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6화. 입정
이튿날 정오, 염호 일족은 성대한 축전을 열었다. 일련의 의식을 치른 후에 안화는 선조들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새로운 족장으로 임명을 받았다.
석목은 이런 거추장스러운 자리가 불편했기에 참석하지 않았다.
늦은 밤.
낮에 치른 축전의 열기로 가득했던 염호 일족은 밤이 깊어지자 고요해졌다.
달이 부드러운 빛을 쏟아내고 있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염호 일족의 서쪽에는 매우 평범한 골짜기가 하나 있었는데 골짜기 주변 백 장 정도 되는 범위에 노란 노을빛이 흘러 다녔다. 노을빛은 마치 안개처럼 천천히 맴돌고 있어 밤하늘이 더욱 신비롭게 보였다.
이때, 먼발치에서 두 갈래 빛이 날아와 골짜기에 떨어지더니 두 사람이 나타났는데 석목과 안화였다.
“석목 형, 여기가 황월 고정이 있는 곳이에요.”
안화가 말했다.
석목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골짜기 주변엔 봉우리가 우뚝 솟아있었으며 그 모습이 변화무쌍하여 현란한 느낌을 주었다.
골짜기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둠이 깊게 내려앉은 곳이라 별들만 반짝였다.
오랫동안 바라보자 느릿느릿한 압박감이 기이한 힘을 몰고서 밀려왔고, 하늘에 뜬 별들이 점점 밝아 보이며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침침해졌다.
석목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이상해졌던 기분이 천천히 사라졌다.
“엄청난 천연 환진(幻陣)이로구나. 천지 성광(星光)의 힘을 모을 수 있다니. 그러니 이곳에 황월 고정이 생겼군.”
석목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자아냈다.
“맞아요. 우리 종족의 선배님들이 추측한 바에 의하면, 이런 환경이 천년만년 동안 해와 달, 성광의 힘을 모아 황월 고정을 만들었다고 하죠.”
안화가 말했다.
석목은 인위적인 것은 절대 자연이 만들어낸 것을 능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금 감탄을 자아냈다.
“고정은 금제 속에 있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안화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어 두 눈을 비스듬히 감고는 입으로 주문을 외우며 법결을 시전했다.
안화의 앞에서 붉은빛이 반짝이더니 호왕새인이 나타나 붉은빛을 넓게 펼쳤다.
안화의 두 눈은 동그란 호랑이 눈으로 변하였으며 입으로는 주문을 빠르게 외웠다. 그러자 호왕새인이 천천히 돌아가며 그 속에서 촘촘한 붉은색 부문이 날아 나왔다.
안화는 심각한 얼굴로 법결을 날렸다. 그러자 수많은 부문들이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며 크기가 족히 십 장이나 되는 커다란 호랑이 허영이 나타났다.
호랑이가 울부짖으며 네 발을 짚어 노란 노을빛으로 달려가서는 그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어서 묵직한 소리가 빛 속에서 흘러나오자 노란빛이 밀물처럼 양옆으로 갈라지며 사람만한 통로가 하나 나타났다.
“가죠.”
통로가 나타나자 안화가 몸을 날려 호왕새인을 거두어들이고는 석목을 데리고 통로로 날아 들어갔다.
노란빛이 한참동안 번쩍이며 통로가 다시 천천히 닫혔다.
둘은 곧장 골짜기의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골짜기의 통로는 굽은 길이었으며 나무가 그윽하게 드리운 숲이었다.
석목과 안화는 나란히 걸어가며 길을 따라 굽이굽이 돌면서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그러다가 시선의 끝에 오래된 고정(古井)이 하나 나타났는데 지름은 네다섯 장 정도 되어 보였고, 고정은 변두리가 푸른 석재로 덮여 있어 언뜻 보면 매우 평범한 우물 같았다.
고정에서 풍기는 옅은 달빛이 주변을 드리웠는데 강력한 흡인력이 흘러나와 고정과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석목의 눈에서 빛이 흘렀으며 역시 대단한 고정이라 생각했다.
이때, 석목의 영수 주머니에서 빛을 반짝이며 채아가 머리를 내밀고 두리번거리다가 날아 나왔다. 그리고 반짝이는 눈으로 고정을 바라보았다.
“월광이 이렇게 짙다니. 석두, 나도 들어가서 수련할 거야.”
채아가 다그쳤다.
“조용히 해!”
석목이 눈썹을 치켜떴다. 채아도 요수였기에 황월 고정은 채아에게도 수련하기 좋은 곳일 터였으나 여긴 염호 일적이 다스리는 부지였다.
“괜찮아. 채아도 같이 들어가자.”
안화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럼 고마워.”
석목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채아가 환호하며 날개를 펄럭이면서 가장 먼저 고정으로 들어갔다.
“안 형, 괜찮은가?”
석목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괜찮아요. 우리도 들어가죠.”
안화가 미소를 지으며 우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말을 듣자 석목도 더는 채아를 말리지 않았다.
* * *
고정 안은 은색 세계였는데 양쪽 내벽에는 투명한 은색 결정체가 맺혀 마치 얼음 같았으며 기이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고정 속에는 은빛이 가득했으며 빛들은 마치 실재하듯 안개처럼 흩날렸다.
석목이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은색 안개를 흡수하자 청량한 기분이 몸속으로 퍼지더니 오장육부가 마치 차가운 물에 잠긴 듯이 시원하고 편안해졌다.
은색 안개는 다시 차가운 기류로 변하여 석목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는데 덕분에 진기가 맑아진 느낌이었다.
“이게 바로 황월의 기운이구나…… 신묘하기 그지없군!”
석목은 은색 안개가 몸속에서 일으키는 변화를 느끼며 좋아했다.
황월의 기운에 이렇게 진기를 순수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었다니. 이건 석목이 거둔 정말 뜻밖의 수확이었다.
수련 경지가 일정한 수준까지 올라가면 몸속에 깃든 단전의 진기는 시시각각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가 더 농후해지는 과정을 겪었다.
하지만 몸속의 진기 농도가 짙어지는 과정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석목은 신경 강자와 여러 번 교전을 치르면서 꽤 깊이 수련을 하며 깨달았다. 하여 수련 경지도 빠르게 올라가 이제 성계 정상까지 왔으니 제대로 정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고정이 매우 깊어서 두 사람은 이삼십 장이나 날아서야 끝에 도달했다.
깊이 들어갈수록 황월의 기운도 점점 짙어졌으며 바닥에 도착하니 기운은 극한까지 치솟았다.
바닥은 크키가 칠팔 장 정도 되는 둥그런 공간이었는데 벽에 은색 부문들이 가득 새겨져 있어 복잡한 은색 대진을 이루었다.
진법에 적힌 부문에서 은빛이 번쩍였으며 계속해서 작동하더니 기이한 흡인력이 흘러나왔다.
바닥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희미한 달빛이 쏟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으며 쏟아진 달빛은 다시 은빛으로 줄줄이 갈라져 끊임없이 고정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석목은 눈에서 빛을 반짝였는데 그가 진법에 대해 아는 만큼 유추해보면, 이 은색 대진이 뒤덮은 범위는 그리 넓지 않았다. 때마침 고정의 밑바닥에만 진법이 퍼져 있었는데 이 진법은 매우 절묘하고 복잡하여 바닥 곳곳에 적힌 부문들이 고리를 만들어냈다.
이 은색 대진은 복잡하고 절묘하기가 석목이 봤던 진법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바닥에는 둥그런 돌기둥이 네 개 튀어나와 있었는데 기둥마다 두 뼘 정도 크기였으며 그 위에 부들방석이 놓여있었다.
채아는 이미 부들방석에 앉아 두 눈을 감았는데 주변을 맴돌던 은색 안개가 채아에게로 몰려와 채아의 몸통을 은색 안개 구체로 감싸버렸다.
“멍청해 보일 때도 많은데 기회가 생기면 또 엄청 적극적이라니까……”
석목은 공이 되어버린 채아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안화도 몸을 날려 근처에 놓인 한 부들방석에 앉았다.
“안 형, 황월 고정에서 수련을 할 땐 제한시간이 있다고 했었지?”
석목도 돌기둥에 앉으며 물었다.
“네, 황월의 기운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염호 일족의 선배님들이 금제를 설치했죠. 매번 황월 고정에 들어와서 수련을 할 때마다 한 달을 넘으면 안돼요. 시간이 다 되면 우리는 황월 고정 밖으로 전송될 테죠. 그리고 고정 밖에 둘러진 금제가 완전히 폐쇄되어 십 년 뒤에나 다시 열릴 거예요.”
안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
“시간이 많지 않으니 석 형, 우리 빨리 시작하죠.”
안화가 그리 말을 하며 두 눈을 감았다.
석목도 돌기둥에 앉아 두 눈을 감았다.
석목은 잠깐 휴식을 취한 뒤에 몸 상태를 최적으로 끌어올린 후에 공법을 운용했다.
시간이 흐르자 주변에 맴돌던 황월의 기운이 천천히 몰려와 석목의 머리 위로 깔때기 모양 소용돌이를 만들더니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쏟아지며 몸속으로 스며들었다가 다시 사지로 흘러 들어갔다.
기운이 흐를 때마다 단전 속에 깃든 진기도 점점 순수해졌다.
얼핏 아주 미세한 변화였지만 황월 고정이 아니었더라면 몇 배나 더 수고스럽게 수련을 해야 이 정도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석목은 단번에 공법을 수십 번이나 운용했는데 몸속에 깃든 진기가 훨씬 순수해져 순화된 진기가 매우 부드럽게 느껴졌다.
석목은 속으로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진기뿐만 아니라 구전현공의 힘도 황월의 기운이 녹아든 후에 매우 차분해졌다.
석목이 다시 눈을 떴을 땐 흥분한 기색이 어렸다.
요 근래에 들어, 특히 구전현공 일곱 번째 단계를 수련한 후에 몸속에 깃든 구전현공의 힘이 계속 안정되지 못해 쉽게 여덟 번째 단계를 수련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석목은 황월의 기운이 구전현공의 힘을 안정시켜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이건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었다.
석목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다시 눈을 감은 채 계속해서 황월의 기운을 빨아들이며 수련에 푹 빠졌다.
* * *
시간이 조금씩 지나 반나절이 흘렀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눈을 번쩍 떴다.
황월의 기운은 유용했지만 무엇 때문인지 매우 무거웠으며 천지 영기처럼 가볍지가 않아 제아무리 빠르게 공법을 운용해도 황월의 기운을 흡수하는 속도를 끌어올릴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석목은 아마 몇 개월이나 수련을 해야 황월의 기운을 충분히 빨아들일 수 있을 터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석목은 채아와 안화에게 신식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눈썹을 치켜떴다.
그러나 안화와 채아도 마찬가지였는데 둘은 심지어 황월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속도가 석목보다 느렸다.
석목은 다시 마음이 놓였는데 보아하니 공법의 문제가 아니라 원래 무거운 것 같았다.
석목이 다시 고개를 흔들며 두 눈을 감고는 수련에 집중할 때였다.
안화의 몸에서 붉은빛이 크게 번지더니 이마와 볼에 붉은 꽃무늬가 줄줄이 나타났다. 순간, 주변을 맴돌던 황월의 기운이 한참 동안 들끓더니 기운 파동이 석목과 채아에게로 드리웠다.
채아는 수련에 빠져있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안화가 혈맥의 힘을 강화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때, 석목의 몸에서도 검은빛이 반짝이더니 분신이 나타났다. 조금 전에 밀려나왔던 황월의 기운이 내뿜는 파동에 놀라서 나온 것 같았다.
분신은 눈에 열망 가득한 빛을 뿜어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입을 벌려 주변의 기운을 흡수했는데 황월 기운이 은색 빛기둥으로 변하여 분신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분신이 감고 있는 검은 기운이 밝아지며 수련 경지도 어렴풋이 올라간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자 석목은 깜짝 놀랐다. 황월의 기운이 분신에게도 도움이 되다니.
석목은 황월의 기운이 그에게 너무도 많은 수확을 가져다줘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분신은 강적을 만날 때마다 놀라운 실력으로 승리를 쟁취했다. 다만 분신은 실력이 꽤 오랫동안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서 석목은 골머리를 앓았다.
“음……”
하지만 석목의 안색이 다시 바뀌었다.
분신이 황월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속도가 석목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이었다.
“흡수하는 방식이……”
석목이 눈빛을 반짝였는데 분신이 황월의 기운을 흡수하는 방식은 탐월식과 비슷했다.
“맞네, 탐월식을 잊고 있었군!”
석목은 속으로 자신이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탐월식은 월광의 정화를 빨아들일 수 있으며 황월의 기운은 월광의 힘이 전환된 기운이니 탐월식이 아마 매우 유용하게 쓰일 터였다.