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723화 (723/916)

723화. 어휘와의 전투

석목의 분신에게 묶여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어휘 신장은 격전을 치르던 중에 갑자기 머리 위 높은 곳에서부터 밀려오는 기세를 느끼고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허공에서 거대한 금색 옥새가 머리 쪽을 짓눌러오고 있었다.

어휘는 다급하게 철편을 휘둘러 석목의 분신을 밀쳐낸 후에 다시 커다란 옥새를 짚었다.

쾅!

금색 옥새는 요란하게 흔들리긴 했지만 여전히 위에서 아래로 짓누르며 내려가고 있었다.

이때, 금색 옥새 위에서 맹렬한 호랑이 허영이 나타나더니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금색 옥새가 내뿜는 빛이 더 짙어지며 어휘가 힘에서 밀려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반이나 굽혔다.

철편의 끝부분과 옥새가 맹렬하게 맞부딪치자 귀를 찢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때, 석목의 분신이 갑자기 ‘휙!’ 나타나서는 길고 날카로운 핏빛으로 어휘 신장의 목덜미를 갈랐다.

어휘는 미간을 찌푸리며 두 손을 휘두르는 동시에 몸통을 뒤로 날려 치명적인 공격을 피했다.

쿵!

굉음과 함께 커다란 옥새가 땅으로 떨어지며 단번에 철편 두 개를 땅속에 박아버렸다.

무기를 빼앗긴 어휘 신장은 화난 기색을 드러내며 다시 손목을 젖혔다. 그러자 정교한 옥도끼 두 자루가 어휘의 손에 나타났다.

이미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온 석목은 자신의 분신과 나란히 서 있었다.

똑같이 생긴 두 얼굴을 번갈아보던 어휘가 갑자기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네놈이냐?”

“음, 날 아는가?”

석목은 조금 의외인 듯이 물었다.

“석목, 천정에는 네놈의 숨통을 끊어버리겠다는 신장들이 줄을 섰다. 내가 운이 좋아 이렇게 너를 다 만나는구나.”

어휘 신장이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석목을 바라보는 눈빛도 확연히 달라졌는데 마치 사나운 먹잇감을 발견한 사냥꾼처럼 은근히 겁을 먹으면서도 벅차오르는 기쁨을 만끽하는 듯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천정의 신장이라는 놈들도 적잖게 죽였는데, 네놈은 무슨 재주로 날 죽이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

석목이 담담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건방진 놈!”

어휘 신장은 안색이 차갑게 변하더니 눈에서 영롱한 푸른빛이 스쳤다. 그리고 삼엄한 한기가 어휘의 코에서 흘러나오며 인중에 자란 수염을 하얀색으로 물들였다.

석목은 주변의 온도가 더디게 떨어지는 걸 느꼈다.

어휘가 입을 비틀며 차갑게 비웃더니 양손으로 옥도끼를 번쩍 들어 석목을 향해 내리쳤다.

두 갈래 한기가 순식간에 뿜어져 나오더니 반짝이는 얼음빛이 석목에게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석목이 손을 쓰기도 전에 몸 앞에 검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는데 석목의 분신이 핏빛 단검을 가로로 들고는 앞을 가로막은 것이었다.

얼음 두 개가 단검에 부딪치자 날카로운 ‘챙!’ 소리와 함께 단검이 흔들렸다.

이를 지켜보던 석목은 순간 눈가에 경련이 일더니 입으로 “조심해!”라고 외쳤다.

석목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단검으로 떨어진 얼음들이 파란빛을 번쩍이며 터져버렸다.

순간, 미세한 얼음 수백 가닥이 날카로운 고드름으로 변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다.

가까이에 있어 미처 피하지 못한 분신의 몸은 순식간에 고슴도치가 되었으며 몸에 자잘한 상처가 백 여 갈래나 생겼다. 치명적인 부상은 아니었지만 분신이 지닌 힘이 크게 손상되었다.

석목이 손을 흔들자 분신이 검은 안개로 변하여 다시 몸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어휘 신장이 차갑게 웃으며 석목에게로 날아왔다.

어휘가 하얀 옥도끼 두 자루를 움켜쥐고 엇갈려 휘두르자 흰 빛 두 줄기가 옥도끼에서 튀어나와 석목을 향해 덮쳐왔다.

석목이 왼쪽 주먹을 들어 올리자 팔뚝에서 둥근 불빛이 튕겨져 나와 잽싸게 앞쪽을 휘감았다.

한 줄기 거대한 화염 주먹 그림자가 빠르게 나타나더니 흰빛과 맹렬하게 부딪쳤다.

쾅!

허공에서 무수히 많은 불똥이 사방으로 튕기고 갈라지면서 짙은 안개를 만들어냈다.

안개가 걷히자 하얀 얼음으로 얼어붙은 석목의 화염 주먹이 바닥으로 떨어져 가루가 되어버렸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있던 석목의 표정이 약간 굳었다.

화염 주먹에 현공의 힘을 넣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결코 평범한 한 방은 아니었는데 옥도끼로 날린 일격에 산산조각이 났으니 앞에 서 있는 놈이 지닌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어휘가 다시 몸을 날려 옥도끼 두 자루를 연신 휘둘렀다.

빛줄기가 층층이 날아올라 허공에서 끊임없이 교차하더니 마침내 하늘을 절반 정도 가려버렸는데 그 광경은 석목의 태산압정과 매우 흡사했다.

석목은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는데 그 압박감 속에는 거대한 빙산이 짓누르는 듯한 섬뜩한 한기가 서려있었다.

석목은 곤봉을 치켜 올려 구전현공 일곱 번째 단계를 시전했다. 순간, 붉은 화염이 휘감겨 타오르더니 석목의 곤봉을 완벽하게 덮어버렸는데 그 속에서는 투명한 금빛 줄기가 뜨거운 화력을 흘려보냈다.

석목이 곤봉을 좌우로 휘두르자 온몸에서 붉은 안개가 피어올랐으며 맹수의 허영이 안개 속에서 응결되어 나와 끊임없이 울부짖었다.

곤봉이 세차게 치고 나오자 무수히 많은 맹수들이 포효했는데 방대한 홍수처럼 용솟음치며 곧장 흰빛을 뿜어내는 얼음산과 부딪쳤다.

쾅!

부딪치는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고, 주전 근처가 격하게 흔들려 수많은 얼음 부스러기와 화염 불빛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흰색 물안개가 피어올라 근방을 전부 묻어버렸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안개 속에서 갑자기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으며 부광(*斧光: 도끼의 빛)이 석목의 뺨을 갈랐다.

석목은 그 빛을 피하려고 곤봉을 치켜들고는 가로로 밀어냈다.

탱, 탱!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옥도끼 두 자루가 안개를 가리고는 곧장 석목의 빈철곤을 내리쳤다.

어휘 신장의 얼굴에는 간교한 웃음이 어렸으며 옥도끼 두 자루가 한 줄기 빛을 내뿜었다. 그러자 섬뜩한 한기가 순식간에 흘러나와 곤봉을 타고서 석목을 휘감았다.

한기가 흐르자 투명한 얼음이 굳어지면서 석목의 두 팔과 곤봉을 얼려버렸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발끝을 짚어 뒤로 몇 장 물러나서는 구전현공의 힘을 뿜어냈다.

휙!

석목의 두 팔에서 뜨거운 화염이 활활 타오르더니 감싸고 있던 얼음을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한편, 어휘 신장은 단 한순간도 긴장을 풀지 않고는 옥도끼를 위아래로 휘둘렀는데 마치 어떤 의식을 치르는 것만 같았다.

어휘가 팔을 휘두르자 밟고 있던 땅에서 복잡하고 얇은 무늬가 줄줄이 나타나 하얀빛을 뿜어냈다.

“빙계!(冰界)”

어휘 신장이 외치며 두 도끼를 높이 치켜들었다가 이내 맹렬하게 내리쳤다.

쩍!

옥도끼 두 자루로 바닥에 놓인 돌을 가볍게 부셔버리고는 종횡으로 휘갈기자 바닥에 한 폭의 그림이 그려졌다.

그 문양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와 맨눈으로는 쳐다볼 수 없었다.

곧이어 거센 기운 파동이 문양을 휘감아 다시 사방팔방으로 밀려났다.

매서운 한파가 밀려오는 걸 느낀 석목은 날개를 활짝 펼쳐 하늘로 올라갔다.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에는 ‘쩍, 쩍!’대는 괴이한 소리도 섞여 있었다.

석목이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니 땅 위에 차가운 기운이 퍼지며 스친 곳마다 얼음으로 뒤덮였다.

수백 장이나 되는 범위가 순식간에 꽁꽁 얼어붙은 것이었다.

주전도 완전히 얼어버려 처마 밑에 얼어붙은 길쭉한 고드름이 바닥까지 내려왔다.

주변에 서 있던 염호 일족 몇몇도 얼음에 갇힌 채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다.

그 중 한 사람은 붉은 화염까지 덮고 있었지만 여전히 얼음이 내뿜는 한기를 막아낼 수 없어 부들부들 떨었다.

석목이 얼음 위를 한참 동안 훑어봤지만 어휘 신장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한참 의아해하던 중에 얼음 한 곳이 갑자기 불룩하게 올라오더니 무엇인가 튀어나와 곧장 석목을 덮쳤다.

얼음 속에서 희미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는데 그 모습이 어휘 신장과 매우 닮아 있었다.

어휘의 얼굴은 튀어나오면서 점점 불어났으며 어휘 신장의 상반신이 서서히 떠올라 두손에 영롱한 얼음창을 쥐고서 석목의 가슴을 찔렀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곤봉으로 얼음창을 막아 내리쳤다.

쩍!

가벼운 소리와 함께 얼음창이 부서져 버렸다.

석목은 곤봉의 기세를 몰아 어휘 신장의 반쪽 몸을 향해 내리치듯 짓누르며 신장을 두 덩이로 갈라놓았다.

와르르!

갈라진 신장이 수많은 얼음 조각이 되어 부서지면서 무더기로 굴러 떨어졌다.

하지만 석목의 눈에는 희색이 전혀 비치지 않았으며 오히려 미간에 파인 주름만 더 깊어졌다.

석목은 많은 생각을 할 새도 없이 갑자기 발목이 시렸다. 그래서 고개를 숙여 바라보니 또 다른 얼음 신장이 석목의 앞에 나타났는데 얼음 신장은 몸을 반쯤 내밀고는 두 손으로 석목의 발을 꽉 잡았다.

뼈를 에는 차가운 기운이 두 발을 감싸자 석목은 몹시 고통스러웠다.

석목은 놀라긴 했지만 당황하지는 않아 차분하게 구전현공을 빠르게 시전하여 단전과 급소를 보호해 냉기가 스며드는 것을 막으면서 동시에 두 발에 하얀 불꽃을 태워 힘껏 앞으로 날아올라 얼음 신장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얼음 신장의 두 팔은 매우 느리게 녹아내려 거센 힘에 붙들린 석목은 벗어나지 못했다.

이때, 석목의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어두운 그림자가 앞을 가렸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또 다른 얼음 신장이 어느새 앞에 나타나 영롱한 얼음도끼 두 자루를 휘두르며 석목을 덮쳤다.

다급해진 석목은 발밑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곤봉을 세차게 휘둘러 단번에 얼음 신장의 가슴을 찔렀다.

펑!

석목의 빈철곤이 얼음 신장의 가슴께에 구멍을 뚫고서 튀어나왔다.

그러나 가슴이 뚫려버린 얼음 신장은 끄덕도 하지 않은 채 석목에게 두 도끼를 휘둘렀다.

석목은 이를 악물고 검은 곤봉에 흑백 빛을 감아 위로 치켜들었다가 좌우로 흔들며 얼음 신장의 상반신을 두 덩어리로 갈라버렸다.

그리고 곤봉을 바닥에 내리치자 얼음 신장이 부스러기로 변하여 사방으로 흩날렸다.

“천정의 신장이라는 놈이 숨어서 인형 따위나 내보내며 암살을 시도하다니. 본체도 드러내지 못하는 꼴이 참으로 우습군.”

석목이 얼음장 위를 훑어보며 말했다.

무엇 때문인지 석목은 영목신통으로도 어휘 신장이 숨은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하하하, 힘을 모으는 중이란다. 정말 너 같은 무능한 놈을 내가 두려워할 것 같느냐?”

낭랑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어휘 신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석목이 고개를 휙 돌려보니 또 한 줄기 얼음이 바닥에서 불쑥 튀어나와 어휘 신장의 모습처럼 뭉쳤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이 얼음 신장이 내뿜는 기운은 매우 방대했으며 몸집 또한 빠르게 불어나 순식간에 높이가 수백 장이나 되는 우뚝 솟은 얼음 거인으로 변신했다.

얼음 거인은 한 손에 얼음방패를 들었으며 다른 한 손에는 얼음창을 쥔 채, 텅텅 비어있는 눈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는데 눈구멍에서 하얀 한기가 수시로 피어올라 허공에 얼음을 뿜어냈다.

석목이 바라보는 눈빛은 묵직해졌으며 그가 빠르게 대범반무진경을 시전하자 석목에게서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몸통이 불어났으며 피부에는 흰 털이 자라났다. 그리고 입 안에 자란 뾰족한 이빨이 밖으로 뻗어 나오더니 순식간에 거대한 원숭이로 변하였다.

원숭이는 팔목을 접어 여의빈철곤을 거두어들이고는 눈부신 금빛을 뿜어내는 번천곤을 꺼내들었다.

“버러지 같은 놈! 오늘이 네놈 기일이다!”

얼음 거인은 아무런 감정이 섞이지 않은 말투로 두 마디를 내뱉고는 성큼성큼 석목에게로 돌진했다.

거인이 밟고 지나간 곳마다 찬바람이 불었으며 공기에 남은 물기가 겹겹이 얼어붙어 마치 움직이는 커다란 얼음성처럼 태산 같은 기세를 풍기며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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