤을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기둥처럼 늘려 호랑이의 몸통을 강하게 내리쳤다.
이 한 방에 한 줄기 광풍이 휘몰아치고 공기마저 두 동강이 난 듯 양쪽으로 밀려갔다.
호랑이는 미처 일어서기도 전에 내리치는 빈철곤에 두들겨 맞았다.
쾅!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불빛이 사방팔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호랑이는 마치 짓눌린 솜뭉치마냥 형체를 잃어버렸고, 심하게 찢어졌다.
그러나 석목이 들고 있던 여의빈철곤은 힘이 흩어지지 않은 채 남진을 향해 내리쳤다.
거대한 곤봉이 남진의 앞을 가로막았고, 그는 갑옷을 겹겹이 껴입고 있어 거동이 불편하여 피할 수도 없었다.
“아니야…… 안 돼……”
남진의 입에서 절망스런 소리가 터져 나왔고, 곧이어 여의빈철곤이 남진을 짓눌렀다.
남진이 두르고 있던 갑옷이 한 층, 한 층 부서지더니 결국 살가죽마저 찢어져버렸다. 간신히 도망을 친 신혼은 얼마 도망가지도 못한 채 그대로 여의빈철곤이 내뿜은 거센 바람에 휘말려 산산조각이 나며 그는 처절하게 죽어버렸다.
가까이에 있던 어휘 신장의 얼굴은 깊은 연못처럼 어두워졌다.
한참 동안 석목과 남진을 살펴보고 있었지만 끈질기게 달라붙는 분신을 떨쳐내기 힘들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분신이 들고 있는 검은 매우 기이한데다가 파손된 영역의 힘도 시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신경 초기인 어휘는 골머리를 앓았다.
이렇게 어휘와 분신은 한참 동안 싸웠지만 승부를 가릴 수 없어 팽팽한 싸움만을 이어갔다.
석목은 한 손을 휘두르며 남진이 다루던 염호 일족 ‘족장의 신물’을 거둬들이며 안일산에게서 가져온 반쪽짜리 신물과 붙여보았다.
기이하게 끌어당기는 힘 때문에 두 신물은 빈틈없이 맞닿았다.
신물이 이어진 곳에서 금빛이 번쩍이더니 온전한 신물 하나로 합쳐졌다.
합쳐진 신물은 호랑이 조각이 새겨진 큼직한 옥새였다.
신물의 위쪽은 호랑이 꼭지였는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했으며 위풍당당했다. 또한 네모난 옥새에 예스러운 부문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어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후후, 신물이 지닌 위력을 한번 볼까?”
석목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분신과 격전을 치르고 있는 어휘 신장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염호 일족 족장의 신물은 절반만으로도 엄청난 위력을 뿜어냈기에 하나로 합쳐진 신물이 내보일 위력은 더욱 기대가 되었다. 비록 따로 제련을 한 보물은 아니지만 영성이 있었기에 무리해서 사용해 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휙!
석목이 신물에 영력을 불어넣자 옥새는 겉면에 빛을 뿜어내며 곧장 어휘 신장에게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